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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139화 (139/624)

제139화

138화-흑룡은 고고해야 한다 (5)

너는 무엇을 원해 그들의 목을 벤 것이냐?

이 질문에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백유에게로 향했다.

생각해 보니 자신들도 들은 적이 없었다.

조용히 학관 생활을 하던 백유가 갑자기 왜 이 난리에 동참했는지.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핵심을 찌른 구령학의 질문에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 백유.

그녀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별 이유 없는데요? 마음에 안 들었을 뿐.”

“그럼 마음에 안 든 이유는 무엇이냐?”

“마음에 안 든 이유라…….”

잠시 고민하듯 팔짱을 낀 백유의 고개가 살짝 삐뚤어지다가 이내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역시, 가진 것도 없는 놈이 지위를 이용해 억압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겠죠?”

“쯧, 솔직하지 못하구나. 뭐, 좋다. 그렇다면 물으마. 사추홍은 사천맹에 수십 년의 세월을 헌신했기에 그 자리에 오른 것이다. 너는 그 세월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이냐?”

“세월이라…….”

피식 웃은 백유는 구령학을 바라봤다.

“할아버지는 늙었다고 존중받아요? 딱히 그런 삶을 살아왔을 것 같진 않은데요.”

“어째서 그리 생각하느냐?”

“할아버지도 딱히 젊었을 때 노인을 공경하진 않았을 것 같아서요. 공격하지나 않았으면 다행일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시비 거는 거 아니야?

백유의 공격적인 언사에 여미려의 표정이 걱정스럽게 변하는 순간.

“허허허.”

노인의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와 함께 공기가 일변했다.

“커헉!”

서현덕과 여미려는 바로 고개가 땅에 처박혔고, 반항하는 거완은 조금 늦게 처박혔다.

그저 기세만으로 사람의 머리를 땅에 처박는 존재감.

“거봐, 공격하면서 살았을 것 같다니까.”

그 존재감 속에서 백유는 고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가만히 앉아서 그 모습을 확인한 설천위는 헛웃음을 흘렸고.

노인은 입꼬리를 비틀었다.

“정신력은 제법 쓸 만한 수준이구나. 아니면 그냥 미친 것뿐인가?”

“딱히 미친 것 같진 않은데……. 나름 정상적이지 않아요?”

“지금 상황에서 입을 놀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세간에선 미쳤다고 평가하느니라.”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 태연하게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머릿속 어딘가가 망가지지 않으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니까.

무엇보다.

“그렇다면 미친 것으로 하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저 눈동자.

그야말로 광자(狂者)의 상징.

목숨을 중히 여기는 사파인들 중에서도 가끔 나온다.

목숨조차 2순위인 이런 놈들이.

그렇기에 궁금했다.

“다시 한번 물으마. 네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

이 젊은 피가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강렬한 안광을 폭사하는 구령학의 눈동자가 백유의 눈을 꿰뚫는다.

그 안에 담긴 것은 사람의 본심을 끌어내는 힘.

“……가족.”

그렇기에 백유는 자신도 모르게 본심을 말해 버렸다.

조금 정도는 버텼을지라도 끝까지 버티기엔 격차가 너무나도 큰 힘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대답에 구령학은 턱을 쓸었다.

“그렇다면 시집이나 가는 것이 빠를 거다. 네 그 반반한 외모는 괜찮은 신랑감을 잡기에 충분할 테니.”

“그런 가족이 아니야.”

고개를 젓는 백유.

그녀는 남편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식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형제. 피를 나눈 존재보다도 더 믿을 수 있는 진짜 동료.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믿음직한 등.”

부모의 사랑?

받아 본 적 없다.

부모는 뼛속까지 사파인, 자신밖에 모르는 이들이었으니.

형제의 사랑?

없다.

형제 놈들은 더했으니까.

친구들?

없다.

머저리들밖에 없어서 도저히 어울릴 수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집을 나왔고.

그래서 홀로 컸다.

그렇기에…….

“나는…….”

“안식처를 원하는 것이구나. 하지만, 그건 쉽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본질을 꿰뚫는 구령학의 말에 백유는 입을 다물었다.

쉽지 않다.

그 의미를 모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너는 투쟁을 갈구하는 상이다. 네가 바라는 가족과는 멀고도 먼 자리에 있지.”

안다.

자신은 피를 즐기고.

폭력을 즐기는 자.

정상적인 가족 따윈 얻을 수 없다.

유지하는 것도 할 수 없다.

그런데도 가족을 바란다.

일그러진 존재.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원해.”

“그래서 사파에 있는 것이냐?”

