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7화
186화-그거 맞아? (7)
“……하거라.”
“단주님?!”
“크기만 커다란 것은 아닌지 시험을 해 봐야 할 것 아니냐.”
벌벌 떠는 부하에게서 시선을 거둔 오윤은 거대한 흑룡을 올려다봤다.
‘……이런 크기는 오랜만에 보는군.’
자신도 이리 거대한 식령을 불러낼 순 있다.
문제는…….
‘통제할 수 있는가?’
그리고.
‘크기만큼 내실이 있는가.’
이 두 가지는 겉으로만 봐선 알 수 없다.
궁금하다.
과연 어느 정도의 힘을 품고 있을까?
“버티거라.”
“단주님!”
부하의 처량한 외침을 무시하고 오윤은 오로지 흑룡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켰다.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거체.
그리고.
쾅!!
귀가 먹먹해지는 굉음과 함께 바위가 가루가 되어 흩어진다.
‘……철이 섞인 바위거늘.’
철이 섞여 표면에 붉은 기가 도는 바위였다.
이제는 용광로에 넣으면 철을 채취할 수 있을 것 같은 상태가 되어 버렸지만.
물론, 철광석이라고 부를 정도의 함유량은 아니라서 제대로 채취할 순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철이 섞인 바위를 이리도 간단하게 부수다니.
그것도 그냥 부수는 정도를 넘어서서 단숨에 가루로 만들었다.
그만한 힘과 질량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
물론, 저만한 바위를 박살 낼 만한 강자는 이 무림맹에도 꽤 있다.
단주급 이상은 가벼운 손짓만으로 가능하고, 대주급 중에서도 힘을 쓰면 가능한 이들이 꽤 있을 거다.
문제는 이것이 오로지 식령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라는 점이다.
‘파괴력만큼은 웬만한 대주들은 상대도 안 되는 수준인가.’
이게 의미하는 바는 생각보다 크다.
만귀단과 백화단이 왜 다른 단과 달리 별개의 영역을 관리하는가.
그 두 가지가 서로 양립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술사들도 기본적인 대인전 실력을 갖추고 있긴 하지만, 그 실력은 다른 단의 평단원 수준을 넘어서기 힘들다.
가끔 그쪽으로 발전시키기 좋은 식령을 부리거나, 술법을 사용하는 경우에나 쓸 만한 실력을 갖춘다.
괜히 술사들이 먼 곳이나 위험한 곳으로 임무를 떠날 때 다른 단의 지원을 받아 움직이는 게 아니다.
그만큼 영적인 힘으로 물리력을 행사하는 건 상당히 힘든 일이다.
그런데 그걸 이리도 간단하게 해내다니.
솔직히 이 정도면 궁금해질 지경이다.
‘왜 무림학관에 있는지 모르겠군.’
무공을 쓰는 것보다 저 아이를 부르는 게 훨씬 강할 것 같은데.
아니, 속도가 부족하니 무인에겐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나?
바위를 부순 것으로 많은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동시에 그것으로 알아내는 정보엔 한계가 있음을 깨달은 오윤은 미간을 찡그렸다.
너무 간단한 시험을 준비했다는 사실에 짜증이 나는 상황에 직면할 줄이야.
‘백화단주는…… 예상하지 못했군.’
저쪽도 경악을 숨기지 못하는 건 똑같네.
그럼.
“준비 똑바로 하거라.”
“ㄴ, 네!”
다음은 영적인 부분이다.
과연 저 용은 어떤 모습을 보여 줄까.
단순히 물리력을 만들어 내기 위해 덩치가 커진 것이라면, 실망스러울 것이다.
그렇기에 오윤이 기대감을 품고 흑룡을 바라본 순간.
“그럼 조심하세요!”
설천위의 가벼운 경고와 함께 용이 움직였다.
거체가 꿈틀거리며 서서히 도사를 향해 접근한다.
‘무량수불! 무량수불!’
그리고 그 모습에 필사적으로 도호를 외우며 영력을 끌어올리는 도사.
그를 감싼 수호령의 힘이 그에 맞춰 증가하지만, 도사는 크게 부족함을 느꼈다.
대체 무엇이 부족한 것일까.
무엇이 이 마음을 이리도 뒤흔드는 것일까.
[크르르르.]
그런 불안감으로 어느새 지척에서 들리는 울음소리에 도사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떴다.
불안과 공포 이전에 자리한 호기심이라는 감정이 도사의 눈을 뜨게 했다.
그리고.
툭.
있는 힘껏 부적을 쥐고 있던 팔이 아래로 떨어진다.
힘없이.
그 모습에 주위에서 탄식을 흘렸지만, 도사는 들을 수 없었다.
보았으니까.
[크르르르르.]
짐승의 것처럼 세로로 갈라진 눈동자.
묵빛으로 흐르는 비늘과 달리 금빛으로 빛나는 눈동자는 그야말로 하나의 예술품과도 같은 멋을 지녔으나, 도사는 그것을 느낄 수 없었다.
멋?
