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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153화 (153/624)

제153화

152화-애력(愛力) (3)

혈사련의 무인, 마추중은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은 철백을 가만히 바라봤다.

기이하다.

기이하다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기이하다.

무엇이 기이한가 하면.

‘……아예 내공이 없군.’

이것이 기이했다.

대저 무인이 내뿜는 기세란 것은 내공을 근간으로 한다.

심법을 이용해 쌓은 내공이 사람의 의지에 따라 일어나는 것.

기가 움직이며 생기는 변화로 인해 그 사람의 심(心)이 드러나는 것.

그것이 기세다.

해서, 내공만 많이 쌓은 샌님 무인이라도 얼마든지 기세를 뿜어낼 수 있다.

자신이 쌓은 무(武)를 믿고 내공을 일으키는 것만으로 기세가 뿜어져 나오니까.

또한, 그것을 다스릴 수 있는 심(心)을 얻으면 자연스럽게 갈무리가 되기에 오히려 기세를 감출 수 있는 이가 보다 위험한 것이다.

그런데.

“눈싸움은 딱히 취미가 아닌데.”

내공 하나 없이 이런 기세라.

이것을 기세라고 불러도 되는 것인가?

‘기(氣)가 아니라 체(體)인가.’

옷이 다 담지 못해 드러나는 가슴과 약간의 복근은 그야말로 감탄이 절로 나오게 했고.

옷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근육의 발달 수준은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어질 정도였다.

“네가 철백이라는 놈이구나.”

“날 아나?”

“유명하지. 무림학관에 말도 안 되는 괴물이 하나 있다고.”

내공을 익히지 못해 오로지 육체만 단련해 절정 수준에 올랐다는 철백은 여러모로 무인들의 이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혈사련에서도 상당히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최대한 그와 싸우고 싶진 않은데…….

“비켜라. 네놈과는 딱히 상관없는 일이 아니더냐?”

마추중의 물음에 철백은 고개를 저었다.

“무의미한 물음이라는 것을 알면서 묻는군.”

“……뭐, 그럴 것 같았다.”

너무나 담담한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마추중은 어깨에 걸치고 있던 도끼를 들어 올렸다.

“빠르게 끝내 주마.”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기세.

잘려 나간 다리 대신 그의 몸을 지탱하는 철제 의족에서 삐걱대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그 순간.

“흡!!”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마추중의 도끼가 철백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거력을 담은 도끼.

이 일격을 내려치며 마추중은 확신했다.

승리는 자신의 것이라고.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이 무기가 그 확신의 근원이다.

쾅!!

강렬하게 울려 퍼지는 폭음.

그 폭음조차 마추중은 놀라웠다.

하지만, 몸은 그 놀람과 달리 재빠르게 움직인다.

도끼를 회수해 다시 내려찍는다.

방어의 충격을 다 해소하지 못한 듯 움직이지 않는 철백을 향해 또다시 도끼를 내려찍는다.

쾅!!

강렬한 충격과 함께 대지가 흔들린다.

아직도 손맛이 느껴지지 않지만, 문제없다.

“상성이 좋지 않구나! 철백!!”

상성.

그것이 문제다.

만약 예기(銳氣)를 중시하는 검이나 도였다면, 이리 일방적으로 공격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추중의 무기는 도끼.

그것도 육중한 무게로 거목을 쓰러트리는 데에나 사용할 법한 대부(大斧)다.

아무리 단단한 육체라도 한계는 있다.

강하게 힘을 준 근육은 결국 풀리기 마련이고.

거듭되는 충격에 뼈는 결국 부러지기 마련이다.

충분히 꺾을 수 있다.

그런 확신을 품고 마추중은 어떤 초식도 쓰지 않고 그저 도끼를 내리쳤다.

한곳에 집중해서.

거목을 패듯이.

그러다 보면, 결국 무너질 것이다.

퍽!

지금처럼!

반탄력으로 도끼를 튕겨 내는 소리가 아니라, 살에 꽂히는 소리가 났다.

철백의 전체를 경계하던 마추중의 눈이 자신의 도끼가 때린 지점으로 향한다.

이 소리라면 철백의 팔에서 상당한 수준의 피가 흐르고 있으리라.

그런 기대를 품고 마추중이 고개를 돌리는 그 순간.

“상성?”

같잖다는 듯, 철백이 담담한 시선으로 마추중을 바라봤다.

“도끼가 거악(巨嶽)을 벨 수 있나?”

마추중의 도끼를 두 팔을 교차시켜 받아 낸 철백.

그 두 팔에는 충격으로 붉어진 선이 십수 개가 그어져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출혈은 없었다.

“고작해야 산의 일부를 깎아 내는 용도로 쓰는 것이 도끼.”

