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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188화 (188/624)

제188화

187화-그거 맞아? (8)

“어때요? 배울 만한가요?”

저녁 시간, 백화단주의 집무실.

함께 식사나 하자는 성화린의 권유에 그곳을 찾은 설천위는 젓가락을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생각보다 잘 가르쳐 주시네요.”

처음엔 무슨 믿음이니 뭐니 옆으로 새는 이야기나 하길래 TMI로 가득한 할아버지의 훈계형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지식의 전수는 깔끔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수업 하나하나가 알차다고 해야 하나.

사흘 정도 배운 거긴 하지만, 수업의 밀도가 높아 상당히 만족스럽다.

“이 정도면 한 2주만 더 배우면 될 것 같은데요?”

“2주라. 보통이라면 겉핥기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겠지만…….”

고작 며칠 만에 술법을 두 개나 배워 갔던 설천위를 떠올린 성화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2주면 충분히 배울 만큼 배우고도 남겠어.

야채볶음을 집은 성화린은 바닥에 앉아 헉헉거리는 청랑을 발견하곤 작게 웃었다.

이 아이는 언제 봐도 귀여운 것이…….

“꺼내 놓는 연습 중인가요?”

“네. 저렇게 작은 상태는 별로 부담도 안 되니까요.”

뭐, 사실 청아도 그렇고 거의 하루 종일 꺼내 놔도 전투만 안 하면 딱히 힘들거나 하진 않지만.

만귀단 단주가 추천한 수련법이니 일단은 계속할 생각이다.

“그럼 이 아이도 수련을 위해 꺼낸 건가요?”

[큥!]

“뭐 그렇죠?”

“이렇게 보면 그때의 모습이 거짓말인 것 같네요.”

설천위의 어깨 위.

작은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 패융을 보며 성화린은 손을 뻗었다.

[큥!]

“이런, 거절당했네요.”

“얘, 나름 까탈스러운 녀석이라서요.”

백유에게 좋다고 달려갈 땐 몰랐는데, 아무나 따르는 건 아니다.

사실 옛날엔 진짜 아무한테나 달려갔지만 성장하면서 살짝 사람을 가리게 됐다.

호감을 보이는 건 유예린이나 서하영, 철백 정도?

아무래도 강함의 유무보다는…….

‘패도(覇道)에 가깝냐 아니냐겠지.’

유예린과 철백은 말할 것도 없이 가까운 편이고, 서하영은 그런 기질이 조금은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눈앞에 있는 성화린은…….

‘그냥 착한 사람이란 뜻이겠지.’

그런 의식 없이 이만한 힘을 쌓았다는 건 그만큼 책임감이 강하다는 소리다.

보통의 수련으로 저만한 수준의 힘을 쌓을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게임 속에서 봤던 성격도 뭐 비슷했고.

생각에 빠져 젓가락을 움직이던 설천위는 이내 식사를 끝내고 젓가락을 내려놨다.

[큥!]

그사이 결국 성화린의 구애에 견디지 못하고 등을 내준 패융은 그녀의 손길을 만끽하고 있었다.

거절했으면 지조 있게 거절해라.

나름 패룡(覇龍)인 녀석이.

“흐흠.”

“아, 계속하세요.”

“아뇨. 식사가 끝났는데도 계속 붙잡아 둘 순 없죠.”

설천위의 시선을 느끼고 살짝 붉어진 볼로 손을 거둔 성화린은 이내 얼굴색을 되찾았다.

“그럼, 수업 힘내세요.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 내서 가세요.”

뭐 급하게 마무리하려는 모습을 보니 부끄러운 마음까지 추스른 것 같진 않지만.

작게 웃은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옙. 확실하게 배워서 가겠습니다.”

* * *

“감이 좀 잡히느냐?”

“네. 슬슬 시도해 봐도 될 것 같은데요?”

만귀단의 훈련장.

오윤과 마주한 설천위는 자신의 손 위에 일렁이는 영력을 바라봤다.

술법으로 만들어 내는 영체.

그 개념은 간단하다.

영력에 실체라는 속성을 얹어 그것을 재료로 삼아 인형을 만들어 낸다.

문제는 시작점인 실체라는 속성을 얹는 부분이다.

“감각 하나는 뛰어나구나.”

“흑관을 만들 때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해요.”

“……괴물 같은 녀석, 보통 술법으로 인간을 속박할 땐 혼을 묶지 신체를 묶진 않는다.”

……뭐 그렇긴 하죠.

그 개념을 내가 생각하지 못했단 말이지.

알았으면 전에 있던 전투들에서 보다 손쉽게 이겼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면 할 수 있다는 표정이구나?”

“하면 되지 않을까요?”

“아서라. 살아 있는 육체에 깃들어 있는 혼에 간섭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네가 쓰는 그 흑관이란 술법으론 힘들 게다.”

