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6화
145화-내놔 (3)
무림은 넓고 기사(奇事)는 많다.
곤괴는 타인에게 괴이한 존재라고 불릴 정도로 특출 난 삶을 살아왔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해야 할 것을 하는 삶.
절대 하지 않을 듯했던 혼인도 했고, 그 자식이 혼인을 해 자식을 보는 것까지 보았다.
젊은 시절이라면 도저히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일들.
허나, 그 모든 것은 현실이 되었고 곤괴 본인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이런 사실을 깨닫고 난 뒤부턴 잘 놀라지 않게 됐다.
자신이 상상하지 못하는 일이라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거인이나 소인이 있다고 해도 별로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이건…… 조금 놀랍구먼.’
악귀를 장난감처럼 다루는 무림학관의 학생이라니.
악귀가 어떤 존재인가.
무인은 상대하기 어렵다는 특징과 더불어 예측하기 어려운 각 개체의 독특한 능력.
전문적으로 상대하는 단체가 무림맹에만 둘이나 있는 이유가 있다.
그 숫자는 그리 많지 않지만, 그 위험성만은 확실한 존재인데…….
[헤헤, 이, 이 앞입니다요.]
“확실하지?”
악귀가 아첨이나 하는 꼴이라니.
영안을 개안하기 위해 갖은 고수들을 찾아다녔지만 그들에게서도 보지 못했던 광경이다.
만귀단과 백화단의 단주라면 보여 줄 수 있으려나.
헛웃음이 절로 나오는 광경.
그 광경을 보고 걸으면서 곤괴는 이내 생각을 포기했다.
“그래서, 신의(神醫)는 무슨 소리지?”
곤괴의 질문에 한참 동안 악귀를 갈구던 설천위가 고개를 돌렸다.
“신의는 신의죠?”
“신의(神醫)가 현재 황실에 있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왜 여기에서 신의를 찾느냐는 말이다.”
신의(神醫).
한 세대에 꼭 한 명씩은 등장하는 의술의 정점.
이번 시대의 신의는 그 성격이 온화하기로 유명하고, 가족이 있어 은거기인 같은 생활은 하지 않는다.
황실에 머무르며 아예 녹봉을 받는 삶을 선택했을 정도니까.
문제는 신의가 황실에서 일한다는 점이다.
“백방으로 알아봤으나, 내 손녀가 신의의 진찰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곤괴는 정사지간의 인물.
악인이라 부르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선인이라 부를 만한 삶을 살아온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그것이 무림의 법도를 기준으로 했을 때라는 점.
곤괴가 마음에 안 들어 때려죽인 관인이 수두룩하다.
그의 자식은 아비의 위명을 이용해 장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상재가 뛰어나 그 악명이 오히려 이점으로 작용했으나, 손녀의 치료에는 큰 악수로 작용했다.
황실에서 그를 거부한 것이다.
황실의 주축이 되는 권력자들이 거부하니 신의에게 줄을 대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거기에다.
“야밤에 몰래 들어가 만나는 것은 가능했으나, 그조차 치료를 장담하지 못했다.”
손녀의 몸 상태만큼이나 절박했던 곤괴다.
야밤에 창문을 넘어서까지 신의를 만났으나, 결국 안 된다는 답변만을 듣고 물러나야 했다.
만약 그에게서 방법을 들을 수 있었다면 이러고 있을 이유도 없었을 터.
아마 손녀의 재롱이나 보면서 말년을 보내고 있었을 거다.
그런데, 신의를 만나?
곤괴의 눈이 날카로워지는 순간.
설천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신의(神醫)치고는 좀 부실하긴 하죠.”
괜히 황실에 자리를 잡은 것이 아니다.
역대 신의들이 정과 사에 속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강호를 주유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압도적인 의술이 양쪽 모두에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서로 견제하다 보니 손을 못 쓰는 느낌?
그러나 이번 시대의 신의(神醫)는 그럴 역량이 부족해 황실에 있다는 소문이 있다.
‘뭐, 반쯤 사실이지.’
게임 속에서 뭐 그렇게 고칠 수 없는 병이 많은지.
기껏 만나도 더럽게 쓸모없었지.
고개를 주억거리는 설천위의 모습에 곤괴의 눈이 짜게 식어 가는 순간.
“아, 전대 신의를 찾는 거예요. 아니, 전전대였나?”
[전전대 맞습니다요.]
“……뭐라?”
아니, 전전대라니.
“정선신의(正善神醫)를 말하는 것이냐?”
“네, 맞을 걸요?”
역대 신의들 중에서도 가장 성품이 올바르고 선했다고 전해지는 인물.
치료에 재물을 따지지 않았으며, 수많은 은혜를 베풀어 유명한 인물이다.
