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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145화 (145/624)

제145화

144화-내놔 (2)

혜를 유모에게 맡기고 초가집을 떠난 설천위와 곤괴.

두 사람은 북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목표는 귀주.

그곳에서 찾아야 하는 건…….

“악귀?”

“예. 악귀를 찾아야 해요.”

악귀(惡鬼).

그 단어에 미간을 찡그린 곤괴는 앞에서 달리는 설천위의 뒤통수를 지그시 바라봤다.

고작 수 시간 만에 멀쩡해진 팔.

낙법도 제대로 못 하는 주제에 생각보다 빠른 발.

특이한 능력에 기이한 노력이 더해진 결과물.

‘저 노괴들의 합작이로군.’

그의 시선이 설천위에게 붙어 있는 혼들을 훑었다.

깊이가 가늠이 안 되는 혼이 하나.

생전의 자신과 비슷해 보이는 혼이 둘.

특이한 느낌의 혼이 여럿.

아마 위의 셋이 저렇게 만든 주력일 터.

달리는 설천위의 옷이 피부에 붙을 때마다 드러나는 근육의 형태가 심상치 않다.

아직 미완성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긴 하지만…….

‘거대한 기초공사.’

마치 황제의 성이라도 세우는 것처럼 큼지막한 공사를 준비하는 느낌.

그 위에 대체 무엇을 세우고자 하는 걸까.

그런 의문이 절로 들었지만, 곤괴는 고개를 저었다.

쓸데없는 생각이다.

중요한 건 이 녀석이 손녀를 치료해 줄 수 있느냐 없느냐일 뿐.

“악귀를 찾는다고 했는데, 내 손녀의 증상이 악귀와 관련이 있긴 하나 원인은…….”

“아, 이게 좀 깊은 사정이 있거든요.”

악귀를 찾는 이유는 두 가지.

“약재의 위치를 그 악귀가 알고 있을 거예요.”

이것 말고도 이유가 하나 더 있긴 한데, 그건 뭐 굳이 말해 줄 필요가 없지.

어깨를 으쓱이고 그대로 달리는 설천위.

그 뒤로 별다른 대화 없이 쭉 달린 두 사람은 귀주에 도착한 뒤로도 한참을 더 달렸다.

그리고.

“이쯤인데…….”

게임 속에서 봤던 지도와 혼들의 조언을 따라 찾아낸 위치.

산속 깊은 곳, 곳곳에 석회동굴의 입구가 있는 지형에 도착한 설천위는 걸음을 멈추고 곤괴를 바라봤다.

“여기서부터 찾으면 될 것 같아요.”

“……흠.”

오는 내내 별다른 마을에 들르지도 않고 따로 정보를 구하지도 않았다.

설천위의 기이하리만치 확고한 태도에 곤괴는 묘한 눈으로 설천위를 바라봤다.

아니, 이 땅이 얼마나 넓은데 악귀 하나를 찾는 걸 이렇게 빠르게 진행한다고?

너무 망설임이 없기에 오히려 신뢰감이 떨어지는 상황.

하지만.

‘방법이 없군.’

그렇다고 믿지 않을 수도 없다.

왜냐고?

그를 믿지 않는다는 것은 희망을 버리는 것과 같으니까.

그 어떤 의원도 치료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한 병이다.

목숨을 걸고 장담하는 녀석의 말을 믿지 않으면, 이젠 진짜 희망이 아예 없다.

결국 고개를 끄덕인 곤괴는 석회동굴의 안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런 곤괴의 뒤를 따르는 설천위.

사방으로 혼을 뿌린 설천위는 그대로 곤괴의 뒤를 따르며 눈에 내공을 더했다.

어둠을 꿰뚫어 보기 위한 방법.

‘선명하지 않네.’

게임에서 주인공 캐릭들은 이거 쓰면 무슨 대낮처럼 보였는데.

[미숙하구나.]

[쯧쯧, 좀 더 응축해서 잘해야지!]

아니, 잘해야지가 조언이야?

이래서 감각으로 때우는 천재들은 안 돼.

영 쓸모없는 암영의적의 조언을 한 귀로 흘리며, 설천위는 배운 방법대로 끊임없이 내공을 움직였다.

이것도 결국 훈련하면 어느 정도까진 수준이 올라갈 테니까.

문제는 그 수준까지 올라가는 과정이 참으로 지루하고 힘들다는 거지만.

어쩔 수 없지.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면서 한참을 걷는다.

곤괴도, 설천위도 별다른 말 없이 그저 걷고 걷기를 수 시간.

“사람이 있구나.”

곤괴의 말에 설천위는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집중.

[음, 확실히 있다. 다만, 이 거리라면 아직 저쪽에선 이쪽을 눈치채지 못 했을 거다.]

천마의 확증까지.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바로 벽에 귀를 댔다.

