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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182화 (182/624)

제182화

181화-그거 맞아? (2)

솔직히 말해서 가볍게 겁만 줄 생각이었다.

무림학관의 학생에게 학귀(虐鬼)는 충분히 공포의 대상이 될 만한 식령이니까.

기괴하게 비틀어진 턱과 선혈이 흐르는 외견.

곳곳에 벗겨진 가죽은 보는 이로 하여금 혐오감과 공포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학생이라면 아니,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포감을 느낄 만한 외형이란 소리다.

거기에다 갑작스러운 기습이라면 제대로 된 대처는커녕 도망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그래야 할 터인데.

‘정녕 괴물이구나!’

감탄으로 벌어지는 입을 다물기 위해 최선을 다해 턱 근육을 조일 수밖에 없었다.

소문으로 듣긴 했다.

무림학관의 학생 중에서 술법에 아주 뛰어난 학생이 있다고.

임무를 나섰던 수령원의 원생이 귀(鬼) 등급의 악귀를 봉인해 송환한 적이 있다.

그것도 상당히 강력한 악귀를.

그 원생의 실력으론 도저히 불가능한 봉인이었기에 당연히 자초지종을 물었고, 그 결과 나왔던 이름이…….

‘설천위.’

설가의 골칫거리.

설가의 아픈 손가락.

무재(無才)의 상징.

구태여 밖으로 나와 가문 망신을 톡톡히 시킨 장본인.

왜 설가에서 그를 다시 가문으로 불러들이지 않느냐는 의문은 무림맹 내부에서도 꽤나 뜨거운 화젯거리였다.

물론, 그 해답을 알 거라고 예상되는 설가의 인물이 입을 열지 않아 아직도 오리무중이지만.

여하튼, 그런 상황에서 퍼진 소문인지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반반 정도로 나뉘었다.

물론 만귀단주(萬鬼團主) 오윤은 믿지 않는 쪽이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제대로 된 교육조차 받지 않은 녀석이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아무리 술법이 재능에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해도 노력 또한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영역이다.

그렇게 믿으며 살아왔는데.

‘허허.’

아무래도 그 믿음이 오늘 깨질 것 같다.

‘처참하게 부서지는군.’

그의 부름에 응한 식령들이 짓눌린다.

땅바닥에 처박히고.

몸의 중앙이 갈라져 꼬꾸라진다.

소멸하진 않았으나 큰 충격을 받아 아마 회복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이 시사하는 것.

‘봐주고 있군.’

아무리 자신이 약한 수준의 식령들만을 꺼냈다고는 하지만, 이리도 쉽게 농락당하다니.

허공을 가득 메운 수백 개의 흑관을 바라보며 오윤은 혀를 찼다.

저게 아무런 도구의 사용도 없이 펼친 것이라고 그 누가 믿겠는가.

부적도, 제구(祭具)도 쓰지 않으며 하다못해 수인(手印)도 맺지 않았다.

“어린 녀석들에겐 못 보여 줄 꼴이군.”

이리도 큰 재능의 격차를 마주하면, 인간은 의외로 쉽게 포기해 버리는 법이다.

혀를 차며 고개를 저은 오윤은 기어코 품에 손을 넣어 한 장의 부적을 꺼냈다.

“만귀단주!”

그 모습에 두 눈을 크게 뜨는 성화린.

이 무림맹에 고작 둘뿐인 대(對)악귀단이다.

당연히 서로 경쟁 관계이면서도 그런 한편, 긴밀하게 협조하며 공조하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단주급의 협력을 위해 서로의 기술 상당수를 알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오윤이 품에서 꺼낸 부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성화린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배도(背道)를 꺼낼 셈은 아니겠죠!”

마찬가지로 부적을 꺼내 들며 소리치는 성화린.

그 모습에 오윤은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쯤 되지 않으면 승부가 나지 않을 것 같군.”

즉, 꺼낸다는 소리다.

그 대답에 눈에 스산한 냉기가 깃든 성화린이 부적을 던지려는 순간.

“괜찮아요.”

손을 든 설천위가 그것을 말리며 오윤을 바라봤다.

“그 녀석이 마지막 시험인 거겠죠?”

“……그래.”

“좋아요. 그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기대? 뭘?

그런 의문이 오윤의 머릿속에 떠오른 순간, 장난스러운 미소와 함께 설천위가 손을 뻗었다.

“이렇게 갑자기 시험을 걸고 아무런 보상도 없진 않겠죠?”

[쿠구구구구구구.]

마치 거대한 바위가 움직이는 것 같은 굉음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배도.

그 거대한 크기에 만족하는 것도 잠시.

설천위의 기묘하리만치 충만한 자신감에 오윤의 미간이 미세하게 찡그려졌고.

우득.

“그럼 갑니다.”

