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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165화 (165/624)

제165화

164화-정의 (4)

“먼저 2층의 가장 구석에 있는 방부터 시작하겠소.”

학생회 일원의 안내에 몇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위, 찾았다니?”

“아, 별거 아니야. 나중에 얘기해 줄게.”

철백의 질문에 고개를 저은 설천위는 일단 배천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지금 당장 들이받을 것도 아니니 너무 조급하게 접근할 필요는 없었다.

일단 좀 살펴보고, 정보도 좀 더 모은 다음에 움직여야지.

“그런데, 방이 몇 개나 남았대?”

“음, 1층은 공용 시설을 위한 곳으로 남겨 둔다고 했으니 2층과 3층에 총 일곱 개가 있다더군.”

생각보다 꽤 많네?

하긴, 옛날에 청소할 때도 느낀 거지만 거긴 솔직히 동호회실로 쓰기엔 방 하나하나의 크기가 크다.

그래도 구교사라고, 옛날에 수업을 진행하던 곳이다 보니 꽤나 크기가 넉넉했지.

그걸 아예 통 크게 동호회실로 준 학관장이 대단하다면 대단하지.

“그럼 일단 가장 큰 방에 신청할까?”

“그럴 필요가 있나? 솔직히 우리는 적당한 크기만 있으면 될 것 같은데.”

“그것도 그러네.”

진짜 필요한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우리야 뭐, 인원이 음…….

“나, 너, 서 소저, 소 소저, 주현운, 유 매까지 있으니까 기본 여섯.”

“거기에 남궁 녀석이나 연 소저도 심심치 않게 놀러 오니까 중간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나?”

“음.”

그 정도는 돼야지.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얌전히 순서를 기다렸다.

첫 시작인 가장 구석진 방에 도전한 동호회는 셋.

가져간 것은 신(新)검술연구회다.

기뻐하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한두 개 방이 지나고.

“천위, 저건 어떤가?”

“음?”

“2층에 있는 방 중에서 가장 큰 방이다.”

처음 시작으로 나온 방과 정반대에 위치한 방.

이쪽은 실험실로 쓰였는지 방의 크기가 상당하다.

“좋네. 저걸로 하자.”

“출전은?”

“내가 나갈게.”

철백을 두고 자리에서 일어선 설천위는 담담하게 연무장 위로 올라갔다.

일제히 미간을 찡그리는 사람들.

무려 정(丁)급에 도달한 설천위다.

병(丙)급처럼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는 숫자는 아니지만, 정(丁)도 이 무림학관에선 최상위 중 최상위.

이런 신생 동호회에 정(丁)급이 속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모두가 포기에 가까운 감정으로 미간을 찡그리는 그 순간.

“우리가 도전하겠소.”

누군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오.’

그 모습에 흥미롭게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

과연 누가 도전한 걸까?

설천위와 마찬가지로 연무장 위에 있던 학생회 임원은 자리에서 일어난 이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했소. 올라오시오.”

학생회 임원의 승인과 함께 깔끔한 도약을 선보이는 도전자.

단숨에 연무장 위로 올라선 사내는 당당한 기세를 풍기며 자리에 섰다.

“소정회(素正會)의 구혹이오.”

“혼령연구회의 설천위오.”

간단한 포권과 자기소개.

하지만 간단한 소개와 달리 대기하던 이들에게서 웅성거림이 생겨났다.

“……구혹? 들어 본 적 없는데?”

“나도. 무(戊)나 기(己)에서 저 이름 들은 사람 있나?”

“나도 없는데?”

상대가 설천위인데, 난생처음 보는 녀석이 도전하다니.

모두의 표정은 금세 차갑게 식기 시작했다.

중급(中級)의 반열에도 못 오른 녀석이 감히 정(丁)에 오른 설천위의 상대가 될 리가 있나.

모두가 급격하게 흥미를 잃던 그 순간.

“규칙은 친선전 규칙으로 진행되니 살수에 유의하시오.”

간단한 설명과 함께 학생회 임원이 한 걸음 물러섰다.

한쪽 팔을 든 채 양쪽의 상태를 확인한 임원.

“그럼 시작!”

이내 고개를 끄덕인 학생회 임원의 손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땅을 박차는 구혹.

“빠른데?!”

단숨에 거리를 좁히는 그 도약에 관객들이 놀라 외쳤지만, 구혹은 담담했다.

망설임 없이 검을 뽑아 휘두른다.

사혈이나 급소를 노린 공격은 아니지만, 충분히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을 정도의 검격.

캉!

하지만 가볍게 튕겨 나간다.

도(刀)를 뽑은 설천위가 그 검을 튕겨 낸 것이다.