그런데…….
“……악귀를 찾고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수십 년 전에 행방불명이 되었으니 분명 죽긴 죽었을 거다.
그런데 악귀라니?
“선한 성품으로 유명했던 인물이다. 아무리 죽었다고 한들 악귀가 될 리가…….”
“있지요.”
곤괴의 말을 끊으며, 설천위는 작게 웃었다.
그 안에 담긴 싸늘함에 곤괴는 낮게 가라앉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이 세상에 절대 불변의 백(白)은 없으니까요.”
반대로 절대 불변의 흑(黑)도 없다.
아니,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천위가 아는 육도의 세상에서 그런 존재는 없다.
인간도, 신(神)도.
“악의(惡意)에 발목이 붙잡힌 순간, 결국 검게 변하는 법이죠.”
* * *
“……참 빨리도 움직이네요.”
광서에 도착한 유예린 일행은 그가 이미 귀주로 떠났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아니, 납치당한 인간이 뭘 이렇게 열심히 돌아다니는 거야.
곤괴와 함께 귀주 쪽으로 갔다는 정보를 접한 유예린은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쫓아가면 또 엇갈리지 않으리란 법이 없죠.’
이쪽에서 도착하니 저쪽에선 이미 일을 마치고 돌아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유예린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던 그 순간.
“무림학관에서 오신 은검 대협 되십니까?”
정갈하게 옷을 차려입고 다가온 한 사내의 모습에 유예린은 고개를 돌렸다.
딱히 얼굴을 가리고 다니지 않으니 정체가 노출된 거야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
“누구시죠?”
기세가 남다르다.
보통 상인들이 입고 있는 옷을 걸치고 있었음에도, 그 기세가 쉽사리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묵직하다.
그렇기에 유예린이 살짝 경계심을 담아 바라보자, 사내는 웃으며 포권을 취했다.
“곤 상단을 운영하고 있는 남척입니다.”
곤 상단?
그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린 순간, 유예린은 곧바로 일어나 인사했다.
“유가의 유예린이라고 합니다. 제 낭군님께서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하하, 신세라뇨. 오히려 저희가 도움을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도움이요?”
설천위가 곤 상단 같은 큰 곳에 도움을 줄 능력이 되었던가?
이런 말을 하기 뭐하지만, 그런 능력이 딱히 없을 텐데?
유예린의 눈에 의문이 더해지자 남척은 웃으며 손짓했다.
“일이 끝나면 아버지와 함께 제 딸이 있는 곳으로 올 겁니다. 함께 가시겠습니까?”
“……따님이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영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그때.
남척이 웃으며 대답했다.
“참으로 대단한 부군을 두셨습니다. 어떤 의원도 고칠 수 있다고 장담 못 한 병을 그리 고칠 수 있다고 확답하시다니요.”
“……예?”
뭘?
병을?
고쳐?
누가?
설천위가?
아니, 독도 아니고 병을?
유예린을 비롯해 철백과 서하영의 표정까지 묘해지는 순간.
남척의 눈초리가 미묘하게 날카로워졌다.
정면에서 그의 표정을 살피던 유예린도 겨우 느낄 수 있을 만한 미묘한 변화.
그렇기에.
“흠흠, 설 가가가 참 여러 가지 분야를 알고 있기는 하지요.”
‘응?’
‘언니?’
갑자기 태세를 바꾸는 유예린의 모습에 철백과 서하영이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어느새 남척의 앞에 선 유예린이 그를 바라보며 웃었다.
“허면 저희가 따님과 함께 기다려도 되겠습니까?”
“하하! 물론이지요! 자자, 따라오시지요.”
웃으며 객잔을 나서는 남척.
그 뒤를 따르는 유예린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거예요.’
의술이라곤 쥐뿔도 모르면서.
성큼성큼 앞장서는 남척의 뒷모습을 보며 유예린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상황 파악부터 제대로 하자.
처벌 수위는…… 그다음에 정해도 되겠지.
* * *
“으흐으으.”
“……갑자기 왜 그러느냐?”
“씁, 갑자기 오한이 들어서요.”
몸이 허해졌나?
아니면…….
“네가 속으로 저주했냐?”
[아, 아닙니다요!]
다급하게 고개를 젓는 악귀.
그 모습을 싸늘하게 지켜보던 설천위는 결국 어깨를 으쓱였다.
뭐, 상관없나.
“아까 말한 건 확실하지?”
[예, 예. 두말하면 입 아픕니다요.]
연신 굽신거리는 악귀.
이미 완전히 종속된 악귀이다 보니 솔직히 이 이상의 의심은 별 의미가 없긴 하다.
물론 그래도 방심할 순 없지만.
사혈천의 주축이 되는 놈들은 절대 방심해선 안 되는 녀석들이니까.