오른손을 하늘로 들어 올린 설천위가 천천히 그 손을 내렸다.

[살악(殺握)]

그러자 굉음과 함께 배도의 몸이 무너졌다.

* * *

“……저한테 뭐 굳이 배울 필요 있나요?”

“에이, 배움은 끝이 없는 거죠.”

웃으며 그런 말 말라는 듯 손을 내젓는 설천위를 잠시 바라본 성화린은 고개를 돌렸다.

돌로 깔아 놓은 길 위에 선명히 새겨진 손바닥 형태의 자국.

누가 보면 소림의 고승이 와서 여래신장이라도 펼친 줄 알 것 같은 흔적이다.

“역시 무공을 배울 필요 없지 않나요?”

“……동감이다.”

손바닥 모양으로 짓눌려 사라진 배도를 떠올린 오윤은 성화린의 의견에 크게 동조했다.

“이 정도 물리력이면, 단주급을 상대로도 살아서 도망칠 수 있겠구나.”

“에이, 그게 어디 말처럼 쉽나요?”

“쉽진 않지만, 네 녀석에겐 가능할 것 같아서 그러는 게다.”

능청스러운 미소로 어깨를 으쓱이는 설천위를 보며 고개를 저은 오윤은 아까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허공에 거대한 손아귀가 나타났다고 인지한 순간, 그 손아귀는 이미 배도를 짓누른 뒤였다.

물론 물리적 파괴력 자체는 엄청나다고 할 정도까진 아니었으나, 배도를 단숨에 제압한 영적인 위력만큼은 실로 경악할 수준이었다.

거기에다 배도가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발동 속도까지.

‘최상급이라면 피할 수 있었을까?’

아마 영력의 흐름을 읽고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저기 떠도는 흑관의 방해가 없었다면.

즉, 자신의 최고 전력으로 싸워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소리.

괴물이다.

거기에다 무공 실력까지 훌륭하다고 했던가.

이 정도면 뭐 단주를 맡아도 될 수준이다.

게다가.

“뒤에서 놀고 있는 녀석들은 대체 언제 쓸 것이냐?”

“에이, 쓰다뇨. 그냥 협력을 받는 거죠.”

[커흠, 우리의 지식은 큰 도움이…….]

헛기침과 함께 끼어들려는 암영의적을 슬쩍 밀어내며 설천위는 함께 걷고 있는 오윤을 바라봤다.

“사실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것도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예요.”

“식령을 다루는 법을 배우고 싶은 것이냐?”

“네. 여기 스승님들과 다르게 놀고 있는 인간들이 좀 있어서.”

아직 온전히 제압하진 못했지만, 조만간에 제압할 수 있을 거란 예감이 든다.

아니, 솔직히 거의 확신이지.

여하튼, 그렇게 제압하고 나면 좀 써먹고 싶은데…….

“아까 그 기술, 실체화도 가능한 거죠?”

“힘의 소모는 크지만 말이다.”

“그건 뭐, 제가 해결해 봐야죠.”

괜찮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는 설천위.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오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알려 주마.”

“정말요?”

“단, 정말 중요한 기초만 알려 줄 것이다. 우리 단에도 들어오지 않는 네게 비전을 알려 줄 순 없는 노릇이니.”

“그거면 충분해요.”

만족스럽게 웃는 설천위.

그 모습에 고개를 저은 오윤은 어느새 코앞에 보이는 백화단 건물 앞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시간을 정해서 찾아오너라.”

“옙!”

설천위의 대답을 뒤로하고 만귀단 건물 쪽으로 걸어가는 오윤.

그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설천위는 몸을 돌려 성화린을 바라봤다.

“근본은 착하신 분 같은데요?”

“일 욕심이 과하다는 것만 빼면 부하들에게도 존경받는 단주입니다.”

가볍게 대답하며 백화단 건물로 들어가는 성화린.

그 뒤를 따라 들어간 설천위는 곳곳에서 하는 인사를 자연스럽게 받으며 걷는 성화린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단주는 단주네.

젊긴 해도 여유가 넘친다.

물론 그 속내까지 그런지 모르겠지만.

“자, 여기입니다.”

설천위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그 뒤를 따르는 사이, 어느새 그를 데리고 백화단의 훈련장에 도착한 성화린이 몸을 돌려 설천위를 바라봤다.

“그럼 이제 물어볼까요? 어떤 술법이 배우고 싶으시죠?”

“전에 수색과 방어를 배웠으니…….”

살짝 말끝을 흐리는 설천위를 보며 성화린은 피식 웃었다.

그 뒤에 이어질 말이야 뻔했으니까.

“그럼 공격 술법을 알려 드리죠.”

물론, 이 괴물 같은 학생에게 공격 술법을 가르치는 게 과연 맞을까 싶지만…….

‘그건 가르쳐 준 뒤에 고민하죠.’

