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7화
166화-정의 (6)
“으음, 일이 어렵게 된 것 같군.”
신음과 함께 내뱉는 철백의 말에 혼령연구회의 일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상당히 어렵게 됐다.
“현장에 죽어 있던 왈패가 넷, 순찰 중이던 포쾌가 발견했을 당시에 설 공자의 손에 목이 베인 이가 하나.”
“총 다섯이 죽었다는 거군요.”
“네, 문제는…….”
“왈패들이 무인이 아니라는 점이겠죠.”
관무불침(官武不侵).
관과 무림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불문율이며, 명시된 법은 아니다.
거기에다 이 암묵적 규칙은 어디까지나 서로를 향한 배려에서 나온 것.
황제는 무림인의 무력과 부딪혀 제 살을 깎을 이유가 없고.
무림은 황제와 부딪혀 사회에서 고립될 이유가 없다.
그렇기에 서로 무시하면서 동시에 서로 존중해 거리를 두는 것.
이게 관무불침의 기본이다.
왈패 넷이 죽은 것?
솔직히 별문제 아니다.
타인의 고혈이나 빨아먹고 사는 놈들이 죽는다고 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니까.
문제는 그들도 명목상 황제의 백성이라는 것이고, 그들을 죽이는 광경을 포쾌가 직접 목격했다는 점이다.
하물며, 포쾌가 그 순간에 그냥 눈감고 지나간 것도 아니고 직접 그를 관에 끌고 갔다면 이야기는 참으로 묘하게 흘러간다.
고작 왈패 몇 죽은 것에 설천위 정도 되는 인물을 벌하는 것이 큰 손해라는 것을 관도 잘 안다.
호남설가의 이름은 무림 전체에 널리 퍼져 있을 정도니까.
그런데, 이미 끌고 온 이상 벌을 안 주기도 참 애매하다.
손익을 떠나 자존심의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관이 무림을 배려해 서로 침범하지 않는 것과, 관이 무림을 두려워해 침범하지 않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니까.
“벌금이나 내고 나올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에요.”
길거리에서 왈패가 시비를 걸어 그것을 벌하는 과정에서 죽인 것이 아니다.
골목길에서 넷이 시체로 뒹굴고 남아 있던 이의 목까지 설천위가 쳤다고 한다.
포쾌가 뻔히 보고 있는 눈앞에서.
대체 뭐라고 변호해야 하지?
가만히 듣고만 있던 유예린의 미간이 미세하게 일그러진다.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 특기인 그녀의 표정에 미세한 금이 갈 정도로, 지금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그렇기에…….
“일단 가 보죠!”
벌떡 일어난 서하영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다른 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서하영은 흡 하고 배에 힘을 줬다.
“가서 어떻게 된 건지 보자고요!”
* * *
“그래서, 이리 몰려왔다는 건가?”
“이리 성급하게 달려온 점 사죄드립니다. 허나, 친우를 생각하는 마음에 이리 달려왔습니다. 한 번만 아량을 베풀어 주십사 부탁드립니다.”
포권과 함께 고개를 숙이는 철백.
그 담대한 골격을 가만히 바라보던 이문소(理問所)의 수장, 우재형은 미간을 찡그렸다.
무림학관에서도 이름 높은 이들이 온다 하여 만나긴 했지만, 역시나다.
“그대들은 친우가 사람을 죽였는데, 어찌 그를 감쌀 생각만 하는가?”
아무리 왈패의 목숨이라고 하나, 그 또한 사람의 목숨이다.
그들도 가족이 있고, 그 죽음에 슬퍼할 이들이 있을 터.
그런데 정파란 자들이 그들에 대한 애도를 표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친우나 찾고 있다.
‘더러운 위선자들 같으니라고.’
어린 것들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구나.
아니, 어린 것들이기에 더 심한 것인가.
지금의 친구가 세상의 전부라고 느낄 나이일 테니.
약간의 기대감을 품었던 우재형의 눈이 싸늘하게 식었다.
“됐소. 무슨 소리를 하든 불허(不許)하지. 죄인이 판결을 받기 전까지, 또 그 형이 집행되기 전까진 그 누구도…….”
“믿기 때문입니다.”
확고한 목소리로 이어 가던 우재형은 중간에 끼어든 부드러운 목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목소리가 아름다워서?
물론 아름답긴 하지만, 자신의 결정을 번복할 정도는 아니다.
허나.
‘……이게 무림인인가!’
다르다.
무저갱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깊디깊은 눈동자.
소름 끼치는 것은, 그 안에 담긴 감정을 도저히 읽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듣기론 아직 스물도 되지 못한 어린 이들이라고 하였는데.
“저는 제 남편이 될 사람을 믿습니다.”
