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1화
160화-이게 맞나? (3)
[음, 이게 진짜 맞는 건가?]
[어이어이, 신입 이거 맞는 거냐고?]
“……그런 말투는 또 어디서 배웠대요?”
[옛날 왈패들이 쓰던 말투가 떠올라서…….]
헛기침을 하는 암영의적.
이 양반은 참 아는 것도 많고 사고의 폭도 넓은데, 요상한 부분까지 알고 있단 말이지.
그나저나 저 의문에는 공감이 간다.
솔직히 모르고 보면 의아하긴 하지.
[놈들! 이게 맞느니라!]
“흠.”
이리도 확고하게 주장하니 믿을 수밖에.
불신의 기색을 내비치는 혼들에게 콧방귀를 뀐 신의는 한창 탕약 제조에 열중하고 있는 곤괴에게 이리저리 떠들기 시작했다.
[불을 조금만 더 약하게. 화기가 너무 강하게 들어가선 안 된다.]
[정확히 열을 세고 넣도록.]
[좀 더 빠르게! 삼십을 세기 전에 재료가 전부 섞여야 한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신의의 고성과 함께 탕약이 완성되어 간다.
문제는 이 탕약도 재료일 뿐이라는 점이지.
한창 탕약에 몰두하는 두 사람에게서 고개를 돌린 설천위는 탕약 제조를 위해 곤괴가 잠시 옆에 빼 둔 재료를 집었다.
차가운 감촉.
가끔 특수한 돌을 약재로 쓰는 경우가 있다.
물론 복용을 위한 것은 아니다.
돌이 품은 양기나 음기를 이용하기 위해 몸에 지니고 있는 형태로 사용한다.
그런데.
[금속을 먹는다니, 처음 듣는 소리구나.]
현태중의 말에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시를 만들 때 산 사람에게 금속을 먹인다는 소리는 듣긴 했지만…….]
그건 그자를 죽일 거라서 하는 행동이고.
산 사람에게 금속을 먹인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되긴 한다.
공통된 혼들의 의견에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게 또 그런 흔한 금속이 아니라서요.”
괜히 이거 하나 구하겠다고 신의가 있는 곳까지 달려간 게 아니라는 말씀.
“뭐, 보시면 알 거예요.”
* * *
“우으…….”
탕약을 한입 삼킨 남혜가 한껏 인상을 쓴다.
애가 먹기엔 너무나도 쓴 탕약.
하지만, 이내 그 탕약을 쥔 할아버지의 얼굴에 남혜는 단숨에 탕약을 들이켰다.
슬픔으로 가득한 할아버지의 눈을 보는 것이 쓴 탕약을 삼키는 것보다 더 싫었으니까.
그렇게 단숨에 탕약이 몸 안으로 흘러 들어가고.
“이제 시작이다.”
[이제 시작이다.]
설천위의 몸에 깃들어 침통(鍼筒)을 든 신의가 두 눈을 빛냈다.
“입에 머금거라.”
[입에 머금거라.]
금속을 받아 입에 넣은 남혜를 신의는 부드럽게 눕힌 뒤 침을 놓기 시작했다.
신속하다는 말이 절로 어울리는 시침(施鍼).
순식간에 남혜의 몸에 침이 가득 꽂히고.
‘응?’
기이한 기운이 남혜의 몸에 돌기 시작한다.
그 모습에 반사적으로 기세를 일으키려는 곤괴를 한 손으로 제지한 신의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아이를 관찰하며 입을 열었다.
“천음지체는 그 음기가 머리에 쌓여 변질되는 것이 치료의 가장 큰 난점으로 작용한다.”
[천음지체는 그 음기가 머리에 쌓여 변질되는 것이 치료의 가장 큰 난점으로 작용한다.]
알고 있다.
신의의 설명에 겨우 기세를 가라앉힌 곤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혜를 진료한 모든 의원이 하나같이 그리 말하지 않았던가.
머리에 엉킨 기운을 도저히 풀 수가 없다고.
그냥 쌓인 것이 아니라 중요 혈과 얽혀 자칫 풀어내다가 아이가 죽거나 백치가 될 거라고.
그래서 치료를 못 하던 것인데…….
“이 아이가 지금 입에 머금은 금속은 귀운(鬼殞)이라 불리는 귀물일세.”
[이 아이가 지금 입에 머금은 금속은 귀운(鬼殞)이라 불리는 귀물일세.]
“……처음 듣소.”
“그러하겠지. 내가 발견하고 나만이 아는 금속이니.”
[그러하겠지. 내가 발견하고 나만이 아는 금속이니.]
귀운(鬼殞).
그것은 죽은 자가 떨어진 것을 받아먹은 금속이다.
마음의 병 치료를 목적으로 사람들이 자주 자살하는 장소를 찾다가 발견한 것이다.