“으음.”

하긴, 영체를 그렇게 잘 잡는데 산 사람까지 딱딱 잡아내길 원하는 건 욕심인가?

근데 개조를 조금만 하면 될 것 같긴 한데.

“쯧쯧, 포기하기 싫다는 눈빛이구나. 그럼 고민해 보거라. 그 고민만으로도 배우는 게 있을 테니.”

“옙.”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다시금 수련에 집중했다.

일단 영체를 만들어 내는 것에 성공하는 게 우선이다.

뭐, 배우는 과정에서 나무로 만든 영체를 하나 제작하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런 자잘한 도구 없이 다닐 수 있는 게 최고 아니겠는가?

솔직히 앞으로 식령을 몇이나 더 거둘지 모르는데 그 하나하나에 전부 영체를 만들어 들고 다니다간 허리가 휠 거다.

설천위가 미래의 허리 건강을 위해 열심히 영력으로 영체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귀신같은 집중력이구먼.’

그 모습을 바라보는 오윤은 고개를 저었다.

무공을 수련하는 녀석이라 그런지 아니면 그냥 잘 맞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영체를 만들 때의 집중력이 장난 아니다.

조만간에 큰 사고를 칠 것 같은 수준의 집중력.

한 시진이 지나고, 두 시진이 지났는데도 처음의 자세 거의 그대로다.

보통의 술사들이면 통증 때문에라도 자세가 흐트러졌을 텐데.

참, 무공을 열심히 수련하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긴 하네.

“거기까지다.”

“음?”

“저녁 먹을 시간이다. 이 녀석아.”

“아, 벌써요?”

“집중력이 좋은 건 알겠으니 어서 밥이나 먹으러 가거라.”

“옙.”

밥은 먹어야지.

음.

오윤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난 설천위는 대충 영력을 갈무리한 채 곧바로 훈련장을 나왔다.

아까까진 몰랐는데 오윤의 말을 들으니 갑자기 허기가 밀려왔다.

오늘은 성 단주랑 저녁 약속도 없으니 방에 들러서 옷만 갈아입고 바로 먹으러 갈까.

훈련장에 그냥 앉아 있었더니 옷에 먼지가 참.

밥 생각에 들뜬 걸음으로 방에 도착한 설천위는 재빨리 옷을 꺼내 갈아입었다.

밥 먹고 오는 길에 싹 씻고 돌아와야지.

“음?”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방을 나서려는 순간.

방 입구 한쪽에 놓인 서한을 발견한 설천위는 멈춰서 그것을 집어 들었다.

편지가 또 올 이유가 있나?

아무런 생각 없이 열어 보는 편지.

그리고.

“……이것 봐라?”

서한의 내용을 전부 확인한 설천위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 * *

“으아아아!!”

“이 인간, 더 강해졌어!!”

“수련 시간에 이 인간 빼야 했다니까요!”

“이 스님, 의식 있는 거 아니야?! 공격이 더 날카로워졌는데?!”

날뛰는 혜송과 그런 그를 제압하기 위해 달려드는 세 사람.

서하영, 주현운, 소윤혜.

혜송을 제압하기 위해 애를 쓰는 세 사람을 보며 유예린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

“알면 됐어요.”

그리고 그 옆에서 웬일로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당화유.

혜송을 상처 없이 제압하기 위해 상처를 입는 이들을 보며 당화유는 더욱 깊게 고개를 숙였다.

사실, 이곳에서 지내며 몇 번이나 마주한 장면이지만 볼 때마다 미안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혜송의 주먹이 만들어 내는 상처보다 자신의 암기가 만들어 내는 상처가 더 많을 테니.

“그런데, 철백은 가세 안 해?”

“나는 대기조요.”

“……나 때문에?”

“소저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상처가 너무 많아지니 어쩔 수 없소.”

혜송도 솔직히 상처 없이 제압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이젠 세 사람도 꽤나 능숙해졌다.

혜송이 훈련하면서 강해지는 것보다 세 사람이 폭주하는 혜송에게 익숙해지는 게 더 빨랐으니까.

물론 실제로 점점 더 강해지는 게 눈에 보여 저리 앓는 소리를 내긴 하지만.

“슬슬 된 것 같네요.”

자리를 털고 일어난 유예린이 움직이자, 혜송이 반응한다.

여태껏 폭주할 때마다 그녀에게 마무리를 당하다 보니 생긴, 거의 본능에 가까운 반응.

그 반응에 쓰게 웃으면서도 유예린은 천천히 양팔을 들어 올렸다.

이곳에서 심마를 일시적으로나마 가라앉힐 수 있는 건 자신뿐이다.

문제는 그것이 결국 임시 조치일 뿐이라는 점.

‘점점 잦아지고 있어.’

