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142화 (142/624)

제142화

141화-노인 공경 (3)

“노오오옴!”

자신을 향해 검을 들이미는 무인의 목을 단숨에 친 노공은 노성과 함께 부릅뜬 눈으로 설천위를 노려봤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사술이라니.

그것도 사람의 정신을 조종하는 계열의 사술이라니.

도저히 정파의 놈팡이가 익힐 만한 사술이 아니다.

사술에도 급이 있는 법.

간단한 눈속임 정도의 기술이라면 손놀림을 연마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사람을 조종하는 이런 사술은 그야말로 고등 술법이라 부르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은 것.

하루 종일 무공이나 갈고닦는 무인이 익힐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집중해라.”

[집중해라.]

“큭!”

거기에다 이 날카로운 공격.

간단히 읽어 낼 수 없는, 아니 그냥 읽어 내는 것 자체가 극히 힘든 기묘한 궤적.

흔한 변검(變劍)인데도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농도가 다르다.

어떨 때는 궤적이 흐릿하게 보이고.

어떨 때는 궤적이 목에 닿기 직전에야 겨우 느껴진다.

능수능란하게 궤적의 존재감을 다루는 솜씨.

“이이……!”

그냥 검을 잘 다루는 수준이 아니다.

전투 자체에 능숙한, 심리전에 익숙한 인간의 싸움 방식.

흐릿한 궤적에 익숙해지면 진짜 진하게 숨어 버린 궤적을 읽어 내지 못하고.

진짜 진하게 숨어 버린 궤적에 집중하면 모든 궤적을 따라가는 게 벅차진다.

말 그대로 변화무쌍의 검.

하지만, 그렇기에 노공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저 두 가지를 병행해서 쓴다는 것 자체가 저쪽의 전력이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증명하니까.

물론 그런 생각을 유도한 것일지도 모르나 거기까지 깊이 들어가면 도무지 대처할 방법이 없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빙의라는 것이 그리 오랜 시간 지속될 리가 없다.’

산 사람의 몸에 다른 혼이 들어가는 것이다.

육체는 물론이고 영적인 압박감도 상당할 터.

온전히 궤적을 숨기는 검식만을 사용하지 않는 건 그 압박감 때문에 전력을 다하기 힘들어서겠지.

물론 그렇게 되면 여기에 있는 버러지들을 조종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냐는 의문이 남긴 하지만…….

‘깊게 생각해선 안 된다.’

깊어지지 마라.

미지를 깊게 생각하면 추측이자 망상이 된다.

쓸데없는 정보에서 나오는 모든 추측을 배제하고, 오로지 눈에 보인 현상에만 집중하라.

“이들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

거짓된 감정을 드러내며, 이쪽의 상태와 함께 비수를 숨겨라.

노기로 충만한 노공의 눈동자 깊은 곳.

날카로운 예기가 한 자루의 비수가 되어 때를 기다린다.

물론 벅차다.

주변에서 달려드는 무인 놈들의 공세를 막고 그 사이를 파고드는 궤적을 속이는 검을 쳐 내는 건 버겁다.

하지만.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해낼 수 있다.

자신이 누구인가.

삼공(三公) 중 일인, 노공(老公)이다.

자신은 교의 주 전력 중 하나이자 원대한 계획의 선두에 설 자.

고작 이런 애송이 따위에게 질 존재가 아니다.

노공이 결의를 다지며 방어에 집중하던 그 순간.

“!”

종이 한 장 차이로 목을 지켜 낸 노공의 눈이 크게 떠졌다.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 * *

현태중에게 몸을 맡긴 설천위는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휩쓸리지 않기 위해.

무너지지 않기 위해.

‘……끄으으으!’

현태중의 빙의 자체는 꽤 버틸 만했다.

솔직히 이제 육체 성능이 많이 좋아져서 현태중 같은 이들이 들어와도 꽤나 할 만한 수준은 됐으니까.

문제는…….

[크르르르르.]

패융과 현태중 둘 다 육체에 들어와 있다는 점이다.

옛날에 노공을 상대할 때 소백진이 들어왔던 것처럼.

육체의 본래 위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필수로 거쳐야 하는 과정.

그때 이후로 여러모로 성장해서 충분히 버텨 낼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무리였을지도?’

말도 안 되게 버겁다.

그야말로 혼이 찌그러지는 기분.

그런데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건 패기와 영력 덕이다.

아니, 영혼지체 덕인가?

어찌 됐건 확실한 건 어떤 종류의 힘이든 혼을 지키는 힘이 이제 상당한 수준에 올라섰다는 확신을 품을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그래서 괴를 움직였다.

노공은 화경의 초입 같은 어수룩한 고수가 아니다.

최소 완숙의 경지.

