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162화 (162/624)

제162화

161화-정의 (1)

철그럭.

쇠가 서로 걸리며 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무언가가 상하로 움직인다.

압도적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는 육체.

꿈틀거리는 근육이 폭발하며, 보는 것만으로도 기가 질릴 것 같은 무게를 들어 올린다.

“흡!”

들어 올리고 약 2초.

정확한 자세를 유지한 채 버티던 몸이 다시 아래로 떨어지고, 그것을 반복한다.

“……살벌하네.”

너, 아직 18살이야.

살벌하다, 살벌해.

철백의 수련을 보고 있으니 기가 다 질린다.

[참 괜찮은 방식이구나.]

[철봉에 다듬은 쇠판을 끼워 넣는 방식은 언제 봐도 깔끔하고 좋구나.]

그게 다 인류가 쌓아 온 지식입니다.

바벨을 들고 중량 스쿼트를 하는 철백을 흡족하게 바라보던 설천위의 모습에 천마가 혀를 찼다.

[네 수련에나 집중하거라.]

“예입.”

아니, 뭐 좀 볼 수도 있지.

티끌만 한 불만과 함께 다시 고개를 돌린 설천위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솔직히 이번 흑룡학관의 출장 건으로 얻은 게 상당히 많다.

백유와의 인연은 물론, 예상치 못했던 곤괴와의 인연까지.

앞으로 무림에 나가 활동할 때, 큰 도움이 될 만한 인연들이다.

하지만 그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으니.

스킬들이다.

큰 성장을 이룬 스킬들은 물론, 새롭게 얻은 스킬들까지.

거기에 스탯도 상당히 올랐으니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그 와중에 어떻게 육체 관련 스탯은 하나가 안 오르냐.”

진짜 기적이네.

여러모로 강한 적을 많이 쓰러트려서 경험치나 보상은 잔뜩 얻었지만.

워낙에 바빠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던 보상들.

보너스 스킬 포인트가 2개.

중급 스킬권이 2개.

그 외에 다량의 경험치.

상급에 오른 스탯은 올릴 수 없겠지만, 다른 스탯이라면 한두 개 정도는 올릴 수 있을 정도다.

레벨업을 하면 할수록 같은 수준의 스탯이라도 올리는 데 필요한 경험치가 증가하는 걸 생각하면 상당히 많은 경험치를 얻었단 소리다.

여하튼, 얻은 게 상당히 많다.

그리고.

[어허, 또 새어 나간다.]

“끙.”

[살업(殺業)]

이 스탯의 활용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고 있다.

이렇게 따로 시간을 마련해 그 제어를 연습해야 할 정도로.

[명심해라. 네가 품은 살(殺)은 진정 죽음을 담은 것이다. 그 제어가 완벽하지 못하면 아군을 베는 검이 될 뿐이다.]

처음 사용할 땐 그 대상이 너무 확고해 집중이 잘됐고, 마침 주변 아군이 전부 녹다운 상태라서 문제가 없었지만…….

막상 훈련 중에 쓰려고 하니 주변 사람들이 살업에 영향을 너무 받아 이렇게 따로 수련까지 하고 있다.

[어허, 집중하라고 했더니 손이 놀고 있구나.]

“끙!”

[무(武)도 좋지만,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다. 네 녀석의 경우엔 술(術)의 연습이 무공 수련의 천 배는 넘는 효율을 자랑하니 빼놓을 수 없느니라.]

손으로 끊임없이 작은 흑관을 만들어 내던 설천위는 천마의 말에 살짝 입술을 삐쭉였다.

천 배라니.

천 원이 백만 원이 되는 수준인데 너무하네.

살짝 상처다.

섭섭함에 느려지려는 손을 천마가 찰싹 때린다.

[어허?]

“예입.”

귀신같은 영감.

아니, 귀신이 맞잖아?

멍청한 생각과 함께 연신 손을 움직이는 설천위.

그 움직임에 그야말로 수십 개의 흑관이 만들어졌다가 사라진다.

‘……괴물 같은 녀석.’

말로는 집중하라고 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하라곤 하지 않았는데.

설천위의 주변으로 성벽을 만들었다가 허물어지기를 반복하는 흑관을 보며 고개를 저은 천마는 철백을 바라봤다.

확실하게 완성되어 가는 거대한 성을 보는 느낌.

무식하기 그지없는 수련 속에 꽤나 깊은 무리(武理)를 담고 있다.

저게 무(武)에 대한 재능이지.

생각해 보면 내공 한 점 없는 육체로 이 무림학관에 들어왔다는 것 자체가 재능을 증명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천마.

그런 천마의 감시 아래 설천위와 철백이 한창 수련에 열중하던 그 순간.

“여!”

어느새 철백이 짊어지고 있는 바벨 위에 선 남궁선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 * *

“예린이는 아직도 싫대?”

