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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168화 (168/624)

제168화

167화-정의 (7)

“이미 늦었다.”

그 한마디와 함께 왈패들의 몸이 허물어진다.

빠른 속도로 휘두른 비수가 그들의 목을 스치고 지나간 탓이다.

순식간에 경추를 갈라내는 깔끔한 솜씨.

상대가 아무리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이들이라고 해도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내는 그것을 해냈다.

왈패들은 읽어 내지도 못할 빠른 속도로, 그들의 목을 베어 낸 것이다.

“진정한 정의가 세상에……!”

두 눈이 붉게 충혈된 사내의 기이한 목소리가 막힌다.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어 도를 피해 낸다.

하던 말을 그대로 이어 하지 못할 정도로 다급한 반응.

그 격렬한 반응 속에서 설천위는 움직였다.

분명 빠르고 강했다.

손에 쥔 비수를 다루는 솜씨도 괜찮았다.

하지만.

“그게 곧 틈이지.”

이쪽이 딱 보고 있는데 대놓고 다른 놈들을 노려?

그것도 넷이나 되는 녀석들을 한꺼번에?

당한 왈패 놈들이야 언제 당했는지도 모를 속도지만, 그건 왈패들한테나 해당되는 이야기다.

이쪽은 다 보인단 말이다.

[크르르르르.]

뿌득.

실체화된 패융이 비수를 쥔 사내의 팔을 물어뜯었다.

단숨에.

“끄아아아악!!”

완전한 절단 직전까지 간 팔목.

거의 가죽 한 장 차이로 덜렁거리는 팔목에서 올라오는 고통은 끔찍하기 그지없다.

두 눈이 붉게 충혈됐던 사내도 참지 못할 정도의 격통.

고양된 마음과 육체 둘 중 무엇 하나도 버티지 못했다.

[외부의 조력으로 힘을 얻은 이들의 한계니라.]

천마의 냉랭한 목소리와 함께 설천위는 손을 뻗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사내의 목을 움켜쥔다.

“커헉!”

완전히 제압된 상대.

허접하기 그지없는 실력이다.

“크륵! 크륵!”

거기에다.

[역류했군.]

[끝났다. 오래 못 살겠어.]

순간적으로 약 기운을 폭발시켜 어떻게든 벗어나려 발악하던 놈이 입에 거품을 물기 시작했다.

두 눈동자가 돌아가 흰자위가 보이기 시작한 건 덤이고.

짧게 사내를 바라보던 설천위는 결국 손에 힘을 더했다.

이 이상 붙잡고 있어 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으니.

“컥!”

단숨에, 경추를 부숴 목숨을 거둔다.

이젠 살인에 꽤나 익숙해져 버려 참으로 씁쓸한…….

“뭐 하는 짓이냐!!”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설천위는 몸을 돌렸다.

땅으로 허물어지는 시체.

목이 베여 널브러진 왈패들.

오른손에 쥔 도(刀).

“네놈! 백주 대낮에 살인이라니! 하늘이 두렵지 않느냐!”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외치는 남자.

허리춤에 찬 패와 복장의 형태를 보아하니 포쾌다.

지금 시대의 경찰.

[일이 귀찮게 됐구나.]

천마의 목소리에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귀찮게 됐다.

딱 그 정도의 일이다.

조사하면 저기 죽어 있는 녀석들의 상처가 내가 쥔 도(刀)로 만든 상처와 다르다는 걸 금세 알 수 있으니까.

여기 이놈이야 사체를 조사하면 어떤 놈인지 확실하게…….

“네놈의 벌은 이문님께서 벌해 주실 것이다!”

거침없이 다가온 포쾌가 포승줄을 들이민다.

순순히 양손을 내미는 설천위.

그 팔을 묶으며, 포쾌의 두 눈은 한 곳으로 향했다.

미세하게 떨리는 눈동자.

시체를 보아서인가.

아니면…….

‘이것 봐라?’

죽은 동료의 시체를 보아서인가.

왈패들의 시체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포쾌를 바라보는 설천위의 눈동자가 낮게 가라앉았다.

* * *

“궁금했었지. 왜 너는 죽은 그놈의 시체를 보며 그리 떨었을까.”

떨리는 눈동자로 자세를 잡는 포쾌를 보며 설천위는 피식 웃었다.

“뭐, 포쾌가 맞긴 한 것 같아서 얌전히 붙잡혀 주긴 했지만.”

범죄 현장을 들켜 포쾌에게 잡힐 때, 반항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 죄가 된다.

설령 억울하다고 할지라도 일단 잡혀서 자신을 변호해야 한다.

뭐, 그렇게 될 경우 무죄로 풀려나는 일이 거의 없어 대부분은 반항하지만.

괜히 도망가는 게 아니지.

“자, 그럼 대답해 주실까? 왜 그때 그놈의 시체를 보면서 그리 동요했는지.”

“사람이 죽었다. 내가 아무리 포쾌라곤 하나 사람의 죽음 앞에서…….”