아예 격이 달라진다는 끝자락에 미치진 못했지만, 도저히 빌린 육체로 이길 만한 상대가 아니다.

현태중도 생전엔 완숙한 화경의 수준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어떻게든 괴를 움직여 틈을 만들어 냈지만…….

‘괴물 같은 놈.’

버텨 낸다.

노공의 검은 혈첩검이라 불리는 것.

그것은 검기 혹은 강기를 겹겹이 쌓아 위력과 크기를 증가시키는 형태의 공격법을 가진다.

그런데 그 방법을 방어에 쓰니 이게 또 뚫기 힘든 벽이 되고 있다.

주요 부위, 목이나 심장 혹은 사혈 같은 급소는 중첩된 검기나 강기로 보호하고, 그것들에 검이 느려지는 틈을 타 피해 낸다.

그야말로 하나의 벽이 되는 훌륭한 방어 능력.

괜히 이 무림에서 노년이 될 때까지 살아남은 게 아니라는 사실이 실감될 정도다.

그런데.

‘과하게 화를 내는군.’

그런 능숙한 대처에 비해 화가 과하다.

눈은 그야말로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처럼 이글거리고.

말은 끊임없이 화를 토해 내고 있다.

마치 조금만 더 건드리면, 조금만 더 파헤치면 금방이라도 분노에 자멸할 것처럼.

만약, 설천위였다면 조금 더 거세게 압박했을 거다.

승기란 것은 붙잡을 수 있을 때 붙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현태중은 그러지 않았다.

그저 침착하게, 검을 휘두른다.

그저 베고 또 벤다.

그저 그리고 또 그린다.

무엇을?

검을.

그리고.

“흡!”

한 번의 찌르기.

몸을 비트는 것으로 그야말로 완벽에 가깝게 일격을 피해 낸 노공의 입꼬리가 미약하게 비틀어진다.

그리고 그 순간, 공기가 변했다.

여태까지 방어 일변도였던 노공이 상체를 앞으로 내밀며 땅을 박찬다.

찌르기라는 공격은 결국 검을 회수할 수밖에 없는 물리적 틈이 생긴다.

회수하지 않으면 다음 공격을 이어 갈 수 없다.

팔을 뻗은 채로 휘두르는 검은 그만큼 위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으니까.

거기에.

‘잡았다!’

빙의란 것은 결국 온전히 육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다.

남의 것을 빌리는 것에서 오는 한계는 분명히 있다.

아주 미약하게 느려지는 반응.

미세하게 틀어지는 자세.

등등.

그 모든 것들이 만들어 내는 하나의 틈.

그것을 노리던 노공의 검이 망설임 없이 떨어진다.

검을 회수하는 설천위의 빈틈을 노리는, 완벽한 일격.

설령 막아 내더라도, 정상적인 몸 상태로 남을 순 없을 거다.

그런 확신을 품은 노공의 검이 몇 겹이나 되는 강기를 머금은 채 떨어지는 그 순간.

서걱.

베었다.

아니, 베었다고 느꼈다.

축축해지는 옷.

옆구리를 타고 흐르는 피가 옷을 흥건하게 적신다.

“확신과 조급함이 만나면 패배를 부르는 법이지.”

[확신과 조급함이 만나면 패배를 부르는 법이지.]

한껏 낮게 가라앉은, 현태중의 눈이 노공을 응시한다.

목을 노리던 검?

이미 힘을 잃고 떨어지는 것을 한 손으로 받아 낸 현태중은 망설임 없이 그것을 땅바닥에 집어던졌다.

검을 쥔 팔째로.

[소적검(消跡劍)]

노공이 가장 크게 착각한 것.

빙의로 인해 생기는 괴리감.

사실 현태중은 모든 혼들 중에서 그것이 가장 적은 편이다.

왜냐고?

여태껏 설천위를 위기에서 몇 번이나 구해 냈던 [소적검(消跡劍)].

그건 현태중을 아주 잠깐 빙의시켜 쓰는 거니까.

찰나의 시간이라고 하지만, 설천위의 몸을 몇 번이나 다뤄 보았던 현태중이다.

그 성능을 파악하기엔 충분하고도 남을 경험이다.

너무나도 익숙해져서 자신의 본래 검식 속에 [소적검(消跡劍)]을 섞을 수 있을 정도로.

물론, 그 대가로…….

‘팔 또 맛이 갔네!’

아예 뼈가 박살 난 수준까진 아니지만 회복을 최대로 써도 한두 시간은 걸릴 수준의 큰 부상이다.

물론 이 정도까지 몸이 버티게 됐다는 것도 장족의 발전이긴 하지만.

“끄으으으읍!”

“확실히 보완점이 많아 보이는 기술이군.”

[확실히 보완점이 많아 보이는 기술이군.]

