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7화
176화-따님을 제게 (1)
학관 전체에 어수선한 분위기가 감돈다.
이유는 당연히 얼마 전에 있었던 사건 때문이다.
학생들 중 상당수가 약에 손을 댔고, 그 약에 조종당해 폭주.
제압 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나왔으며, 내부로 침입한 적들의 손에 목숨을 잃은 학생이나 직원의 숫자도 상당하다.
두 눈으로 죽음을 목격한 학생들의 숫자 또한 헤아리기 힘들 정도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손으로 같은 학생을 죽인 이들조차 있는 상황.
그러니 학관 내의 분위기가 좋을 수가 없었다.
거기에다.
“아무래도 꽤 많은 수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애들이니까.”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
이 행위가 거의 모든 문화에서 금지되는 이유는 이성적인 이유, 도덕적인 이유, 법리적인 이유 등등.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의외로 그 시작점은 하나다.
공포.
내가 타인을 죽이면, 나도 타인에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내가 타인을 죽이면, 타인이 내 소중한 사람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런 공포가 살인을 멸시하는 풍조를 만들어 내고, 그것이 도덕적, 이성적, 법리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나와 안면이 있던 이가 갑자기 폭주했고, 그 과정에서 살인이 일어났다.
그나마 심리적으로 도망칠 수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그래도 공포심이 안 생길 순 없다.
그리고.
“진짜 찾아왔나 봐요.”
“뭐, 그렇지?”
공포에 질린 아이들은 대체로 부모를 찾는 편이다.
뭐, 있지 않은가?
눈앞에서 누군가 흉기를 휘두르면 엄마야, 소리치고 도망가는 사람들.
공포심에 엄마를 찾으며 도망치는 건 거의 본능의 영역에 있는 행동이다.
물론.
“마음에 안 드는군.”
“역시 그렇죠?”
철백과 서하영의 목소리에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학관이 무림학관이 아니라면, 녀석이 무림학관의 학생이 아니라면 충분히 이해하고 남을 일이다.
“자기가 어떤 학관에 다니는 것인지 생각해 본 적도 없단 소리지.”
후에, 전장으로 나서는 것이 확실시되는 것이 이 학관의 졸업생들이다.
한마디로 사관학교란 소리지.
군인이나 경찰과 비슷한, 명백한 적(敵)을 지니는 직업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학관에 외부 세력이 들어와 유혈사태가 벌어졌다고 그걸 부모한테 일러?
자신이 직접 항의하는 것이 아니라?
아!
이건 완전히 실격이다.
아마 평가에서 엄청나게 까일 테지.
승급은 뭐, 물 건너갔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그래도 꽤 많은 부모가 찾아올 것이다.]
“뭐, 그건 그렇겠죠?”
학생의 마음과 부모의 마음은 또 다르니까.
와서 항의할 생각은 없어도 자식의 상태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 찾아오는 부모가 분명 있긴 할 거다.
“아마 저희 부모님은 안 오시겠지만요.”
하긴, 섬서유가의 가주면 바쁘기도 바쁠 테지.
거기에다 유예린의 실력을 생각하면……. 뭐 걱정이 전혀 안 되진 않겠지만 굳이 찾아올 정돈 아니지.
“나도 안 올걸?”
물론 우리 집 가장도 마찬가지고.
차라리 장남이 찾아오면 찾아왔지 아버지가 직접 찾아오진 않을 거다.
세간의 평가처럼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오는 냉혈한까진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이성주의가 뼛속까지 스며든 인간이니까.
자신이 찾아가 확인한다고 한들 딱히 바뀌는 게 없을 테니 그냥 하던 일에나 집중하겠지.
“우리 어머니는 소식을 들을지 모르겠군.”
철백의 말에 서하영이 살짝 눈치를 보며 입을 우물거린다.
그 모습에 작게 웃은 소윤혜가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웃었다.
“내 할아버지는 이미 저기서 확인하셨는데?”
“……아.”
[껄껄! 역시 배려심 깊은 아이로다.]
흡족한 소백진의 웃음과 함께 모두의 시선이 부드럽게 서하영을 향했다.
그러고 보니, 이 자리에서 소윤혜를 배려한 사람은 서하영뿐이네.
모두의 시선이 훈훈해지자 그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서하영이 살짝 얼굴을 붉히며 손을 저었다.
“에이! 그냥 얼마 전에 얘기했던 거라서……! 그리고 아마 저희 아버지도 안 오실 걸요?”
자기 수련에 바쁘신 분이니까.