“폭력이 죄가 되지 않는 곳이니까.”

“허나, 업보가 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짊어질 수 있는 업이라면, 내가 짊어지면 될 뿐이야.”

담담한 문답.

어느새 한껏 차분해진 백유의 목소리에 고개를 든 다른 세 사람의 표정이 변했다.

당당하게 서서 구령학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과연, 주군으로 삼을 만하다는 게 이건가?”

“지금 오면 그래도 3호예요.”

여미려의 농담 섞인 대답에 피식 웃은 거완.

어느새 씻은 듯 사라진 기세 덕에 완전히 자세를 고친 거완은 망설임 없이 일어나 백유의 옆에 섰다.

“여기에 그 등이 셋 있습니다.”

거완을 따라 백유의 옆에 선 서현덕과 여미려가 담담한 모습으로 구령학과 마주한다.

“넌 아직 안 받아 줬는데.”

“거, 좀.”

“낄낄. 그래, 받아 줄게. 네가 3호야.”

웃으며 고개를 돌린 백유는 기묘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구령학에게 말했다.

“모순된 인간이란 건 알지만, 벌써 셋이나 얻었어. 나름 가능성 있어 보이지 않나?”

“네가 가고자 하는 길을 다른 말로 무엇이라고 하는지 아느냐?”

구령학의 질문에 백유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알고 있다는 듯, 당당하게.

“패도(覇道).”

그것은 군림하는 자의 길.

“사파의 놈들조차 믿고 따르는 절대적인 존재가 되는 것. 그래…….”

살짝 말꼬리를 흐린 백유는 구령학을 보며 웃었다.

“당신처럼.”

사존(邪尊) 구령학.

뿔뿔이 흩어져 있는 사파를 하나로 모아 지리멸렬해지는 것을 막은 불세출의 존재.

오로지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는 사파 놈들의 머리끄덩이를 휘어잡아 이끌고 가는 절대자.

그 인상파기는 너무나도 유명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지만…….

“에?”

“응?”

상황을 따라가기에도 벅찼던 서현덕과 거완은 모르고 있었고.

한 발 늦게 알아챘던 여미려는 놀란 표정을 겨우 숨기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 끝나지.’

쩌리가 된 설천위는 구석에서 꼬치를 뜯고 있었다.

제각기 다른 이들의 반응에 허허롭게 웃은 구령학은 다시 자리에 앉아 꼬치를 들었다.

“나보다 낫구나.”

“낫다는 건?”

“내가 학관을 뒤집어 놨을 땐, 내 주변엔 공포로 아부를 떠는 놈들밖에 없었지.”

그가 바라던 건 정파라는 적에게 대응하기 위한 사파의 세력이었다.

허울뿐인 사천맹이 아니라.

진짜 사파의 하늘이 되는 맹.

그것을 원했다.

그렇기에 비리와 청탁으로 찌들어 버린 학관을 뒤집어엎었다.

그대로 졸업해 사천맹에 들어가선 그야말로 힘 하나로 모든 것을 휘어잡았다.

그렇기에 철저한 공포와 통제를 외쳤고, 그것으로 사천맹을 하나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 한계는 명확해 정파에게 밀리지 않는 것이 끝이었다.

“너라면, 다를지도 모르겠구나.”

자신이 세운 규율을 부순 녀석이 어떤 놈인지 궁금해서 왔다.

머리에 든 것 없이 그저 힘만 센 놈이라면 적당히 두들겨 패거나 죽일 심산이었는데…….

“아주 재미난 녀석이 있어.”

웃음을 흘리며 품에 손을 집어넣은 구령학은 서책 하나를 꺼내 백유에게 던졌다.

얼떨결에 그 책을 받아 드는 백유.

“오성 이상 익히면 그때부터 내 제자라고 칭하고 다녀도 좋다.”

“……그럼 이게?”

“내 독문무공이지. 네가 가고자 하는 길을 십수 년은 앞당겨 줄 무공.”

푸웁!

순간, 고기를 물처럼 뿜어내는 설천위의 반응에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그를 향했다.

“컥! 컥!”

사레들린 설천위가 컥컥거리자 조용히 그 등을 두드려 주는 백유.

그 모습에 구령학이 헛웃음을 흘렸지만, 설천위는 그 모든 것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구령학의 독문무공?

……그걸 왜 벌써 줘?

앞으로 최소 5년은 지나야 얻을 수 있는 거잖아!

사천맹에서 죽어라 뺑이 쳐야 겨우 얻을 수 있는 건데……. 벌써 줘 버리면…….