입술을 악물고 고통을 참아 내는 노공은 안중에도 없는 듯 현태중은 팔의 상태를 확인했다.

혼이 되어서 완성한 기술이다 보니 육체의 내구도를 고려하지 않은 검식으로 이루어졌다.

그 탓에 위력은 참으로 강하지만 사람의 육체로 버티긴 힘든 검식이 완성됐다.

즉, 어떤 의미로 미완성이나 마찬가지라는 소리.

여태까진 설천위의 육체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패융까지 깃들어 초절정과도 자웅을 겨룰 수 있을 만한 육체가 이 정도로 망가진다면 그건 기술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수정하지.”

[수정하지.]

‘좀 빨리하지 그랬냐!!’

팔을 몇 번이나 아작을 내고 이제야 그걸 깨닫냐!

담담한 현태중의 헛소리에 속에서 열불이 나는 설천위의 고함이 그 속에서만 메아리쳤다.

“네, 놈……! 정체가 뭐냐!”

잘려 나간 오른팔, 비어 버린 소매를 움켜쥔 노공의 두 눈이 붉게 충혈된다.

고통과 분노로 인한 변화.

그 변화를 보며 현태중은 웃었다.

“시대에 뒤처진 무인이지.”

[시대에 뒤처진 무인이지.]

멀쩡한 왼팔로 담담하게 검을 들어 올린다.

그리고 단숨에…….

“흡!”

그때 누군가의 기습.

뒤를 노리고 파고드는 일격을 피해 낸 현태중이 고개를 돌리자, 검을 든 윤백이 이를 악물고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슬슬 한계군.’

그의 접근을 직전에서야 느꼈다는 것을 인지한 현태중은 한계가 찾아왔음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소적검(消跡劍)]의 사용으로 망가진 팔에 툴툴대던 설천위가 잠잠해진 상황.

이 이상은 위험하다.

그리 판단한 현태중은 망설임 없이 몸에서 빠져나왔다.

“……후.”

살짝 숨을 내쉬는 설천위.

전신이 뻐근해 몸이 삐걱거리는 기분인 데다 오른팔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절로 이를 악물게 만든다.

하지만.

“왜, 싸우게?”

그렇다고 해서 무너지진 않는다.

주위 전체를 짓누르는 패기.

몸에서 뿜어지는 검은 아우라와 함께 번뜩이는 두 눈을 마주한 윤백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이건, 이건 말도 안 된다.

대체 어떻게.

“어떻게 이리 빨리……!”

성장할 수 있단 말이냐……!

차마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할 정도로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지 못한 윤백은 이를 악물었다.

뭐가 됐든 지금이 거의 유일한 기회다.

설천위가 학관으로 돌아가면 또다시 그를 해할 수 없는 환경이 된다.

거기서 일 년이고 이 년이고 또다시 수련을 쌓으면?

그땐 진짜 감당할 수 없는 괴물이 되어 세상에 나올 거다.

대계가 몇 년이나 지체될지도 모른다.

반드시 이 자리에서 죽인다.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정신을 유지한 이들은 전부 모여라!!”

크게 외치는 윤백의 목소리에 정신이 나간 이들을 상대하던 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윤백에게로 모였다.

각기 소속이 다른 이들.

이 기괴한 광경에 도망칠 법도 하지만, 아직까진 단 한 명도 도망치지 않고 모두 남아 있었다.

화경급 고수인 노공이 나타났으니 승산이 높다고 판단해서였다.

물론 그 노공의 패배로 몇이나 되는 이들이 도망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지만…….

‘이건 할 만하군.’

거의 코앞에서 소리치는 윤백을 그냥 가만히 노려만 보고 있는 설천위의 모습에 조웅은 입술을 핥았다.

딱 봐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듯 보이는 설천위.

살 떨리는 무시무시한 기세도 아마 최후의 발악이겠지.

할 수 있다.

이건 할 수 있어.

그리 생각한 이들이 조심스럽게 설천위를 중심으로 포위를 좁힌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공격하던 이들 대부분은 이미 몸에 구멍이 뚫려 쓰러진 상황.

남아서 발악하던 이들의 몸에도 합심해서 구멍을 만들고 이들은 하나둘 설천위를 중심으로 모여든다.

거기에다.

“……네놈의 패배다, 애송이.”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충격을 딛고 일어선 노공이 살벌하게 뜬 두 눈으로 설천위를 노려본다.

완벽한 열세.

노공의 팔을 잘라 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국 전체적인 판세를 뒤집진 못했다.

설천위가 패배한 것이다.

모두가 그리 생각하고, 아니 확신하고 설천위를 서서히 압박하던 그 순간에도.

“그러면 들어와 보든가.”

[크르르르르르르.]

패융을 두른 설천위는 오만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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