“에이, 그럼 왈패 놈들은 사람도 아닌가? 저 아저씨가 분명 나한테 다섯 명의 목숨값을 물어봤는데?”

아직도 설천위가 내뿜는 패기와 영력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재형은 입만 달싹일 뿐 말을 뱉어 내진 못했다.

‘이, 이것이 무림학관의 학생인가!’

말도 안 된다.

어찌 기세만으로 사람을 이리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저자의 연인이라는 아이가 한 말도 안 되는 변호가 무슨 의미인지 이젠 알 것 같았다.

기세만으로 이리 사람을 짓누를 수 있다면, 그 자리에서 포쾌들을 죽이고 도주하는 것이 훨씬 깔끔했을 터.

문제는.

‘서굴!’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나 정의감이 투철한 부하다.

대체 설천위란 자가 왜 저리 서굴에게 화를 내고 있는진 모르겠으나, 이렇게 보낼 순 없는 부하다.

뿌득.

“네, 놈……!”

필사적으로 움켜쥔 주먹에 살을 파고드는 손톱.

그 고통에 약간의 여유를 찾은 우재형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었다.

내 부하는 내가 지킨다.

그런 의지를 세우며 우재형이 어떻게든 설천위를 막으려는 순간.

쾅!!

설천위의 일격에 또다시 서굴의 몸이 튕겨 나간다.

그야말로 앞에서 거대한 폭약이라도 터뜨린 것 같은 모습.

하지만 순식간에 날아간 서굴의 모습에 설천위는 오히려 미간을 찡그렸다.

‘생각보다 더 단단하네?’

손맛이 약하다.

분명 베려고 했는데 폭음이 터졌다는 것은, 이쪽의 의도대로 공격을 성공시키지 못했다는 소리다.

“진짜 신기하네.”

잡히는 순간에도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것쯤은 읽어 냈다.

그런데 그 수준이 높지 않았기에 그냥 적당히 포쾌로 녹을 먹고사는 자라고 생각해 넘어갔었다.

의심스러운 점이 몇 가지 있긴 했으나, 포쾌라는 공권력이 상대이니만큼 굳이 조급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고민하는 사이에 다른 일반인이나 마찬가지인 포쾌들이 왔기도 했고.

그런데, 그렇게 고민해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약했던 녀석이 이리 격렬하게 반항하다니.

“최소 두 단계? 거의 그 정도는 건너뛴 것 같은데?”

날아간 충격으로 가구들 사이로 파고들었던 서굴이 몸을 일으킨다.

약간의 생채기와 뒤집어쓴 먼지가 전부.

큰 상처는 없었다.

즉, 멀쩡하게 공격을 받아 냈다는 소리다.

그리고…….

“움직이지 마라.”

“손버릇 참 좋다?”

언제 잡았는지 모를 인질까지.

“서, 서굴!”

아는 사인지 그 이름을 외치는 남자의 목을 서굴이 더욱 강하게 옥죈다.

두툼한 팔에 숨이 조여 일순 말문이 막힌 남자의 눈동자가 크게 떨린다.

“인질극까지 하게?”

“아니, 네 녀석을 멈추게 하기 위함이다. 네놈도 정파의 인간이라면 이 이상 행패를 멈추고…….”

“쯧쯧, 너 뭔가 착각하고 있지 않냐?”

서굴의 말을 끊고, 설천위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에 무림학관의 무인이 나만 있는 게 아니잖아?”

[암은검(暗隱劍)]

무형에 가까운 참격이 서굴을 스쳐 지나간다.

완벽한 은(隱)의 묘리를 담은 일격.

“끄아아악!!”

인질을 잡고 있던 왼팔이 잘려 나간 것을 느낀 서굴의 비명이 울려 퍼진다.

그리고 어느새 인질마저 회수한 유예린은 냉랭한 눈빛으로 서굴을 바라봤다.

“포쾌가 인질을, 그것도 자신의 동료를 인질로 잡다니. 자신의 근본을 부정하는 일을 벌이는군요.”

겨우 숨을 고르는 인질 앞에선 유예린은 담담한 눈으로 서굴을 바라봤다.

“순순히 죄를 인정하고 대체 왜 그랬는지를…….”

“대인! 억울합니다!”

유예린의 말을 끊고 몸을 돌린 서굴이 무릎을 꿇었다.

그 고개가 향한 방향은 이제 겨우 여유를 되찾기 시작한 우재형.

“저는 살기 위해 잠시 동료를 잡았을 뿐, 그를 해할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피가 흐르는 팔을 지혈조차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다.

거의 땅에 닿은 머리.

“제가 무공 실력을 숨기고 있던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까?!”

억울함이 절절하게 묻어나오는 목소리.

그 목소리로 서굴은 우재형에게 호소했다.

“저 간악한 자들이 이상한 방향으로 상황을 몰아가 죄를 피하려 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발이 되는 저희가 그들을 엄히 벌해야 합니다!”

하늘.

즉, 천자를 말함이오.

