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0화
159화-이게 맞나? (2)
“……대단하네요.”
치열했던 전투가 지나고 사흘.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암혈단의 부상자 중 7할 이상이 정신을 차렸다.
“신의라고 불릴 만하네요.”
[어흠.]
약재를 먹으며 미약하게 남은 독기를 중화시키는 데 성공한 서하영의 칭찬에 신의는 헛기침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에 귀엽다는 듯 웃는 서하영.
[쯧, 독은 거의 다 사라졌으니 가서 손이나 보태거라.]
부끄러움을 숨기며 손을 휘젓는 신의.
그 말에 웃으며 대답한 서하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직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보조를 위해 움직였다.
그렇게 서하영이 마당으로 나가고.
“신의 할배요.”
탕약을 끓이던 곳으로 들어온 설천위가 신의를 찾았다.
빈손으로 들어온 설천위를 보며 신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잘됐느냐?]
“하란 대로 하긴 했는데…….”
빙의를 긴 시간 유지할 수 있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하루 종일 유지하고 있을 순 없는 법.
신의가 직접 손을 써야 하는 단계가 지난 뒤론 설천위나 철백 등이 그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설천위가 하는 작업은…….
[하란 대로 했으면 잘못될 것이 없지 않으냐!]
“아니, 이게 맞나 싶어서. 이거 원래 이렇게 독한가?”
못 미덥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 설천위.
그의 손엔 그릇에 옮겨진 액체 하나가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퐁퐁.
끓이고 있는 것도 아닌데 기포가 올라오는 모습.
“……이거 아무리 봐도 독약 아니야?”
보랏빛 색감도 그렇고, 먹으면 바로 즉사할 것 같은데?
묘한 표정으로 묻는 설천위의 모습에 신의는 콧방귀를 뀌었다.
[네 녀석의 능력을 생각하면 그 상태가 가장 좋으니라.]
“이거 독기 빨아들이면 내가 죽는 거 아니야?”
[사랑하는 연인을 위한 것이니 그 정도는 참아라.]
“씁, 아니 그리 말하면 못 참는다고 말할 수 없긴 한데…….”
내가 죽으면 의미 없는 게……?
뭔가 찝찝한 논제구먼.
신의의 질책에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문제는 뒤로 밀쳐 둔 설천위는 일단 행동하기로 했다.
탕약을 들고 비어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저번 전투에서 가장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사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유예린.
그 누구보다 위중한 상태였던 유예린은 몸 상태가 그야말로 처참했다.
외상은 물론이고, 내상마저도 심각한 수준.
다른 대주급도 상태가 안 좋긴 마찬가지였지만, 그들은 그나마 상태가 조금 나은 편이었다.
이번에 함께 온 대주는 총 넷.
넷 모두 심각한 중태였지만, 그중에서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버틴 제3 대주 소정의 상태가 특히 위중했다.
다른 대원들은 밖에 천막을 치고 그 밑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소정만큼은 따로 방 안에 들여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 유예린의 상태는 소정보다도 더욱 심각했다.
애초에 부담이 많이 가는 기술을 과하게 사용한 데다 부러진 팔로 억지로 검을 쥐는 등 상당히 무리를 했다.
거기에다 화경급 고수인 노공과의 기나긴 전투에 이어 봉백과의 전투까지.
외상은 물론이고 내부까지 망가지다 못해 아주 곤죽이 된 상태였다.
원래라면 족히 수개월은 요양해야 할 부상.
그래서 설천위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그나저나, 네가 오현초(五玄草)를 가지고 있을 줄이야.]
오현과(五玄果)를 맺는 약초, 오현초.
풀 자체는 독성이 강해 열매를 맺기 전까진 약재로 쓰지 못하는 물건이지만…….
[너는 이미 한 번 독성을 이겨 냈으니, 죽진 않을 게다.]
“씁.”
그 독성만 해결하면 참으로 좋은 영약이 된다.
설천위가 그 혜택을 봤고, 백유도 그 혜택을 봤다.
그 효능은 이미 증명된 상태다.
문제는 유예린이 독기를 이겨 낼 수 있느냐 없느냐였다.
몸을 치료하기 위해선 약효가 필요한데, 독기가 그 발목을 붙잡는 상황.
그래서 본래라면 독기를 없애는 방향으로 탕약을 제조했겠지만…….
[그런 신묘한 능력은 또 어디서 얻은 건지…….]
서하영의 독을 흡수한 설천위의 능력을 보고 신의는 탕약의 제조 방향을 바꿨다.
독기를 그냥 두는 대신, 약효를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충분히 살릴 수 있다.]
망가진 내부만 복구하면 몸의 회복은 순식간이다.
내공이 돌면서 신체가 활성화되면 이 정도의 상처야 금세 회복할 수 있는 것이 초절정 무인이니까.
