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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175화 (175/624)

제175화

174화-혈계(血計) (4)

“흡!”

“회장!”

“한 손이라도 더 보태겠습니다! 빨리 수습을!”

“……알겠어요!”

갑자기 밖으로 튀어나가 직접 날뛰는 학생을 제압하기 시작한 혜송의 외침에 제갈소는 작게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됐든, 지금은 일단 사태의 진정이 우선이다.

‘너무 이상해.’

교관들의 모습이 아예 안 보인다.

최근 무슨 문제가 생겨 업무 시간 이외엔 전부 한곳으로 모인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난리가 났는데 아무도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다는 건…….

‘당한 거야.’

어떤 방식으로든 발이 묶인 거다.

그 학관장조차도.

“……후, 침착하자.”

삼왕의 일인인 팽후를 붙잡아 둘 만한 역량을 가진 적.

그 사실 하나만으로 온몸이 떨렸지만, 제갈소는 억지로 떨림을 잠재웠다.

이성을 놓지 마라.

제갈의 가장 날카로운 검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 이성이니.

일단, 이 상황부터 파악해야 한다.

‘단순한 약은 아니야.’

약이라는 것은 사용하는 양, 시기, 사람에 따라 그 효능이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는 법이다.

그게 아니라면 의원이 왜 있겠는가.

그냥 아프면 전부 같은 약을 쓰면 될 것을.

여하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발작을 일으키는 건 단순히 약만으로는 할 수 없는 짓이다.

그렇다면.

“……회장!”

“왜 그러시오?”

밖에서 날뛰던 학생 하나를 제압하던 혜송은 제갈소의 부름에 즉각 반응했다.

그녀가 자신을 부르는 데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설천위를 찾으세요!”

“설 시주를?”

“이 발작! 분명 술법적인 무언가가 연결되어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발작을 일으키는 게 가능할 리가 없어요!”

제갈소의 말에 대번에 그녀의 의도를 깨달은 혜송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즉시 땅을 박차는 혜송.

기억대로라면 설천위는 지금 그들이 쓰는 훈련장에 있을 터.

빠르게 달려가면 금방 도착할 수 있다.

소림에서 자랑하는 신법을 최대한 활용하여 묵직하고도 신속하게 대지를 박차는 혜송.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제갈소는 그대로 몸을 돌려 아직도 발작 중인 학생들을 제압하기 위해 애쓰는 학생회 임원들을 바라봤다.

“……최대한 제압하세요!!”

마음 같아서는 학생회의 안전을 위해 그냥 사살하고 싶었지만, 이들도 결국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있을 뿐이라면.

“어느 정도 상처를 입히는 건 괜찮습니다! 하지만 최대한 목숨은 살리세요!”

섣불리 죽일 순 없다.

마음과 달리 행동해야 하는 현실에 작게 입술을 깨물며 제갈소는 움직였다.

지금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진정시키기 위해.

* * *

제갈소의 말대로 설천위를 찾기 위해 달린 혜송은 금세 설천위가 있는 훈련장에 도착했다.

와 본 적 없던 곳이지만, 금세 찾을 수 있었다.

“이게 대체…….”

저 멀리서부터 보이던 붉은 아지랑이.

그것이 가까이 도착하니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아니, 선명하다 못해 멀리서는 흐릿하게 느껴지던 혈향이 마치 콧속을 강하게 찌를 정도로 붉은 혈기가 넘실거렸다.

대체 이게 무슨…….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른 순간.

“응? 땡중이네?”

“……누구시오?”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혜송은 즉각 반응했다.

다리를 사선으로 벌리고, 무릎을 굽혀 자세를 낮춘다.

왼손은 앞으로, 오른손은 허리춤에.

동시에 한껏 끌어올린 내공이 두 주먹에 담긴다.

순식간에 전투태세로 돌입한 혜송의 모습에 목소리의 주인이 깔깔깔 웃었다.

“꺄하하하! 어느 시대든 땡중 녀석들이 하는 짓은 똑같네!”

“……누구시오?”

소녀.

딱 봐도 어려 보이는.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의 등장에 혜송은 더욱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응. 방심하지 않는 것도 대체로 비슷하고. 소림 놈들이 참, 교육을 잘 시켜. 불자(佛者)가 아니라 무인을 기르는 쪽에 한해서지만.”

소녀의 조롱에 혜송은 작게 미간을 찡그렸다.

불자를 기르지 않고 무인을 기르는 데 집중한다는 것은 소림을 향해 퍼붓는 가장 흔한 모욕이다.

절간인 소림이 무인의 양성에만 힘쓴다는 조롱.

허나 그 조롱에 혜송은 화를 내지 않았다.

아니, 억눌렀다.

찡그렸던 미간을 펴고, 침착하게 가라앉은 호흡으로 상대를 바라본다.

“귀하는 누구시오?”

“오? 너, 진짜구나? 이름이 분명…… 혜송이라고 했던가?”

순식간에 냉정을 되찾아 침착하게 대응하는 혜송을 보며 상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기억할게.”

