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4화
153화-애력(愛力) (4)
“……이건가?”
서주웅을 혼까지 비틀어 내서 알아낸 정보로 찾아낸 약재.
그 약재를 확인한 곤괴는 기묘한 표정으로 약재를 바라봤다.
이게 정말 약이 맞는 건가?
[확실하다. 천음지체를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약재지.]
“다른 방법이 없으니 믿을 수밖에 없군.”
신의의 답에 한숨과 함께 약재를 품 안으로 갈무리한 곤괴는 열심히 창고 곳곳을 수색하고 있는 설천위를 바라봤다.
“뭐 하는 게냐?”
“터는 김에 쓸모 있는 건 다 털어야죠.”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약재도 꽤 있고.
나름대로 터는 맛이 있는…….
[천위.]
“예?”
[손님이 온 것 같구나.]
천마의 말에 곤괴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몸을 돌렸다.
자신은 느끼지 못했는데, 천마는 느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알기에 곤괴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좋은 반응이군.]
6척(약 200cm)은 되어 보이는 장신.
가느다란 팔다리가 인상적인 서생 복장의 악귀.
그 모습을 확인한 설천위는 짜증이 섞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씁, 거 나올 거면 한 번에 나오지? 질질 끄는 작가가 쓰는 글처럼 왜 하나씩 나와?”
[아쉽게도 이게 가장 빨리 온 것이다.]
웃으며 고개를 뒤로 까딱이는 악귀.
그 뒤로 시체가 된 이들의 피가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고 있었다.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는 곤괴와 설천위가 만들어 놓은 참상.
[무림인이란 것들은 하나같이 손속이 잔인하군.]
“죽어서까지 사람한테 해코지하는 놈한테 그런 말은 듣고 싶진 않은데.”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나?]
설천위의 비아냥거림에 잠시 고개를 갸웃한 악귀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전언이다.]
“누가 보낸 건데?”
[새로운 세상의 신이 되실 분.]
“라X토냐.”
데스 노트 적는 소리 하고 앉아 있네.
짜게 식은 눈으로 악귀를 바라보던 설천위는 그가 내민 서한을 순순히 받아 펼쳤다.
<새로운 영(靈)의 구도자여, 그대에게…….>
“거, 쓸데없는 소리는.”
기묘한 호칭으로 시작하는 서두에 미간을 찡그린 설천위는 천천히 글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꺼지라고 해.”
[……그것뿐인가?]
“뭘 그것뿐인가야? 흥미 있으니까 한번 만나자. 만나서 서로 얘기 좀 해 보고 뜻이 맞으면 같이하자. 이게 내용의 전부구먼, 뭐.”
[기묘하군.]
서한을 대충 땅바닥으로 던지는 설천위의 모습에 악귀가 이번엔 정말로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어떻게 멀쩡한 거지?]
“뭐, 서한에 걸려 있던 술법?”
“술법이라고 했느냐?”
설천위의 태연한 대답에 놀란 건 오히려 곤괴였다.
저런 종류의 서한에 걸 술법이라고 하면 뻔하지 않은가.
정신에 간섭하는 종류일 터.
그런 것을 아무렇지 않게…….
곤괴의 눈에 걱정이 담기는 순간, 악귀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천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군께서 심어 놓은 술법에 아무런 영향도 안 받는 인간은 오랜만이군.]
그 눈엔 어느새 흥미가 깃들어 있었다.
[내 이름은 도생(圖生)이라고 한다.]
“갑자기 웬 자기소개?”
히죽거리는 설천위의 질문에 도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앞으로 자주 마주칠 것 같으니 이름 정도는 알고 있는 것이 좋을 터.]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주군의 서한을 받고도 멀쩡했던 인간들은 모두 자주 만나고 있다.]
“아, 그러셔?”
그거 참 간단한 이유네.
흥미가 식은 설천위는 가볍게 팔을 털며 도생을 바라봤다.
“일단,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본체는 아니지?”
[물론. 장서가 죽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호굴(虎窟)에 고개를 들이밀 순 없는 법이지.]
지그시 설천위를 바라보며, 도생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뒤를 가리켰다.
[그러니 저 술법도 아무런 의미가 없을 거다.]
“그거야 밑져 봐야 본전이지…… 라고 하고 싶지만, 진짜 그래 보이네.”
[의외로군. 보통 이런 경우 믿지 못하고 바로 술법을 발동시키는데.]
“내가 이쪽으로 감각이 좋아서. 괜히 정보를 넘겨줄 순 없지.”
