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4화
163화-정의 (3)
“그래서, 원인을 찾아 달라?”
“아미타불. 예, 그렇습니다.”
“흠.”
학생회실.
혜송에게 불려가 그곳을 찾은 설천위는 예상외의 부탁에 턱을 쓸었다.
“진짜 갑자기 내공이 늘어난 녀석들이 다수 나타났다는 겁니까?”
“예. 확실합니다. 아직까지 등급이 상승한 학생은 없지만, 조만간에 등급이 올라가는 학생도 나올 것입니다.”
갑작스러운 학생들의 내공 상승.
실력주의인 이 무림학관에서 바닥을 기던 이들의 급작스러운 성장.
‘……이렇게 빨리 올 게 아닌데?’
대체 왜 벌써?
혜송에게 들은 뜻밖의 정보에 설천위의 미간이 깊게 파였다.
학생들의 갑작스러운 성장.
누가 벌인 짓인지는 알고 있다.
문제는 그 녀석들이 계획을 벌이는 건 최소 2년 정도 후다.
주현운을 비롯한 주인공 캐릭터들의 급격한 성장.
그로 인해 찾아오는 상대적 박탈감.
그것이 원인이 되어 학생들의 마음속에 피어난 불만의 씨앗을 개화시키는 계획이다.
즉, 계획이 자신이 알던 것과 완전히 다르게 시작됐다는 소리다.
“씁.”
이건 좋지 않다.
계획이 자신이 알던 대로 시작된 게 아니라면, 그 녀석들이 쓰는 은신처나 기타 등등 먼저 선수를 칠 수 있는 정보들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소리 아닌가.
“설 소협,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아, 뭐 그러죠.”
일단 받아들이자.
혜송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나가 보려고 했는데,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아미타불, 잘 부탁드립니다.”
마주 일어서서 정갈하게 합장하는 혜송.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설천위는 질문을 툭 던졌다.
“화(禍)는 어찌하셨습니까?”
“…….”
대답이 나오질 않는다.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학생회실을 나갔다.
그리고.
‘……뭐라고?’
홀로 남은 혜송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 * *
[그러면, 수상한 놈들을 찾아야 하는 것이냐?]
“뭐, 그렇죠. 그런데 아마 쉽지 않을 거예요.”
[왜냐? 그리 어려울 것 같진 않은데.]
[맞다. 우리가 움직이면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결국 찾지 않겠느냐?]
암영의적과 소백진의 말에 설천위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렇게 간단하질 않아서요.”
이번에 숨은 놈들은 꽤나 한가락 하는 놈들이다.
나름 전통? 그런 것도 있고.
한마디로 숨는 데 도가 튼 놈들이라고 해야 하나.
“아마 진짜 제대로 숨었을 거예요.”
기척을 느껴 찾는 것도 쉽지 않을 거다.
기세도 꽁꽁 숨겨서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테니까.
그러니 일단…….
“정통적인 방법으로 가죠.”
자고로 모르는 것을 알고 싶을 때는 먼저 알고 있을 법한 사람에게 묻는 것이 기본이지.
* * *
“흐하하하하!”
호쾌한 웃음.
기쁨이 진하게 담겨 있는 웃음소리에 몇몇은 미간을 찡그렸지만, 거기까지였다.
무림학관의 학생으로 보이는 녀석에게 괜히 시비를 걸 필요는 없으니까.
제지를 할 만한 무력을 지닌 무인은 무림학관의 이름이 귀찮아 손을 대지 않았고.
다른 학생에게 적극적으로 불만을 표현할 만한 실력이 있는 학생은 이 시간에 수련을 하거나 수업을 듣고 있다.
그래서 이리도 방정맞게 주변의 불편 따윈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웃는 거겠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
“거, 좀 시끄럽네?”
“……어떤 놈이야?”
술기운에 취해 호쾌하게 웃던 남학생이 고개를 비틀었다.
감히 어떤 놈이 내가 기분이 좋아 웃는데 불만을 표해?
제대로 한번 터트려 주마.
마침 몸이 근질근질했는데, 잘됐어.
망설임 없이 주먹을 휘두를 생각에 상대를 쳐다본 남학생은 고개를 갸웃했다.
“음? 어디서 본 얼굴인데?”
왜 시비를 건 놈의 얼굴이 어디서 본 것 같지?
살짝 고개를 갸웃하던 남학생의 미간이 깊어지고.
“뭐, 봤을 수도 있지?”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상대가 웃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지금부턴 아예 못 잊게 될걸?”
설천위가 포근한 미소와 함께 손을 뻗었다.
* * *
“자, 하나에 부모님, 둘에 죄송합니다. 하나.”
“부모님!”
“둘.”
“죄송합니다!”
“어쭈? 대가리 제대로 안 박아?”
사내가 호쾌하게 웃던 객잔의 바깥.
의자 하나를 빌려 입구 근처에 자리를 잡은 설천위는 흙바닥에 머리를 박은 남학생을 바라봤다.