“……소승은 시주님의 이름을 물었소이다.”

“아, 알려 줄까? 언여휘. 들어 본 적 없지?”

처음 듣는 이름.

하지만, 상대가 결코 방심해선 안 될 존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혜송은 그 이름을 머릿속에 새겼다.

“아미타불……. 지금 학관이 전체적으로 혼란스러우니 외부인은 나가 주시오.”

“응? 갑자기?”

“해야 할 절차를 행하는 것입니다.”

가볍게 호흡을 내뱉으며, 혜송은 담담하게 언여휘를 바라봤다.

“어차피 그대는 나가지 않을 것 같으니.”

“응? 아! 설마 혹시 몰라서 일단 경고한 거야?”

대답 없이 내공을 끌어올리는 혜송의 모습에 언여휘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너, 조금 마음에 든다?”

민간인 혹은 관련이 없는 사람일지도 모르니 일단 경고한다.

무조건 검을 들이밀고 보는 무인 놈들과는 차원이 다른 배려심이다.

허나.

“아쉽네.”

“……무엇이 말이요?”

진심으로 아쉽다는 듯 작게 한숨을 내쉰 언여휘가 혜송의 물음에 대답했다.

“나, 중은 싫어하거든.”

쿵!

순간, 바로 뒤에서 느껴지는 기이한 존재감에 혜송은 끌어올렸던 내공을 팔 전체로 옮겼다.

동시에 느껴지는 옆구리를 강타하는 강렬한 충격.

겨우 팔을 밀어 넣어 공격을 방어하는 데 성공한 혜송은 당황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뒤를 돌아봤다.

대체 누구길래 이렇게까지 접근했는데 자신이 전혀 눈치채지 못한 거지?

경악에 가까운 의문과 함께 몸을 돌린 혜송은 이내 상대를 확인하곤 이를 악물었다.

“아……미타불……!”

억눌린 목소리로, 염불을 외며 혜송은 주먹을 당겼다.

뭐라 형용할 길이 없는, 가슴속에서 들끓는 감정을 도저히 억누를 수가 없었다.

“대체, 사람을 무엇이라고……!”

강시.

그것도 몸이 붉게 물든 기이한 모습의 강시를 마주한 혜송은 이를 악물며 물었고, 그 물음에 언여휘는 친절히 대답했다.

“가축?”

“……이익!”

“에이, 너무 신경 쓰지 마. 어차피 사람은 모두 죽고, 어디에서 살든 타인에게 이용당하는 건 매한가지니까.”

“그렇다 하여 삶을……!”

“쓸데없는 말다툼은 여기까지!”

짝!

손뼉을 치며, 혜송의 말을 끊은 언여휘는 혈강시에게 혜송을 맡기곤 바로 움직였다.

“미안한데, 시간이 별로 없거든. 그럼 다음에 봐~.”

“멈추시오!”

“멈추란다고 멈추면 이 세상에 범죄는 없겠지!”

꺄하하하, 웃으며 움직이는 언여휘.

그리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를 악무는 혜송.

일단, 눈앞의 이 혈강시를 정리해야 뒤를 쫓을 수 있다.

이를 악문 혜송이 어쩔 수 없이 상대를 마주하려는 순간.

“멈추라고 할 때 멈춰 주면 참 좋겠는데요.”

평온한 목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예기가 언여휘의 몸을 스치고 지나간다.

정확하게 그 목을 스치고 지나간 무언가.

“……어떻게?”

싸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묻는 언여휘의 질문에 소검을 날렸던 유예린이 웃으며 대답했다.

“묻는다고 다 알려 주면, 이 세상에 무지한 자가 없겠죠?”

“흐응? 너, 걔구나? 유예린. 설천위의 약혼자.”

“네. 아마 당신이 노리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의 안사람 되는 사람입니다.”

“아직 식도 안 올렸는데, 무슨 안사람?”

“식을 올리고 말고가 뭐가 중요한가요? 본인들의 의지가 중요한 거죠.”

“너, 막 나가는 유형이구나?”

언여휘의 물음에 유예린은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렇지 않다곤 말 못 하겠네요.”

“거기에다 뻔뻔하기까지?”

태연한 유예린의 대처에 어이없다는 듯 웃은 언여휘는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뭐, 됐어. 안으로 들어가 살펴보면 답이 나오겠지.”

지금쯤이면 설천위의 몸에 침투한 혈기의 영향으로 폭주하는 진의단 놈들을 상대하고 있어야 할 이 녀석이 어떻게 이곳에 있는지.

안으로 들어가 살피면 금방 알게 될 일이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언여휘는 부적을 꺼냈다.

웬만한 녀석이라면 무력으로 찍어 누르겠지만, 눈앞에 있는 녀석은 그 웬만한 녀석에는 포함되지 않는 인간이다.

팽후 그 인간의 발을 붙잡는 데 혈강시를 상당수 써서 이번에 끌고 온 혈강시는 겨우 한 구뿐.