아름다움?
그게 뭔가.
호랑이의 눈을 보고 멋있다고 말하는 자는 그 앞에 서지 않은 자이다.
그 눈을 바로 코앞에서 보면, 멋이고 나발이고 오로지 한 가지 감정만이 온 정신을 지배한다.
‘사, 살……!’
공포.
마주한 눈으로 파고들어.
뼈에 스미고.
근육을 움켜쥐어 경직시킨다.
피부는 한기를 느끼다 못해 감각을 잃을 듯 아리고.
얼어붙은 입은 도저히 열리지 않아 작은 외침조차 내뱉을 수 없다.
삶의 끝에 선 공포에 잠식돼 버린 도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눈을 감는 것뿐이었고.
‘아, 죽었다.’
죽음을 인식한 순간, 서서히 의식이 멀어진다.
이 끝에 도달하면 분명 편안해질 수 있…….
“정신 차려라!!”
“으헉!”
등을 후려치는 짜릿한 통증과 함께 두 눈을 번쩍 뜬 도사는 시야 가득 들어오는 청명한 하늘에 입을 벌렸다.
“……살아 있네?”
“멍청한 놈, 간단한 시험에서 사람을 죽이기야 하겠느냐.”
혀를 차며 도사를 나무란 오윤은 어느새 바로 앞으로 다가온 설천위를 바라봤다.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서 있는 모습.
그럴 수밖에.
“……이건 예상외의 상황이군요.”
다급하게 그와 도사 사이를 가로막은 오윤과 성화린의 영력에 반사적으로 그 거대한 용을 회수했으니까.
왜 갑자기 앞을 가로막았는지 눈치채지 못한다는 점이 참…….
‘……마음이 죽을 뻔했어.’
압도적인 살기와 위압감에 짓눌린 인간은 삶을 포기한다.
거기에다 영력을 통한 혼의 잠식까지.
얼마 버티지도 못한 수호령 때문에 그 기운에 고스란히 노출된 도사는 조금 전 삶을 포기하기 직전까지 갔다.
그리고 인간이란 생물은 참으로 오묘해 그런 상황에서 삶을 포기하면…….
‘심장이 딱 멈추지.’
육체가 죽어 버린다.
심장이 스스로 정지해 삶을 끝내 버린다.
다행히 그 전에 멈출 수 있어서 목숨을 살리긴 했지만…….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선 오윤은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는 설천위를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백화단주를 바라본다.
“……가르치지.”
“음. 예상한 대답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제 의도와는 다른 의미일 것 같네요.”
“물론이다.”
백화단주의 씁쓸한 미소에 고개를 끄덕인 오윤은 얌전히 기다리는 설천위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그냥 뒀다간 사람 여럿 잡겠어.”
힘을 부리는 법을 가르치기 이전에 그 힘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부터 알려 줘야 할 것 같았다.
* * *
“용을 부린다라…….”
무림맹주의 집무실.
보고를 받은 맹주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웃었다.
“역시 아쉽구먼.”
제자로 받았어야 했는데.
만귀단과 백화단의 두 단주가 저리 열성적으로 움직이는 걸 보아하니 보통 재능이 아닐 터.
무(武)에는 재능이 없다고 하지만, 그가 본 수준은 학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전혀 모자람이 없는 수준이었다.
즉.
“노력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소리겠지.”
거기에다 실적을 보면 무(武)에도 나름 영적인 재능을 섞어 자신의 실력 이상의 성과를 내기까지 하니 더욱 욕심이 난다.
그 팽후가 무려 병(丙)이라는 등급을 준 것엔 다 이유가 있을 테니.
“다음 기회를 노리도록 할까.”
어차피 맹에 오면 자주 마주치게 될 것 같으니.
제자가 아니더라도 연을 맺는 방법이야 많을 테고.
다만.
“조금 준비가 필요할 것 같군.”
* * *
“역귀술(役鬼術)의 기본은 대상을 이해하는 것이다.”
만귀단 단주의 개인 수련실.
그곳에 자리한 설천위는 오윤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어제, 나와 백화단주가 네 앞을 가로막은 이유는 네가 이 점이 부족해서였다.”
하루.
오윤은 시험을 치른 그날, 일단 설천위를 돌려보냈다.
가르쳐야 할 것을 다시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어서였다.
“그러니 나는 네게 철저하게 기본을 가르치고자 한다.”
“음.”
“먼저, 네가 부리는 그 용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 정도인가요?”
무려 수련을 쌓은 도사인데?
그렇게 쉽게 죽나?
설천위의 표정에 드러난 생각을 읽은 오윤은 고개를 저었다.
“인간의 심신은 생각보다 연약하다. 육체의 단련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육체는 아무리 지치고 고된 일을 겪어도 충분한 휴식만 취해 주면 성장한다.
허나, 정신은 다르다.
휴식으로 회복은 가능하지만, 성장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이야기다.
수많은 고난을 겪고도 일어서는 사람이 있지 않느냐고?
그게 성장한 것 아니냐고?
