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180화 (180/624)

제180화

179화-따님을 제게 (4)

무림맹으로 가는 길.

무려 무림맹주의 초대라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기에 설천위는 결국 학관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무림맹으로 향하는 마차에 앉게 된 설천위는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습격이라도 안 와 주나.’

내가 밖으로 나돌면 꼬박꼬박 습격해 주던 녀석들이 이번엔 어째 조용하네.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표정이구나.]

“……거, 독심술은 쓰지 마시죠?”

[보이는 걸 어찌하겠느냐?]

껄껄 웃는 천마.

그 옆에선 심각한 얼굴로 미간을 찡그린 주현운이 앉아 있었다.

“으음……. 정말인가요?”

[뭐, 내가 살아 있을 때부터 그 녀석은 소문이 좋지 못하긴 했지.]

암영의적의 동의에 주현운은 더욱 어두운 얼굴이 됐다.

하긴, 침울할 수밖에.

“아버님께서 조심하라고 하신 이유를 알 것 같군.”

“……벌써 아버님이냐.”

“총 세 번 부탁드렸다.”

“그거랑 무슨 상관인데?”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지.”

그거, 거기에 쓰는 말 아닌 것 같은데.

담담하게 팔짱을 낀 채로 정면만을 바라보는 철백을 보던 설천위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데 보통 이런 건 인솔 교관이 하나쯤 따라붙지 않나?”

“우리가 교관이 붙을 수준은 아니긴 하지.”

툴툴거리는 설천위의 말을 받으며 철백은 어깨를 으쓱였다.

“교관이 호위로 붙기엔 우리가 너무 강해지긴 했다.”

“씁.”

그건 또 그렇지.

여기 있는 전원이 초절정에 근접한 수준이니까.

주현운과 소윤혜는 반쪽짜리이긴 하지만.

반대로 유예린은 화경에 근접한 수준이니 교관들에게 호위를 맡기기도 애매하긴 하다.

“뭐, 됐고. 여하튼 가서 조심해라? 호의적인 인간만 있는 건 절대 아닐 테니까.”

“네.”

“알았다.”

“저쪽은 뭐, 유 매가 알아서 설명해 줬겠지.”

딸 바보인 그 아저씨가 동행을 거절할 정도이니 그 심각함을 느끼긴 할 테고.

“받을 것만 받고 얼른 빠져나오는 거야. 오케이?”

“또 이상한 말을. 알았다.”

“오케이!”

대답은 잘해요.

얇게 뜬 눈으로 주현운을 바라보던 설천위는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뭐, 죽을 일도 없을 테니 이 이상 걱정은 하지 말까?

‘조금 기대되기도 하고.’

무림맹, 솔직히 가 보고 싶긴 했으니까.

* * *

“우와!”

“촌놈 티 좀 내지 마라.”

“촌놈 맞는 걸요?”

“……너무 즉답인데? 너희 아버지가 섭섭해하시겠다.”

서하영의 당당한 촌놈 선언에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린 설천위는 눈 안에 들어오는 풍경에 집중했다.

거대한 문.

끝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담.

그 너머로 보이는 높이 솟은 전각들.

무림의 7할 이상을 먹고 있는 정파 세력의 총본산.

무림맹.

그 밖에 있는 자들은 이곳을 정의를 수호하는 곳이라고 부르고.

그 안에 있는 자들은 이곳을 복마전이라고 부른다.

정도(正道)를 향해 나아가는 곳임에도 온갖 마(魔)가 모인 곳.

모순을 품고, 이 세상의 기둥이 되어 존재하는 곳.

“들어가자.”

그곳을 향해, 설천위는 걸음을 내디뎠다.

정문을 지나면서 굳이 마차에서 내렸다.

딱히 미리 고지 받은 시간은 없으니 느긋하게 걸어가 보자고 의견이 모아져서다.

“무림맹은 총 네 개의 당(堂)이 있어요.”

걸어가는 도중 자연스럽게 무림맹이 대화의 주제가 됐고, 유예린이 간단한 설명을 시작했다.

“집법당(執法堂), 의약당(醫藥堂), 만금당(萬金堂), 준명당(峻命堂)이 있으며, 이들은 행정적 업무를 담당하죠.”

“이쪽은 보통 시험으로 뽑아.”

무림학관처럼 딱히 육성 시설이 있진 않은 거로 알고 있다.

기본적으로 시험으로 뽑고, 추천을 통한 채용도 있다.

“그다음으로 아홉 개의 단(團)이 있어요. 앞서 말한 네 개의 당 휘하는 아니에요.”

독립적이고, 동급의 위치에 있다.

애초에 아래로 둘 수 있을 리가 없다.

각 단의 단주들은 기본적으로 화경급 이상의 고수인 데다 몇몇은 애초에 거대한 가문을 배경으로 둔 자들이다.