“네. 싫다고 합니다.”

“우우, 본인이 싫다면 어쩔 수 없긴 한데…….”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남궁선.

전에 유예린에게 대련을 권유했다가 거절당한 게 아직도 아쉽나 보다.

“아직 제대로 갈무리하지 못했다고 하니까요.”

“그럴 땐 대련이 제격인데.”

“사람의 취향은 다 다른 법이죠.”

어깨를 으쓱이는 설천위를 바라보는 남궁선의 눈이 가늘어진다.

“약혼자라고 편드는 것 같은데…….”

“에헤이? 그게 무슨?”

“편드는 거 맞습니다.”

쓸데없는 도움이다, 철백.

여전히 남궁선을 올린 그대로 스쿼트를 진행하는 철백을 살짝 째려본 설천위는 다시 남궁선을 바라봤다.

“그것 때문에 오신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애초에 유예린은 이곳으로 수련하러 안 오니까.

남궁선과 하는 대련 이외엔 철저하게 개인 수련이다.

가문의 비전이 많으니까.

“아, 맞다. 학관장님이 전하라고 하시더라.”

“……설마 임무 같은 건 아니죠?”

흑룡학관의 출장 건으로 모든 수업의 수료를 인정받은 상황이다.

그래서 수업도 가끔 나가는 수준.

그 외엔 전부 개인 수련이나 하고 있다.

철백은 그냥 남는 시간이라 같이하고 있는 거고.

얘도 좀 있으면 갈 거다.

솔직히 방학을 맞이한 대학생 느낌으로 지내고 있었는데, 이건…….

싸늘한 느낌에 설천위의 눈이 한껏 가늘어지자 남궁선은 웃으며 손을 저었다.

“얘는, 학관장님을 무슨 죄인들이 유배된 광산의 가혹한 관리자처럼 말하네.”

“그렇게까진 말 안 했는데요.”

그거 본심인 거 아닙니까?

이번엔 철백의 눈초리까지 묘해지자, 남궁선은 헛기침과 함께 넘겼다.

“간단한 주변 시찰이야.”

“……주변 시찰이요?”

“넌 공식적으로 수업 시간에 놀게 됐으니까 밖에서 사고를 치는 녀석들 좀 잡으라고.”

“아니, 친선전을 대비해 수련에 몰두해도 모자랄 사람을 왜…….”

“흠.”

수련에 몰두해도 모자랄 사람.

그 단어에 잠시 턱을 내린 남궁선이 빤한 시선으로 설천위를 바라본다.

“너, 수련의 의미가 있긴 한 거야?”

“……뭐가요.”

“분명 기세로는 강해졌는데, 몸뚱이는 영…….”

“에잉!”

더러운 재능!

왜 화경급이 되면 눈으로 쓱 한 번 훑는 거로도 다 파악하는 거야!

[저 나이에 화경에 오를 정도의 재능이라면 그 정도 눈썰미는 있는 게 당연하지 않겠느냐?]

[아니, 보통은 딱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이 더러운 재능충들!

“차라리 실전 속에서 강해져라.”

“그거 핑계잖아요.”

“그런데 또 의미가 있는 핑계이기도 하지.”

당당한 남궁선의 태도에 한숨을 내쉰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나쁠 건 없지.

합법적으로 주변을 돌아다녀도 된다는 허가를 받은 것이니까.

‘지금쯤에 일어나는 에피소드가…….’

없지 않나?

친선전이 일어나기 전에는 그냥 적당한 임무로 스펙을 올리는 게 끝이니까.

그렇다면, 딱히 문제는 없겠네.

‘……아닐 수도 있고.’

생각해 보면 여태까지 겪은 일들 중 반 이상이 에피소드랑 딱히 관련이 없던 거잖아?

아니, 옛날에 소설에서 보면 이렇게 게임 속에 들어오면 막 에피소드에 딱딱 맞춰서 멋있게 해결하고 그러던데, 나는 대체 왜…….

예상치 못한 수많은 난관들을 떠올린 설천위는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바로 해 볼까요?”

* * *

“뭐? 이 자식이 뚫린 입이라고!”

“네놈이야말로 그게 인간이 할 소리냐!”

술에 취한 학생 둘이 서로를 향해 고성을 내지른다.

무림학관의 주변에선 꽤나 흔하게 벌어지는 광경이다.

낮부터 술을 거하게 걸친 녀석들.

나이는 젊고 넘치는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녀석들은 같이 온 일행끼리도 싸우고 언성을 높이기 일쑤니까.

그야말로 술에 져 버린 놈들.

그런 녀석들의 언성이 높아지지만, 딱히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일반인은 당연히 무인일 게 확실한 그들에겐 일절 관여하지 않았고.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무림학관의 학생은 이 시간에 술을 마시러 오지 않기 때문이다.

