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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183화 (183/624)

제183화

182화-그거 맞아? (3)

“그래서 꽤나 인상 깊었던 모양이야.”

“그렇군요.”

“뭐, 실전을 겪으며 담금질이 된 녀석들 특유의 기세가 있긴 하거든.”

“아하.”

“마침 애들이 자유 대련 중이라 그것도 보여 줬거든? 꽤 충격이 있었나 봐.”

“그렇군요.”

“거기에다 신입들 합격술 연습도 시킬 겸 상대하게 했는데 꽤나 버거웠던 모양인지 몇 번 더 도전하더라.”

“아하.”

턱.

아무런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설천위는 머리 위에 올라온 손에 시선을 올렸다.

그가 앉아 있던 책상에 엉덩이를 걸치고 있던 남궁선이 그 시선에 빙긋 웃는다.

꽈악.

“끄아아악! 항복! 항복!”

“누님이 말하는데 자꾸 건성으로 대답할래?”

“아악! 저 공부하고 있잖아요!”

“씁? 말대꾸?”

“아뇨! 죄송합니다!”

아니, 무협 세계에서 아이언 클로는 좀 아니지!

안면이 아니라 머리를 잡긴 했지만.

격렬하게 항복을 외치는 설천위의 모습에 가볍게 코웃음을 친 남궁선은 손에 힘을 풀었다.

“그래서, 대체 뭘 하고 싶어서 사랑하는 임까지 보내고 혼자 남아 이러고 있는 거야?”

“……누님, 안 바쁘십니까?”

백화단 건물에 마련된 개인실.

그곳에 자리 잡은 지 사흘.

어제부터 찾아와 몇 시간이나 떠들고 가는 남궁선을 보며 설천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차피 이쪽에는 별로 관심도 없으시잖아요.”

“하지만 너한텐 관심이 있는걸?”

“저, 임자 있는 몸입니다.”

굳은 얼굴로 선을 긋는 설천위를 보며 피식 웃는 남궁선.

“어쭈?”

“꺄울?!”

옆구리를 찌르는 발차기에 휘청거리는 설천위.

넘어지기 직전까지 기운 의자를 발로 겨우 되돌린 설천위는 찌릿한 옆구리를 만지며 미간을 찡그렸다.

“후후, 사이좋네?”

“언니!”

문을 열고 들어온 성화린이 웃으며 두 사람을 말렸다.

“두 사람이 이렇게 사이가 좋은 건 의외네?”

“동생의 친구인데, 친해질 수도 있지.”

남궁선이 어깨를 으쓱이자 성화린은 작게 웃으며 설천위를 바라봤다.

“그래서, 우리 학생은 어떻게 잘 익히고 있나요?”

성화린의 질문에 설천위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방해를 받긴 했지만 어느 정도 감을 잡은 상태이긴 하다.

“대충 감은 잡았어요.”

“……흐응, 그거 기대되네요.”

다른 녀석이 대충 감을 잡았다고 하면 그런 어설픈 판단으로 가능하겠느냐며 호통을 쳤겠지만, 설천위는 다르다.

감을 잡았다고 하더니 새로운 술법을 만들어 버린 녀석이니 성화린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캐물을 필요 없이 시켜 보면 되니까.

“그럼 훈련장으로 가죠. 선아, 너도 같이 갈래?”

“물론이지. 그게 궁금해서 이렇게 붙어 있었던 거니까.”

무학으론 거의 촌 동네 아저씨보다도 재능이 없는 녀석이 무려 백화단주가 직접 가르칠 정도로 영적인 부분에서는 재능이 넘쳐난다고 한다.

그러니 궁금하지 않을 리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남궁선.

그렇게 두 명의 단주와 함께 훈련장으로 향하는 설천위는 훈련장에 도착하자마자 부적을 꺼냈다.

흑관을 사용할 때 쓰는 것과는 다른 형태의 부적.

“준비는?”

“됐어요.”

설천위의 긍정에 성화린이 먼저 부적을 뿌렸다.

훈련장에 놓인 허수아비에 붙은 부적.

동시에 사람의 그림자를 떼어 놓은 것 같은 형체가 허수아비를 덮는다.

영적인 파괴력을 실험하기 위한 분신.

그렇게 준비가 끝나고, 성화린은 남궁선과 함께 한 걸음 물러선다.

“흠.”

그와 함께 부적을 허공으로 던지는 설천위.

근 3일 동안 설천위가 배운 술법은 하나.

그것도 전에 배웠던 기초 술법이 아닌, 나름 난이도가 높은 중급 술법이다.

이 백화단 내에서도 숙련자들이나 쓰는 술법.

