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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144화 (144/624)

제144화

143화-내놔 (1)

몸이 흔들린다.

멀미는 안 난다.

멀미는 눈과 평형기관의 괴리감으로 인해 생기는 것.

평형기관이 간다고 느낄 때 내 눈도 간다고 느끼고 있다면 멀미는 나지 않는다.

그래.

“눈만 뜨고 있으면……!”

“헛짓거리 그만하거라. 수혈을 짚어 주랴?”

보통 단련을 거듭한 무인들은 평형감각이 발달해 쉽게 멀미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재능이 기본 이상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백날 균형감각을 단련해도 허접한 설천위에겐 전혀 통하지 않는 이야기다.

그래서 어떻게든 눈을 뜨고 있었던 건데…….

“섭섭하네요.”

“씁?”

“옙. 조용히 있겠슴돠.”

합! 입을 다무는 설천위.

그 모습에 혀를 찬 노인, 곤괴(坤怪)는 설천위의 뻔뻔한 태도에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아무래도 거짓말 같은데…….’

이런 놈팡이가 진짜 천음절맥의 치료법을 알고 있을까?

여태까지 만난 모든 의원들이 고개를 저었는데?

화타라도 오지 않으면 힘들 거라고 말하는 의원들이 반수 이상이었거늘…….

불신이 점차 깊어지는 가운데, 설천위는 어느새 자신의 어깨에 혼령 상태로 매달린 청아를 바라봤다.

[말도 안 돼요! 두고 가다니!]

툴툴거리는 청아.

하지만 그 불만 표시에 대답한 건 설천위가 아니었다.

“내 눈이 옹이구멍인 줄 아느냐?”

[에?]

“다 보이느니라. 그나저나 실체를 가지면서도 혼으로 변할 수 있는 환수라니……. 특이한 녀석이구나.”

낮게 가라앉은 시선으로 청아를 바라보는 곤괴.

그 시선은 작은 인형처럼 변한 청아를 정확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거기에다 네놈……. 대체 무엇을 익혔기에 인간의 몸으로 그리 많은 혼을 품고 있는 것이냐?”

천음절맥의 치료법에 대한 불신과 별개로, 이놈의 몸 상태도 믿기 힘들긴 매한가지다.

“네놈, 무인인 것 같은데 무슨 영기(靈器)를 그리 크게 갈고닦는 것이냐?”

“아……. 할 줄 아는 게 그쪽밖에 없어서요.”

어색하게 머리를 긁는 설천위를 흘깃 바라보는 곤괴.

이내 곤괴는 걸음을 멈추고 설천위를 바닥으로 내던졌다.

“어익후!”

아, 착지 더럽게 안 되네.

낙법을 그렇게 연습했는데, 왜 아직도…….

엉덩방아를 찧은 설천위의 모습에 작게 미간을 찡그린 곤괴가 혀를 찼다.

“이쯤이면 확실하게 따돌렸을 테니 이제부턴 네 다리로 걷거라.”

“옙.”

이쯤이라곤 하지만, 무려 이틀이다.

진짜 최소한의 휴식 즉, 생리현상만 간간이 해결하며 달린 시간이 무려 이틀.

그것도 성인 남성을 어깨에 메고 이리 달리는 건 아무리 단련된 무인이라도 힘든 일인데, 곤괴는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이것이.

‘이괴(二怪).’

현 무림의 최강자라 불리는 이들.

오존(五尊), 삼왕(三王), 이괴(二怪).

십대 고수로 묶이는 이들.

물론 이들 중에 오존(五尊)은 규격 외로 치기 때문에 따로 오대 고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하튼, 삼왕과 이괴 또한 이 무림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실력자들.

그 무력의 순위를 설천위는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리고 이괴(二怪)의 일인인 곤괴(坤怪)는 그중에서도 상위.

오존의 바로 턱밑에 있는 존재.

그 수준은 화경의 끝자락.

삼왕(三王)의 일인인 도왕(刀王) 팽후(彭厚)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

괴물이다.

“자, 다시 한번 물으마. 정말로 천음절맥의 치료법을 알고 있느냐?”

담담하기 그지없는, 마치 어제 무엇을 하며 보냈느냐고 물음을 던지는 듯한 눈동자.

하지만, 그 속에 담긴 한 줄기 살기가 설천위의 등줄기를 싸늘하게 찌른다.

그렇기에 설천위는 웃었다.

“물론이죠.”

저 살기가 어떤 심정에서 피어나는 것인지 잘 알고 있기에.

“다만 병이 병이니만큼 재료가 필요합니다. 그건 아시죠?”

“대환단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그 목을 벨 것이다.”

“에이, 그런 사기꾼 짓은 안 하죠.”

툭툭 엉덩이를 털고 일어난 설천위는 주위를 쓱 둘러보며 물었다.

