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4화
183화-그거 맞아? (4)
“악귀엔 크게 다섯 가지 등급이 있지요.”
임무지로 향하는 마차 안, 성화린의 설명에 설천위는 얌전히 그녀의 말을 들었다.
“원한으로 남은 잡귀, 백(魄). 자아조차 흐리며 단지 악의만을 가지고 있죠.”
자아가 흐리기에 자신이 본래 원망해야 할 대상이 아닌 대상에게도 달라붙는 경우가 많다.
무고한 사람이 악귀에 씌어 피해를 보는 경우가 대부분 이 경우.
“뚜렷한 원한과 목표를 가진 악귀, 원(怨). 깊은 원한을 가진 이들이 자아를 유지한 채 남은 경우죠.”
원한과 목표가 뚜렷한 만큼 자신이 죽은 곳에 지박령이 되는 경우가 많다.
흔히들 진짜 귀신이라 부르는 존재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리고.
“여기까지는 수령원의 학생들도 대처할 수 있습니다.”
원(怨)의 경우, 학생의 수준에 따라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지만 상대할 수 있는 경우가 더 많다.
문제는 이다음.
“귀(鬼). 저희가 인정하는 진짜 악귀들로 뚜렷한 자아와 독립성을 갖춘 하나의 존재로 자리한 자들.”
사후에도 자신을 유지하며 존재를 새롭게 얻은 이들.
이들이 탄생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원(怨) 수준의 악귀가 수많은 사람을 잡아먹고 성장한 경우.
혹은 생전부터 강자였던 자가 악의에 침식되어 스스로 악귀가 된 경우.
현태중은 아주 독특한 경우다.
본래 후자여야 하지만 워낙 높은 정신 때문에 원(怨)으로 시작해 점차 귀(鬼)가 되어 가던 도중이었으니까.
이렇듯,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순 있지만 꼭 이 두 가지로만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아가 있기 때문에 대화가 통하는 이들도 있죠.”
악의(惡意)에 침식됐다고 하여 전부 이성을 잃는 것은 아니다.
현태중이 그러했듯, 자아가 너무 강하면 악의에 침식됐다 한들 이성을 유지한다.
자신이 공격해야 할 대상을 가린다는 소리다.
악귀지만, 살아 있는 악(惡)만을 공격하는 존재가 태어날 수도 있다는 소리다.
“그런 경우에 어찌해야 할까요?”
그렇기에, 성화린은 궁금했다.
대화도 통하고, 상대는 악인만을 죽인다.
그런 경우, 그런 악귀는 토벌 대상일까?
어쩌면, 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존재일지도 모르는데?
그 질문에 설천위는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진지함이 담긴 성화린의 물음에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보내야죠.”
“보낸다면?”
“성불시키든, 소멸시키든 이 세상에선 떠나보내야죠.”
“악(惡)을 제거할지도 모르는데요?”
성화린의 물음에 설천위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선 기능만 있으면 사람들이 악귀(惡鬼)라는 이름도 안 붙였을 것 같은데요?”
성화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웃는 설천위.
그 눈빛에 자신의 의도가 읽혔다는 것을 깨달은 성화린은 작게 웃었다.
“설 소협은 정말 무림학관에 들어간 게 아깝네요.”
“에이, 어른이 노력하는 학생을 부정하시면…….”
“진심이에요.”
악귀(惡鬼).
그들은 목표를 이뤘다고 해서 자연 소멸되지 않는다.
스스로의 존재를 지워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존재가 얼마나 될까.
“목표를 이룬 존재는 마지막 벽을 잃고 폭주하죠.”
악의를 그나마 한 방향으로 향하게 하던 벽이 사라진 존재는 사방으로 악의를 뿜어낸다.
사람을 먹어 치우고, 끊임없이 존재의 몸집을 불린다.
“그렇게 세상의 일부가 된 자들이.”
“재(災)가 되죠.”
“정답이에요. 예습했나요?”
“나름 열심히 알아봤습니다.”
게임에서 본 거지만.
성화린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인 설천위는 말을 이었다.
“도시나 마을에 태어나면 기본 수백에서 수천의 사상자를 내는 존재.”
“맞습니다. 그들은 존재 자체가 재앙이 되는 것들이죠. 토벌 순위는 가장 위에 있으며, 그들의 존재가 인식되는 즉시 단은 모든 여유 병력을 모읍니다.”
백화단은 물론이고, 만귀단도 함께 움직인다.
재(災)를 잡는 것만이 목표라면 단주급과 소수의 병력만으로 충분하지만…….
“그들의 권능은 대체로 대량 학살에 특화되어 있기에 인명 구조를 위해선 대규모의 결계가 필요하죠.”
목숨을 하나라도 더 구하려면 다수의 인원이 꼭 필요하다.