미묘하게 울리는 소리.

발걸음 소리다.

거기에다.

그그긍.

쇠가 돌을 긁는 소리.

그리고 희미하게 들리는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

당첨이다.

“여기네요.”

생각보다 더 빨리 찾았는데?

* * *

오춘은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하게 걸었다.

몇 번이고 반복해 온 일.

처음에 느꼈던 미묘한 거부감 따윈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제발, 물을…….”

“시간이 없다.”

애원하는 이의 팔에 묶인 쇠사슬을 한 번 강하게 당겨 쓰러지려는 것을 막은 오춘은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뒤를 따르는 쇠사슬에 묶인 성인 남녀가 다섯.

모두 제물이 될 자들이다.

수많은 석회동굴이 자리한 귀주성.

당연히 사람의 손길이 닿기 힘든 곳에 위치한 동굴도 많아 숨는 자들이 많다.

범죄를 저질러 도주한 이부터.

세금을 내지 못해 도망친 이들까지.

법이 보호하는 테두리 밖으로 내몰린 이들은 제물로 써먹기 딱 좋은 먹잇감들이다.

혈천(血天)의 재림을 위해 해야 할 것들이 많은…….

“음?”

순간, 묘한 기척을 느낀 오춘이 고개를 돌렸다.

아니, 돌렸다고 생각했다.

우드득.

뼈가 어긋나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바로 허물어지는 오춘.

그 목을 일수에 꺾어 버린 곤괴는 담담한 눈으로 오춘의 시체를 바라봤다.

“사혈천(瀉血天)이군.”

“아시네요?”

“이 넓은 무림에서 몇 번이나 부딪혔던 미친 종자들이다.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지.”

가볍게 혀를 찬 곤괴는 공포에 떠는 사람들을 바라보곤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조잡한 족쇄가 단숨에 부서지고 그대로 등을 돌린 곤괴는 여유롭게 서 있는 설천위를 바라봤다.

“참으로 기괴한 능력이구나.”

“뭐, 몇 안 되는 재능 중 하나예요.”

곤괴의 손에 죽은 오춘의 혼을 강제로 붙잡는 데 성공한 설천위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이, 이게……!]

“무슨 상황이냐고? 그런 건 이해할 필요 없어.”

혼이 되어 식상한 대사나 치려는 오춘의 말을 끊고 설천위는 빙긋 웃었다.

“가지고 있는 정보를 전부 토해 내면, 편하게 저승으로 갈 수 있을 거야.”

살려 준다는 선택지를 제공해 주지 못하는 점은 아쉽지만.

* * *

이 넓은 무림엔 수많은 음지의 조직들이 있다.

사신을 섬기는 교단부터 자신들이 올바른 진짜 정의라고 외치는 놈들까지.

작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천 명이 엮인 조직들.

설천위가 게임에서 본 그런 음지의 조직들 중엔 제법 세력이 큰 조직들도 많았다.

혈교나 혈사련처럼 광신을 무기로 무장한 이들도 있고.

황실에 손이 닿아 그곳에서 암약하는 이들도 있으며.

자신들이 진짜 정파라고 외치며 폭탄을 던지는 놈들도 있다.

그들은 조직적이며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이 조직들이 최고냐?

아니다.

무력적인 면에서는 그들이 더 강할 수 있으나, 설천위가 뽑는 진짜 음지의 조직은 단연코 사혈천(瀉血天)이다.

피를 쏟는 하늘이라는, 미친 조직명을 가진 놈들.

혈주나 교주?

그런 거 없다.

권력을 위한 암투?

그딴 거 없다.

자신들이 진짜 정의라는 정신적 자위?

그딴 거 없다.

왜냐고?

이유는 하나다.

이놈들은 진짜 그냥 피가 좋아서 그러는 거다.

이들이 말하는 혈천(血天)은 무슨 거창한 존재가 아니다.

진짜 피로 가득한 세상.

무슨 절대적인 존재가 내려와 세상을 피로 씻는다거나 하는 그런 것을 원하는 게 아니다.

그냥 자신들의 손으로 세상을 피로 물들이겠다는 사상을 가진 놈들.

거창한 허례허식 따윈 없다.

오로지 실리(實利).

그리고 광기(狂氣).

“여러모로 골치 아픈 놈들이지.”

동굴을 걸으며 사혈천 놈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곤괴가 고개를 저었다.

젊은 시절 무림에서 그놈들과 엮어 얼마나 많은 피를 봤던가.

자신이 죽어 나가는 와중에도 그것이 좋다며 웃던 미친놈들을 몇이나 죽였다.

그런데 더 소름이 끼치는 건 그게 아니다.

“나는 아직도 그놈들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 조직은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존재 자체에 의문이 든다.

대체 왜?

종교처럼 사후를 약속하나?