솔직히 성화린도 첫 시도에 성공할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가능성만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한 이삼 주 들여서 틀만 잡아 놓으면 알아서 익힐 테니까.

그러니 이번에는 가능성만 보자.

그리 생각했는데…….

기기기가가가각.

기이한 굉음이 울리고, 처참하게 변한 훈련장 위에서 성화린이 물었다.

“우리, 임무 한번 같이 나갈까요?”

* * *

“후!”

묵직한 쇠봉을 내려놓으며, 철백은 가볍게 숨을 골랐다.

수백 근의 무게를 감당하느라 철봉이 상당히 휘었지만 뭐, 아직까진 잘 버티는 것 같다.

‘이 이상 무게가 늘어나면 봉의 두께를 늘려야 하는데…….’

나쁘지 않을지도?

봉의 두께를 키우면 완전히 쥐는 것보다 힘의 손실이 더 커지겠지만, 그만큼 악력을 기르는 데는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마침 이번에 받은 상금도 있고.

맹주가 준 상자에는 넉넉한 금액의 전표와 함께 작은 영약이 들어 있었다.

영약은 내공 증진보단 혈도를 강화하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나쁘지 않은 물건이었다.

물론 철백 자신은 필요가 없어서 그냥 서하영을 줬지만.

단련만으로 강화가 되는데 굳이 약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다.

“후.”

일단, 여러 문제는 다음에 생각하기로 하고 다시금 철봉을 쥔 철백은 단숨에 그 봉을 번쩍 들어 어깨에 걸쳤다.

보는 것만으로도 관절이 이기지 못하고 꺾일 것 같은 모습이었으나, 철백은 자연스럽게 어깨에 철봉을 걸친 채 무릎을 굽히기 시작했다.

거의 쪼그려 앉는 수준까지 굽혔다 펴는 것의 반복.

타들어 가는 것 같은 허벅지 근육의 감각을 느끼며 몇 번이고 반복한다.

“……여전히 보는 것만으로도 무서운 수련이군.”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남궁천의 한마디에 횟수를 다 끝내고 나서 철봉을 내려놓은 철백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도 부족해.”

부족하다.

육체의 단련은 고작 기초일 뿐.

아직 자신은 기초조차 전부 쌓지 못한 미숙한 몸이다.

‘처맞기만 하는 건 대응이 되지 못해.’

창천단과의 대련.

신입이라며 나타난 이들 하나하나의 실력은 이류 정도였으나, 철백은 어이없게도 그들에게 발이 묶이는 경험을 했다.

철저하게 계산된 공격과 방어.

그냥 무시하면 되지 않느냐고?

무시해도 된다.

단, 그렇다고 해서 거추장스럽지 않은 건 아니다.

주먹을 휘두르는 경로에 끼어드는 것만으로 위력은 줄어들고.

통하지 않는 공격이라도 그곳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움직임의 궤도를 바꾼다.

철저하게 상대방의 힘을 줄이고 자신들의 힘을 최대화하는 방식.

상대의 공격은 아무렇지도 않았으나, 자신의 공격도 상대에게 닿지 않았다.

온전히 기술의 차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격차.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해선 이런 단련만으론 부족하다.

“철백, 생각이 깊어진 것 같을 때 미안하지만 손님이 있네.”

“손님?”

이곳에 손님으로 올 만한 사람이 있나?

“아미타불, 오랜만에 뵙습니다.”

“혜송 스님이시군요.”

혜송의 합장에 마찬가지로 합장으로 답한 철백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학생회가 찾아올 이유는 없을 텐데?

“학생회에서 뭔가 필요한 일이라도 있습니까?”

“아, 업무 때문에 온 것이 아닙니다. 온전히 개인적인 일 때문에 온 것이라…….”

어색하게 고개를 젓는 혜송.

그 모습에 철백이 다시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도움이 필요해서 그래요.”

혜송의 뒤쪽에 자리하고 있던 여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부회장인 제갈소라고 합니다.”

가벼운 포권과 함께 즉시 본론을 꺼내는 제갈소.

“학생회장은 현재 심마에 걸려 있습니다.”

“……심마?”

심마(心魔).

마음에 마가 끼었다고 표현하는 이 단어는 여러 의미로 쓰인다.

보통은 불교나 도교에 귀의한 이들이 번뇌에 빠질 때 많이 쓰는 단어이지만…….

“저희를 찾아온 것을 보아하니 주화입마이신가 보군요.”

주화입마(走火入魔).

무인이 가장 경계하는 최악의 병.

걸린다고 전부 즉시 광인이 되거나 죽진 않지만, 치료하지 못하면 결국 광인이 되거나 죽는다.