맹의 행정적 압박 따위에 겁먹을 위인들이 아니란 소리다.

“그리고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대(隊)가 약 육십 개 이상. 이들은 구단(九團)의 휘하에 있는 것도 있지만, 아예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것들도 있어요.”

“음? 정말인가?”

“네. 그리고 저희 중엔 이 대(隊)를 신설할 자격을 지닌 사람이 무려 둘이죠.”

“둘?”

“저와 설 공자에요.”

정(丁) 이하, 기(己) 이상의 등급은 졸업 후 무림맹에 들어가면 대주급 자리에 오른다.

구단의 밑에 있는 작은 대(隊)의 대주나 큰 규모를 가진 대(隊)의 부대주로.

이들은 후에 실적을 쌓으면 자신이 직접 대(隊)를 만들 수도 있다.

허나, 병(丙) 이상은 얘기가 다르다.

이들은 하나하나가 초절정 이상인 인재들.

기본적으로 대주 이상의 자리에서 시작하며, 원한다면 본인이 직접 대를 만들어 시작할 수도 있다.

그만한 실력을 학관에서 이미 증명해 냈으니까.

다만.

“보통은 먼저 다른 단이나 대를 경험해 보고 나서 결정하죠.”

“이유가 있나?”

“업무 때문이에요. 무력대는 힘만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니까요.”

온갖 행정적 처리는 기본이고, 돈의 관리, 인력 충원 등등.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무림학관의 병급(丙級) 졸업생이라고 한들 그 모든 것을 꿰뚫고 있을 순 없다.

학관에서 조금 배우긴 하지만 당장 대 하나를 만들어 운용할 수준은 못 된다.

그럼 그만한 인재를 모집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쉽지 않죠. 당장 쓸 만한 인재는 다른 곳에서 전부 데려갔을 테니까요.”

그 외에도 무림맹 내부에 있는 암묵적 규칙이나 기타 등등 직접 현장을 겪어야만 알 수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 것들을 하나도 모르고 일단 저지르면 아마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게 될 거다.

거기에다.

“보통은 인맥이 있으니 그쪽을 따라 들어가죠.”

초절정 고수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당장 지금 병(丙) 이상의 등급을 받은 학생 전부가 거대한 가문을 등 뒤에 둔 자들 아닌가.

소림, 사천당가, 남궁세가, 섬서유가, 호남설가까지.

무림맹에 뿌리가 있을 수밖에 없는 가문들이다.

“뭐, 이런 여러 요소들로 인해 일단 다른 단이나 대에 들어가 경험을 쌓는다는 거지. 그게 본인의 정신 건강에도 좋고.”

“흐음.”

설천위의 말에 턱을 쓸며 잠시 생각에 빠지는 철백.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은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이며 걸었다.

뭐, 대를 하나 만드는 것도 나쁜 선택지는 아니긴 하지.

쓸데없는 압력을 받을 일이 줄어드니까.

뭐, 그만큼 고생은 해야겠지만.

“그나저나, 슬슬 보이는 것 같네요.”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아까부터 보이던 거대한 건물이 눈앞에 등장했다.

“……크네.”

“무림맹의 중심이 되는 건물이라고 하더군요.”

정의(正義).

두 글자가 새겨진 현판이 붙은 거대한 건물.

“정근각(正根閣)이라고 하더군요.”

올바른 뿌리.

정의의 근본.

자신들이야말로 진짜 정의라고 주장하는 듯한 이름에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름 한번 강렬하네. 들어가자.”

어깨를 으쓱이고, 차분한 기분으로 안을 향해 걸음을 내딛는 설천위.

그 뒤를 친구들이 따르고, 그들은 경비를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어디서 본 얼굴인데.’

흰 피부, 날렵한 턱선.

미중년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깊은 눈동자와 뚜렷한 이목구비.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얼굴이다.

설천위만 그리 느낀 것은 아닌지, 다른 일행의 표정도 함께 묘해지는 순간.

오로지 한 사람, 유예린만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버지.”

“그래, 오랜만에 보는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유예린의 아버지, 유석천의 시선은 유예린을 향하지 않았다.

그 일행의 선두.

설천위를 향하고 있었고.

그 눈빛에는 기묘한 날카로움이 담겨 있었다.

설천위를 날카롭게 헤집는 그 시선에 철백과 주현운이 마른침을 삼키는 순간.

“따님을 제게 주십시오!”

갑작스러운 절과 함께 설천위의 외침이 복도에 울려 퍼진다.

모두가 당황한 그 순간.

그 누구보다 당황한 건 오히려 설천위였다.

‘……이 몸뚱이가 또 왜?’

최근에는 말만 잘 듣더니?

상대가 유석천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외친 설천위는 기묘한 침묵이 내려앉은 복도에서 살짝 고개를 들었다.