“그나저나 거의 도착한 것 같은데…….”
[예, 거의 도착했습니다요.]
악귀의 대답에 설천위와 곤괴는 서서히 기척을 죽이기 시작했다.
지금 이곳에는 악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악귀는 애초에 몇 명 없고, 주로 활동하고 있는 건 인간들이다.
그리고.
스르릉.
쇠사슬이 돌을 긁어내는 소리에 곤괴와 설천위는 걸음을 멈췄다.
딱히 벽에 귀를 대지 않아도 선명하게 들리는 소리.
가깝다.
설천위보다 먼저 정확하게 위치를 짚어 낸 곤괴가 조심스럽게 살폈고, 그 뒤를 따라 설천위도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었다.
“끄륵!”
숨이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몸을 꿈틀거리는 사람.
목에 난 구멍은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알려 줬다.
그 외에도 입에 재갈이 물린 채 손발의 동맥이 끊어져 죽어 가는 사람.
복부에 생긴 수많은 자상에서 피가 흘러나와 죽어 가는 사람 등등.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
죽어 가는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존재가 피로 만들어진 웅덩이 속에서 꿈틀거린다.
“인간들을 부탁해도 될까요?”
어느새 숨는 것을 잊어버린 채 도를 뽑아 든 설천위의 모습에 곤괴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없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그리고 땅을 박차는 설천위.
단숨에 중앙을 가르는 그의 움직임에 사람들을 끌던 무인 몇이 반응했다.
“웬 놈이냐!”
고함과 함께 무기를 꺼내 드는 이들.
하지만.
“기분이 좋지 못하구나.”
설천위보다 늦게 출발했으면서도 그보다 빨리 그들의 곁에 도달한 곤괴의 손에 몇 명이나 되는 이들의 목이 깔끔하게 돌아갔다.
즉사.
설천위가 가는 길에 존재하는 무인 몇을 단숨에 정리한 곤괴의 시선이 그제야 반응해 검을 뽑는 다른 무인들에게로 향한다.
“내, 너희를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다.”
끈적한 피로 가득한 동굴.
바닥을 채운 그 피보다도 더 끈적한 살기가 사혈천의 무인들을 감싼다.
그렇게 일방적인 학살이 시작되는 시점.
[웬 놈이냐!!]
“이런 놈이다!!”
설천위의 도가 무형의 막을 때린다.
[흥! 어딜 허접한 인간 놈이!]
그의 몸이 허공에서 막힌 것을 확인한 존재가 그 몸을 일으킨다.
거대한 육체.
머리에 난 두 개의 뿔.
몸통은 인간의 것과 비슷했지만, 양팔과 어깨 그리고 등에는 소의 것과 같은 털이 무성하게 나 있었다.
거기에다 흉측하게 꿈틀거리는 근육.
나름 단련을 거듭한 설천위는 물론이고, 철백도 감히 명함을 내밀기 힘들 정도로 크고 선명한 근육.
그 몸이 점점 더 선명하게 인세에 현현한다.
악귀(惡鬼) 중에서도 특이한 존재들이 있다.
순수한 영(靈)의 상태에서 벗어난 존재들.
육체를 손에 넣고, 생전의 쾌락과 삶을 다시 손에 넣기를 원하는 이들.
그들은 육체를 원했고, 자신들의 영을 담아낼 그릇을 원한다.
수많은 인간의 생기와 피로 만들어 낸 육체.
그것은 실체를 가지나 실체를 가지지 않는, 그릇된 육체.
허나, 그렇다고 해도…….
“노오오오오옴!!”
그 존재 자체는 실재한다.
강렬하기 그지없는 주먹이 대기를 가르며 쇄도한다.
단숨에 설천위의 머리통을 부술 듯 파고드는 주먹.
어느새 그를 감싸고 있던 막이 사라진 것을 눈치채고, 설천위는 허공에서 몸을 비틀었다.
허나 결국 허공에서 꿈틀거리는 움직임일 뿐.
“단숨에 끝내 주마!”
노성을 토해 내며 그런 설천위를 붙잡기 위해 손의 궤도를 바꾸는 악귀.
그리고 그 순간.
악귀는 시야에 들어온 종이쪼가리를 발견했다.
뭐지?
무슨 부적같이 생긴…….
“흑관(黑棺).”
쾅! 쾅!
“끄아아아악!”
검은 관이 단숨에 악귀의 팔다리를 꿰뚫는다.
순식간에 자유를 뺏긴 채 대(大)자로 밀려나는 악귀.
그 육체는 동굴 벽에 부딪혀서야 겨우 멈췄고…….
“이야기할 시간이다.”
[크르르르르르.]
그 앞에 선 설천위의 눈동자는 서늘하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