살짝 믿음이 덜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것과 함께 서하영은 재빨리 화제를 바꿨다.
“그런데, 저분은 대체 뭐 하시는 분일까요?”
그들의 시선 끝.
당당한 걸음의 중년인이 학관장실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몰라.”
“일단, 확실한 건 아마 자식한텐 꽤 좋은 부모라는 사실?”
저렇게 당당하게 항의하러 가다니.
솔직히 대단하다.
상대가 팽후인데.
존경스러울 정도라니까.
“뭐, 우린 돌아가서 하던 거나 마저 하자. 쉴 만큼 쉬었고.”
점심 먹고 돌아가는 길에 꽤나 흥미로운 광경이 보여 구경했지만, 뭐 이 정도면 됐지.
“네~.”
“생각해 보니 시간을 꽤 썼군. 빨리 돌아가는 게 좋겠어.”
설천위의 의견에 동의하며 하나둘 몸을 돌리고.
그렇게 설천위 일행이 떠나간 뒤.
“그, 그게 무슨 소리요!”
학관장실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 * *
“다시 한번 말하지.”
높지도 낮지도 않은 차분한 목소리로 팽후가 말했다.
“당신 딸을 데리고 당장 나가시오.”
담담한 목소리와 달리 팽후의 눈동자는 위압적이기 그지없었다.
“이,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잘못한 것은 학관 측인데, 왜 우리 딸이 퇴학이란 말이오! 무림의 정의가 이리도……!”
“그 정의 때문에 당신의 딸은 무림맹에 있을 자격이 없다는 말이다.”
사내의 말을 끊으며, 팽후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년인은 하남에서 꽤나 이름을 날리는 중소 문파의 문주다.
딸의 소식을 듣고 허겁지겁 달려온 부모.
이렇게 대놓고 항의하는 것은 자신이 있어서일 거다.
학관 측이 잘못했으니 세간의 시선이 있는 이상 주도권은 자신에게 있다고.
이참에 확 눌러 보겠다고.
하지만, 그건 크나큰 착각이다.
“학관은 애들 놀이터가 아니다.”
기세를 일으키지 않고도 체구만으로 중년인을 압도한 팽후는 담담히 말했다.
“고작해야 이 정도 사건으로 부모에게 하소연이나 하는 녀석 따윈 필요 없고, 이곳에 있어서도 안 된다.”
“그 무슨 뻔뻔한……!”
“무림맹의 정의란 행하는 것.”
책상을 지나 중년인의 앞에 선 팽후는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공포를 이겨 내고, 전장에 서는 것이 그 시작이다. 그런데 네 딸은 그 전장에서 도망친 것은 물론이고, 그 수단으로 자신의 부모를 이용했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청소년이 부모에게 의지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니냐고.
그리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이곳은 그래선 안 되는 이들이 모인 곳이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있다.
“자신의 손으로 학생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손에 피를 묻힌 학생회의 임원들도 있고, 날뛰는 이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살인한 이들도 있지.”
그렇다고 그들이 바닥에 주저앉아 부모를 찾고 있는가?
아니다.
“그들은 공포를 이겨 내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음을 자각하고 솟구치는 감정을 삼키면서 여전히 자신의 일을 해 나가고 있지.”
그런 아이들이 진짜 이 학관에 있어도 되는 아이들이다.
어느새 날카로워진 눈빛으로 중년인을 바라보며 팽후는 책상 위의 종이 다발을 집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아이가 약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럴 리가 없다고 항의하는 이들도 퇴학이다.”
아이가 약에 의존할 순 있다.
미숙하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감싸 줘선 안 된다.
틀린 건 틀렸다고, 엄히 혼내야 하는 법.
“반성하고 스스로 다시 기회를 붙잡는 이들만이 이 학관에 다시 올 수 있을 것이오.”
“어, 어찌 이리 뻔뻔한!”
강압적이기까지 한 팽후의 태도에 중년인은 이를 악물고 분노로 부들부들 떨었다.
“허술한 보안으로 일을 이렇게 만든 것은 당신의 책임이지 학생들의 책임이 아니오!”
분노를 참지 못해 부들거리며 중년인은 악을 썼다.
“이 학관을 떠나야 하는 건 당신이지 우리 딸이 아니란 말이오!”
“그건 말이 틀렸군.”
순간,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몸을 돌린 중년인은 흠칫 몸을 떨었다.
거한.
눈앞의 팽후도 상당한 거한인데 그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큰 체구를 지닌 거한이 문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무복과 그 무복을 찢을 것처럼 차오른 근육.