아니다.
그런 사람은 처음부터 혼자서도 이겨 낼 정신력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단지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
영적인 재능을 선천적인 재능으로 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아무리 갈고닦아도 혼이 가진 인간 본래의 정신력은 쉽사리 성장하지 않으니.
그러나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인간의 정신은 믿음을 통해 강해진다.”
단련된 육체.
벌어들인 돈.
함께하는 동료.
곁에 있는 가족.
자신을 구원해 줄 신.
등등.
수많은 것들을 통해 인간은 마음속에 기둥을 세운다.
그 기둥은 또 다른 정신력으로 작용해 인간을 지탱해 준다.
누군가는 정신력이 나약해 쓸데없는 것을 믿는다고 비난하지만, 오윤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악귀와 싸워야 하는 우리는 나약한 정신력 따위에 기대선 안 된다.”
사명감이든.
동료를 향한 마음이든.
가족을 향한 사랑이든.
무엇이든 간에 정신을 지탱해 줄 절대적 기둥이 필요하다.
“……그게 대상을 이해하는 것과 무슨 상관인가요?”
이야기가 좀 옆으로 새지 않았나?
설천위의 물음에 오윤은 고개를 저었다.
“큰 상관이 있다. 인간은 대상을 이해하지 못하면 믿지도 못하는 생물이기 때문이지.”
툭 바닥을 두드린 오윤의 몸에서 기이한 기세가 일어난다.
그리고.
키잉.
“보거라. 나를 이해하지 못하니 너는 나를 믿지 못하지 않느냐?”
“…….”
순간 등줄기를 훑고 지나간 살의에 반응해 도를 반쯤 뽑았던 설천위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앉았다.
“우리가 부리는 식령은 강하나, 술사 본인이 나약해선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악귀는 술사의 정신을 괴롭히는 것을 기본으로 하지.”
악귀는 속삭인다.
수많은 감언이설을.
특히 완전히 주도권을 쥐지 못한 상태라면, 악귀는 더욱더 날뛴다.
그런 상황에서 나약한 정신은 술사를 잡아먹고, 그렇게 되면 아무리 강한 식령이 있어도 의미가 없다.
“그럼,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위해 이해해야 한다는 건가요?”
“아니. 그렇진 않다.”
“……네? 여태까지 그 소리 한 거 아니었어요?”
“크흠, 이건 뭐, 전투의 마음가짐을 위한 것이고 본론은 따로 있다.”
아니, 이 인간이?
“일단, 솔직히 말해서 네 용은 그 자체로 기적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눈을 가늘게 뜨는 설천위를 바라보며 오윤은 종이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인체의 모양과 함께 온갖 설명이 적힌 종이.
“우리 만귀단이 어떻게 식령을 실체화시키는지 아느냐?”
“자세한 원리는 모르죠.”
뭐, 청아나 청랑처럼 본래 실체를 지녀서 그런 거 아닌가?
……전부 그럴 린 없나?
그런 조건이 붙으면 식령 만들기가 엄청 힘들 것 같은데.
“생각이 닿은 것 같구나. 맞다. 실체를 가진 악귀를 찾는 건 생각보다 힘들지.”
악령들이 개나 소나 다 실체를 가지고 있으면 이미 이 세상에서 악귀를 만나지 못한 사람은 없을 거다.
여하튼, 대부분은 실체가 없는 식령들.
그런 식령을 실체화시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 악귀라고 한들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는 것이 아니기에 술사를 보호하기 위해선 실체가 필요하기 때문에.
둘, 악귀 중엔 인간을 조종하는 녀석들도 많다. 사람이 상대라면 반드시 실체를 가진 존재가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식령의 실체화는 만귀단의 기본 소양이다.
“보통 미리 영체(靈體)를 준비해 가지고 다닌다. 참고로 강시도 영체의 일종이다.”
“인간의 시체로도 영체를 만들 수 있단 소리군요?”
“그래. 허나 우리 정파에선 보통 짐승의 사체 혹은 나무나 금속을 이용한다. 술법적인 처리를 하면 충분히 매개체가 되어 실체를 부여할 수 있다.”
이건 딱 봐도 가장 효율이 좋은 건 인간일 것 같은데.
“그런데, 영체를 준비하지 않는 이들도 존재한다. 네가 그 흑룡을 아무런 매개체 없이 불러낸 것처럼.”
그것은 실로 엄청난 재능이다.
오윤 자신도 술법으로 영체를 만들 순 있으나, 그만한 완성도로 만들 수 있다곤 절대 자신하지 못한다.
그런데 설천위는 그걸 무의식의 영역에서 해내는 거다.
“배워서 다듬으면, 확실하게 성장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더 확실하게 제어할 수 있게 되겠지.
거대한 힘은 섬세함을 더할 때 더 극적으로 성장한다.
이 녀석이 섬세함까지 얻으면 그 끝에 과연 어떤 괴물이 나올까?
설천위를 바라보는 오윤의 두 눈동자가 기이한 기대감으로 일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