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6화
165화-정의 (5)
“그래서, 이유가 뭔가?”
“이유?”
“평소보다 더 까칠하게 대한 이유 말일세.”
훈련장으로 걸어가는 길, 철백의 질문에 설천위가 피식 웃었다.
“학생회에서 부탁받은 게 있거든.”
“부탁?”
“어. 최근에 기이하게 강해진 학생들이 있는데, 아무래도 의심스러우니 조사해 달래.”
“과연 후보로 삼을 만하긴 하군.”
단번에 설천위의 속내를 파악한 철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내공에 비해 조잡한 실력이긴 했다.”
“내공도 없는 녀석이 뭐래.”
“뭐, 옆에서 보면 뭐든 더 잘 보이는 법이지.”
능청스럽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이는 철백.
고개를 저은 설천위는 잠시 걷다가 다시 철백을 돌아봤다.
“그러고 보니, 당 소저는 요즘 뭐 하는지 알아?”
“음, 나도 잘 모른다. 안 그래도 나도 궁금해서 천이 녀석한테 물어본 적이 있는데…….”
“있는데?”
“너무 신경 쓰지 말라더군. 원래 상식이란 것으론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그 정돈가?”
그래도 같이 놀 때 보면 꽤나 정상적으로 보였는데?
그나저나 진짜 궁금하네.
요즘 얼굴을 통 볼 수 없던데.
남궁선 누님이랑 수련할 때도 거의 안 나오고.
“바빠서 그런 것 아니겠나? 다시 여유가 생기면 놀러 오겠지.”
“그렇지? 유 매한테 말해서 동호회 회실 생긴 거나 말해 줘야겠네.”
너무 신경 쓰지 말아야지.
그럼.
“미끼는 뿌려 놨으니 이제 느긋하게 기다리기나 할까?”
* * *
“음…….”
학생회실에서 보고를 전부 들은 혜송은 고민에 빠졌다.
“확실히 의심스럽군요.”
“아무래도 그들끼리 뭔가 연결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부회장 제갈소의 의견에 혜송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미타불,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제갈 시주.”
현재 계급보다 특출 나게 뛰어난 실력.
그런 이들이 한곳에 모인 것이 결코 우연일 리가 없다.
누군가가 의도를 가지고 모은 것일 터.
“따로 감시를 붙이겠습니다.”
“예. 또한, 설 소협에게도 미리 경고를 해 주어야 합니다.”
“설천위에게요?”
“아미타불, 이번 쟁탈전에서 그를 향한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고 하니 무슨 해코지를 할지도 모릅니다.”
혜송의 의견에 고민하는 듯 잠시 침묵하던 제갈소는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를 미끼로 쓰자는 겁니까?”
살짝 분노가 담긴 목소리에 제갈소는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결과적으론 그리되겠지만,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상당히 총명한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총명하다고 해서 기습에 강하진 않습니다.”
“예, 하지만 예측할 수 있다면 더 이상 기습이 아니죠.”
이번 쟁탈전에 있었다고 하는 소란.
“그냥 추가적인 도전자를 없애기 위해서 위협했던 건 아닐 겁니다.”
분명 무슨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일단 조금 지켜보시는 건 어떨까요?”
* * *
“오, 상당히 좋은데요?”
“2층에선 가장 큰 방이니까.”
옛날엔 무슨 실험실로 쓰였다는 것 같고.
청소는 뭐 깔끔하게 했네.
전에 우리가 한 거에서 한 번 더 한 것 같은데?
서하영의 감탄에 맞장구를 쳐 주며 가져온 가구를 대충 놓은 설천위는 방 이곳저곳을 살폈다.
쟁탈전이 끝나고 바로 다음 날 대충 가져올 것들을 가져다둘 겸해서 왔는데, 생각보다 더 괜찮네.
“이 정도면 한 다섯 사람은 더 들어와도 되겠는데?”
“학관 졸업 전에 다섯 사람이 더 찰까요? 이런 수상한 동호회에?”
“에헤이, 수상하다니.”
혼령연구회.
얼마나 좋아.
오컬트는 학교생활의 로망이잖아.
학관 생활이라고 뭐 다르나?
“귀신 좋잖아?”
“좋긴 하죠. 여러모로 배울 수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못 봐서 문제지.”
설천위의 도움 덕에 최근 그의 주변 사람들은 전부 어설프게나마 영안을 개안한 상태다.
동호회 인원으로 등록한 사람은 전부 볼 수 있다.
“그럼 공자, 슬슬 알려 주실래요?”
“응? 뭐가?”
한 곳에서 조용히 가구를 정리하던 유예린의 목소리에 설천위가 고개를 갸웃했다.