“……혼약자인가?”
“예.”
확고한 믿음이 담긴 목소리.
어떤 흔들림도 보이지 않고 유예린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죽일 이유도 없이 살생을 하진 않습니다.”
“그렇다면 무림인이나 되는 자가 왈패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그들을 죽였다?”
그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헛소리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건 그대들일 텐데?
어느새 다시금 평정을 되찾은 우재형의 물음에 담긴 속뜻을 읽은 유예린은 고개를 저었다.
“죽일 만해서 죽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럴 이유가 없음에도 죽은 자가 나왔다는 것은…….”
형형하게 빛나는 유예린의 눈동자가 우재형을 똑바로 응시한다.
“그렇다면 제 낭군은 범인이 아닙니다.”
* * *
“……그래서 들어왔다고?”
“네. 친족은 면회가 가능하다고 하네요.”
지하 감옥.
그곳에 갇혀 있던 설천위는 자신의 앞에 나타난 유예린을 보며 피식 웃었다.
담담하게 웃는 것이 여전하네.
“뭐, 대충 짐작하겠지만 난 아니다?”
“그렇겠죠. 공자는 조금 미흡하긴 해도 그 정도 힘 조절도 못 하진 않으니까요.”
[이 아이도 네가 재능이 없는 건 인정하는 것 같구나?]
[조금 미흡하다고 말하는 점에서 배려가 느껴지는구나.]
“흠흠, 그렇지는 않은…….”
[에헤이, 부정하지 말거라!]
[암, 이놈에게 현실을 똑바로 알려 줘야…….]
아니, 이 양반들이?
바쁜 사람 데리고 왜 농담 따먹기나 하고 있는 거야?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하던 일이나 하지?
걔 입부터 열게 만들어야 할 거 아니야.
“낄낄낄, 형씨 마누라야? 예쁘네?”
혼들의 놀림에 설천위가 미간을 찡그린 사이, 그와 한 감옥에 있던 이가 슬금슬금 다가왔다.
“살결이 보드라워 보이는데. 거, 나도 죽기 전에 손이나 한번…….”
“야.”
순간, 공기가 차갑게 식는다.
[크르르르르르.]
무언가 짐승이 우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고 느낀 사내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얌전히 처박혀 있어라.”
“……네.”
이게 사람의 눈인가?
설천위의 두 눈을 마주한 사내는 지릴 것 같은 것을 겨우 참고 조용히 물러났다.
“음, 역시 이거죠?”
“뭐가?”
“설 공자를 변호할 유일한 방법이요.”
……그게 뭔데?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유 매, 나가면 철백 녀석한테 말 좀 전해 줘.”
아무래도 나는 여기에 좀 있어야 할 것 같으니까.
* * *
“괜찮을까요?”
“별다른 증거가 없으니 하는 데까지는 해 봐야죠.”
확실히 그렇긴 한데…….
묘하게 평온한 유예린의 모습에 오히려 자신이 더 불안해진 서하영은 천천히 호흡을 고르며 주위를 둘러봤다.
모든 재판에 방청객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재판은 나름 이야깃거리가 될 만한 재판인지라 꽤나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무림학관 놈들이 행패 부린 게 어디 한두 번인가?”
“아무리 왈패 놈들이라지만 그 자리에서 찢어 죽이다니 너무하지.”
아니, 찢어 죽이진 않았는데요.
철 가가라면 몰라도 설 소협은 그 정도 실력까진 없어요.
아니, 그 정도 힘이 없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이 양반은 어디 갔대? 중요한 순간에 해우소라도 갔나?
머릿속에 번져 나가는 잡생각에 서하영은 휙휙 고개를 저어 잡념을 떨쳐 냈다.
아니, 지금은 일단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재판을 지켜봐야 한다.
이렇게 여론이 한 방향으로 흘러가면 판결을 내리는 이도 그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을 테니까.
그런 식으로 판결이 정해지는 건 막아야지.
“정숙하시오!”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아까 보았던 이문소의 수장, 우재형이 들어왔다.
이문소(理問所)는 사법을 담당하는 곳으로 범인을 잡아들이는 일과 판결을 함께 맡은, 꽤나 막강한 권력을 지닌 기관이다.
그 수장인 이문(理問)은 종 6품의 관리고.
이곳 신야(新野)는 무림학관으로 인해 규모가 커진 곳이다.
경제의 큰 부분을 무림학관에 의존하고 있는 곳이란 뜻이다.
때문에 무림학관 학생들의 행패에 많은 이들이 제대로 불만을 표출하지 못하던 상황.
그런 상황에서 이런 공식적인 재판이 벌어졌다?
사람들의 기대감은 한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참에 무림학관의 어린놈들의 콧대를 납작하게 눌러 주기를.
