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7화
146화-내놔 (4)
흑관(黑棺).
설천위가 만들어 낸, 독특한 형태의 술법.
그것은 검은 상자 형태의 관을 소환하는 것으로, 그 상자를 이루는 것은 주술적으로 만들어진 벽이다.
흑관을 만들 때 쓰는 부적인 방어용 결계를 만드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때문에 그 본질은 어디까지나 수비에 있고, 별다른 공격성을 띠진 못한다.
면을 합쳐 만든 공간으로, 적을 가둔다.
그게 전부인 술법.
마치 아군을 치료하기 위해 다치기 전에 적을 처리한다는 공격적 힐러 같은 개념의 주박술.
그 효율성은 본래 바닥으로, 다른 술사들이 쓰면 제대로 적을 속박하는 것조차 힘든 불완전한 술법이지만…….
“노오오옴!! 이게 무슨 짓이냐!!”
“뭐긴, 속박이지.”
설천위의 미친 재능은, 그것조차 완전하게 만들어 낸다.
흑관을 만들어 내고, 사용하면서 설천위는 자신이 한 가지 잘못 알고 있었던 점을 깨달았다.
설천위는 술법에 재능이 적당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게임 속에서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설천위는 본래 중반을 넘어가서야 술법을 배운다.
학관을 졸업한 후에야 배울 기회가 주어진다.
겨우 삼류에 올라 꾸역꾸역 무림맹의 무사가 된 설천위.
그를 데리고 임무를 다니다가 백화단과 연이 생기면서 그때부터 술법을 배울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설천위는 그때부터 배워도 후반부에 도달하면 거의 술사 1인분에 가까운 실력을 갖추게 된다.
물론 가까울 뿐 못 미치기에 쓰지 않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것만으로도 기적이라 할 수 있다.
엄청난 재능이 없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말도 안 되게 빠른 성장 속도.
그런데 지금은 그 성장 속도를 최대로 가속시킨 상황.
거의 시작 지점부터 영안을 개안했고, 영력을 쌓았으며.
그를 보조할 스킬들을 익혔다.
거기에다 백화단주가 직접 전수해 준 술법까지.
현시점에서 술사 1인분을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설령, 그리 깊게 익히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우득!
“노옴!!”
“아, 거참 아까부터 계속 같은 말만 반복하네.”
괴성을 지르는 악귀를 싱겁다는 듯 바라본 설천위였지만, 상황은 그리 싱겁지 않았다.
흑관은 결국 방어에서 파생된, 반쪽짜리 박도(縛道).
눈앞에 있는 녀석을 한없이 묶어 두기엔 부족했다.
훗날 구부주귀(久腐洲鬼)가 되는 후도조차 묶어 냈던 술법이지만, 그때 후도는 미완성의 씨앗이었던 상황.
인간을 먹고 먹어 힘을 키운 놈과 비교할 수는 없다.
“끄으으으오오오오!!”
흑관 자체를 부수지 못하니 벽에 박힌 흑관을 뽑아내는 길을 선택한 악귀.
과하게 힘을 주는 것으로 인해 그 육체가 삐걱거리지만 애초에 그건 가짜 몸.
고통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억지로 육체의 자유를 되찾는다.
그 과정에서 육체가 망가지지만, 문제없다.
그 몸에 돌고 있는 힘은 무너진 육체를 단숨에 복구해 내니까.
쿵!
결국 묵직한 발을 땅에 다시 디디는 데 성공한 악귀의 눈이 분노로 마구 이글거린다.
겨우 벽에서 발을 뽑아내긴 했으나, 아직도 몸에 박힌 흑관을 완전히 빼내지 못했다.
마치 족쇄처럼 육체에 채워진 술법.
그 강도는 여태껏 봤던 술사들의 결계 따윈 우습게 여겨질 정도로 단단했다.
“노옴……. 이제 끝이다!”
그렇기에 악귀는 장담했다.
이만한 술법을 유지하면서 자신을 상대할 여력 따윈 있을 리 없다고.
승리에 찬 확신을 품은 악귀가 성큼 걸음을 옮기는 순간.
우웅.
펑!
팔 하나가 날아갔다.
“오! 성공!”
그리고 신기하다는 듯 외치는 설천위.
마치 이렇게 될 줄 몰랐다는 듯 희희낙락한 모습.
허나 그 모습에 악귀는 분노조차 잊고 당황한 듯 설천위를 바라봤다.
“네놈, 대체 무슨 짓을?”
“아, 괜찮아. 신경 쓰지 마. 그냥 실험한 것뿐이니까.”
흑관(黑棺)의 모티브가 된 만화에서의 흑관은 본래 박도(縛道)가 아닌 파도(破道)였다.
즉, 묶기 위한 술법이 아니라 부수기 위한 술법이란 소리.
너무 쓸모 있어서 설천위도 까먹을 뻔했지만, 저 단단한 내구성은 내부의 중력을 크게 높이는 공격을 위해 연구하다가 생긴 부산물일 뿐이다.
물론, 중력을 이용한다는 말도 안 되는 방식은 포기했다.