두들겨 맞아 여러모로 좋지 못한 상태가 된 얼굴.
도망치려고 한 죗값은 가볍게 치러 줬다.
“대체 뭘 믿고 그리 자신만만하게 소음 공해를 유발한 거냐?”
고작해야 이류 정도밖에 안 되더구먼.
“그게…….”
“하긴, 뭐 갑자기 내공을 얻으면 막 휘두르고 싶어질 만도 하지.”
뻔하다.
강해졌으니 시험해 보고 싶은 거지.
주변에 신경 쓰지 않고 마음대로 해 보고 싶었을 테고.
그러다 누가 시비라도 걸어서 싸움이 붙으면 주먹도 좀 휘두르고.
시비 거는 놈을 두들겨 패서 때려눕힌 후 마시는 술맛을 상상하며 좋아했을 테고.
뻔하다.
어린 것들이 하는 생각이야 다 거기서 거기니까.
[어리구나.]
[뭐, 어릴 때는 다들 이런 거 아니겠느냐?]
[하지만, 흥미롭구나.]
다른 혼들이 그저 어린 녀석의 치기에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일 때, 유일하게 신의만이 다른 반응을 보였다.
[아주 특이해. 원기가 손상됐는데, 교묘하게 가려져 있구나.]
“오?”
이게 신의(神醫)인가?
바로 알아챈다고?
나야 두들겨 패는 과정에서 촉진으로 감을 잡긴 했다.
하지만 나는 약에 대해 원래 알고 있었으니까 알 수 있었던 거고.
[음? 진짜구나?]
[어? 그렇습니까?]
신의의 말에 천마도 이내 놀라 고개를 끄덕였고, 그걸 읽어 낼 실력이 안 되는 암영의적만이 고개를 갸웃했다.
“내공 상승의 비결이죠.”
고통 없이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물론, 효율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여하튼, 그 효율의 차이가 바닥을 기던 녀석들이 갑작스레 힘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야 하나뿐이다.
[수명을 갉아먹고 있구나.]
“뭐, 좀 더 지켜보면 다른 부작용도 나타날 거예요.”
[쯧쯧, 어리석은지고.]
소백진의 혀 차는 소리에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알고 있으면 어리석은 거지만, 그놈들이 알기나 할까요?”
절박한 상황에 몰린 녀석들은 생각보다 더 어리석다.
뒤따를 대가 따윈 전혀 고민하지도 않지.
무엇보다.
“아마 본인도 모르고 있을 걸요?”
천마도 바로 알아채지 못했을 정도의 감쪽같은 위장이다.
제 몸이라곤 해도 제대로 된 기감도 갖추지 못한 녀석들이다.
눈치챌 수 있을 리가 없지.
“학관의 의원들도 눈치 못 챘는데 알 수 있을 리가 없죠.”
그래서 나한테까지 의뢰가 온 거고.
[확실히 아직 수련 중인 것이나 마찬가지인 녀석들은 알아채기 힘들 정도의 위장이구나.]
“거봐요.”
[음.]
[그 정도인가?]
“예, 뭐 우리야 이렇게 위장이 되어 있다 수준으로 끝내지만…….”
아마 신의의 머릿속에선 그 구체적인 방법이 떠오르고 있겠지.
[아주 특수한 약물이다. 원기를 쥐어짜는 것은 물론 신체에도 작용해 그 원기를 받아들일 기틀까지 마련해 주는구나.]
“거기에다 약 기운이 남아 있는 동안엔 원기가 사라진 틈을 약기가 얼추 채워 줘 멀쩡해 보이고요.”
[그렇다. 생각보다 잘 알고 있구나.]
“뭐, 그렇죠.”
게임에서 이 약물이 나왔을 때 무슨 스테로이드냐고 말이 많았었지.
그냥 편하기만 한 설정이라고.
그래서 뒤에 붙은 이런저런 설명이 그냥 변명인 줄 알았는데.
[상당히 뛰어난 약사가 만든 것이다. 아마 의술로도 상당한 경지에 오른 녀석이다.]
“뭐 그렇겠죠.”
음지에 있는 약사나 의원들은 상당히 실력이 좋다.
양지의 인간보다 더.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을 상대로 수많은 실험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의술이란,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을 많이 죽이면 죽일수록 더욱 발전하는 학문이니까.
백 명이 희생하면 천 명이 살 수 있는 기술을 얻을 수 있는 게 의술이다.
당연히 양지의 의원들이 얻을 수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정보를 쌓을 수 있는 음지가 훨씬 유리하다.
설천위가 아는 것만 해도 한 분야의 정점에 올랐다고 해도 무방한 의원이 음지에 최소 셋이다.
게임에서 나오지 않은 이들까지 합하면 더 많겠지.
소백진이나 소윤혜 같은 경우처럼 게임에서 아예 등장하지 않는 존재도 있을 수 있으니까.
여하튼.
“중요한 건 은신처죠.”