그리고 우재형은 그럴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관리였다.
“그럼 재판을 시작하겠다! 먼저, 죄인의 죄를 묻겠노라.”
우재형의 목소리와 함께 포쾌들이 설천위를 데리고 중앙으로 걸어갔다.
무기를 전부 뺏기고 양손이 뒤로 묶인 상태.
죄인이나 다름없는 모습에 모두가 웅성거리던 그 순간, 우재형이 입을 열었다.
“죄인은 무고한 백성 다섯을 죽였다. 그 죄를 인정하는가?”
당연히 인정할 수밖에 없다.
포쾌가 현장에서 잡아 온 것이니까.
이미 속으로 답을 정해 놓은 우재형의 질문에 설천위는 담담하게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 인정……. 뭐라?”
우재형의 반문과 함께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커지기 시작했다.
철면피라는 둥, 왜 저리 당당하냐는 둥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 여기가 시장 통이 아닌지 의심스러워질 때 즈음.
유예린이 한 걸음 나섰다.
“대인, 제가 그를 변호해도 되겠습니까?”
당당한 걸음걸이.
순식간에 설천위의 앞에 도달한 유예린은 담담한 시선으로 우재형을 올려봤다.
“현장도 가 보지 못한 그대가 어찌 그를 변호한다는 것이오?”
“할 수 있습니다. 딱 한 가지만 들어주시면 됩니다.”
당당하게 나오는 유예린의 태도에 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우재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 보시오.”
“감사합니다. 먼저,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기에 있는 설 공자는 무림학관에서도 그 실력이 뛰어난 편에 속하는 고수입니다.”
“그렇겠지. 그러니 사람을 한 번에 다섯이나 죽이고도 이리 멀쩡한 것 아니겠소?”
고수인 것이 무어라고?
오히려 그만한 살인 행위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죄의 증거나 마찬가지인…….
“그가 만약 사소한 시비로 왈패를 죽이는 자라면 그는 이곳에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우재형의 물음에 고개를 돌린 유예린은 설천위의 양옆에 서 있는 포쾌들을 바라봤다.
“포쾌 둘이 시신으로 발견되고 끝이었을 겁니다.”
“지금 증인을 죽여 살인멸구를 했을 거라는 것이오?”
분노가 서린 우재형의 물음에 유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만약 설 공자가 진짜 범인이라면 그리했을 거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리 묶여서.”
아무런 의미도 없는 포박을 가리키며 유예린은 우재형을 바라봤다.
“우리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는 저런 포박을 받아들인 그의 심중을 헤아려 주십시오.”
“……후, 그대의 연인이 이리 말하니 내 묻겠다.”
유예린에게서 고개를 돌린 우재형은 설천위를 바라봤다.
대체 재판에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정면이 아닌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설천위.
그 모습에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지만, 거기까지.
지금 중요한 건 자신의 감정이 아니다.
“그대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증거가 있느…….”
“찾았다.”
우재형의 말을 끊으며, 설천위가 웃었다.
그 모욕적인 행동에 우재형이 막 화를 내려는 그 순간.
[크르르르르르.]
짐승의 울음소리가 그 몸을 정지시킨다.
심령이 묶인 것 같은 아찔함.
그리고 양팔이 묶인 상태임에도 자연스럽게 일어난 설천위가 천천히 걷는다.
그를 향해 창을 내밀던 포쾌들이 멍청하게 서서 그를 놓치고…….
“아, 찾는 데 고생 좀 했네.”
우재형의 근처를 지키던 포쾌 하나에게 다가간 설천위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아까 날 잡으러 왔던 포쾌지?”
히죽 웃으며 그를 마주한 설천위는 떨리는 동공을 숨기지 못하는 포쾌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어느새 강제로 뜯겨 나간 포승줄이 땅에 떨어지고, 포쾌의 어깨를 잡은 설천위는 그를 보며 물었다.
“난 또 모든 포쾌가 혼자 다니는 줄 알았지.”
포쾌는 기본 2인 1조로 움직인다.
그 사실을 몰랐던 설천위는 긴가민가한 상태로 붙잡혔고.
포쾌라는 것을 안 순간, 순순히 붙잡힐 생각이긴 했지만.
순간, 설천위의 손이 사라지고.
그 깔끔한 공격에 서하영이 놀라 움직이려 했지만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쾅!!
거대한 굉음과 함께 설천위의 손을 튕겨 낸 포쾌가 흐트러진 자세를 다잡는다.
“이야, 요즘 포쾌는 좀 하나 봐? 절정 고수쯤은 되어 보이는데?”
히죽 웃으며 설천위가 물었다.
“네가 먹은 약, 어디서 준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