지식도 부족했고, 그렇게 쓴다고 한들 제 위력이 나올지도 솔직히 의문이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연구를 그만둔 건 아니었다.
설천위에게 무(武)를 쌓는 수련이 학업(學業)이라면, 술법을 쌓는 수련은 취미다.
즐겁고, 하고 싶은 대로 대체로 이루어지며 성취감까지 느껴지는 그런 가벼운 취미?
재미있고 즐겁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깊게 파고들게 되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어쩌다 보니 절반을 완성했다.
공격 자체가 가능하도록 바꾸는 데 성공한 거다.
그 증거로…….
“끄아악!”
펑!
이번엔 왼쪽 다리가 터져 나간다.
어느새 잘려 나갔던 오른팔은 다시 재생되었지만, 폭발과 함께 절단된 왼쪽 다리의 재생을 위해 악귀는 또다시 멈춰 섰다.
폭발.
원리는 간단하다.
흑관의 벽이 되는 부분을 진동시켜 터트린다.
그 파편이 단단한 만큼 충분한 추진력만 얻으면 훌륭한 무기가 된다.
뭐, 원래 원한 건 벽들을 진동시켜 만든 파동으로 내부를 망가트리는 거였지만.
결과적으로 공격은 가능하게 됐으니까.
이것도 나름 쓸 만하다.
[흑관(黑棺)-폭(爆)]이라고 명명할까?
이런 건 또 구분 지어 놓는 게 좋은 거지.
음음.
결코 그런 취미가 아니라…….
“이런……! 잡종 따위가아아아!!”
왼쪽 다리가 다시 재생된 놈이 득달같이 달려든다.
이 이상 거리를 두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
자기 손에 잡히기만 하면 어떻게든 이길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담긴 움직임.
그 믿음을 깨 주는 것도 좋겠지만…….
짝!
손을 앞으로 모아 마주친 설천위의 시선이 스산하게 빛난다.
[사계(挱界)-개(改)]
설천위의 손에서 부딪힌 영력이 하나의 파동이 되어 퍼져 나간다.
다만, 그 방향은 전체가 아닌…….
“그아아아아아!!”
한 방향.
마치 음파가 한 곳에 모인 것처럼.
흑관의 강화를 위해 연구하다 개척해 낸, 수색 계열 술법인 사계(挱界)의 재발견.
영력을 특정한 형태로 퍼트려 주변의 결계를 찾는 술법.
설천위는 이걸 무지막지한 영력과 독특한 파동을 더해 결계를 찾는 김에 부수기도 하는 술법으로 개조했다.
그리고 그걸 한 번 더 개조.
파동을 한 곳으로 모아 마치 음파의 포탄을 쏜 것 같은 공격력을 만들어 냈다.
“끄으어거!”
달려오던 그대로 복부에 구멍이 뚫리며 앞으로 꼬꾸라진 악귀가 억지로 몸을 일으킨다.
참 훌륭한 정신력이구먼.
“씁, 좀 더 개조해야겠는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원래는 파동으로 적의 내부만을 곤죽으로 만드는 것을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위력이 너무 강하다.
엘레강스하지 못하구먼.
“네노오오옴!! 놀고 있구나아아!!”
“뭐야, 이제 알았어?”
악귀의 괴성에 웃으며 어깨를 으쓱이는 설천위.
악귀의 등급인 백(魄), 원(怨), 귀(鬼), 재(災), 멸(滅)에서 눈앞의 악귀는 귀(鬼) 등급.
전에 상대했던 후도나 괴와 같은 등급이다.
다만, 후도와 괴는 항아리 속의 고독과 같은 씨앗이었던 것에 비해 이 녀석은 싹을 틔우고 제 몸을 단단하게 만든, 이미 성장한 존재라는 점이 차이일 뿐.
힘의 크기는 비슷하나 그 질적인 측면에서 좀 더 단단했다.
당연히 실질적인 전투력은 그들보다 한 수 위였지만.
그 정도 차이로는 넘을 수 없는 깊고도 넓은 격차가 있다.
“쯧.”
“예입. 그만하겠습니다.”
어느새 주변에 있던 적들의 목을 전부 꺾어 버린 곤괴의 혀 차는 소리에 설천위는 재깍 도를 들었다.
“자, 혹시나 해서 묻는데 다른 놈들의 위치는?”
“모른다.”
“의리?”
“진짜 모른다. 우리가 서로를 믿을 리 없다는 것 정도는 알지 않나?”
분노가 담긴, 동시에 체념의 감정이 담긴 눈동자에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지.
악귀 놈들이 서로를 믿고 의지할 리가 없다.
뭐, 말이 악귀지 이성을 완전히 되찾아 웬만한 사람보다 나은 녀석들도 있긴 하지만…….
최소한 이놈들은 아니다.
“뭐, 그럼 됐어.”
가볍게 들어 올리는 도(刀).
평소라면 내공을 머금고 있어야 할 도에 이번엔 영력이 끈적하게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일격.
깔끔한 일격이 악귀의 목을 날린다.
[음, 많이 좋아졌구나.]
