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9화
148화-내놔 (6)
흑관(黑棺).
설천위가 이 기술을 처음 고안해 낸 건 당연히 백화단주에게서 술법을 전수받을 때였다.
‘방어의 기본은 감싸는 거예요.’
면(面)을 만들어 내서 공(空)을 지키는 것.
그것이 바로 설천위가 배운 방어계 술법의 기본이다.
그 기본 중의 기본을 불과 하루 만에 배우고, 그 응용을 시작하는 설천위의 재능에는 백화단주마저 감탄했지만…….
[이 광경을 보면 뭐라 할지 모르겠군.]
그런 백화단주도 설천위가 이만큼 빠르게 성장할 줄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으리라.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천마는 고개를 저었다.
빽빽하게 자리 잡아 장서의 몸을 완전히 감싼 흑관.
면으로 공간을 만드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만들어 낸 공간으로 또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 냈다.
[노오오오오옴!!]
쾅!!
저 강력한 악귀조차 벗어나지 못할, 굳건한 공간을.
장서가 뿜어내는 강렬한 기파가 흑관을 때렸지만, 폭음만 동굴을 뒤흔들 뿐 흑관은 미동조차 없이 장서를 단단히 묶어 내고 있었다.
“흠.”
그리고 그 광경을 만들어 낸 장본인인 설천위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미간을 찡그리고 있었다.
“이래도 부족하네.”
[끄오오오오! 노오옴!!]
“거, 대사가 참 단조롭네. 글 못 쓰는 작가도 그것보단 다양하게 비명을 쓰겠어.”
흑관에 갇힌 채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는 장서를 비웃으며 설천위는 또 하나의 부적을 꺼냈다.
[흑관(黑棺)-방벽(防壁)]
좋은 술법이지만, 역시 아쉽다.
초기에 원했던 공격력과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으니까.
내부 압력으로 망가트린다는 결과에 도달하지 못한 점이 참 아쉽다고 해야 하나.
[끄아아아아악!]
점점 더 커지는 목소리.
아니, 비명이라고 해야 하나?
고통스러운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제대로 써 보는 건 처음이니까.
거기에다.
끼기긱.
하나하나는 아직 버티지만, 그 결속력은 한계에 도달한 것이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방벽(防壁)이다.
밖의 적으로부터 아군을 지키기 위해 만드는 것.
그렇다면, 그저 단단하기만 하면 되는가?
아니다.
성벽이란 것은 다가오는 적을 물리칠 수 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절대 무너지지 않는 벽 따윈 없다.
그러니 무너지기 전에 적을 죽이는 것이야말로 최강의 방벽이다.
‘철백 녀석이 들으면 반대할지도 모르겠지만.’
피식 웃으며, 하나의 부적을 더 던지는 설천위.
부적 없이 영력을 쥐어짜 억지로 만든 술법이라서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보충하면 될 일이다.
[흑관(黑棺)-방벽(防壁)]
한 번 더.
장서의 몸을 수십 개의 흑관이 감싼다.
이젠 헤아리는 것도 힘겨워진 숫자의 흑관에 집어삼켜진 장서.
그 거체를 완전히 감싼 흑관 덕에 마치 거대한 현무암 동상이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이가 없군.”
그렇기에 그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던 곤괴는 혀를 내둘렀다.
그냥 조금 독특한 어린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몇이나 혼을 데리고 다니면서 술사가 아닌 무인의 길을 걷는 특이한 녀석.
그저 그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용이었군.”
저 검은 무리에 휩싸여 완전히 묶여 버린 녀석은 자신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던 상대다.
싸운다면 지지는 않으나 이길 수 없는 존재.
물론 무(武)의 경지 차이에서 나오는 격차로 인해 상대의 공격에 당하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혼의 질적 차이에서 나오는 격차로 인해 자신도 상대에게 치명타를 먹일 수 없다.
서로가 서로를 죽일 수 없는 싸움.
상위 악귀와 초인의 싸움은 바로 그런 것이다.
괜히 무림맹에 악귀를 전문으로 상대하는 단이 두 개나 있는 게 아니다.
물론, 그것 외에도 두 단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었지만.
[영적인 재능만큼은 확실하지.]
곤괴의 감탄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천마.
다른 혼들도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어 곤괴는 그것이 더 어이가 없었다.
