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171화 (171/624)

제171화

170화-정의 (10)

훈련장.

철백과 유예린, 주현운에게 부탁해 붙잡은 술사는 셋.

셋보다 많았으면 혜송에게라도 부탁해야 했을 텐데, 다행히 숫자가 딱 맞아서 깔끔하게 붙잡을 수 있었다.

자신이 직접 움직이면 좋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상대의 술법을 역이용하는 방식을 셋에게 동시에 쓰면서 술사를 잡으러 가는 건 무리니까.

뭐, 좀 더 익숙해지면 가능할 것도 같지만.

“좋아, 우리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자고?”

한 술사의 앞에 다가간 설천위는 그 앞에 쭈그려 앉았다.

“나머지는 어디 있어?”

“…….”

대답 안 하네?

웬만하면 산 채로 듣고 싶은데.

무림맹에 제출할 증거로는 살아 있는 게 최곤데.

“굳이 죽어서 말하게?”

[크르르르르르.]

패융과 눈이 마주친 술사 녀석이 몸을 부르르 떠는 게 보인다.

공포에 잠식된 모습.

그럼에도 입을 열진 않는다.

지금 느끼는 공포보다 더한 공포가 새겨져 있거나…….

“금제인가?”

고개를 끄덕이는 대답조차 없다.

음.

이건 금제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금제.

특정한 행동 혹은 말을 하지 못하게 만든 것으로, 보통 비밀 유지를 위해 사용된다.

이를 주로 쓰는 것은 혈교나 혈사련 같은 음지의 조직들인데.

가끔 사파 쪽에서도 뒤가 많이 구린 일을 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아쉬운 것은 이 금제는 술법만으로 펼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 정도일까?

고독이나 독, 최면 등을 동반하기 때문에 솔직히 해제는 불가능하다.

어떻게 해제하는지 아는 게 있어야지.

“그냥 죽여서 알아내야겠네.”

편한 길 가기가 참 힘드네.

이래서 사람이 편히 살려면 배워야 한다는 건가?

뭐, 그래도 편하게 죽게 놔둘 순 없지.

그냥 죽으면 죽어서도 반항이 꽤 거칠어지니까.

“공자.”

“응?”

“아무래도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아요.”

“그렇지?”

유예린의 말에 대답하며, 설천위는 몸을 일으켰다.

“후후후, 오랜만이네요?”

그리고 그의 뒤로 나타난 청아가 술사들의 턱을 손등으로 쓸었다.

[끼릭.]

그리고 그 곁에 함께하는 괴.

“끄아아아악!”

대답하지 않는다면, 뭐 실험체로라도 써야지.

그렇게 청아와 괴에게 마무리를 맡긴 설천위는 거리를 벌려, 평소 이야기를 나누던 탁자에 앉았다.

이미 그곳에 앉아 있던 철백과 주현운의 시선도 설천위에게로 향했다.

이상하다.

“교관들이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건 명백한 이상 현상이다.”

“솔직히 말이 안 되죠. 초절정 고수가 몇이나 있는 학관에서 인질극이 벌어지다니.”

초절정 고수가 뭐 하는 인간들인가.

초인의 영역에 올랐다고 하는, 진짜배기 괴물들이다.

하다못해 철백과 주현운만 해도 인질들을 구해 내며 적들을 무사히 처리하지 않았던가.

물론, 철백과 주현운은 내부에 잠입해 있어서 보다 손쉽게 해낸 경우이긴 하지만.

셋 정도만 있어도 이딴 인질극 따윈 순식간에 제압된다.

그런데 그런 일이 학생회에 보고되어 혜송이 움직일 때까지 교관들은 단 한 명도 현장에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초절정에 오른 교관은커녕, 절정에 오른 교관도 안 보였다.

그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또 다른 외부의 위협이 있다. 그게 가장 가능성이 높겠죠.”

지금은 학기 중이다.

그런데 교관들이 수업 시간 이외에는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이 수업 이외의 시간에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소리다.

학관 전체가 일제히 움직일 만한 사안은 단 하나뿐이다.

외부의 공격.

내부에서 학생들이 벌이는 조잡한 인질극 따윈 전혀 신경도 쓰지 못할 정도의 공격이 있었다는 소리다.

“문제는, 제게 제대로 된 정보가 없다는 점이에요.”

교관들이 자존심 때문에 학생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 순 있다.

한데, 유예린은 이곳에 암혈단(暗血團)을 주둔시키고 있다.

그들은 평상시에 놀고 있는 게 아니라 정보 수집에 몰두하는데 그런 그들이 이렇다 할 정보를 물어오지 못했다는 건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말 극비리에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다는 소리겠죠.”

“음.”

유예린의 말에 설천위는 작게 침음성을 삼켰다.

솔직히 말해서.

짐작 가는 게 있다.