일부러 딱 맞춰 입은 건 아닌 것 같은데도 근육이 너무나도 거대해 옷 밖에서도 확실하게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정말 극한까지 단련한 육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고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몸.
그런데 이상하다.
‘……누구지?’
이만큼 단련된 육체라면 그 소문을 한 번쯤은 들어 볼 법도 한데?
눈앞의 사내의 모습에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어 중년인이 고민하는 순간.
“떠나선 안 되지. 그는 절대로 이 학관을 떠나선 안 되오.”
거한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담담하게 안으로 들어오며, 중년인을 지나 팽후와 마주한다.
“여기서 자네가 사라지면 그땐 진짜로 학생들이 무더기로 죽어 나갈 테니. 교육자라면 마땅히 책임을 져야지.”
“오랜만에 만나서 하는 소리가 참으로 섭섭하군.”
사내의 말에 어깨를 으쓱인 팽후는 자리에 앉으며 웃었다.
“그런데 자네가 웬일인가? 자네 딸이 대회에서 우승했을 때도 찾아오지 않던 인간이.”
“어쩌다 보니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왔을 뿐일세. 아들놈들이 하도 성화여서.”
“아, 그러고 보니 자네 아들들은 하나같이 여동생 바보였지?”
“나보다 더 아비 같은 녀석들이지.”
농담을 진담 같은 표정으로 말하며 자리에 앉은 사내, 서청진은 담담한 시선으로 팽후를 바라봤다.
“그래서, 진짜인가?”
한껏 가라앉은 눈빛으로 서청진은 물었다.
“내 딸이 권(拳)을 버리고 창(槍)을 쥐었다는 것이?”
흉흉하기 그지없는 기세를 뿜어내며 팽후를 향해 묻는 서청진의 기세에 중년인은 말없이 물러났다.
일단 자신이 낄 자리가 아닌 게 확실해 보였으니까.
* * *
“사실…… 아버지가 찾아오셨다고 해도 그건 그것대로 곤란할 것 같아요.”
훈련장.
유예린과의 대련을 끝내고 숨을 고르며, 서하영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아버지는 저한테 권(拳)밖에 가르치시지 않았으니까요.”
“……그게 무슨 상관이죠?”
“아버지는 두 주먹만으로 가문을 세우신 것에 자부심이 크시거든요.”
가문…… 이라고 하기엔 솔직히 작긴 하다.
사용인도 몇 없고.
제대로 된 무력대라고 할 만한 것도 없으니까.
규모도 그리 크지 않다.
눈앞에 있는 유예린의 가문처럼 들으면 누구나 알 법한 대단한 가문도 아니고.
그렇지만.
“저도 그런 아버지가 좋아요. 항상 자신 있게, 당당하게 살아가는 아버지가요.”
“그래서, 그거랑 아버지가 찾아오면 곤란한 거랑 무슨 상관이죠?”
“……미안해서요.”
자신이 창을 쥔 것이.
아버지의 무공을 부정하는 것 같아서.
평생 권을 갈고닦은 아버지의 삶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 같아서.
도저히 그 앞에 서서 창을 쥘 자신이 없다.
‘흠. 그럼 큰 문제는 없겠는데?’
서하영과 유예린의 대화에 귀 기울이고 있던 설천위는 살짝 안심했다.
게임 속의 창절이 서하영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아버지와 의절할 때 어떻게 그녀를 도와야 하나 남몰래 고민하고 있었는데.
서하영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초절정까지도 올라가는 딸을 내칠 정도면 상당한 독종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얘기를 들어 보니 서하영이 자진해서 집을 나왔을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그렇다면 뭐 굳이 개입을 안 해도 충분할 것 같기도?
“천위.”
“엉?”
“집중해라.”
“큼, 너도 신경 쓰이잖아?”
“……때가 되면 말해 주겠지.”
뭐래, 지도 열심히 듣고 있었으면서.
안 그랬으면 주먹이 날아왔겠지.
철백의 대답에 어깨를 으쓱인 설천위가 도(刀)를 거두는 순간.
“하영이는 어디에 있느냐?”
거대한 기세가 두 사람을 짓눌렀다.
언제 다가온 것인지도 몰랐던 움직임.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화경?’
서하영의 아빠가 화경급 고수라고?
삐걱대는 목으로 고개를 돌려 상대를 확인한 설천위는 두 눈을 부릅떴다.
“……권왕(拳王)?”
……왜 천하 십대 고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