기기깅.

철백이 양팔에 힘을 주는 순간, 괴이한 소리와 함께 도끼의 날이 천천히 휘어진다.

“이익!”

큼지막한 도끼를 한 손으로도 휘두를 수 있을 만큼 건장한 마추중의 얼굴이 한껏 붉게 달아올랐다.

빠지지 않는다.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힘이길래 도끼가 마치 암벽 사이에 낀 것처럼……!

“이 정도면 되나.”

마추중의 생각이 끝까지 이어지기도 전에, 완전히 도끼의 날을 구부러트린 철백이 그 손을 놓았다.

기이한 모양이 되어 주인의 품으로 돌아가는 도끼.

허망하게 돌아온 도끼를 손에 쥔 채, 마추중은 떨리는 눈동자로 철백을 바라봤다.

“네놈……! 대체 어찌……!?”

“단련이다.”

마추중을 바라보는 철백의 근육이 꿈틀거린다.

그야말로 요동친다는 말이 어울리는 움직임.

근육의 내부에서 흐르는 것은 피와, 단련을 거듭해 쌓은 기(氣).

설천위가 이리저리 밖을 돌아다니는 사이, 철백은 그저 한결같이 수련을 해 왔다.

단련하고, 또 단련했다.

친구가, 사랑하는 이가 자신보다 앞서가는 데 뒤처질 수는 없으니까.

물론, 유예린만큼 미친 듯이 수련하진 않지만…….

“화경급 고수에게 맞으니 확실히 도움이 되더군.”

남궁선의 도움.

친선전을 위해 선생 노릇을 맡은 그녀는 후배들을 위해 진심을 다해 줬다.

진심을 다해서 검으로 그들을 두들겨 패 줬다.

그 검 끝에서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모두가 성장했지만…….

남궁선이 탐내던 재능을 가진 철백은 성장이라는 말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그녀의 검을 몸으로 받아 내는 것에 익숙해지다 보니 어느 순간, 철백은 깨달았다.

몸에 흐르는 하나의 힘을.

내공과는 다른 힘.

그것은 기(氣)임과 동시에 체(體)이다.

“나는 철기체(鐵氣體)라고 부른다.”

철체기(鐵體氣)가 아니다.

그 근간은 육체에 있는 힘.

“네 도끼로는 내 가죽조차 뚫을 수 없다.”

말이 끝나자마자, 철백의 몸이 대지를 박찬다.

내공을 활용한 가속?

그딴 거 없다.

수백 근의 무게를 들어 올리는 다리 근육은 그 자체로 막강한 추진력을 만들어 내니까.

“노오오옴!”

이제는 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도끼를 마추중은 있는 힘껏 휘둘렀다.

이건 말도 안 된다.

기(氣)를 두른 무기란 말이다.

인간의 육체가 그 모든 공격을 견뎌 낸다는 것은 도저히 말이 안……!

“커헉!”

복부를 때리는 일격에 목구멍을 타고 피가 넘어온다.

붉은 선혈(鮮血).

내장이 망가졌다.

단 일격.

하지만, 그 단 일격을 먹었다는 사실에 마추중은 놀라지 않았다.

“……빌, 어먹, 을.”

“생각이 짧군.”

목을 때린 도끼.

가죽조차 가르지 못하고, 굵직하기 그지없는 목에 막힌 도끼가 너무나도 허망하게 느껴진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싸움법이라니.

방어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공격이라니!

무(武)란 방어와 공격의 균형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거늘……!

상식조차 무너트리는 철백의 전투 방법에 절망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면서도 마추중은 이를 악물며 웃었다.

“생각이 짧은 건, 네놈이다……!”

마추중의 시선 끝.

그와 철백의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초가집으로 달려간 부하들이 그 문을 박차려고 하고 있었다.

고작해야 자신 하나에게 이리 시간을 쓰는 동안, 이미 승리는 자신들의…….

“착각하고 있군.”

“컥!”

마추중의 목을 움켜쥐며 철백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언제 혼자 막는다고 했지?”

스릉.

철백의 물음과 함께 무언가가 베이는 미약한 파공음이 울린다.

그리고.

“끄르륵.”

피 가래와 함께 무너지는 부하가 둘.

그 뒤에 있던 이들조차 당황할 정도로 섬전과도 같은 일격.

“원래 지켜야 할 존재 근처엔 가장 강한 이를 두는 법이지.”

초가집의 문이 열리며, 창을 쥔 서하영이 걸어 나온다.

서늘하기 그지없는 눈빛.

그녀의 뒤로 딸의 눈을 가린 채 품에 안은 남척은 떨리는 눈으로 서하영을 바라봤다.