악귀(惡鬼)에 의해 수천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벼랑의 바닥.
그곳에서 채취한 이 금속은 아주 특수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우읍!”
“삼키지 말고, 머금고 있거라.”
[삼키지 말고, 머금고 있거라.]
입안에서 액체로 변하기 시작한 금속에 놀란 남혜가 눈을 크게 뜨자 예상했다는 듯 신의는 차분하게 손을 움직였다.
박혀 있던 침을 빼고, 또 다른 곳에 침을 놓는다.
그 순간, 기운이 또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입안에 머금은 것이 아주 차갑게 될 것이다. 그래도 내가 말하기 전까진 결코 삼켜선 안 되느니라.”
[입안에 머금은 것이 아주 차갑게 될 것이다. 그래도 내가 말하기 전까진 결코 삼켜선 안 되느니라.]
이윽고 침을 전부 놓고 기운의 흐름을 침착하게 관찰한다.
그리고.
“삼키거라!”
[삼키거라!]
신의의 외침과 동시에 남혜가 놀라 액체를 꿀꺽 삼킨다.
그와 동시에, 남혜의 몸에 있던 침을 전부 뽑아낸 신의는 아까부터 대기하고 있던 곤괴를 불렀다.
“지금!”
[지금!]
“알겠소!”
사전에 들었던 대로, 재빨리 남혜에게 다가간 곤괴는 남혜의 맥문을 잡고 내공을 흘려 넣었다.
그리고 그 내공으로 운기조식을 시작한다.
안에서 폭주하는 기의 흐름을 붙잡아, 자신의 독문무공의 경로에 따라 움직이게 한다.
한 번, 두 번, 세 번.
횟수를 거듭할수록 그 속도는 빨라지고.
그 크기는 거대해진다.
‘버틸 수 있을까?’
이만한 기의 크기를 과연 이 아이가 버텨 낼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드는 순간.
“버틸 수 있다.”
[버틸 수 있다.]
신의가 그 의문을 말끔히 해소했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천음지체로 살아 있다는 것은 머리에 음기가 쌓이고도 십수 년을 살 수 있을 만큼 튼튼한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
[천음지체로 살아 있다는 것은 머리에 음기가 쌓이고도 십수 년을 살 수 있을 만큼 튼튼한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
못 버틸 리가 없다.
전화위복이란 것은 바로 이런 곳에 적용되는 법칙이니까.
“이놈만큼은 아니어도, 무(武)와 영(靈)에 통달한 고수가 되기에 충분한 자질이다.”
[이놈만큼은 아니어도, 무(武)와 영(靈)에 통달한 고수가 되기에 충분한 자질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놈은 무(武)에 통달할 자질은 없지만 말일세.]
……꼭 한마디를 덧붙여요.
가만히 안에서 관찰하던 설천위는 천마의 한마디에 그만 입술을 삐쭉였다.
* * *
“……고맙네.”
“아뇨. 저도 구명의 은이 있으니까요.”
고개를 숙이는 남척을 향해 손을 저은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저도 얻은 게 많기도 하고요.”
[많지.]
[너무 많아서 배가 아플 정도지.]
이 인간들이?
뒤에서 한마디씩 보태는 혼들을 손을 휘휘 저어 털어 낸 설천위는 곤히 자고 있는 남혜를 보며 웃었다.
아까 낮에 일어나 한껏 먹고 서하영이랑 신나게 놀다가 지쳐서 잠이 들었다.
아직 내공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해서겠지.
“한동안 아버지의 밑에서 무공을 배운다고 하더군.”
“그거 다행이네요.”
이야, 무공을 익히기 시작하자마자 스승이 곤괴야?
지려 버리네.
이게 태생?
“그래서 사흘 뒤에 돌아가겠다고 한 게 사실인가?”
“예. 솔직히 시간을 너무 쓰기도 했으니까요.”
학관에서 연락이 왔다.
슬슬 돌아오라고.
이제 내년이면 시작될 친선전도 있는데, 주요 전력 중 넷이나 이곳에 있으니 재촉할 만도 하지.
나한테 직접 상황을 듣고 싶기도 할 테고.
“돌아가야죠.”
유예린도 이젠 움직일 수 있을 정도가 됐으니, 진짜 돌아갈 때가 됐다.
* * *
“돌아오고 있다더군.”
“돌아오고 있다면…… 그 녀석이요?”
“그래, 그 녀석.”
“때가 좋았네요.”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남궁선.
손맛이 좋던 녀석들이 셋이나 떠나가서 아쉬웠는데, 잘됐다.
거기에다.
“얼마나 변해서 왔을지 궁금하네요.”
“많이 변했겠지.”
아니, 변하지 않으면 안 되지.
“일단 보고부터 들어야…….”
“돌아왔습니다!”
순간, 문을 박차고 들어온 부하의 모습에 팽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 학관장실로 오라고 전하게.”