소백진의 칭찬에 어깨를 으쓱인 설천위는 도를 집어넣고 길 안내를 시켰던 악귀를 바라봤다.
“다음.”
[옙!]
“……다음?”
설천위와 악귀의 대화에 미간을 찡그리는 곤괴.
다음이라니?
아니, 애초에.
“신의를 찾는다고 하지 않…….”
아!
그러고 보니, 이놈이 신의라는 말은 안 했구나.
조급함에 생각이 짧아졌다.
그것을 인정한 곤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설천위를 바라봤다.
그 시선을 느낀 설천위는 악귀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 다섯 군데 정도만 더 정리하면 나오지 않을까요?”
여기에 있는 석회동굴은 한두 곳이 아니니까.
* * *
“노오오옴!!”
제물 운송을 전문으로 맡았던 악귀를 붙잡은 것은 행운이었다.
녀석이 기억하는 곳이 몇 군데 있었으니까.
악귀답게 망설임 없이 동료를 팔아 주기도 했고.
그렇게 네 번째 의식을 저지하는 데 성공한 설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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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력이 中上으로 상승합니다.
[패령안(覇靈眼)]이 성장합니다.
[영혼지체(靈魂之體)]가 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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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이나 정체되어 있던 영력이 상승한 건 물론이고, 그 부가 효과로 영력과 관련된 스킬이 두 개나 레벨업 했다.
이로써 [패령안(覇靈眼)]과 [영혼지체(靈魂之體)]가 둘 다 삼성(三聖)에 올랐다.
그나저나 아직도 성장이 한참 남긴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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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지체(靈魂之體)(上中)(三星)
-숙련도 13/100
영혼과 일체화할 수 있는 재능을 품은 육체.
영혼을 통해 얻는 모든 경험치에 추가 보정이 더해진다.
영혼을 이용한 모든 스킬의 효율이 상승한다.
영력을 다루는 것이 조금 더 섬세해진다.
스킬의 단계에 따라 스킬의 효과가 증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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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지체(靈魂之體)]에는 한 줄이 추가됐다.
영력을 다루는 게 더 섬세해졌다라…….
이건 좀 기대되는군.
고개를 끄덕이며, 성장을 확인한 설천위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뭐, 영력이 성장할 거란 건 예상했었으니까.
애초에 조금 느린 감이 없지 않아 있을 정도니까.
[영혼지체(靈魂之體)] 같은 개사기 스킬을 들고 이제야 中上을 찍었다는 소리니까.
근무 태만 수준이다.
자, 이제 문제는…….
“멀쩡하네?”
[흥.]
이 인간이다.
네 번째 습격에서 겨우 찾아낸 목표.
의식이 진행되던 곳 구석.
조잡하게 만들어진 나무 감옥 안에 갇혀 있는 악귀를 보며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순순히 협조하실 생각은?”
[꺼져라!]
거, 괴팍하기는.
설천위는 나무 감옥 앞에 쪼그려 앉았다.
“여기에 있다고 뭐가 되나? 나랑 같이 가죠?”
[흥, 네놈들 따위에게 굴복할 바엔 영생을 이곳에서 썩겠다!]
아, 이 인간 지금 이게 짝짜꿍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연기한다고?
하긴, 악귀 하나 정도 제물로 바쳐서 이 인간을 얻으면 그건 참으로 많이 남는 장사이긴 하지만…….
“안 돼. 안 해 줄 거야.”
[……뭐가 말이냐?]
“무슨 증명이니 뭐니 하면서 겁나 귀찮은 일들 맡길 거잖아.”
절대 안 해 줘.
게임에서 그것들을 해결하느라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지 알아?
그걸 현실에서 하라고?
그 미친 노가다를?
3년이 걸려도 힘들겠다.
“자, 선택지. 함께할 거야, 아니면 여기서 썩을 거야?”
[방금 말했을 터인데? 나는 네놈들을 따르느니 여기서……!]
“오케이, 같이 간다고?”
[노옴! 어린놈이 어른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구나!]
[음음, 맞는 말이긴 하지.]
[싹퉁머리 없는 놈.]
아니, 당신들 그거에 왜 동조하고 있어?
암영의적과 소백진을 살짝 쏘아본 설천위는 이내 나무 감옥 앞으로 다가가 손을 쑥 뻗었다.
동물 우리처럼 작아 설천위의 손을 피하지 못하고 그 머리가 붙잡히는 신의(神醫).
그리고.
“자, 갑시다.”
[끄아아아악! 놔라! 이놈아!!]
나무 감옥을 부순 설천위가 강제로 신의를 끄집어냈다.
신의가 발버둥치며 발악하는 그 순간.
[웬 놈이냐?]
쾅!!
초고속으로 반응한 설천위가 허공으로 튀어 올랐으나 마치 그걸 예상이라도 한 듯 설천위의 육체를 거대한 창이 꿰뚫는다.
“설가 놈!!”
그 모습에 다급하게 외치는 곤괴.
그의 시선엔 어느새 동굴 한쪽에 선 거한을 향하고 있었다.
[벌레들이 마당에서 난리를 치고 있었군.]
흉악한 기세가 동굴 전체를 뒤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