“일단, 손녀분 상태를 좀 보러 갈까요?”

* * *

천음절맥(天陰絶脈).

이 절맥은 구음절맥이나 칠음절맥처럼 상당히 희귀한 병이면서 치료 또한 참으로 난해한 병이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이 절맥에 의해 음기가 쌓이는 곳이 머리 쪽이라는 점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상단전이 그냥 막혀 있지만, 이 절맥의 환자는 음기가 그곳에 쌓여 상단전을 비롯한 뇌를 건드린다.

지적 능력이 저하되고, 타인의 말에 쉽게 휘둘리는 것은 기본이고 정상적인 사고가 힘들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두 번째는 첫 번째의 영향으로 나타나는 증상인데, 악귀에 잘 휘둘린다.

머리로 음기가 쌓이며 받는 영향으로, 대부분의 환자들이 저급하긴 하나 영안을 개안한다.

죽은 자를 보고, 죽은 자의 말을 들을 수 있게 되는 거다.

현대에서 가장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질환이라고 하면 신병이라고 해야 하나?

물론 세세한 증상이 다르긴 하지만.

“거의 다 왔다.”

곤괴의 말에 고개를 든 설천위는 머릿속으로 떠올리던 천음절맥의 정보를 살짝 접어 둔 채 작은 초가집을 바라봤다.

허름하나 더럽지 않은 집.

곤괴의 성격이 참으로 도드라지는 집이다.

물론…….

“애는 잘 먹이고 계시죠? 돈도 많으신 분이.”

“……물론이다.”

대체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으로 게슴츠레 눈을 뜨는 곤괴.

그 모습에 그저 어깨를 으쓱인 설천위는 담담하게 집을 향해 걸었다.

곤괴 본인은 돈 버는 재주가 없지만, 그의 아들이 돈 버는 재주가 아주 뛰어나다.

하물며 자신의 아버지가 무림에서도 이름을 날리는 고수인데, 그걸 장사에 안 써먹겠는가.

천하 삼대 상단 수준은 아니어도 한 성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상단을 거느리고 있다.

물론 그 성은 이곳 광서성이고.

진짜 더럽게도 멀리 왔구나.

곤괴가 달릴 때 빠르다는 건 알았지만, 광서성이라니.

무림학관으로 돌아가려면 일반인은 일정을 한 달 넘게 잡아야 하는 거리다.

죽어라고 달리면…….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나저나.

“안녕~?”

“……우으.”

할아버지가 온 것을 눈치채고 문 사이로 빼꼼 고개를 내민 아이가 다시 쏙 들어간다.

통통한 볼살이 사라지니 절로 드는 아쉬움.

나도 모르게 문으로 쓱 다가가 조심스럽게 문을 당긴다.

“우으!”

어정쩡한 자세로 딸려 나오는 아이.

이름 남혜.

광서성 삼대 상단인 곤 상단의 상단주의 막내딸.

나이는 8살.

귀여움이 폭발하는 나이다.

[꺄!]

[허허허, 귀엽구나.]

[……그 아이가 생각나는군.]

혼들의 각양각색의 반응에 혜가 흠칫 놀라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시선을 돌리는 혜.

혼들이 눈에 보이는 것이 정상적이 않다는 사실을 알기에 저런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아는 곤괴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고…….

[왕!]

“깡아지!”

“그래요. 강아지예요~. 우리 혜아, 멍멍이랑 놀까?”

“응!”

청랑의 새끼 버전으로 단숨에 경계심을 허물어 버린 설천위는 어느새 문을 활짝 열고 나오는 혜를 보며 웃었다.

“꺄~.”

[헉헉!]

설천위의 마음을 안 건지, 아니면 진짜 혜아가 좋은 건지 그 품에 안긴 청랑이 온갖 애교를 부리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마성의 몸짓.

‘……귀엽다.’

아이와 강아지가 어울려 노는 모습은 설천위마저 얼이 빠질 정도 귀여웠지만…….

‘일해야지.’

속으로 작게 헛기침을 한 설천위는 청랑과의 놀이에 정신이 팔린 혜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너무나도 조심스러운 그 손길은 혜아가 눈치채지 못하게 아주 은밀했다.

‘……맞네.’

천음절맥.

뭐, 게임에서도 봤던 거라서 확신하고 있었지만…….

이런 아이가 그런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 참 마음이 아프다.

천음절맥의 대표 증상, 극심한 두통과 발작.

혼을 보는 것 정도로는 병이라고 하지 않는다.

참을 수 없을 만큼의 통증이 있거나 목숨을 위협해야 병이라고 하지.

천음절맥은 둘 다 해당되는 중병이다.

병의 진행은 다행히 심하지 않았다.

하긴, 몇 년이 지난 뒤에 와도 충분히 치료할 수 있을 정도니 그리 심할 리가 없지.