문제는 그게 지금 일어날 시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면 완전히 일이 꼬인 건데.’

아니, 이렇게까지 꼬이면 안 되는데.

생각해 놓은 흐름이 완전히 망가진다는 소리 아닌가.

……아쉽지만, 어쩌겠어.

바뀐 거라곤 나뿐이니 내 탓이겠지.

작게 한숨을 내쉰 설천위는 고개를 들어 친구들을 바라봤다.

“교관들이 외부에 들키지 않으려 하면서 내부에서 일어난 인질극에 신경도 쓰지 못할 만한 사건은 하나뿐이지.”

“그게 뭔가?”

“간자 색출.”

* * *

“……그 아이에게 이런 추태를 보이지 않으니 참으로 다행이오.”

무림학관 내에서도 조금 외진 곳에 위치한 거대한 강당.

그곳에 교관들을 전부 모아 놓고, 팽후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을 가르친 선생들 중에 외부의 간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 그 아이가 나와 이 학관을 얼마나 비웃겠소?”

긴장감에 침조차 제대로 삼키지 못할 정도로,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에 화영은 작게 숨을 골랐다.

‘……벌써 사흘째.’

수업 이외의 시간은 전부 이 강당에 교관들이 모인 지 벌써 사흘째다.

익명의 제보로 시작된 간자 색출이 이렇게 길어질 줄 그 누가 예상조차 했겠는가.

“그러니 아무런 불만도 품지 말고, 순순히 따르시오.”

나지막한 경고와 함께, 팽후의 손짓에 움직인 이들이 하나둘 교관들을 검사하기 시작했다.

팽가에서 온, 팽후의 직속 부하들.

이걸로 몇 번째 몸수색일까.

교관들의 생활권도 샅샅이 훑었을 거다.

그런데도 찾아내지 못했다는 건…….

‘대단한 녀석이네.’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간자가 있다는 건 확실하다.

학관 내에 숨겨진 다량의 폭탄과 여러 술법용 도구들.

외부에서 몰래 들여놓은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교관이 아니라면 드나들 수 없는 구역에 그 물건들이 숨겨져 있었다.

학생들에게 발견되는 것도 힘들게.

‘익명의 제보도 조금 의심이 가긴 하지만.’

간자가 간자를 신고했을 수도 있다.

자신은 절대 들키지 않을 거라는 확신으로 혹은 들켜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문제는 그것으로 대체 무엇을 노리고 있느냐는 거겠지.

학관장이 이토록 대놓고 교관들을 모아서 간자 색출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일 터.

은밀하게 하나하나 조사해 색출하는 것이 더 좋겠지만, 간자가 여럿이라면 그러는 사이에 그들을 놓칠 수도 있다는 경우의 수가 생긴다.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이렇게 지지부진하지만 교관 전부를 감시하는 방법을 쓰고 있는 것일 게다.

‘문제는 끝내 색출해 내지 못했을 경우…….’

그때 학관장은 대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작은 한숨과 함께,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팽가 사람을 보며 화영은 양팔을 벌렸다.

일단 이 고난이 무사히 지나가야…….

“벌써 시작했나요?”

순간, 강당에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강당의 문 쪽으로 향했다.

무인이라고 하기엔 화려한 복장의 여인.

여러 장신구를 달아 어느 때보다 화려한 모습으로 등장한 여인의 이름은 성화린.

백화단(白花團) 단주(團主)이자, 온갖 술법의 귀재.

그리고…….

“간자가 있다는 정보는, 사실인가요?”

무림맹에서 간자를 색출하는 데 가장 적극적인 인물이다.

그녀의 등 뒤로 무언가를 한 아름 챙겨 온 이들이 강당으로 밀려 들어왔다.

* * *

“이야, 그 미친년이 벌써 왔어?”

무림학관의 외곽.

외부와 학관을 가르는 담장 위.

아작, 당과를 깨물며 소녀는 웃었다.

간자 색출에 미쳐 있다는 건 알았지만, 진짜 이 정도일 줄이야.

팽후가 요청을 보낸 지 이제 사흘밖에 안 지났을 텐데, 벌써 왔다고?

무인도 아닌 것들이?

참 독하네.

“뭐, 제 스승이 그리 죽었으니 그럴 만도 한가? 히히.”

그년도 최후가 꽤나 처절했지.

옛 기억을 떠올리며 혼자 히죽거리던 소녀는 다시 일어났다.

뭐가 됐든, 이제 슬슬 끝을 향해 달릴 때가 됐다.

이곳에 끼어든 녀석들이…….

“우리랑 진의단 놈들, 거기에다 혈교도 살짝 걸치고 있는 것 같고…….”

참, 할 짓 없는 놈들이 이리 많아요.

보아하니 사혈천 놈들도 살짝 고개를 들이밀고 있는 것 같은데.

애들 모아서 가르치는 이곳에 무에 그리 맛있는 게 있다고 이리들 난린지, 쯧쯧.