떨리는 눈동자로 고개를 돌린 설천위의 눈에 백유가 한 손에 꼭 쥔 서책이 들어온다.

백유가 미친 듯이 강해지는 이벤트 중 하나, 구령학의 무공.

그걸 벌써부터 얻어 버리면…….

‘……정파 쪽 주인공 녀석들에게도 접근해야 하나?’

이러다가 사도 천하가 올 것 같은데?

* * *

떨리는 눈동자로 고심에 빠진 설천위를 한구석에 밀어 둔 백유는 다시 구령학과 마주했다.

“제자가 되라는 겁니까?”

“그래, 슬슬 다음 세대에 넘겨줄 필요가 있으니.”

“……앞으로 이십 년은 팔팔하실 것 같은데요?”

“그 이십 년 뒤를 준비하는 것이다.”

그 안에 죽는다는 소리는 안 하는구나.

구령학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백유.

잠시 그녀를 바라본 구령학은 한쪽에서 머리를 싸매고 있는 설천위를 바라봤다.

“용을 다룬다고 들었는데, 네 힘이 아니었구나.”

“……할아버지는 보여요?”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존재와 마주하는 법이고, 그 속에서 살아남다 보면 자연스레 몸에 익는 힘이다.”

“부럽네요. 저는 아직 느끼는 정도밖에 못 하는데.”

처음 설천위를 보았을 때 느낀 짜릿함.

용이라 불리는 존재가 있다면 바로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오싹했던 그 감각.

“솔직히 시집갈 욕심은 없었는데, 살짝 생길 정도예요.”

설천위를 보며 웃는 백유의 모습에 구령학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상대다.”

“……의외네요? 정파의 명문세가 출신인데 그런 반응이라니.”

뭐 넘을 수 없는 벽, 그런 게 있는 거 아닌가?

사천맹주의 제자와 정파 명문세가의 자식 간의 연애 이야기라니.

심지어 정파 쪽 남자에겐 약혼녀까지 있다고?

이야……. 호사가들이 아주 좋아하겠어.

의외라는 백유의 반응에 피식 웃은 구령학은 설천위를 바라보며 턱짓했다.

“저런 용을 두른 놈이 정파에서 발붙이고 제대로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백유가 투쟁을 추구하는 상이라면.

“저놈은 악을 멸하는 상이니라.”

* * *

구령학이 떠나고, 정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시간은 흘러가…… 지 않았다.

학관장이 없는 빈틈.

사천맹은 학관에 한 가지 명령을 하달했다.

<다음 학관장을 선출하기 전까지 학생끼리 자체적으로 통제하여 학관을 운영할 것.>

정말 말도 안 되는, 진짜 무슨 개소린가 싶을 정도의 요구.

하지만 이것이 기회라는 것을 직감한 이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치적인 통제.

그것을 위해선 조직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고, 그 조직은 학관의 권력을 손에 쥐게 된다.

그로 인해 생기는 막대한 이익은 그야말로 말로 하기 힘들 정도다.

전에 죽은 학관장인 사추홍은 상당히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와 비슷한, 혹은 그보다 뛰어난 이가 다음 학관장으로 오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터.

그야말로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지만…….

“다 꺼져. 지금부터 내가 통제한다.”

그 모든 기회를 박탈당했다.

흑룡학관의 학관장실.

옥신각신하던 대주들을 전부 짓누르는 존재감으로 백유가 학관장의 자리에 앉았다.

“지금부터 나를 중심으로 학생자치회 즉, 학생회를 설립한다.”

“그게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이런 독단적인 일이 용납될 것 같나?!”

강력한 반발.

학관장실에 모여 있던 다른 대주들의 반발에 백유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내가 말했던 것 기억하나?”

백유의 질문에 모두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어떤 말을 말하는 건지 몰랐으니까.

그렇기에 당연히 백유도 답을 기대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우리는 본래 가야 할 길을 갈 것이다.”

“그게 지금의 상황과 무슨 관련이 있다고…….”

“너희들 중 하나라도 이 자리에 올라 청탁과 비리를 반복하는 순간, 우리는 가야 할 길을 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사파라고 할지라도 때를 가려야 하는 법.

“사천맹의 허가는 받았다.”

지금은 그딴 청탁과 비리로 제 살을 파먹을 때가 아니다.

“지금부터 친선전에 나갈 인원을 다시 선발한다.”

“……그렇다면?”

“적랑대는 귀환할 것이며…….”

슬쩍 옆을 바라본 백유는 태연한 얼굴로 서 있는 설천위를 보며 작게 웃었다.

“설천위도 무림학관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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