그건 저 땡중을 맡아야 하니, 이번엔 어쩔 수 없이 직접 손을 써야 한다.

무위로 따진다면 이쪽이 패배할 수도 있겠지만, 술법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잠시 비켜 줄래?”

길을 트게 하는 것 정도야 얼마든지 가능하니까.

순간, 언여휘가 뿌린 부적이 사방으로 퍼져 유예린을 가둔다.

유예린은 지금 무슨 광경을 보고 있을까.

환각을 일으키며 동시에 상대의 움직임을 속박하는 결계로 단숨에 유예린을 가둔 언여휘는 그대로 그녀를 지나쳤다.

쓸데없이 시간을 끌다가 적기를 놓칠 순 없는 법이니까.

그렇게 언여휘가 단숨에 유예린을 지나 훈련장의 문을 여는 순간.

“저는 당신을 붙잡아 두겠다고 한 적 없습니다.”

“……어떻게?”

환각에서 이리 멀쩡할 수가?

이번엔 진심으로 의아함을 품은 언여휘의 질문에 유예린은 담담하게 웃었다.

“아쉽지만, 저는 원래 환각이 잘 안 통하는 성격입니다.”

“……성격? 고작 성격?”

담담한 유예린의 대답에 고개를 삐딱하게 꺾은 언여휘는 이내 깨달았다.

그리고 웃었다.

“꺄하하하하! 진짜! 진짜 무림은 재미있다니까!”

있다.

방금 자신이 빠르게 펼친 환각 수준에는 당하지 않는 인간 유형이.

결코 흔들리지 않는, 거대한 철심을 가슴에 박아 놓은 이들.

무림은 그들을.

“너, 경지에 올랐구나?”

“아직 반쯤 걸친 것이지만요.”

화경이라 칭하고, 초인이라 부른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유예린의 경지에 웃으며 언여휘는 발을 내디뎠다.

“그래서 그런가? 상당히 오만하네?”

나를 안으로 들이다니.

열린 문 너머.

혈기로 가득한 훈련장을 보며 언여휘는 웃었다.

혈기의 중심.

고고하게 서 있는 한 사람을 중심으로, 기이하게 비틀린 인간들이 널브러져 있다.

“진짜……!”

과연!

이래서구나!

유예린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던 이유.

“너도 내 예상을 뛰어넘는구나!”

단주에게 특수한 주술을 행하고, 나머지 단원들에겐 혈기에 반응하는 약을 먹였다.

설천위에게 술법이 발동된 순간, 그를 지키기 위해서.

그런데.

“다 빨아먹었어!”

너무나도 뛰어난 그릇은 단주의 몸에서 흘러나온 혈기 이외의 혈기까지 탐내 주위에 있던 녀석들을 빨아먹기에 이른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 눈앞에 펼쳐진 광경.

“훌륭해!”

이만한, 이만한 것이 없다!

이거라면!

분명 이뤄 낼 수 있다!

단숨에 땅을 박찬 언여휘는 순식간에 혈기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달려 도달한다.

쿵쿵쿵쿵.

심장이 뛰듯 요동치는 거대한 혈기의 덩어리.

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으나 전체를 뒤덮은 형태가 그럴 뿐, 도저히 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는 외견이다.

아주 훌륭하다.

이대로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자아는 완전히 파괴되고 남는 것은 빈 육체뿐.

‘최고야!’

남자라는 사실이 마음에 안 들지만, 뭐 어째.

자신이 성별을 따지며 몸을 옮겨 다니는 것도 아니고.

이만한 재능과 그릇이라면 성별이 다른 것 정도야 얼마든지 참을 수 있…….

“언여휘? 생각보다 빨리 등장했군.”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케 하는 담담한 목소리에 언여휘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고.

“뭐, 그래 봤자 분신이겠지만.”

자신의 심장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 낸 주먹을 보며 언여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떻게?”

얼굴조차 볼 수 없을 정도의 짙은 혈기에 휩싸인 상태인데.

대체 어떻게?

언여휘의 물음에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이며 숨을 들이쉬었다.

그러자 단숨에 그 입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혈기.

“옛날에 비슷한 걸 먹어 본 적이 있거든.”

혈귀라고.

걔는 거의 완전한 영체였지만.

뭐, 힘의 느낌은 비슷하니까.

[느낌이 비슷하다고 같은 것이 아니거늘…….]

그게 그거지.

뻔뻔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이는 설천위의 모습에 천마가 혀를 차는 사이, 죽어 가는 언여휘의 분신을 보며 설천위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어딜 그리 편히 도망가려고?”

[패악(覇惡)]

막대한 살기와 패기의 창이 분신에 깃든 언여휘의 혼을 꿰뚫었다.

* * *

무림학관에서 멀리 떨어진 민가.

“끄아아아아아아아악!! 설천위이이이이!!”

왼팔부터 등, 목 언저리까지 검붉은 용의 형상이 문신처럼 새겨진 소녀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소리친다.

“죽여 버리겠어어어어어!! 설천위이이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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