생전에 자신만큼이나 강했던 인간들이 죽어서 이러고 있는 모습이라니.
‘……나도 저리될까 두렵군.’
죽을 땐 저 설가 놈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죽어야겠어.
곤괴가 고개를 젓는 그 순간.
이젠 거의 움직임이 없어진 데다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장서를 보며 설천위는 손을 움켜쥐고 있었다.
“이렇겐가?”
살짝 고개를 갸웃하며 영력을 움직이는 설천위.
그리고 그 순간.
끼끼기긱.
[끄으으으읍!]
흑관들이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묻혀 있던 장서의 신음이 한층 더 강하게 울려 퍼진다.
그리고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는 설천위.
“이거네.”
내부의 압력을 올려 죽이는 건 못 하지만…….
외부에서 강제로 압박해 압력을 올리는 거라면 가능하지.
[네, 네노오옴……!]
“오, 아직도 정신이 남아 있나 보네?”
흑관 사이로 새어 나오는 목소리에 어깨를 으쓱이는 설천위.
“그러게 왜 방심을 하고 그래?”
부적 없이, 영력만으로 펼쳐 낸 공격이라곤 하나 반응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안정되기 직전에 반응해 힘을 쏟아 냈다면 충분히 무너트릴 수 있었을 거다.
그런데 장서는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왜?
방심했기 때문이다.
인간 따위가 부적이나 수인의 도움 없이 자신에게 해를 가할 술법을 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인간 따위가 급하게 만들어 낸 술법 따윈 얼마든지 파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그 방심이, 그 오만이 장서를 저리 가둔 것이다.
까득.
이를 악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온다.
[이딴 술법으로 나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렇기에, 이 말 또한 사실이다.
죽일 수 없다.
이 정도 술법으로는.
나름대로 이유 있는 오만이지만…….
“음, 너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오만을 비웃으며 설천위는 천천히 장서를 향해 걸어갔다.
완전히 속박당해 눈빛조차 드러나지 않는 장서.
하지만 그의 흉흉한 기세만큼은 흑관들 사이의 미세한 틈을 뚫고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보통의 사람이라면 오금이 저려 접근조차 불가능했겠지만…….
“너, 내가 아직도 술사 같으냐?”
설천위는 입꼬리를 비틀며 손을 뻗는다.
그 손이 닿은 곳은 장서의 가슴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부분.
흑관 위에 손을 올린 설천위는 내부의 흐름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아직 맨손으론 안 되겠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손을 떼는 설천위.
그 목소리를 들으며 장서는 억지로 몸을 비틀었다.
설천위가 자신의 사정거리 내로 들어온 것은 확실하니, 어떻게든 속박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아쉽네.”
한 발자국 떨어져 거리를 재던 설천위는 장서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벌써 들키긴 싫었는데.”
[……네놈?]
들키긴 싫다.
그 뜬금없는 말에 담긴 뜻을 이해한 장서의 표정이 일변했다.
가면의 표정이 변할 정도로 격한 감정의 변화.
그 순간, 직감했다.
이 녀석은 위험하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한기는 결코 기분 탓이 아니다.
이 녀석은……!
스르르릉.
“그럼 잘 가라.”
도(刀)가 뽑혀 나오는 소리.
[네놈, 설마?]
설천위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직감한 장서가 다급하게 외치는 그 순간.
[참(斬)]
도가 선을 그었다.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리는, 깔끔한 호선 하나를.
방벽(防壁)이란 것은 적을 막는 것.
내부에서 쏟아 내는 온갖 것들은 막지 않는다.
설천위의 도를 부드럽게 받아들여 통과시킨 흑관들.
[이, 무, 슨…….]
“오, 아직도 말해? 역시 영체는 영체네.”
깔끔하게 목이 잘린 상태로 말을 이어 가는 장서를 보며 설천위는 웃었다.
“마침 잘됐네. 확실하게 경고해야 하니 조금 더 해 볼까?”
위에서 아래로.
좌에서 우로.
십자로 시작한 도격은 이내 그 틀에서 벗어나 무수한 궤적을 그려 낸다.
흑관을 통과하며 베고 또 벤다.
상대가 악귀이기에 가능한 방법.
사람이었다면 이런 방법을 써야 하는 상대에겐 이 흑관이 버틸 리가 없을 것이고, 이 흑관이 버틸 수 있는 수준이면 굳이 이 방법을 쓸 필요가 없으니까.