어깨를 으쓱이며 부적을 회수하는 설천위를 도생은 가만히 바라봤다.
흥미로운 인간이다.
이건 참으로…….
[흥미롭군.]
“나는 안 그런데? 너희 대빵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 다 알거든.”
[그렇다면 우자(愚者)로구나. 너는 그분의 뒤를 따를 자격이 있거늘.]
“뭐래.”
사혈천의 머리.
그가 안 움직이는 이유는 하나다.
“진짜 신(神)들이 무서워서 쫄아 있는 거잖아. 그런 녀석을 내가 왜 따르냐?”
[대국을 위한 인내이다.]
“뭐래, 여하튼 관심 없으니까 가 봐라.”
대충 손을 휘젓는 설천위.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도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그리 생각하니 네가 혹할 만한 충고를 하나 하지.]
충고는 무슨 충고.
도생을 비웃으며 그의 말을 받아치려던 설천위는 이어지는 도생의 말에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유예린이라고 했나? 그 여아가 친구들을 데리고 광서에 도착했더군. 어제, 남척이란 녀석과 만났다고 한다.]
“……뭐라고?”
설천위뿐만 아니라 곤괴마저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유예린과 남척이 만났고, 그 사실을 도생이 알고 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정은 당연히 최악.
[주군께서 네게 흥미가 있는 만큼 꽤나 쓸모 있는 자들을 움직였다.]
“이 새끼가!”
순식간에 완성된 흑관이 도생의 몸을 꿰뚫듯 포박하지만, 도생의 몸은 연기로 변해 흩어지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이를 지키고 싶다면, 조금 빨리 움직여야 할 것이다. 설천위.]
빛이 없는 도생의 눈동자가 기이하게 일렁였다.
* * *
“……이건?”
피 냄새가 짙어진 마당.
마추중의 팔다리를 꺾어 그를 제압해 기절시킨 철백은 기묘한 기척에 미간을 찡그렸다.
“뭐 하는 놈들이냐?”
쿵.
대답 없이, 땅에 발을 구르는 소리가 묵직하게 울려 퍼진다.
문제는 그 소리가 한 사람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소 열.
열이나 되는 인간이 동시에 발로 땅을 구른 것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인간은 아닌 것 같군.”
시체 같은 창백한 안색과 초점 없는 눈동자라는 조건이 겹쳐지면 그 의미는 꽤나 좁게 한정된다.
쿵!
마치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듯 통일성을 갖춘 움직임.
거기에 코끝을 찌르는 약품 냄새.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군.”
“어머? 그래?”
철백의 독백에 대답한 건 붉은 입술이 인상적인 미인이었다.
“……남자?”
“어머, 눈치가 빠른 아이네?”
호호호, 하고 웃는 사내.
전형적인 도사의 차림새를 한 그는 짙은 화장이 깨지지 않는 웃음과 함께 철백을 바라봤다.
“그나저나 자기 몸 참 좋다.”
칭찬과 함께 츄릅, 입술을 핥는 사내.
“……심히 불쾌하군.”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소름에 작게 고개를 턴 철백은 마당을 둘러싼 이들을 바라봤다.
“강시(僵尸)를 실제로 보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호호호, 우리는 이쪽이 오히려 특기라서 무인보다 자주 보지만.”
웃으며 손을 뻗어 무언가 기묘한 동작을 하는 사내.
그 손동작에 마당을 둘러싼 강시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천천히 거리를 좁힌다.
빠득.
나무와 풀을 엮어 만든 조잡한 울타리가 허무하게 부서지고, 그것들을 몸에 붙인 채 그저 걸어 들어온다.
일사불란하게 담을 넘어오는 것과는 또 다른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철백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하긴 했지.”
간단하게 자세를 잡고.
“강시는 단단함의 대명사.”
땅을 박찬다.
순식간에 가장 가까운 지점에 있는 강시에게 도달한 철백의 주먹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강시의 머리에 꽂힌다.
인간이 대상이었다면, 그 머리가 폭죽처럼 터져 나갈 정도의 무시무시한 위력.
강렬한 풍압이 주위를 휩쓰는 것은 물론, 그 뒤를 따라 주먹이 강시의 안면을 타격하며 터진 충격이 또 한 번 주위를 휩쓴다.
“어머머머!”
떨어진 거리에서 그 여파에 휩쓸린 사내는 재빨리 몸을 낮춰 그 충격을 흘려 냈다.
“참 야만적인 아이네.”
호호, 웃으며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 내는 사내.