놀라는 관객만큼이나 꽤나 흥미가 깃든 눈으로 구혹을 바라보는 설천위.

그리고…….

[익숙한 광경이구나.]

[난 너무 친숙해서 내가 잊고 있던 기억을 보는 줄 알았소.]

[어찌 이리 비슷할 수가?]

혼들은 진심을 담아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어찌 저리 너와 같을 수 있느냐?]

[기술이 어리숙하기 그지없는 것이 똑같구나!]

[아니, 내공이라도 많으니 그나마 나은 건가?]

‘……이 인간들이?’

흥미가 담긴 눈으로 구혹을 바라보다가 혼들의 놀림에 눈을 치켜뜬 설천위는 이내 다시 도를 움직였다.

혼들을 향해 한마디 쏘아붙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눈앞에서 검을 휘두르는 상대가 있으니 그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도를 움직여 이어지는 구혹의 검을 쳐 내는 설천위.

그 동작이 참으로 깔끔해 곳곳에서 감탄하는 소리가 튀어나왔지만…….

“여전히 딱딱하군.”

혼들만큼이나 정확한 눈을 가진 철백만이 냉정한 평가를 내리며 설천위를 바라봤다.

기술이 참으로 많이 늘긴 했지만, 아직 딱딱한 것이 눈에 보인다.

정확하게 기술을 구사하고 있지만, 조금씩 임기응변이 부족한 것이 보인다.

솔직히 말해서, 저렇게까지 임기응변이 부족한데 저리 깔끔하게 막아 내는 게 되레 신기하게 여겨질 정도다.

무한에 가까운 검의 궤적을 전부 연습했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니까.

‘참 괴물 같은 양반들이야.’

호된 연습으로 검술을 몸에 익히게 한 이들이 누구인지 아는 철백의 감탄이 천마를 비롯한 혼들에게로 향하는 사이, 대련의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음, 역시 봐주고 있었나?”

완전히 주도권을 쥐기 시작하는 설천위.

어느새 공격에서 수비로 바뀐 구혹의 검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이들이 실망감을 드러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인가.

혀를 차는 이들.

실망으로 바뀐 기대감은 이내 불쾌감으로 변해 그들의 시선은 강한 적의를 띠었다.

하긴, 우리도 감히 도전할 엄두를 못 내는 설천위에게 듣도 보도 못한 녀석이 도전해서 이길 리 만무하지.

계급이라는 체제 아래 깊이 뿌리내린 인식.

그것을 뒤집어엎을 만한 존재는 정말 특이한 괴물밖에 없다.

이 자리에 있는 설천위나 철백이 그러하듯.

그러나 진흙 속에 묻혀 있는 진주가 그리 많을 리 없지.

혀를 차며 고개를 젓는 이들.

그들의 시선에 구혹의 어깨가 딱딱하게 굳어졌다.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설천위의 공격을 방어하기에도 바쁜 상황에서 어떻게 눈치채냐고?

‘이, 빌어먹을 놈이……!’

바쁘지 않으니까.

알 수밖에 없다.

누가 봐도 의도적으로 속도를 늦춘 설천위의 공격은 막을 만했으니까.

밖에서 보는 녀석들의 태반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직접 상대하고 있는 구혹은 확신할 수 있었다.

설천위는 지금 자신을 봐주고 있다.

전력을 내지 않고 있다.

자신을.

‘우롱하는 것이냐……!’

강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무시당하며 살아왔던 세월이 머릿속에서 되살아난다.

그 생각은 마찰을 일으켜 불씨를 피워 낸다.

억지로 잠재웠던 힘이 깨어나고.

근육이 요동친다.

“이, 개, 자식……!”

분노로 붉게 물든 눈동자와 함께 검을 쥐는 방식이 변하는 순간.

“놈!”

연무장 아래에서 솟구친 봉이 구혹의 오금을 때렸다.

일순 굽혀지는 무릎.

균형이 깨진 것과 동시에 단숨에 연무장 위로 뛰어오른 이가 구혹을 붙잡아 눌렀다.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오!”

그 모습에 화를 내는 학생회 임원.

허나 단숨에 구혹을 제압한 이는, 차분하게 수혈을 짚어 구혹을 재운 뒤에야 일어나 포권을 취했다.

“미안하오. 우리 회원이 살수를 쓰는 것이 보여 나도 모르게 나섰소.”

정갈한 하늘색 의복.

깔끔하게 정리한 머리.

당당하게 편 허리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강건한 기도.

“음?”

“……누구지?”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

뒤에서 한 갑작스런 공격이었다곤 하지만, 전투 중에 있던 무인을 너무나도 깔끔하게 제압했다.