솔직히 어떤 경악할 만한 술법이 나올지 조금 기대됐다.

* * *

“그래서 만족하느냐?”

“네.”

암은단(暗隱團)의 건물.

그 단주실(團主室)에 앉은 유석천과 유예린은 서로를 바라봤다.

자신이 내건 조건을 달성한 딸을 바라보며 유석천은 담담히 말했다.

“그럼 소가주의 자리는 내놓겠느냐?”

“아뇨. 정식으로 가문을 나갈 때까진 가지고 있겠습니다.”

“제멋대로구나.”

“그러기 위해 쟁취한 자리니까요.”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딸을 보며 유석천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쏟은 노력이 결과를 맺고 있는 거라면, 충분하다.”

“……딸인 제가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아버지도 참 괴짜세요.”

“그런 내 딸이 너다.”

그건 또 할 말 없게 만드는 얘기네요.

뒷말을 삼키며 고개를 저은 유예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가문이 더 살 만해지면, 혹시 몰라요. 설 공자가 데릴사위로 들어올지도.”

“경쟁은 우리 가문의 기본이다. 네가 이뤄 낸 성과도 그 경쟁을 통해 산출된 것이다.”

“……뭐, 그렇긴 하죠.”

덕분에 형제애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됐지만.

아버지의 대답에 살짝 쓴웃음을 지은 유예린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럼,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그래.”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유석천.

그리고 마찬가지로 담담하게 돌아서 나가는 유예린.

딸이 떠난 빈자리를 유석천은 가만히 앉아 한참을 바라봤다.

‘……행복하면 된 것이다.’

치열한 경쟁도, 지옥 같은 수련도 더 긴 행복을 손에 넣기 위한 것이니.

제 손을 떠난 자식에 대한 미련을 털어 낸 유석천은 다시 업무에 몰두했고, 그로부터 한 시진 뒤.

“……설천위는 남고 나머지는 먼저 돌아간다고 합니다.”

뿌득.

자신의 딸을 바람맞힌 놈팡이 때문에 붓 하나를 부러트렸다.

* * *

“우리끼리 돌아가니 뭔가 아쉽네요.”

“저희야 남아서 할 게 없으니까요.”

무림맹에 남아서 할 게 없는데, 굳이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저희도 해야 할 일이 있잖아요?”

“……아직 부족하긴 하더군.”

유예린의 물음에 조금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철백.

남궁선을 따라서 참관하게 된 창천단.

기세가 달랐다.

아마 개개인이라면 손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꽤 있었을 텐데도 결코 얕잡아 볼 수가 없었다.

거기에다.

“아무래도 이번 친선전은 힘들 것 같으니까요.”

무림맹에서 입수한 정보.

흑룡학관이 달라졌다.

남궁선에게서 그 사실을 직접 전해 들은 이들의 눈동자가 어둡게 빛났다.

* * *

“흐응?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야?”

흑룡학관의 학생회실.

완전한 자치를 이뤄 낸 학생회는 흑룡학관의 새로운 권력으로 자리 잡았다.

본래 사파라면 그런 권력이 생겨난 순간부터 빠르게 부패가 이뤄지지만…….

“예. 설천위 덕에 제압은 빨랐다고 합니다.”

“후후, 하긴 천위가 있으면 그럴 만하지.”

아마 지금은 더 강해졌을 테니까.

입꼬리를 비틀며 웃은 백유는 보고를 끝내고 그 자리에 서 있는 서현덕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래서, 다른 중요한 건?”

“적랑대의 성무경이 완전히 짓밟고 있습니다.”

“뭐, 그럴 것 같긴 했어.”

오룡 중에서도 무력으로 가장 뛰어난 삼인 중 하나.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선두가 성무경이니 뭐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다.

“그 외의 건?”

“전부 앞에 모여 있습니다.”

역시 우리 현덕이.

일 처리가 확실해서 좋아.

싱긋 미소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백유.

“자, 그럼 움직여 볼까?”

거침없이 걸어 문에 도착한 백유는 그대로 활짝 문을 열었다.

그런 그녀를 기다리며 모여 있던, 선별된 이들.

그리고.

“얘들아, 준비는 됐니?”

부드러운 목소리와 달리 공간을 짓밟는 것 같은 기세가 모두를 뒤덮는다.

그 기세에 입꼬리를 비트는 이들과 식은땀을 흘리는 이들이 섞인 가운데.

양팔을 활짝 벌린 백유가 외쳤다.

“우리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기류가 형체를 이루고 마침내 구체적인 무언가를 완성한다.

“승리다!!”

크롸라라라!!

“우오오오!!”

마치 용이 포효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기세 속에서 환호하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백유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천위, 나는 다시 너랑 만날 날을 기대하고 있어.’

붉은 혀가 그녀의 입술을 핥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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