저게 진정 아까까지 웃으며 자신의 딸과 놀아 주던 그 여학생이 맞단 말인가.

무(武)에 재능이 없어 아버지의 무학을 잇지 못한 자신은 상상도 하지 못할 위압감…….

“언니?”

“예쁜 혜아, 잠깐만 얌전히 기다릴까?”

천사 같은 미소.

부드러운 공기.

남혜를 보며 빙긋 웃은 서하영이 문을 닫는다.

“아빠랑 잠깐만 꼭 안고 있어.”

금방 끝나니까.

탁.

문이 닫히고, 조금 전의 부드러움이 마치 거짓말처럼 사라진 서하영의 눈빛엔 다시 혹한의 냉기가 깃들었다.

* * *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겁니다.”

상처로 가득한 몸.

곳곳에서 흐르는 피가 옷을 적신다.

베이고 찢겨 나간 옷은 남은 부분마저 전부 피로 붉게 물들어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안쓰러운 마음이 절로 들 정도다.

그럼에도 유예린은 웃었다.

왜냐고?

“슬슬, 끝을 향해 가고 있군요.”

“네 이년…….”

살기가 그득한 노공의 목소리가 숲속에 울려 퍼졌지만, 그 살기에 위축되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꽤나 오래 버텼어요. 암혈단을 상대로 이 정도면 훌륭하죠.”

웃으며 노공을 도발하는 유예린.

그 도발에 당장에라도 검을 휘두르고 싶은 노공이었지만, 그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를 둘러싼 초절정 고수가 셋.

조금 떨어져 지켜보는 이가 둘.

유예린을 빼고서라도 넷이나 되는 초절정 고수가 자신을 둘러싼 상황.

만약, 저들이 서로 연관이 없는 남남이었다면 얼마든지 뚫어낼 수 있는 상황이지만, 상대는 암혈단.

그중에서도 화경급을 상대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훈련된 대주급이다.

거기에다.

“독하구나……!”

그야말로 끈질기게 버틴 유예린을 상대하느라 내공과 체력을 상당히 소진한 상태다.

내공을 압축시켜 격발하는 수법은 자신도 방심하면 치명상을 입을 수 있기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지쳤다.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내공은 물론 심력까지 상당히 소모된 상태다.

“후우.”

물론 그를 상대하는 유예린도 멀쩡하진 않았다.

억지로라도 비수를 쥘 수 있었던 왼손은 이제 아예 움직이지도 않았고, 몸 곳곳은 베이고 갈라져 출혈도 상당했다.

싸움은커녕, 서 있는 것도 힘들어야 정상일 정도의 큰 부상.

그럼에도 유예린은 검을 놓지 않았다.

부하들에게 맡기고 물러선다는 선택지는 애초부터 그녀에게 없었으니까.

이 싸움 자체가 미래의 적을 제거한다기보다는 자신의 개인적인 분노에 의한 것이다.

죽은 부하는 없지만, 전투 중에 크게 다친 부하는 꽤 있다.

자신의 욕망으로 이런 싸움을 시작해 놓고 부상을 당했다는 이유로 뒤로 물러날 정도로 유예린은 뻔뻔하지 않았다.

“끝으로 갈 때가 됐어요.”

통상의 검보다 조금 짧은 검을 들어 올리며 유예린은 웃었다.

“그럼 시작하죠.”

그녀의 신호와 함께 노공을 압박하던 대주 둘이 달려든다.

유예린이 이를 악물고 버틴 것은 단지 시간을 끄는 것만이 목표였던 게 아니었다.

‘역시 보고 있었구나!’

마치 예상했다는 듯 자신의 검을 받아 내는 적을 보며 노공은 이를 악물었다.

유예린을 상대로 이제는 세는 것도 힘들 정도로 수없이 검을 휘둘렀으니 그 모든 것을 지켜보던 이들이 검의 궤적에 익숙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만한 눈썰미도 없이 암혈단의 대주가 되진 못했을 테니까.

아마 이대로 가면 자신이 패배할 확률이 팔 할을 넘을 터.

까득.

‘그렇다면 그 이 할에 걸어 주마!’

저 가증스러운 독사의 목을 베고, 그놈의 면전에 던져 주리라.

독기를 품은 노공은 검을 휘둘렀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어떻게든 자신의 복수를 이뤄 내기 위해.

하지만, 그럼에도 몸의 상처는 늘어나고 적들의 움직임은 한층 더 날카로워진다.

자신의 공격에 적들이 적응하는 것이 느껴진다.

자신이 지쳐 가는 것이 느껴진다.

죽음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순간.

[이건, 예상 밖의 상황이군.]

기이한 목소리가 전장을 비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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