심마가 쌓여 전에는 이틀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했던 발작이 이젠 하루에 두 번씩 일어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거의 3주에 가까운 시간.

이젠 여러모로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하다못해 당 소저만이라도 해결할 수 있으면.’

그러면 혜송 스님을 제압하는 건 그리 큰 문제도 아닐 텐데.

철백이 온전히 혜송에게 집중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큰 피해 없이 막아 낼 수 있을 거다.

물론.

‘여러모로 수련은 되긴 하지만요.’

덕분에 다른 세 사람의 성장이 눈에 보일 정도이니 이걸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뭐가 됐든 상황이 좋지 않은 건 변함이 없으니 별 위로는 안 되지만.

“언니, 준비됐어요!”

서하영의 외침에 유예린은 벌렸던 팔을 앞으로 모았다.

그리고.

푹! 푹!

순식간에 혜송의 주요 혈에 명중하는 대침.

능숙하기 그지없는 암기술이 세 사람이 만들어 낸 빈틈을 정확하게 찌른 것이다.

은신의 극의를 품은 유예린만이 가능한 방법.

아무리 이성을 잃었다고 해도 주요 혈을 노리는 암기를 그냥 던지면 반드시 막거나 피할 테니 이렇게 유예린이 직접 손을 쓸 수밖에 없었다.

“좋아요! 잦아들어요!”

혈이 막히며 서서히 기세가 줄어드는 혜송.

그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조심!”

철백의 다급한 경고와 함께 유예린의 몸이 튕겨 나간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가득 메우는 암기.

유예린 같은 은신의 이치를 담은 공격은 아니나, 그런 착각이 들 정도로 빠르기 그지없는 암기술.

“어찌 이런……!”

전조도 없이 폭주한 당화유의 기습에 다급히 그녀의 팔을 붙잡은 철백이 그녀를 속박했다.

거칠기 그지없는 손속으로 대응하는 당화유였지만, 그런 공격이 통할 철백이 아니다.

순식간에 당화유의 양팔을 붙잡은 철백은 어떻게든 그녀의 움직임을 멈추는 데 성공했고.

“제수씨! 괜찮소?!”

“……괜찮아요.”

팔을 스친 암기로 인해 흐르는 피를 닦아 내며 유예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젠 진짜 한계네요.’

학관장이 눈을 감아 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이 사달이 났는데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을 텐데, 이리 조용한 것은 학관장도 이쪽에서 무슨 의도를 가지고 이러는지 파악해서일 터.

시간이 없다.

“어떻게든, 방법을…….”

천위가 오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이라도 찾아야…….

“이 누님은 또 왜 이래?”

순간,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한 곳을 향했다.

어느새 철백의 앞에 선 한 사람.

“설 공자!”

“왜 또 다쳤어?”

다급하게 유예린에게 다가가 그녀의 상처를 살피는 설천위.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철백이 쓰게 웃었다.

“천위, 나 지금 안면에 발차기 당하고 있는 거 안 보이나?”

당화유는 참으로 유연해서 상체를 붙잡은 것만으론 공격을 전부 막을 수 없다.

특히, 일직선으로 올라오는 발은 그야말로 깔끔하게 철백의 안면에 명중한다.

내공을 담은 이 발차기는 상당히 위협적이어서 철백도 마냥 맞아 줄 순 없었다.

실제로 슬슬 코피가 나오고 있으니까.

“응? 아, 미안. 이제 봤네.”

“……섭섭하구먼.”

친구 놈은 의미가 없다는 게 이건가.

웃으며 어깨를 으쓱이는 설천위와 허허롭게 웃는 철백.

그리고 그 모습에 반응하는 세 사람.

“설 소협!”

“형님!”

“왔으면 일해!”

……나머지는 다 환영인데 왜 혼자만 그리 다급하십니까, 소 누님?

“언능 일해요!”

“빨리 당 소저부터 진정시키고 이쪽!”

아, 다 그냥 급한 거구나?

날 오랜만에 보고 느끼는 반가움이나 감동 같은 건 아예 없구나?

“……하면 되잖아.”

수련도 중간에 끊고 겁나 달려왔구먼.

입술을 삐쭉이면서도 설천위는 착실하게 움직였다.

철백에게 붙잡혀 발버둥치는 당화유.

두 눈에 가득한 붉은 기운을 보아하니…….

[일전의 약을 먹은 것 같구나.]

독은 해독했어도 술법의 영향이 남은 건가.

이래서 서한으로 두 번이나 도움을 요청했구먼.

순식간에 견적을 뽑은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단.”

손을 뻗어 당화유의 머리를 붙잡는다.

그리고.

“한숨 잡시다. 당 소저.”

[크롸라라라라라라!!]

흑룡의 포효가 당화유에게 깃든 술법을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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