경지가 높아지면 얻는 것이 단순히 무력만은 아니란 소리다.
신의의 장담에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유예린에게로 다가갔다.
요 사흘간, 몇 번이나 열이 불덩이처럼 끓고 오한이 찾아온 듯 몸을 떨었던 유예린.
다행히 고비는 넘겨 이제 안정권에 접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이 약을 먹이는 게 맞나 싶다.
“……그럼 먹입니다?”
[그만 우물쭈물하고 어서 먹이기나 하거라.]
신의의 재촉에 조심스럽게 유예린의 목을 손으로 받친 설천위는 천천히 탕약을 유예린의 입으로 흘려 넣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천천히 흘려 넣는다.
그리고 그에 반응한 유예린의 신체가 무의식중에 탕약을 삼키기 시작했다.
한 모금이 두 모금이 되고, 이내 상당한 양이던 약을 전부 삼킨 순간.
“흡!”
정신을 차린 유예린이 숨을 들이쉬는 것과 동시에 가부좌를 틀었다.
약과 함께 스며든 독기를 몰아내기 위한 본능적인 움직임.
아직 정신이 제대로 돌아오지도 않았을 텐데.
[어마어마한 생존 본능이구나.]
이 또한 재능의 영역이라 할 수 있지.
고개를 끄덕이는 신의의 여유와 별개로 유예린의 등에 재빨리 손을 붙인 설천위는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거, 질기네!’
생으로 약초를 흡수할 때보다 훨씬 독해진 독기가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다.
쉽사리 몸에서 빠져나가지 않겠다는 듯이.
하지만 이쪽은 나름 스킬을 사용하는 중.
아무리 독기가 강해도 버티는 데 한계가 있는 법이다.
결국, 버티는 데 실패한 독기가 양팔을 타고 올라온다.
팔을 타고 올라오는, 마치 닿으면 녹아내릴 것 같은 강렬한 독기.
그 독기에 대항해 설천위는 즉시 [해독]을 사용했다.
독 자체를 분해해 소멸시키는 힘이 강력한 독기를 공략한다.
문제는 그 독기가 상당히 강해 이게 과연 해독이 되고 있는 건지 의문스러울 정도였지만…….
‘낙장불입!’
이 독기를 유예린에게 다시 넘겨줄 수는 없다.
유예린은 이제 운기에 들어가 내상 치료에 힘을 쓰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어느새 유예린의 등에서 손을 뗀 채 마찬가지로 운기에 들어간 설천위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독기의 해독이 느리긴 하지만, 매도 맞아 본 녀석이 덜 아프다고.
해독되지 않은 독기가 육체를 잠식하는 것이 버틸 만했다.
내공으로 막아 내서 충분히 버틸 수 있는 수준.
이렇게 되면 시간과 근성의 싸움이다.
포기하지 않고, 밀어붙이면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렇게 한참을 해독에 집중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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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기 스탯이 中下로 상승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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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과 함께, 해독에 가속도가 붙었다.
결국 생각보다 훨씬 빨리 독기를 해독하는 데 성공한 설천위.
나름 만족하며 눈을 뜬 순간.
콰가가가가가가.
“……응?”
개판이 된 집 풍경에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 반 박자 늦어졌다.
아니, 이게 지금 무슨…….
[대오(大悟)다.]
……대오?
큰 깨달음이라는 그거?
천마의 한마디에 상황을 깨달은 설천위는 눈앞에서 허공으로 떠오른 유예린을 보며 의식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괜히 내 목소리가 방해하면 안 되니까.
아니, 그게 아니지.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대오(大悟)라 함은, 보통 경지를 넘어선 깨달음을 얻었을 때 쓰는 단어다.
그런데 천마가 그 단어를 유예린을 향해 썼다는 것은…….
‘미친?’
유예린의 다음 경지가 무엇인지 아는 설천위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지는 순간.
무의식중에 주변 경계를 위해 고개를 돌린 설천위는 이내 마음을 비우고 몸에 힘을 뺐다.
기의 소용돌이로 인해 무너진 벽 너머, 철백과 서하영은 물론이고 움직이는 것이 가능한 암혈단 전부가 초가집을 철통처럼 감싸고 있었으니까.
문제는 옆방에 누워 있던 소정인데…….
‘……쟤는 왜 멀쩡히 앉아 있대?’
담 위 감격 어린 표정으로 앉아 있는 모습이 대체 언제 정신을 차린 건가 싶었다.
아니, 움직이는 게 가능한 몸 상태가 아닐 텐데?
누가 저기로 옮긴 거야?
설천위가 미간을 찡그린 사이.
[음, 짧군.]
[이건…… 아무래도 이야기를 들어 봐야 할 것 같군.]
어느새 사그라드는 기의 폭풍에 혼들이 한마디씩 던지고 있었다.
그나저나 짧다고?