뜬금없이 뭘 알려 줘?
“어제부터 몇 분이 안 보이시거든요.”
[껄껄, 아주 손바닥 안에 있구나.]
이래서 눈치 빠른 꼬맹이는…….
유예린의 지적에 어깨를 으쓱인 설천위는 가져온 의자에 앉았다.
“뭐, 마침 잘됐어. 너희의 협력도 필요하니까.”
설천위가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꺼내려는 모양새를 취하자, 흩어져 있던 이들이 한곳에 모였다.
“아무래도 제대로 깽판을 치려는 것 같거든.”
그놈들이.
* * *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설천위 녀석은 어찌하고 있지?”
“오늘도 학관 근처를 순찰 중이라고 합니다.”
“흥, 멍청한 놈.”
역시 능력 따윈 없는 녀석이다.
그저 운 좋게 얻은 것으로 잘난 척 활개나 치는 놈.
‘대체 어떻게 그런 힘을 얻은 것인진 모르겠으나,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를 것이다.’
말도 안 된다.
계(癸)였던 녀석이 그렇게 갑자기 강해진 것이.
분명 모종의 사술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을 터.
이를 악문 천병식은 보고를 끝낸 부하를 보며 말했다.
“명심해라. 우리가 진정한 정의를 세우는 것이다.”
“예!”
추악한 녀석들을 잡기 위해 기꺼이 오물에 발을 담그리라.
자신도 모르게 품에서 꺼낸 약을 잠시 바라본 천병식은 망설임 없이 그 약을 삼켰다.
힘이 끓어오르고, 기세가 거칠어진다.
그 힘을 갈무리하기 위해 두 눈을 감고 운기에 들어가는 천병식.
그의 주위를 감싼 동호회의 회원들은 모두 이 회의 주축이 되는 이들이다.
그리고 그 주축에서 벗어난 이들.
벽에 붙은 자리에 앉아 있던 이들 중 하나인 배천은 두 손을 꽉 쥔 채 고개를 숙였다.
‘나는 뭘 하고 있지?’
* * *
“흠.”
여느 때처럼 순찰을 돌던 설천위는 확연히 줄어든 취객의 상황에 턱을 쓸었다.
슬슬 시험 기간이기도 하니 줄어들 법도 하긴 한데…….
생각보다 더 많이 줄었네.
그나저나 슬슬 기말도 머지않아 끝날 테고.
내년에는 친선전.
그러고 나면…….
‘별거 없지?’
그럼 슬슬 졸업 준비를 해야 하나?
뭐, 졸업이라고 해도 별거 없긴 하지만.
정(丁)급이면 무림맹에 들어가도 상당히 괜찮은 위치에서 시작할 수 있다.
운 좋으면 대주급으로, 하다못해 최소 부대주급으로 시작할 수 있는 계급.
가서 졸병 짓은 안 해도 된단 소리다.
그 정도만 돼도 충분하긴 하지.
거기에다.
“무골(武骨)이 참 쓸 만해.”
수업 중에 배우는 무공이 꽤나 할 만해졌다.
뭐, 그래 봤자 예전보다 할 만하다는 수준이고 남들이 일주일 걸리던 걸 2주가 걸려서 익혔는데, 이제는 그 기간이 한 사흘 정도로 줄어든 느낌?
고작 사흘이라고 하겠지만, 이게 생각보다 큰 성장이다.
효율로 따지면 거의 2할이 증가한 느낌인데.
그 정도면 대단하지.
음음.
나름 만족스럽단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던 설천위는 어느새 다 사라진 면에 젓가락을 내려놨다.
하도 학관 밖에서만 식사를 하다 보니 슬슬 돈이 떨어져 가네.
굵직한 의뢰도 몇 개 깨서 여러모로 많이 벌었는데.
뭐, 공동 훈련 기구를 구입하는 데 돈을 좀 많이 쓰긴 했지.
철백 녀석은 무게가 너무 중요해서 크고 두꺼워질 수밖에 없으니까.
돈이 빠르게 줄어들 수밖에 없긴 하다.
“슬슬 의뢰를 하나 더 하는 것도 괜찮은데.”
[의뢰를 말이냐? 수련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
“그게 또 실전만큼 큰 성장도 없다고 하잖아요?”
[으음…….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네 녀석은 워낙 특이하니 부정하기도 힘들구나.]
설천위의 기이한 성장을 옆에서 지켜봐 온 천마다.
솔직히 부정할 수가 없다.
실전에서 설천위는 가끔 기이하리만치 뛰어난 성장을 보여 주니까.
“그나저나 아직도 입질 없어요?”
[그런 것 같구나. 아직도 얌전한 것을 보면.]
그러면 안 되는데?