혼들과의 대화를 마무리한 설천위는 아직도 고개를 박은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남학생을 바라봤다.
의자에서 일어서서 그 앞에 쪼그려 앉은 설천위가 남학생의 귓가로 고개를 붙였다.
“내가 누구랑 얘기하는지 궁금하지 않아?”
“아, 아닙니다!”
“에이, 궁금할 텐데? 이 미친놈이 왜 혼잣말이나 하고 있나 궁금할 텐데?”
히죽 웃으며, 묻는 목소리는 참으로 기묘했다.
아니, 남학생은 기묘하다고 느꼈다.
‘무, 무슨 오한이……!’
힘들다고 느꼈던 감각이 순간 무뎌질 정도로 등줄기가 싸늘하다.
마치 뱀 앞에 선 쥐라도 된 것 같은 기분.
공포가 몸을 잠식한다.
“우리, 서로의 궁금증을 좀 풀어 주자고?”
* * *
“천위, 뭘 그리 생각하나?”
“어? 아, 별거 아니야.”
연무장으로 가는 길.
철백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인 설천위는 고개를 저었다.
진짜로 별일 아니니까.
‘저, 저도 잘 모릅니다! 전 아직 한 번밖에 안 받아 봤어요!’
다급하게 외치던 녀석.
딱 봐도 건질 게 없다는 게 느껴졌다.
저쪽 놈들도 딱히 신경을 안 쓸 것 같은 허접함이 풍긴다고 해야 하나.
얘한테 추가적인 접근이 있을지 딱히 확신이 안 생길 정도로.
일단 아무 놈이나 붙잡아서 확인한 것이긴 하지만, 꽤 아쉬운 결과다.
뭐, 대충 어떤 약인지는 감을 잡았으니까.
잘 찾아보면 제대로 숨어서 약을 쓰고 있는 놈들도 찾을 수 있겠지.
“천위, 도착했다.”
멍하니 걷다 보니 어느새 도착했는지 철백이 불렀다.
상념에서 깨어난 설천위.
철백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서니, 꽤나 많은 수의 사람이 모여 있었다.
이쪽으로 일제히 시선이 쏠리는 순간.
“음, 오실 분들은 전부 오신 것 같으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다른 이들처럼 그들을 예의 주시하던 학생 하나가 내공을 담은 목소리로 모두의 이목을 모았다.
아마 학생회의 일원이겠지.
그나저나.
‘꽤 많네.’
그냥 대표를 따라온 녀석들도 있을 테니 이 인원이 전부 비무 대회에 출장하는 인원은 아닐 거다.
그래서 대충 뭉쳐 있는 무리 단위로 세어 봤지만 그래도 숫자가 꽤 된다.
열.
무림학관이 꽤나 큰 편이란 걸 감안해도 새롭게 동방을 원하는 녀석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건 의외였다.
“총 열한 곳에서 신청을 했으니 낙찰제로 가겠습니다.”
“……낙찰제?”
그게 무슨 소리야.
보통 토너먼트 즉, 승자전으로 가지 않나?
“승자전의 경우는 부전승으로 올라간 동호회에 불만을 가질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서 제외했습니다.”
설천위의 속내를 읽은 것처럼 대답하는 학생회의 일원.
그는 담담하게 거대한 판을 꺼내 한 곳을 가리켰다.
“먼저 제가 방을 정하면, 그곳에 들어가길 원하시는 분이 대표로 나오시면 됩니다.”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도전하고?”
“예. 그리고 도전자가 없을 때 그 방은 그 동호회가 가지게 됩니다. 또한, 동호회당 한 개의 방만 주어집니다.”
친선전 인원을 뽑을 때랑 같은 방식이네.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가 이어지는 학생회 학생의 설명을 대충 흘려듣는 그 순간.
“천위, 저 친구 배천 아닌가?”
“배천?”
……어디서 들어 본 이름인데?
“자네와 같은 방을 쓰던 친구 말일세.”
“……아.”
계(癸)에 있을 때 같이 살던 녀석?
참 성실한 녀석이었지.
수련은 물론이고, 공부도 성실하게 하던 녀석.
수업을 빼먹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이쪽은 이쪽 나름대로 바빠서 친해질 기회가 없었는데.
애는 착한 것 같긴 했지.
“……그런데 조금 이상하네?”
“음, 동호회에 들어간 것도 의외인데, 주변 녀석들의 기세가 기묘하군.”
“……오?”
그걸 느껴?
철백의 눈썰미에 감탄한 설천위는 다시 고개를 돌려 배천을 바라봤다.
뭔가 낮게 가라앉은 기세를 풍겨 대는 이들.
자신감이 그 몸짓에서 드러났지만, 눈에 새겨진 감정은 그것이 아니었다.
분노와 독기.
실력에 자신 있는 녀석들은 대체로 품지 않는 감정.
거기에다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흘러나오는 내공.
“벌써 찾았나 본데?”
숨어서 약 쓰고 있는 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