그런 재(災)가 탄생하기 전에 귀(鬼) 단계에서 소멸시키는 것.
그것은 선택이 아니다.
반드시 해내야 하는 과업.
때문에 모든 악귀는 반드시 구제되어야 하며.
그들의 감언이설에 속지 않을 굳건한 마음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확고하기까지 한 신념을 품고 있는 설천위는 참으로 탐나는 인재가 아닐 수 없다.
수령원에서 가르치는 학생들조차도 악귀가 품은 안타까운 사연에 마음이 흔들리니까.
그 무엇보다 냉철한 이성이 최고라고 가르치는데.
“그들이 생전에 사람이었다고 해서 자비를 베풀 필요는 없습니다.”
어느새 정지한 마차에서 천천히 일어난 성화린은 웃으며 마차의 문을 열었다.
“그들은 존재 자체가 악(惡)이 된 자들이니까요.”
* * *
“여기입니다요.”
의뢰인이 보낸 하인의 안내에 따라 도달한 곳은 큼지막한 장원이었다.
깨끗한 담벼락이 사방을 둘러싼 장원.
문제는.
컹! 컹! 컹! 컹!
“……시체도 안 치웠나요?”
“그것이 아무도 들어가려 하질 않아서…….”
시체 썩은 내가 너무 지독하다는 것이지.
더불어 개나 고양이 같은 짐승들이 우는 소리가 상당히 시끄럽다.
냄새 때문인가.
송구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이는 하인의 모습에 성화린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죽은 이들의 혼이 저곳을 떠돌고 있을 거란 생각에 안타깝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이들이 괜히 시체를 치운답시고 장원에 들어갔다면 오히려 시체가 더 늘어날 수도 있으니까.
“천위, 뭔가 느껴지나요?”
“일단 셋? 그 정도인 것 같은데요.”
“좋아요.”
수색 계열 술법을 쓰지 않고 셋이나 찾아내다니.
흡족하게 웃은 성화린은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경첩이 삐걱대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열리는 문.
“이, 이렇게 들어가십니까?”
“안으로 굳이 따라오실 필요는 없습니다. 반나절 정도면 나올 테니 조금 있다가 찾아와 주세요.”
하인에게 안심하라는 듯 빙긋 웃어 준 성화린은 그대로 문을 지나 장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들어가는 설천위.
“히, 히익!”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두 사람의 모습에 겁먹은 하인은 발에 불이 붙은 것처럼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허겁지겁 달려가는 하인을 슬쩍 바라본 설천위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다시 앞을 바라봤다.
“아, 설 소협.”
영역(靈域).
장원 전체를 감쌀 정도의 영역이라면 그 등급이 꽤 높을 터.
좋은 기회다.
“데리고 다니는 혼들 중 불러낼 수 있는 아이들을 불러 주세요.”
“실체를 가진 녀석들 말인가요?”
“네.”
성화린의 긍정에 설천위는 청아와 청랑을 불러냈다.
그렇게 나타난 청아와 청랑을 바라보던 성화린은 웃으며 청랑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 지내는 것 같아 다행이네요.”
[컹!]
오랜만에 만난 성화린을 향해 반갑다는 듯 짖는 청랑.
그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던 설천위는 그 옆에 서 있는 청아를 확인하곤 피식 웃었다.
“왜 그리 뚱해 있어?”
“……아무것도 아닌데요.”
“뭘 아무것도 아니야. 딱 봐도 삐졌구먼.”
“흥! 존재 자체가 악(惡)이라서 삐지나 안 삐지나 똑같거든요?”
마차에서 내리면서 했던 성화린의 말을 가슴속에 품은 그 목소리에 설천위는 웃었다.
“하여튼, 한쪽만 들어요.”
피식 웃는 설천위.
그 시선이 성화린을 향하자 성화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이미 악귀가 아니에요.”
청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성화린은 웃었다.
“식령(式靈)이라 부르는 존재들은 술사의 영향 아래에 들어간 존재들. 그들의 악의는 술사의 영향 아래 들어가요.”
“……그럼?”
“당신은 더 이상 악귀가 아니라는 소리예요. 애초에 악귀의 위험성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면 만귀단 같은 조직이 있을 수 있을 리 없잖아요?”
귀엽다는 듯 웃으며 청아의 볼을 쿡쿡 찌른 성화린은 서서히 풀어지는 청아의 표정에 한 번 더 그 볼을 찔렀다.
“그러니, 당신은 좋은 주인을 만난 것에 감사해야 해요.”
“……좋은 주인?”
“악귀가 품은 악의를 술사가 해소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죠.”
술사마다 감당할 수 있는 식령의 숫자가 다른 것이 이것 때문이다.
그들은 대부분 악귀를 식령으로 삼으니까.