슬슬 정리해야 하는데?
녀석들이 노리는 목표야 뻔하니 시작하는 순간만 알아내면 되는데…….
영 미진한 진행 상황에 설천위가 아쉬워하던 그때.
“살려……!”
짧은 목소리.
다급함이 담긴 그 목소리에 설천위는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방향!”
[남동쪽이다! 이대로 가면 된다!]
자신의 청각을 온전히 믿지 않기에 천마에게 한 번 더 확인한 설천위는 한층 더 속도를 높였다.
그야말로 신속.
점점 더 경지가 올라가는 [섬뢰풍영보(閃雷風影步)]의 성취가 보일 정도로 신속하고 은밀한 움직임.
단숨에 목소리가 들려온 곳까지 도달한 설천위는 일단 멈춰 서서 상황을 살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내.
그 주위를 감싼 이들.
일방적인 구타의 흔적이 역력한 사내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 설천위를 바라봤다.
“도, 도와……!”
“이놈이!”
“컥!”
손을 뻗는 사내를 단숨에 걷어찬 남자는 이내 삐딱하게 고개를 돌려 설천위를 바라봤다.
“이쪽은 이쪽의 용건이 있으니 우리 그냥 사이좋게 헤어집시다?”
껄렁한 태도.
순식간에 이곳에 도달한 설천위의 움직임을 보지 못한 것인지, 남자는 당당한 얼굴로 설천위를 향해 지껄였다.
“뭘 자꾸 그리 빤히 바라보고 있어? 빨리 꺼지라니까?”
“흠.”
그야말로 전형적인 왈패의 모습에 오히려 침착해진 설천위는 턱을 쓸며 그를 바라봤다.
“수금 중?”
“엉? 뭐라고?”
“수금 중이냐고.”
“아, 그래 수금 중이다. 그러니 꺼지라고!”
짜증이 잔뜩 담겨 있는 목소리.
그리고 짜증은 금세 화로 바뀐다.
“아니, 보자 보자 하니까 이 새끼가…….”
화를 내려는 순간.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무언가를 발견한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검과 도.
무림인이다.
거기에다 저 여유로운 태도에 딱 봐도 어려 보이는 외모.
무림학관의 학생이란 소리다.
잠시 입을 다문 남자는 짧은 고민 끝에 다시 입을 열었다.
“거, 당신 같은 사람이랑 상관없는 일이니 어서 가쇼.”
깔끔하게 사라진 분노.
몸을 돌리며 대충 손을 휘젓고는 재빨리 동료들을 향해 눈짓하는 남자.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설천위는 삐딱하게 고개를 꺾었다.
“이상한데?”
참 이상하다.
그렇지?
[왕!]
“응? 무슨 일이야?”
평소 얌전히 영체 상태로 있던 청랑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나와 짖는 모습에 설천위는 삐딱해졌던 고개를 바로 세웠다.
아!
“재미있는 짓을 하네?”
입꼬리를 비트는 설천위.
그리고.
“뭐, 뭐! 싸우자는 거냐!”
잔뜩 쫄아 단도를 꺼내는 남자.
기괴한 분위기로 혼잣말을 하는 설천위의 모습에 겁먹은 것이다.
그의 동료들도 별반 다르지 않은지, 한껏 위축된 상태로 긴장하는 그 순간.
“그만하고 일어나지?”
설천위의 시선은 왈패들이 아닌, 맞고 있던 이를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살살 맞으면, 누가 몰라?”
이곳저곳 까지고 터지긴 했으나, 정말 중요한 곳은 멀쩡하다.
맞는 순간, 살짝씩 움직여 사혈과 급소를 보호했다는 증거.
“그렇게 몸 사리면서 연기하면 동네 꼬맹이도 못 속여.”
모든 것을 눈치챈 설천위의 반응에 왈패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사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과연 날카롭구나. 하지만…….”
싸늘하게 웃는 사내.
“이미 늦었다.”
* * *
“언니! 큰일 났어요!”
동호회실을 정리하던 유예린.
그녀는 다급하게 들어오는 서하영의 모습에 만지던 꽃병에서 손을 뗐다.
거기에다.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부하의 전음까지.
“무슨 일인지 구체적으로 듣고 싶네요.”
부하에게 시선을 보내지 않고, 서하영을 바라본 유예린은 침착한 어조로 물었다.
서하영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부하가 사죄할 정도라면 정말 보고가 필요한 사건이 벌어졌다는 뜻.
지금 필요한 건 냉정…….
“설 소협이 잡혔어요!”
“……예?”
“살인죄로 설 소협이 관아에 잡혀 갔다고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현행범으로 잡혀서 지금 바로 재판 받는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