“아니, 그럴 만한가?”

그 아이라면 모두 탐낼 만하지.

무(武)에 재능이 넘치는 녀석들이야 많다.

몸뚱이만 잘 타고나면 되니까.

그런데 영(靈)에 재능을 타고나는 애들은 거의 없다.

왜냐고?

그건 혼(魂)이 좋아야 하기 때문이다.

혼의 크기는 물론, 그 질까지 좋아야 영적으로 큰 재능을 지닌다.

“그런 의미에서 그 녀석은…….”

실로 탐나는 소재가 아닐 수 없지.

혈교 놈들에게도, 우리에게도, 사혈천 놈들에게도.

술(術)을 다루는 놈들은 전부 탐내고 있을 거다.

무엇보다.

“아주 똘똘한 녀석이야.”

무(武)를 쌓는다니.

그냥 술(術)만 익혔다면 어떻게든 공략법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을.

“……그 인간이 떠오르네.”

세상 사람들로부터 괴물이라고 불린 자.

진정한 괴물.

혈신(血神)에 가장 근접했던 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오소소 소름이 돋는 그 눈빛.

“뭐, 아직 해와 반딧불이 정도의 차이이긴 하지만.”

아직 그렇게까지 손도 못 댈 정도의 괴물이 된 건 아니다.

그러니 지금이 기회다.

짓밟든가.

“집어삼키든가.”

어떤 식으로든, 이번엔 끝장을 볼 것이다.

담장에서 내려와 안으로 향하는 소녀의 발걸음은 기이하리만치 가벼웠다.

* * *

“흠, 그 강당이 의심스럽다고?”

“예. 전부 직선으로 향하는 건 아니지만, 모두의 동선을 고려할 때 그곳이 가장 가능성이 높아요.”

“학관장이 직접 출입을 금한 곳이라…….”

암혈단이 이렇다 할 정보를 못 얻을 만도 했다.

팽후가 직접 출입을 금지시킨 데다 본인이 그곳을 출입한다면 암혈단이라도 감히 들어갈 순 없을 테니까.

“좋아, 그럼 일단 조심스럽게 접근해 보자. 그런데, 두 사람은?”

설천위의 물음에 철백이 고개를 저었다.

“네 조언을 듣고 돌아와서 그놈들에게 인질로 붙잡힐 때 혹시 몰라서 다른 일을 부탁했다.”

“……다른 일?”

“너랑 엮인 지가 꽤 됐다. 대략적인 짐작 정도는 할 수 있지.”

……응?

뭔 짐작?

“술법의 흔적이 의심되는 곳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이런 대규모 습격이라면, 무인만으로 이루어졌을 리가 없을 테니.”

“……오?”

눈치 빠른데?

하긴, 무려 도왕(刀王)이 버티고 있는 곳이다.

무턱대고 무인만 끌고 찾아오진 않았겠지.

철백의 판단에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그 순간, 그의 내면에서 무언가가 울었다.

[크르르르.]

패융이 아니다.

청랑이다.

뜬금없이 튀어나온 청랑의 모습에 설천위가 고개를 갸웃한 순간.

[컹!]

성체의 모습으로 우렁차게 짖는 청랑을 보고 설천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왔다고?”

그건 이상한데?

그 녀석이 여기에?

갑자기?

“설가 놈!! 내 진정한 정의를……!”

큰 소리와 함께 부서질 듯 거칠게 열린 문으로 당당하게 들어온 인물을 보고 설천위는 미간을 찡그렸다.

정무회주.

저 머저리가 왜 여기에?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지.

“……공자.”

자리에서 일어나는 유예린과 주현운.

딱딱하게 굳은 두 사람의 표정에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느끼고 있었으니까.

설천위와 그 일행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것을 확인한 정무회주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너희도 어쩔 수 없구나.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한 정무회주는 당당하게 외쳤다.

“순순히 정의의 오라를 받아……. 컥!!”

빠각!

뼈가 부러지는 경쾌한 소리.

단숨에 정무회주의 코뼈를 부러트린 철백이 그 머리통을 붙잡고 위로 들어 올린다.

“고문부터?”

“……어, 고문부터.”

얘가 좀 과격해졌네?

긴장감에 표정이 굳었던 설천위는 작게 헛기침하며 정무회주에게 다가갔다.

어째서 정무회주가 이곳에 갑자기 나타난 건진 모르겠지만…….

“그만 나오지?”

“흠, 역시 여기까지 오면 속일 수 없나.”

쾅!!

순간, 대문 너머에서 들린 소리와 함께 철백의 몸에 굉음이 터져 나왔다.

“구제의 시간이다. 애송이들.”

검을 쥔, 그야말로 정파 무인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사내가 뿜어내는 흉흉한 기세 뒤로 십수 명의 무인이 검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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