지금의 상황에선 썩 좋은 단어는 아닌데.
미간을 찡그린 설천위가 다시 유예린을 바라보는 그 순간.
번쩍.
강렬한 안광이 설천위를 훑고 지나갔다.
그런데…….
‘……약해?’
뭔가 약하다.
강렬하긴 한데, 뭔가…….
“아쉽게 됐구나.”
순간, 옆에서 들려온 곤괴의 목소리에 살짝 놀란 설천위는 헛기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셨어요?”
“음, 주변에 딱히 별다른 기척은 없다.”
아, 주변 정찰을 하고 와 준 건가?
감사의 의미로 살짝 고개를 숙이는 설천위의 모습에 대충 손을 저은 곤괴는 가만히 유예린을 바라봤다.
번뜩였던 안광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니 완전히 사라진 상태.
기의 완전한 갈무리.
그 통제가 영역에 들었다는 것의 증명이지만…….
“반쪽짜리구나.”
“본래 얻지 못할 것이었으니, 이것으로도 만족합니다.”
“그리 생각하는 것을 보아하니, 너는 진정 별이 될 인재로구나.”
흐뭇하게 웃는 곤괴.
그리고.
‘……뭔 소리야?’
영문 모를 선문답에 영 갈피를 못 잡는 설천위.
철백도 뭔 소린지 몰라 의아함을 표정 속에 숨기는 것이 보인다.
“공자.”
살짝 미간을 찡그리고 있던 설천위는 유예린의 부름에 몸을 돌렸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유예린.
그 모습에 뒷목을 긁적인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됐어. 우리가 언제 그런 인사를 주고받을 사인가?”
“후후, 그건 그러네요.”
웃으며 한 걸음.
순간, 묘한 분위기에 서하영이 두 눈을 크게 뜨는 것과 동시에 한 손으로 입을 가린다.
그리고.
찰싹 찰싹.
방정맞게 철백의 팔을 찰싹찰싹 때리는 서하영.
손으로 막은 입에서 ‘어머, 어머!’ 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한 철백이 묵묵히 그 손길을 받아 내는 사이.
어느새 한 걸음 더 설천위에게 다가간 유예린은 부드럽게 손을 내민다.
그 순간, 살짝 뒷걸음질치려는 설천위를 무언가가 막는다.
[어허.]
천마의 손길.
뒤로 물러나지 못한 설천위를 유예린이 양손으로 붙잡고…….
“그럼 공자, 말해 주겠어요?”
“으, 응? 뭘?”
“분명, 다 끝나고 말해 주신다고 했잖아요?”
허리를 감싼 두 팔이 쇠사슬처럼 굳건하다.
생글생글 웃는 미소가 너무나도 맑게 다가온다.
“전, 똑똑히 기억한답니다?”
내상이 깔끔하게 나은 걸까.
왜 몸을 아예 못 움직이겠지.
외상은 아직 안 나았을 텐데…….
이상하다…….
“자, 어서요.”
생글생글 웃으며 재촉하는 유예린.
그 모습에 설천위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
“사?”
“사, 살아서 다행이네!”
이렇게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하는 건 내가 못 버텨!
탈주를 위해 어떻게든 틈을 만들어 내는 설천위.
단숨에 유예린의 품에서 벗어나려는 그 순간.
“안 돼요.”
움직일 수 없다.
마치 무형의 힘에 붙들린 것처럼.
장난스러운 미소와 함께 설천위를 붙잡은 유예린이 웃었다.
“사랑한다고 말해 주기 전까지는 절대 안 놓아줄 거예요.”
그 미소에는 행복으로 인해 피어오르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 * *
“낄낄낄낄.”
“뒈진다.”
“낄낄낄낄낄.”
“아, 진짜!”
부상으로 일어나지 못하던 환자들이 유예린이 깨어난 것에 발맞춰 귀신같이 정신을 차렸다.
덕분에 여유가 생긴 데다 초가집도 유예린의 깨달음 때문에 망가진 상황.
남척은 과감하게 모두를 데리고 자신의 장원으로 왔다.
그 초가집은 애초에 남혜가 타인과 얽히는 것을 막기 위해 따로 지어 놓은 것이었으니까.
여하튼 호화스러운 장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시간을 보내길 며칠.
옆에서 그저 웃기만 하는 것만으로 분노를 유발하는 철백을 무시하고 설천위는 빠르게 걸었다.
저 새끼가 더 웃으면 그날의 기억이 더욱 선명해져 부끄러움에 고개를 처박게 될 테니까.
이를 악물고 걸음을 옮긴 설천위는 한창 탕약을 제조 중인 곳으로 향했다.
그 앞을 지키고 있는 건 곤괴와 남척.
그 앞에서 불러낸 의원이 짓는 약을 살피던 신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이 정도면 됐다.]
이제 남혜의 천음지체를 치료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