“……이미 허락했을 터인데, 이게 무슨 짓이지?”

“……그, 왠지 해야 할 것 같아서요.”

“가문끼리 정한 일이고, 당사자들의 동의도 끝난 일이다. 이미 결정된 일이니 쓸데없는 짓 말도록.”

“넵.”

차갑기 그지없는 목소리에 재빨리 일어선 설천위는 히죽히죽 웃는 주변 공기에 안면으로 쏠리는 피를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물론, 그게 인간의 의지로 되는 일은 아닌지라 그 얼굴은 한껏 붉어졌지만.

[껄껄, 그래도 역시 네놈이 눈치는 있구나?]

[아주 요망한 것이야.]

[이번 건 괜찮았어요.]

청아마저 칭찬 같은 놀림을 이어 나가는 사이, 잠시 유예린을 바라본 유석천이 몸을 돌렸다.

“곧 회의가 시작된다. 빨리 오도록.”

“……아, 예! 알겠습니다!”

만남이 무색하게 유예린과는 별다른 대화도 없이 자리를 떠나는 유석천.

그 등 뒤를 향해 직각으로 허리를 숙였던 설천위는 자신의 등을 어루만지는 손길에 허리를 폈다.

“후후, 가요.”

쉽사리 보기 힘든 미소를 머금으며 그 등을 살포시 미는 유예린.

그 모습에 아까까지의 부끄러움을 잊은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 * *

[까득 까득.]

[어허, 참으시게. 참아.]

[이런다고 일이 되나? 저놈들은 이쪽을 볼 수 있는 녀석들이 아니지 않은가?]

자신의 머릿속에서 속닥거리는 혼들의 대화를 최대한 무시하며 설천위는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대회의실.

맹주와 단주들이 모인 곳.

“환영하네. 젊은 영웅들이여.”

웃으며 회의실 중앙으로 오라고 손짓하는 맹주를 보며 설천위는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U자 형태의 회의실.

뚫린 곳으로 들어가니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패력단(覇力團) 단주(團主), 황보중.

창천단(蒼天團) 단주(團主), 남궁선.

암은단(暗隱團) 단주(團主), 유석천.

선검단(善劍團) 단주(團主), 현성.

적수단(赤手團) 단주(團主), 무진.

만독단(萬毒團) 단주(團主), 당천기.

초생단(草生團) 단주(團主), 구목.

백화단(白花團) 단주(團主), 성화린.

만귀단(萬鬼團) 단주(團主), 오윤.

하나하나가 화경급에 오른 구단의 단주들.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참석한 단주들 사이를 걸으며 설천위는 회의실의 중앙에 도착했다.

“무림의 말학, 설천위가 맹주님을 뵙습니다.”

“마찬가지로 무림의 말학, 유예린이 맹주님을 뵙습니다.”

설천위를 따라 이어지는 인사.

그와 친구들의 인사가 끝나고, 허허로운 웃음과 함께 맹주가 손을 저었다.

“그리 고개를 숙이고 있지 말게. 그대들을 책망하고자 이곳에 부른 것이 아니니.”

그리고 그 순간 의지와 상관없이 올라가는 고개.

허공섭물로 억지로 고개가 들린 것이다.

강제로 맹주의 얼굴을 마주한 설천위는 애써 표정을 다스리며 웃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는 길에 미리 준비해 둔 대답을 내뱉으며 설천위는 맹주를 마주했다.

평범한 노인처럼 보이는 외모.

동네 할아버지 같은 친근한 분위기에 절로 마음이 편안해진다.

“허허, 겸손하기까지 하니 자네 같은 이들이 이 무림에 나온 것이 참 무림의 흥복이구먼.”

흐뭇한 미소와 함께 맹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건 자네들의 노고를 이 늙은이들이 위로해 주는 의미로 주는 것일세.”

어느새 설천위의 앞에 선 맹주가 그 손을 붙잡고 자그마한 상자를 올려놓고 있었다.

대체 언제 손이 잡혀서 이 물건을 쥐게 된 걸까.

손에 쥔 것의 내용물을 짐작할 여유는커녕, 표정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든 설천위가 애써 웃으며 그 물건을 쥐려는 순간.

“그런데, 자네를 이렇게 직접 두 눈으로 보니 한 가지 제안하고 싶군.”

“……제가 해야 할 일이라도 있습니까?”

“음, 별건 아니고…….”

잠시 말꼬리를 끌며 설천위를 바라보던 맹주가 웃으며 물었다.

“자네, 내 제자 한번 해 보지 않겠는가?”

순간, 정적에 빠진 회의실.

단주들의 표정이 각양각색으로 변하는 순간.

“싫습니다.”

드디어 표정이 깨진 설천위가 일그러진 얼굴로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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