직접 들어야 할 이야기가 산더미니까.
* * *
“학관장님, 저 몇 달 만에 돌아온 건데요?”
“안다.”
“그럼 조금 휴식 시간을…….”
“충분히 쉬다 온 주제에 무슨 소리냐?”
“에이, 타지에서의 휴식은…….”
“여기가 네 녀석 본가더냐? 네 본가는 호남에 있다, 이눔아.”
한층 더 능글맞아진 설천위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팽후는 이내 분위기를 바꿔 무거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많은 것을 얻었느냐?”
“……예. 뭐 얻었다면 많이 얻었죠.”
“그것 참 다행이구나.”
흡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팽후.
그 모습에 어색하게 웃는 설천위.
그리고.
“흑룡학관의 성장에 그리 크게 이바지해 놓고, 정작 본인은 제자리걸음이라면 면이 서질 않지 않겠느냐?”
“……예?”
그게 무슨 소리야.
처음 듣는 소린데?
“흑룡회(黑龍會).”
“……흑룡회?”
뭔가 익숙한 어감인데?
삼합회인가?
“이번에 새롭게 흑룡학관의 주축이 된 학생회의 이름이다.”
“아.”
“그리고, 그 회주는 당연히…….”
“백유겠죠?”
“그래. 벌써 흑룡(黑龍)이라 불리기 시작한 그 녀석이 회주다.”
그거야 뭐, 당연한 수순이었으니까.
그런데.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이 있나요?”
아니, 흑룡학관이 강해진 거랑 걔들이랑 무슨 상관이…….
“얼마 전 사파 쪽의 가문 셋이 멸문했다.”
“그야 흔한 일…….”
“하나같이 나름대로 이름 있는 가문이었다.”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히는…….
“흑룡회주가 네 실종의 원인이 된 자들을 직접 색출하기 위해 움직였다고 하더구나.”
“씁?”
아, 차갑다.
옆에서 쏘아보는 눈빛이 뼈에 사무치게 사납다.
날카로워진 유예린의 눈빛에서 의도적으로 시선을 돌린 설천위는 작게 헛기침을 하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럼, 흑룡회만으로 문파를 지웠다는 건가요?”
“그래.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다.”
“예?”
“흑룡이라 불리는 흑룡회주의 무위가 화경에 근접했다는 소문이 들려오고 있다.”
“에이, 그게 말이…….”
……되지?
구령학의 무공을 배우기 시작했다.
한 달이라곤 하지만 오현초(五玄草)로 내공을 증진시키고, 바로 구령학의 무공을 익히기 시작했으니…….
“짚이는 데가 있나 보구나.”
“……아예 없지는 않죠.”
“네가 그 아이에게 영약을 주었다는 것도 사실이고?”
“친구 사이에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꺄하하하! 여전히 당돌하네!”
남궁선의 웃음소리에 귀가 간지러웠지만, 일단 무시했다.
아니, 뭐 정사를 떠나서 친구가 될 수도 있는 거지.
인생이란 것이…….
“네가 부끄럽지 않다면, 그걸로 됐다. 자세한 이야기는 천천히 들어도 될 것 같구나.”
말을 끊은 팽후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설천위를 노려보고 있는 유예린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네가 선물을 준 것이 그쪽만은 아닌 것 같으니.”
“흐응.”
팽후의 시선에 맞춰 고개를 돌린 남궁선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때론 보이지 않는 것이 그곳에 있음을 증명할 때도 있는 법.
“예린아, 우리 대련 한번 할까?”
남궁선의 얼굴엔 흥미로운 미소가 가득했다.
* * *
“그놈이 돌아왔다고 하오.”
“그놈이라 함은…….”
“설가 놈 말이오.”
분노가 깃들어 있는 목소리에 건너편에 있던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그 빌어먹을 놈이 뻔뻔하게……!”
이를 악무는 사내.
그리고.
“내 정의가 이곳에 살아 있음을 증명할 것이오.”
당당하게 외치는 사내.
그 모습에 동조하면서도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어찌한다는 말이오? 그 녀석의 주변엔…….”
그 괴물 같은 것들이 있는데.
설천위가 흑룡학관으로 떠난 뒤.
친선전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직접 남궁선의 가르침을 받는 이들 중 절반 정도가 설천위와 친한 사이다.
심지어 그 무력은 학관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수준.
거기에다 설천위마저 그 무리에 속할 정도로 실력이 막강하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누군가의 불안 섞인 물음에 호탕하게 일어섰던 사내가 입꼬리를 올렸다.
“진짜 정의를 위해 움직이는 이들이 우리를 도울 것이오.”
“그게 대체 누구란 말이오?”
답답함이 섞인 누군가의 질문에 사내는 입꼬리를 올렸다.
“진짜 정의를 좇는 이들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