“당신의 주인은 그런 면에서 꽤나 능력이 좋은 것 같거든요.”
고개를 돌린 성화린은 어느새 한곳으로 시선을 고정시킨 설천위를 바라봤다.
그새 느꼈네.
이 정도면…….
‘만귀단에서도 하나쯤은 배워 가는 게 좋겠어요.’
마침 만귀단 단주가 직접 가르쳐 주겠다고 약속도 했으니 임무가 끝나고 돌아가면 바로 배우게 해야겠네.
고개를 끄덕인 성화린은 청아를 품에 안고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럼 저는 지켜볼게요.”
“그럼 나는 왜?”
“당신은 귀여우니까 끌어안고 있고 싶어서요.”
[왕!]
“그럼요. 우리 청랑도 귀엽죠~.”
헉헉거리는 청랑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도 청아를 끌어안은 팔을 풀지 않은 성화린은 웃으며 설천위를 바라봤다.
과연, 식령을 유지하면서 술법을 어디까지 쓸 수 있을까?
기대감과 함께 지켜보기로 한 성화린이 완전히 뒤로 물러나고.
“그럼 제 식대로 처리해요?”
“네. 원하는 대로.”
성화린의 허락을 받은 설천위는 성큼성큼 앞으로 나섰다.
설천위가 나서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검은색의 무언가가 튀어나온다.
소귀(小鬼).
‘침식 정도로 봐선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진 않네요.’
이 영역 안에서 죽은 혼들이 영역을 만들어 낸 악귀의 악의에 침식되어 타락한 형태.
이대로 시간이 더 지나면 진짜 악귀가 된다.
그렇기에.
[흑관(黑棺)]
최대한 빨리 정리할 필요가 있다.
순식간에 그들의 중심을 꿰뚫는 흑관의 등장에 성화린은 두 눈을 크게 떴다.
정밀한 데다 위력도 확실하다.
이런 잡귀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처리하는 모습.
그렇다면…….
“후.”
작게 숨을 내뱉은 설천위가 부적을 꺼낸다.
나름 열심히 연습하긴 했지만, 아직 부적 없이 펼칠 수준엔 도달하지 못한 탓이다.
그렇게 부적을 꺼낸 설천위가 허공으로 부적을 던지고.
기기기이이잉.
무언가가 어긋나는 것 같은 기괴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참, 다시 봐도 신기하네요.”
보통 술사들이 공격을 위해 술법을 배운다고 하면 화(火), 풍(風), 뇌(雷).
이 세 가지의 속성을 배운다.
오행 중에서도 공격력이 뛰어난 불.
오행에 속하진 않으나 어느 곳에서나 만날 수 있는 바람.
마찬가지로 오행에 들어가진 않으나 이 자연계에서 가장 강한 위력을 가진 벼락.
이 세 가지는 술사들이 모방하기에도 좋고 또 위력도 충분하기에 사랑받는 속성들이다.
그런데.
설천위는 이 세 가지를 배우지 않았다.
설천위가 선택한 속성은 물.
즉, 수(水).
오행에서도 가장 부드러운 힘.
그 양은 많으나 허(虛)한 힘.
사람이야 가두면 숨이라도 못 쉬니 죽일 수 있지만, 숨을 쉬지 않는 악귀들에게는 통하지도 않는 힘.
술사들이 정말로 기피하는 속성이자, 정말 재능의 선택지가 없을 때나 고르는 속성인데…….
“이런 일이 가능할 줄 알았으면 저도 수(水) 계열을 익혀 둘 걸 그랬네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 모든 상념을 단번에 부숴 버리고 있었다.
압도적인 힘으로 응축된 구체.
그 안에 뭉쳐진 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 줄기 물.
물론, 실체하는 물이 아니다.
영력에 물 속성을 더해 그런 성질을 가지게 한 것뿐.
그렇기에 물리력은 썩 좋지 못해야 정상인데…….
“……웬만한 보검 안 부럽겠네요.”
악귀를 뚫고 지나가는 물줄기는 그 기세를 잃지 않고 담벼락에까지 상처를 남긴다.
그리고 그 시작점인 물 구체를 손에 쥔 설천위는 미간을 찡그린 채 그 제어에 전념한다.
참, 적을 앞에 두고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지만…….
‘흑관의 유지까지 가능할 줄은 몰랐네요.’
게다가 식령을 둘이나 불러내고.
흑관을 유지한 상태로 저 고도의 집중이 필요한 공격 술법까지?
영력이 풍부한 걸 떠나서 그 정신력에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다.
쿵.
“이런, 벌써 본편인가요?”
조금 더 연습하게 두고 싶었는데.
성화린의 아쉬움과 함께, 강렬한 포효가 장원을 뒤흔들었다.
[노오오오오오옴!! 찢어발겨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