왔어도 조용히 밥이나 먹고 돌아가겠지.

밖에서 사고를 쳐 봤자 본인한테 손해만 되니까.

그렇게 학생 둘의 목소리가 점점 더 큰 소음이 되어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던 순간.

[왕!]

귀여운 개의 울음소리가 객잔 모두의 시선을 모았다.

학생들이 싸우는 곳의 바로 지척.

상당히 귀엽게 생긴 강아지가 왕 하고 우는 모습에 솔직히 마음을 풀어지게 했지만…….

“어떤 놈이 짐승을 식당에 데려왔어!”

이미 취해 제대로 사고 판단이 안 되는 놈에겐 아니었다.

망설임 없이 강아지를 향해 발길질한다.

그 끔찍한 모습에 모두의 표정이 아찔해지는 순간.

[크르르르르.]

울음소리가 바뀌었다.

순간, 의아함에 눈을 깜빡이는 구경꾼들.

그들의 눈에 들어온 건 어느새 사람의 키를 훌쩍 넘을 크기의 거대한 늑대였다.

“꿀꺽.”

거침없이 뻗은 발차기가 푹신하면서도 단단한 무언가에 막힌다.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킨 학생의 머리 위로 손 하나가 올라간다.

“우리 강아지한테 뭔가 불만이라도?”

“시, 식당에, 개, 개, 아, 아니 느, 늑대는…….”

“뭐 고성방가도 하는데, 귀여운 강아지 하나 들어오는 게 무슨 대수라고?”

뿌득.

“끄악!”

패기로 강화된 악력이 학생의 머리를 강력하게 쪼인다.

갑자기 머리에 긴고아를 쓴 손오공의 기분이 되어 버린 학생이 무릎을 꿇는 순간.

할짝.

청랑의 거대한 혀가 학생의 얼굴을 핥는다.

“왜, 맛있을 것 같아?”

[컹!]

“그렇다는데?”

“제, 제발!”

머리 위로 두 손을 모아 열심히 비비는 학생.

그 옆에서 두 다리를 떨고 있던 학생은 그 모습에 재빨리 몸을 돌렸지만…….

“어딜 가?”

“끄아악!”

친구를 버리고 가냐.

의리 없게.

쯧쯧.

남은 녀석의 머리까지 붙잡은 설천위는 완벽하게 제압한 둘을 두고 청랑을 바라봤다.

푹신푹신해 보이는 털.

흠.

“허락받지 못한 식당에 반려견을 데려가지 맙시다.”

“……예?”

“아니, 그냥 해 본 소리야.”

왠지 해야 할 것 같아서.

어깨를 으쓱인 설천위는 그새 힘을 좀 줄였다고 살 만한 표정이 된 두 학생을 보며 물었다.

“너흰 왜 싸웠냐?”

“그것이 저놈이 탕수육은 부먹이라고……!”

“아니, 무조건 찍먹……!”

이 미친놈들이?

[껄껄껄, 술 취한 놈들이 할 법한 고민이구나!]

[멍청한 놈들! 탕수육은 볶먹이다!]

거, 할배들 줄임말 잘 알아듣네?

가볍게 혀를 찬 설천위는 다시 두 학생을 바라봤다.

그리 근접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느껴지는 술 냄새.

꽤나 마셨네, 이놈들.

하긴, 이렇게 마셨으면 그런 일로 싸울 수도…….

“없지, 새끼들아!”

“갑자기?!”

두 사람을 단숨에 집어던진 설천위는 가볍게 혀를 차며 청랑에게 지시했다.

“학관 대문 앞에 던져 놓고 와.”

[컹!]

……대답 소리가 완전히 갠데.

전 주인이 개처럼 키워서 그런가?

힘찬 대답과 함께 두 녀석을 물고 달리는 청랑을 뒤로한 채 설천위는 자리에 앉았다.

순찰 임무를 맡은 지 이틀.

생각보다 재미있는 녀석들이 많다.

물론 부먹이냐 찍먹이냐 하는 수준의 논제로 싸우는 놈들은 저놈들이 처음이지만.

잠시 쉴 겸, 간단한 음식을 시키는 설천위.

그리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사실이었군.’

어제부터 설천위가 학관 주위를 돌며 사고를 치는 학생들을 수습하고 다닌다는 소문.

그 소문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나온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이건 하늘이 준 기회다.

올바른 정의를 바로 세우라는 그런 계시.

이거라면 확실하게……!

사내의 입꼬리가 승리에 대한 확신으로 올라가는 그 순간.

“어, 이게 누구야?”

바로 앞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사내는 앞을 바라봤다.

그리고.

“오랜만에 보네?”

씩 올라간 입꼬리와 함께 설천위가 자리에 앉으며 그의 전 직함을 불렀다.

“정무회주?”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