자, 그럼 상태는 확인했고.

청랑을 혜아에게 맡긴 채 일어선 설천위는 담담한 자세로 이쪽을 바라보던 곤괴에게 다가갔다.

“역시 약이 필요하겠네요.”

“무슨 약을 원하느냐?”

“조금 비싸긴 해도 자제분 상단이면 충분히 구할 수 있는 것들이요.”

게임에서는 대부분 직접 구하지만, 현실에서까지 그럴 필요가 없지.

곤 상단의 재력이면 대부분은 구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하나는 직접 구하러 가야 합니다.”

세상에는 가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도 있는 법이지.

* * *

가도를 달리는 마차 안.

설천위를 찾기 위해 출발한 일행 사이에서 서하영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루해요.’

명상도 한계가 있는 법.

이런 여행엔 자고로 수다를 떨지 않으면 지루한 법인데, 분위기가 분위기이다 보니 쉽사리 입을 열기가 힘들다.

말을 걸면 웃으며 대답해 주는 유예린이지만, 그 외에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 유예린의 상태를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서하영은 눈치가 없진 않다.

그렇다고 철백이랑 하하호호 떠들기에도 눈치가 보이니…….

침묵.

그것이 곧 답이니.

결국 다시 명상을 하기 위해 서하영이 눈을 감는 순간.

“잠시.”

마차가 멈췄다.

일순 분해해 접어 둔 창에 손을 올리는 서하영.

팔짱을 낀 채 그저 눈을 뜨는 철백.

그런 두 사람을 뒤로한 채 유예린은 마차 문을 열었다.

“여~!”

“……아주버님.”

“오랜만이네, 제수씨.”

웃으며 손을 흔드는 남자, 설천운.

그러고 보니 벌써 호남에 들어왔다는 것을 깨달은 유예린은 뒤늦게 포권과 함께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주버님, 그동안 건강히 지내셨나요?”

“어우, 너무 딱딱하네. 그렇게 딱딱할 필요 없어.”

읏차.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마차로 들어가는 설천운.

당당하게 자리를 잡은 설천운은 어느새 긴장을 풀고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을 보며 웃었다.

“이야, 천위가 그래도 잘 살긴 했나 봐? 이렇게 구하겠다고 나서는 친구들도 있고.”

나는 없었는데.

뒤에 붙는 설천운의 자조 섞인 농담은 살포시 무시한 유예린은 밝은 표정으로 웃고 있는 설천운을 바라봤다.

“이리 오신 데에는 무슨 이유가 있으신지요?”

“음, 천위에 대한 정보가 확인된 게 있어서 말이야.”

“……무사한가요?”

한마디.

그저 그의 안위를 걱정하는 첫 질문에 설천운은 빙긋 웃었다.

“어, 건강해. 아주 팔팔하게 돌아다니고 있다더군요.”

“후, 그럼 다행……. 예?”

뭐라고?

“건강하다고.”

“아니요. 그다음이요.”

“아주 팔팔하게 돌아다니고 있다더군?”

그래, 그 부분.

아니, 납치당한 인간이 뭘 팔팔하게 돌아다녀?

유예린이 품은 의문을 동시에 품고 있는 철백과 서하영.

세 사람의 표정이 묘해지자, 그 반응을 기다렸다는 듯 설천운이 웃었다.

“하하하! 나도 너희처럼 처음엔 놀랐지!”

“장난은 그만하시고, 정확한 본론을 말해 주세요.”

이 이상 장난에 어울려 줄 수 없다.

확고하게 선을 긋는 유예린의 눈빛에 설천운은 입을 다물었다.

아따, 살벌해라.

“크흠, 납치한 사람은 곤괴라 불리는…….”

“……이괴(二怪)요?”

“오, 알고 있다니 다행이네. 맞아, 그 곤괴야.”

“그렇다면 아버님께서 움직이시나요?”

유예린의 질문에 설천운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안 움직여.”

안 움직인다.

그 한마디에 미간을 찡그리는 유예린.

아무리 그녀라도 곤괴는 상대하기 버거운 존재.

설천위의 아버지가 도움을 주지 않으면 구출이 힘들…….

“어차피 풀려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더군.”

“예?”

“아버지께서 곤괴를 사적으로 알고 계신가 봐.”

설천운의 대답에 또다시 작게 안도하는 유예린.

“자, 그럼 난 전할 건 전했으니 이제 돌아가야지. 제수씨는?”

설천위의 안전이 확인됐으니 돌아가겠지?

그런 의문이 담긴 설천운의 질문에 유예린은 빙긋 웃었다.

“아뇨. 나온 김에 낭군님의 얼굴을 보고 가야겠어요.”

자유로운 몸이면서 편지 한 통을 안 부쳐?

유예린의 눈이 또 다른 의미로 번뜩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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