아마 정면으로 구혹을 제압했다고 해도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터.

구혹이 보여 준 예상외의 뛰어난 실력에 지켜보던 이들의 표정이 경계심으로 가득 차는 사이.

“그렇다고 해도 그것은 내가 판단할 일이지 당신이 판단해 임의로 손을 쓰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무례요!”

잔뜩 화가 난 학생회 임원의 고함에 사내는 다시금 고개를 숙여 사죄했다.

“급한 마음에 무례를 범했소. 그 대가로 나 천병식은 이번 쟁탈전에 나서지 않겠다고 약속하오.”

“당신 하나의 불참으로 용서될 사안이 아니오! 이는 그대들의 쟁탈전 참가 자격 자체가 박탈되어야 마땅한 일이오!”

두 눈을 부릅뜬 학생회 임원이 계속해서 천병식을 몰아붙이자.

“아아, 그만. 이 정도면 됐어요. 뭘 참가 자격의 박탈까지.”

설천위의 목소리가 그를 말렸다.

“하지만…….”

“에이, 뭐 방해도 아니고 위험해 보여서 나선 거라는데 더 몰아붙일 필요가 있나요?”

웃으며 심판의 어깨를 두드린 설천위는 슬쩍 그를 밀어내고 천병식의 앞에 섰다.

“그런데,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무엇이오, 소협?”

천병식의 물음에 히죽 웃는 설천위.

그리고.

“구우웨에에엑!”

“커헉!”

“이, 이 무슨……!”

대기가 뒤틀린다.

버텨 내지 못한 학생들이 속에 있던 것을 게워 내고, 그나마 한가락 하는 이들은 다급하게 내공을 끌어올려 버틴다.

그러나 움직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위험할 거라고 생각해 말린 건 내가 못 막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대련 혹은 비무에서 외부의 개입이 무례로 여겨지는 이유.

그것은 당사자를 향한 무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네가 약해서 못 막을 테니 내가 대신 막아 준다.

무인에게 이만한 모욕이 또 있을까?

그렇기에 학생회 임원이 그리도 불같이 화를 냈던 것이다.

물론.

“그…… 럴 의도는, 없었, 소.”

이를 악물고 버티던 천병식은 그것을 부정했다.

그렇지 않다.

그냥 이 친구의 살수는 너무 악랄해 이런 친선 비무에서 쓰는 것 자체가 큰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해 막은 것이다.

그러니, 화를 풀어라.

‘……빌어먹을!’

뒷말이 나오질 않는다.

혼을 쥐어짜는 것 같은, 압도적인 기세에 억눌려 도저히 이 이상 입이 열리질 않았다.

설천위의 질문을 어떻게든 부정이라도 한 것이 최선.

‘괴물 놈!’

이건 말이 안 된다.

대체 어떻게 인간이 이런 성장을…….

‘역시……!’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현실에 천병식의 눈동자가 한층 더 깊게 가라앉는 순간.

“뭐, 그럼 어쩔 수 없지.”

연무장 전체를 잠식했던 기세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근육이 떨리도록 무시무시했던 기세도.

혼이 비틀릴 것만 같았던 압박감도.

온몸의 수분이 말라 가는 것 같던 살기도.

전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완벽한 제어.

“또, 도전할 사람?”

차마 입을 떼지 못하는 학생회 임원을 대신해 묻는 설천위의 질문에 대기하던 이들 전부가 시선을 돌렸다.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뭐, 없는 것 같은데 그럼 이 방은 우리가 가져가도 되나?”

“그, 그리하시오.”

“오, 감사.”

심판의 인정에 웃으며 옷을 툭툭 터는 설천위.

별로 먼지도 묻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그 행동에 묘하게 기분이 나빠졌지만, 모두가 그런 불쾌감을 속으로만 삼켰다.

“그럼, 다음에 또 보자고. 한동안 근처에서 지낼 이웃이 될 것 같으니까.”

“……잘, 부탁하오.”

“오우, 나도 잘 부탁해.”

천병식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연무장에서 내려오는 설천위.

그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 이들을 지나 철백의 곁에 도달한 설천위는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가자.”

“벌써?”

“어, 더 이상 볼 것도 없는 것 같고.”

해야 할 일도 있으니까.

싸늘하게 웃으며 철백을 데리고 나가는 설천위.

그가 완전히 사라지자 다리에 힘이 풀린 이들은 주저앉았지만 연무장 위에 선 천병식은 이를 악물고 그가 사라진 문을 노려봤다.

‘네놈 같은 악을 뿌리 뽑기 위해 우리가 태어난 것이다……!’

그 눈 깊은 곳에선 살의가 화마가 되어 천천히 그 몸을 부풀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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