황제를 말한다.

우리들은 황제의 명을 듣는 자들이다.

이 나라의 백성이라면 황제의 명을 들어야 한다.

지금 저들은 황제 폐하가 정한 법도를 어기고 행패를 부리고 있다.

이것을 어찌 두고 보겠는가?

서굴의 호소에 그의 기이한 행동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던 우재형은 잡념을 털어 냈다.

맞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살인을 저지른 자를 벌하는 것이다.

거기에다 재판장을 이리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놨으니 당연히 그 죗값을 물어야 할 터.

어느새 몸이 움직일 만해졌다는 것을 깨달은 우재형은 몸을 일으켰다.

“맞는 말이다! 이곳은 황제 폐하께서 정한 법을 지키는 신성한 곳!”

손바닥으로 책상을 치며 호통을 친 우재형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설천위를 향해 삿대질했다.

“네 녀석의 이 오만 방자한 행동은 황제께서 세우신 지엄한 법을 무시하는……!”

“아니, 이야기가 안 끝났는데?”

우재형의 말을 끊고, 설천위가 한 걸음 옮긴다.

우재형을 향해.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며 유예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대체 어찌하려고?’

아무리 그래도 상대는 관직에 있는 자다.

아주 높은 관직은 아니지만, 그래도 엄연히 황제의 인정을 받은 정식 관리.

이리 막무가내로 나가는 건 결코…….

[걱정되느냐?]

고민에 빠진 유예린의 눈빛을 읽은 천마가 허허로운 웃음과 함께 그녀의 곁을 지켰다.

[그냥 지켜보거라. 저놈이 생각 없이 그리 여유롭게 있었던 것이 아니니.]

천마의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인 유예린은 설천위를 바라봤다.

그리고.

‘……없어.’

없다.

이 공간을 가득 채우던 그의 기세가.

미약한 색을 가진 그의 기세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우재형도 멀쩡하게 말하고 움직이는 것이…….

언제부터였지?

유예린의 눈이 가늘어지는 순간, 천마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세상은 저놈이 올바른 심성을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할 것이야.]

끼릭.

무언가가 삐걱대는 소리.

그 소리와 함께, 유예린은 깨달았다.

아까부터 흉흉한 기세를 뿜어대던 서굴이라는 자가 그 움직임을 멈추고 있었다는 것을.

[영력이 상승하니 별의별 짓이 다 가능해지는구나. 쯧쯧.]

괴물 같은 녀석.

천마의 감상과 함께, 서굴의 몸이 움직인다.

조금 부자연스러운 움직임.

그리고.

‘이건……?’

그 뒤에 모습을 드러낸 존재를 확인한 유예린의 눈이 크게 떠졌다.

끼릭.

삐걱대는 소리와 함께, 서굴이 한 걸음 내디딘다.

“나약한 정신은 그대로 둔 채 약에만 의존한 결과지.”

설천위의 이상한 혼잣말과 함께 그와 우재형 사이에 선 서굴이 다시금 무릎을 꿇는다.

“제가 큰 죄를 지었나이다!!”

갑자기 자신의 죄를 말하는 서굴.

그 모습에 당황한 우재형.

“아니, 그게 무슨…….”

“제가 무림의 세력과 암약해 함정을 팠습니다!”

자신이 무공을 얻은 약의 존재.

그 과정에서 행한 죄들.

온갖 것들을 내뱉는 서굴의 입은 쉴 새가 없었다.

그리고.

끼릭 끼릭.

그 뒤에서 실로 서굴의 몸 곳곳을 꿰뚫은 괴(乖)가 그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인간의 행동과 감정을 조종하는 괴이(怪異).

진실도 거짓으로 만들 수 있고.

거짓도 진실로 만들 수 있다.

“이, 이게 무슨?”

갑작스럽게 자신의 죄를 고발하는 서굴의 모습에 당황한 우재형이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참, 뭐라 말하기 힘드네요.”

묘한 표정으로 설천위의 앞에 선 유예린은 한숨과 함께 그를 바라봤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저도 그냥 학관으로 돌아가는 거였는데.”

“에이, 덕분에 도움이 좀 됐어. 시간을 벌었으니까.”

약 기운을 끌어올리기 전엔 기세로 찾기가 쉽지 않아서 말이야.

도움이 되긴 했지.

그나저나.

“그래서, 철백은?”

“말해 준 걸 전해 주니까 바로 돌아갔어요.”

“그래?”

그럼…… 별걱정 안 해도 되겠지?

* * *

“이놈들이…….”

이를 악무는 철백.

그리고 그 앞에서 입꼬리를 비트는 천병식.

“무식한 놈 같으니.”

비웃음과 함께 검을 들이미는 그의 뒤엔 몇 사람이 완전히 포박당해 그 목에 검이 닿아 있었다.

“이젠 우리가 올바른 정의를 세울 때다.”

인질을 무기로, 철백을 저지하는 데 성공한 천병식의 두 눈은 기이한 열망으로 이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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