아니면, 황실의 권력자처럼 현재의 쾌락을 약속하나?

아니다.

전부 아니다.

심지어 어린 시절부터 길러 세뇌를 거듭한 것도 아니다.

찾아보면 실제로 다른 일을 하다가, 그리고 평범하게 살다가 합류한 놈들이 수두룩하다.

그것을 알게 됐을 때의 정신적 혼란이란.

조금 말이 많아진 곤괴의 설명을 들으며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만하지.’

걔들은 진짜로 미친놈들이니까.

“아마 이번에 그 의문이 조금 풀리실 걸요?”

그게 무슨 소리냐.

그런 의문이 담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곤괴를 쳐다보며 설천위는 씩 웃었다.

“저 녀석이 대답해 주지 않을까요?”

설천위의 손이 향한 곳.

죽은 주제에 한층 더 깊게 죽어 버린 눈으로 길 안내를 하는 오춘을 보며 곤괴는 고개를 저었다.

‘……혼을 고문해 정보를 알아내는 경우는 처음 보는군.’

그냥 죽여도 된다길래 혹시나 하면서도 그냥 죽이긴 했지만, 이런 방법을 쓸 줄이야.

난생처음 듣고 보는 방법이다.

이걸 참, 뭐라고 해야 할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곤괴.

그 모습에 어깨를 으쓱인 설천위는 다시 앞을 바라봤다.

뭐, 꽤나 많은 조직이 있지만 어느 정도 힘을 갖추면 그 조직들을 한 번은 싹 정리해야 하는 시기가 찾아온다.

걔들을 그냥 놔두면 나중에 진짜 골때리는 상황이 오니까.

‘……살짝 복선 같은데 이거?’

에이, 아니지.

내가 누군데.

확실하게 처리하면 문제없지.

음음.

뭐, 여하튼 그 행보의 첫 번째가 되기에 가장 적합한 것이 사혈천이다.

설천위가 아니라 다른 몸으로 시작했다면 가장 마지막이 됐겠지만…….

‘이쪽은 오히려 지금도 가능할지도?’

잘하면 가능할지도?

상성만 보면 거의 최상이라고 해도 되는…….

“음?”

[천위.]

곤괴의 반응과 천마의 부름.

그 순간, 설천위는 곧바로 대응했다.

부적을 꺼내 목표를 찾는다.

곤괴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천마가 확신을 품은 반응을 보였다.

그 차이가 말하는 것은 하나.

[……네놈은?]

상대가 혼령이라는 것이다.

자아를 가진 악귀.

그 모습을 확인한 설천위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빙고.”

아랫것들만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노다지가 여기에 있구나.”

경험치 노다지.

미소와 함께 부적을 던지는 설천위.

그 모습에 반응한 악귀가 움직인다.

부적을 쳐 내고, 단숨에 도주를…….

“박도(縛道) 흑관(黑棺).”

검은 관이 악귀를 집어삼킨다.

[키야아아아악!!]

단숨에 본질을 꿰뚫어 그 존재를 고정시킨 흑관에 서린 패기(覇氣)가 악귀를 좀먹기 시작한다.

“이런 건 참 잘돼요. 또.”

영력을 이용한 기술은 뭘 섞어도 잘 섞이네.

씁.

작게 혀를 차며 설천위는 악귀에게 다가갔다.

이들이 사혈천의 진짜 핵심이다.

곤괴가 그 본질을 깨닫지 못한 건 젊은 시절에 만났기 때문이겠지.

그는 노년이 되어 손녀 때문에 영안을 강제로 각성시킨 사람이니까.

사혈천(瀉血天).

이들이 어떤 이득도 약속도 없이 광기에 휩싸일 수 있는 이유.

그들의 뒤에 아니, 근본에 있는 것이 악의에서 탄생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죽음만을.

오로지 절망만을.

오로지 혈천만을.

그들이 원하는 것은 인세의 파멸.

이미 죽어 버린 혹은 부(不)의 감정에서 태어난, 애초부터 살아 있지 않았던 존재들.

보통이라면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들은 무공이 통하지 않는 존재들이니까.

천무지체를 지닌 몸을 가졌다고 해도 쉽사리 상대할 수 없는 이들이다.

하지만.

“자, 말해 봐.”

부들부들 떠는 악귀를 보며 설천위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렇기에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사람도 있는 법.

패기와 영력을 끌어올리는 설천위의 몸으로 패융이 그 존재를 휘감는다.

[크르르르르르.]

혼을, 존재를 압박하는 힘.

그 힘에 부들부들 떨던 악귀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크윽! 네놈 대체……!]

“거, 식상한 질문 그만하고.”

그 말을 끊은 설천위는 망설임 없이 악귀의 목을 움켜쥐며 물었다.

“신의(神醫)는 어디에 있지?”

이쪽은 한시가 바쁘니까 빨리 본론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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