“부끄럽게도 그렇습니다.”

“허나, 저는…….”

내공이 없다.

그래서 아마 주화입마도 없을 거다.

당연히 치료법 따윈 알지도 못한다.

그건 이곳에 있는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일 터.

철백이 말끝을 흐리자, 그 뒷말을 예상한 제갈소는 고개를 저었다.

“철 소협을 찾아온 게 아니에요.”

“그럼?”

“설 소협에게 부탁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수많은 고혼들의 조언을 들을 수 있다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요.”

음.

그건 일리가 있네.

제갈소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 철백은 가만히 혜송을 바라봤다.

묘하게 그늘진 얼굴이 상태가 썩 좋지 못함이 느껴진다.

그렇기에 안타깝다.

“천위 녀석은 백화단주님께 배울 게 있다고 하여 무림맹에 꽤나 긴 시간 머물며 배운다고 했습니다.”

“……으음.”

“후, 참 때가 좋지 못하네요.”

“아미타불…….”

미간을 찡그리는 제갈소와 나지막이 불호를 외우는 혜송.

그리고 어느새 모여 상황을 파악하고 안타깝다는 듯 바라보는 서하영과 소윤혜, 주현운.

그렇게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설천위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그때.

“……그거 정말이야?”

“당 소저?”

“……괜찮소?”

갑작스러운 등장에 당황하면서도 결코 좋지 못한 당화유의 안색에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향했다.

“……안 돼. 난 지금 당장 설천위의 도움이 필요해.”

뭔가 힘겨운 듯 미간을 찡그리는 당화유.

그리고.

까득.

이를 악무는 소리와 함께 당화유의 손이 움직인다.

“피해!”

“흡!”

당화유의 경고와 별개로 단숨에 그녀의 앞에 도달한 철백이 숨을 삼키는 기합과 함께 그녀의 앞을 가린다.

‘박혔군.’

몸 곳곳에 박힌 암기들.

근육에 막혀 깊게 파고들진 못했으나 분명 가죽을 뚫었다.

“설마, 당 소저도 심마인 것이오?”

상태는 혜송보다 더 심해 보이는데?

“……맞아.”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이는 당화유.

그녀의 눈동자엔 붉은 혈기가 맴돌았다.

“얼마 전에 있었던 사건의 약을 조사하다가…….”

“복용했군?”

“약효는 전부 분해했어.”

당가의 자존심을 걸고.

어떻게든 해독에 성공했다.

문제는.

“주술. 심령에 자꾸 간섭이 들어와.”

“으음.”

전에 설천위에게서 약에 관한 설명을 들었던 철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약에 술법이 걸려 있었다고 했지.

그 여파가 남아 있는 거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아미타불…….”

그리고 그녀의 말에 대답하듯 불호를 외우는 혜송 옆에서 묘한 표정의 제갈소가 입을 열었다.

“사실, 우리 회장님도 그때의 일 때문에 이렇게 온 거예요.”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아무래도 그때 있었던 일의 여파 때문에 겨우 억눌러 놨던 심마가 제대로 깨어난 것 같아서요.”

혜송이 끊임없이 면벽 수련을 하고, 외부의 일에 잘 나서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거다.

그나마 최근엔 많이 진정시켰는데…….

“혜송 스님의 내면에 있던 심마가 폭력에 자극을 받은 것 같아요.”

“아미타불…….”

이쪽도 뭔가 꿈틀꿈틀 손을 움직이는 것이 영 좋지 못하다.

슬쩍 혜송에게서 한 걸음 멀어지는 이들.

그 모습에 철백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이럴 게 아니라 당장 의원에게…….”

“그럴 순 없습니다. 친선전 전에…….”

“아!”

이 둘, 친선전에 나가는 인간들이지?

그제야 상황을 깨달은 철백은 혜송과 당화유를 바라봤다.

이 둘 없이 친선전에서 이길 수 있을까?

과연?

‘……무리겠지.’

천위가 크게 칭찬할 정도로 현 흑룡학관의 수장은 뛰어난 인물이다.

이 두 사람 없이 승리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터.

“좋소.”

결국 철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위가 없어서 술법적인 해결이나 의학적인 해결은 불가능하겠지만…….

“앞으로 이 훈련장에서 생활하겠소. 발작이 일어나면 내가 막아 주지.”

그 심마를 이 주먹으로 억눌러 주는 건 가능할 거다.

물론.

“일단, 마보부터 시작하지.”

그렇다고 수련을 빼먹을 생각은 없다.

거기에다 몸에 힘을 빼놓으면 발작도 덜할 테니 일석이조 아닌가?

그렇게 설천위가 없는 훈련장에서 지옥 훈련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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