서서히 먼지가 가라앉기 시작하자, 철백과 그 주위를 둘러보며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강시한테 그렇게 무식하게 돌진하는 건 딱히 추천하는 방법이 아닌데.”
“……확실히.”
사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철백은 고개를 아래로 떨궜다.
허벅지까지 땅에 박힌 다리.
허나, 그건 단순히 충격을 흘려 내지 못했기에 생긴 일일 뿐.
“크르.”
“이렇게 멀쩡한 건 솔직히 의외군.”
양팔을 교차해 주먹을 받아 낸 강시가 낮게 울었다.
“호호, 그 아이들은 내가 데리고 다니는 아이들 중에서도 특히 단단한 아이들이거든. 보통은 철강시(鐵僵尸)라고 부르지?”
소귀법과 반혼술을 이용해 만들어 낸 강시.
시체를 일으키는 소귀법을 사용하기 전에 그 시체에 특수 처리를 해 만드는 강시는 사용한 약품과 대법에 따라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닌다.
“크아!”
“흡!”
물어뜯을 기세로 땅을 박차려는 철강시를 힘으로 짓누른 철백은 미간을 찡그렸다.
이건 위험하다.
때리다 보면 반드시 부술 수 있을 거란 확신은 있지만, 문제는 그 과정.
대체 몇 대나 때려야 부술 수 있을까?
그리고…….
‘버틸 수 있나?’
무려 열.
이런 괴물이 열이나 된다.
자신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서하영은 이들에게서 버틸 수 있을까?
또, 지킬 수 있을까?
딱딱하게 굳은 철백의 눈이 주위를 훑는다.
그 모습에 재미있다는 듯 웃는 사내.
“호호호, 친구 걱정이니? 생긴 것만큼이나 듬직한 아이네.”
“그 태도, 상당히 거북하니 그만해 줬으면 좋겠군.”
“어머, 수십 년을 이렇게 살았는데 그게 쉽게 바뀌겠니?”
말도 안 된다는 듯 손을 휙휙 젓는 사내.
그 눈이 반달로 휘며 철백을 응시한다.
“그런데, 이쪽 걱정만 해도 되겠어?”
“……이쪽?”
“저쪽에는 더 대단한 사람이 갔는데 말이야.”
저쪽.
그 단어에 철백의 눈이 한 곳으로 향했다.
아까 전부터 또 다른 싸움의 충격이 터져 나오던 곳.
기묘한 불안감이 가슴속에서 꿈틀거렸다.
* * *
암혈단의 제3 대주, 소정은 이를 악물었다.
이를 악물고 단련해 살아남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실적을 쌓아 대주 자리에 올랐다.
그에 걸맞은 실력도 갖췄다.
그리고 역대 최고라는 소가주를 만나 그 직속 부하가 되어 자부심도 품었다.
그 뒤를 따르는 것만으로 자긍심이 생기는 등.
가끔 사랑하는 사람한테 과하게 집착하는 면모만 빼면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주군.
그런 주군과 함께하며 벽이란 것을 느끼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제가, 시간을 끌겠습니다.”
벨 수 없다.
이 절망감을 얼마 만에 느껴 보는가.
그렇기에 포기할 수 없다.
내가 죽어도, 죽어선 안 되는 사람이 이곳에 있다.
동료가 죽어도, 죽어선 안 되는 사람이 이곳에 있다.
검을 움켜쥐며 몸을 일으킨 소정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선다.
벨 수 없으면 이 몸으로 시간이라도 끌리라.
“……혼자선 힘들겠지.”
자신의 옆으로 붙어 주는 동료를 보며 히죽 웃은 소정은 눈앞에 선 존재를 응시했다.
[같잖은 발악을 하는구나.]
그런 소정을 하찮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상대.
하지만 그런 상대의 조롱에도 소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왜냐고?
사실이니까.
같잖은 발악이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멈출 수 없다.
인간은 그런 생물이니까.
“……물러나세요.”
양팔이 거의 완전히 망가지고, 이젠 서 있는 것조차 힘든 몸 상태로도 물러서라고 말해 주는 주군이 있으니까.
같잖은 발악일지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도생 놈이 쓸데없는 짓을 해서…….]
날카로운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암혈단을 보며 거한은 철제 몽둥이를 들어 그들을 가리켰다.
결코 물러서지 않고 자신을 향해 적의를 드러내는 모습은 참으로 마음에 든다.
하지만, 이쪽도 해야 할 일이 있는 법.
[빠르게 정리해 주마. 덤벼라.]
그놈이 도착하기 전에 어서 저 여자를 생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