그러니, 상대가 악귀일 때만 가능한 처형이다.
[참, 무(武)와 술(術)의 조화라는 것이 이리도 무서울 줄이야.]
[보는 내가 더 섬뜩하군.]
혼들이 혀를 차는 소리를 뒤로한 채 설천위는 어느새 말소리조차 사라진 것을 깨닫곤 천천히 손을 뻗었다.
장서의 가슴에 닿는 손.
“음, 끝났네.”
혼이 완전히 갈기갈기 조각난 것이 느껴진다.
여기에서 회복?
그게 가능하면 고작해야 이런 술법에 당할 리도 없다.
흑관이 서서히 흩어지며 거대한 장서의 몸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완전히 허물어지는 몸.
흐르는 피는 없다.
그 육체는 가짜이며, 장서는 영적인 존재에 더 가까운 상태의 악귀였으니까.
진짜 육체를 얻은 놈들과는 다르다.
그렇기에.
“이건 좋네.”
설천위는 웃으며 장서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점점 흩어져 가는 장서의 혼을 붙잡는다.
산산조각이 나 자아가 망가져 버린 혼을 흡수한다.
그렇게 장서의 흔적까지 남기지 않고 완전히 흡수해 버린 설천위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자, 그럼 시간이 없으니 빨리 진행합시다.”
묘한 표정으로 서 있는 곤괴를 스친 시선이 그 옆에서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신의에게로 향한다.
성큼성큼 그에게 다가간 설천위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일단, 약재가 있는 곳에 대한 정보부터 알려 주실까?”
가진 거 있으면 다 내놔.
아, 이게 아닌가?
* * *
[……장서가 죽었다고?]
어두운 동굴 안.
낮게 울리는 목소리에 동굴 바닥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던 사내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그렇습니다. 연결이 끊어져 위패가 불타서 재가 되었습니다.”
[순찰을 나가 죽었다라…….]
흥미롭다는 듯 피식 웃는 목소리.
그 목소리에 사내는 오히려 더 깊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자세히 알아보도록.]
장서를 죽이려면 무림맹에서도 적어도 부단주급은 나서야 한다.
머릿수로 밀어붙이면 대주급과 그 대원들로도 힘겹게 가능은 하겠지만…….
[우리의 정보에 없는 녀석이라……. 흥미롭군.]
그런 놈들이 움직였다는 보고는 하나도 없었다.
일거수일투족을 상세하게 살피고 있으니 9할 이상의 적중률을 자랑하는 정보다.
즉, 높은 확률로 자신들의 눈 밖에 존재하던 강자가 있다는 소리.
그러니 흥미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떤 놈들이냐? 궁금하구나.]
* * *
“끄으으읍!”
약물로 가득한 욕조.
그 속에서 이를 악물고 버티던 노공은 희미하게 느껴지는 감각에 더욱더 신음을 삼켰다.
돌아오고 있다.
오른팔의 감각이.
그 깔끔하기 그지없었던 검격.
덕분에 단면이 깔끔해 어떻게든 이어 붙일 수 있었다.
“참으로 재미있는 녀석이구나.”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는 노공의 앞에 10살을 조금 넘긴 것 같은 외모의 소녀가 당과를 입에 문 채 웃었다.
“대주 놈 하나의 손목을 잘랐다기에 기껏 붙여 놨더니 이번엔 아예 송장이 되어 돌아왔고…….”
노공의 옆, 삐쩍 말라 죽어 버린 윤백의 시체를 보며 소녀는 웃었다.
“이번엔 네 녀석의 팔까지 잘라 버리다니. 본 교의 전력이 크게 깎여 나가는구나.”
“……회복할 것입니다.”
“그래야지. 어린 것이 벌써부터 아프다고 떼를 쓰면 쓰나.”
나 때는 말이야, 팔 하나 잘린 것 정도는 상처로도 안 쳤다 이 말이야.
히죽히죽 웃으며 당과를 입에서 꺼낸 소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노공의 상태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 정도면 슬슬 네 회복에 도움이 될 정보 하나를 알려 주마.”
“……정보 말입니까?”
“아아, 찾았다.”
찾았다.
그 말에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려던 노공을 제지한 소녀는 웃으며 당과를 와작 씹었다.
“곤괴라는 녀석이 손녀를 참 아끼는 모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