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136화 (136/624)

제136화

135화-흑룡은 고고해야 한다 (2)

끈적하게 흘러나오는 살기.

피부에 달라붙는 공기가 끈적해진 것 같은 감각에 여미려는 마른침을 삼켰다.

사추홍.

교관 출신이라 하여 속으로 그의 무력을 의심하는 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여미려 자신도 그러했고.

무엇보다 직접 전투에 나선 지 수십 년이 지났으니 그 실력은 녹이 슬다 못해 아예 삭아 버렸을 거라고 여기는 이들도 많았다.

어린 나이에 경지에 오른 이들일수록 더더욱.

그런데 그 또한 오만이었던 것인가.

어린아이의 치기였던 것인가.

‘……다르네요.’

마음대로 날뛰는 사파의 종자들은 많다.

현재 학관의 학생들 중에서 초절정이라 부를 수 있는 이들은 총 셋.

적랑대의 대주 성무경.

무혈대의 대원 장풍기

무소속 거완.

이 셋이 학생들 중에서 최강이라고 손꼽혔다.

오룡 중에서도 무력으로 가장 강한 삼인.

당연히 학생들 사이에선 한물간 학관장이라면 저 셋으로도 충분히 해 볼 만하지 않겠냐는 얘기가 끊임없이 나왔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오만하고 세상을 모르는 말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어린놈들이 주제 파악을 못 하고 있구나.”

분노를 삼키듯,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

평안을 위장하는 표정과 달리 농밀하기 그지없는 거센 분노가 일렁이는 눈동자.

전신에서 흘러넘치는,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끈적한 살기.

초절정의 끝자락.

진정한 초인의 경지를 문턱에 둔 강자의 기세.

그 기세를 마주하고 있자니, 자신들이 저자에게 도전했다는 것 자체가 오만처럼 느껴진다.

오만방자하다.

그 말이 딱 어울리는 것이 우리들이겠지.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에이, 주제 파악을 못 하는 정도는 아니지, 할배.”

“……할배?”

“이제 학관장에서 내려올 건데 당연히……. 아, 전 학관장이라고 불러 드릴까?”

웃으며 도발을 하는 백유.

너무나 담담하게.

너무나 편안하게.

다른 학생들이 공포와 생존 본능에 잠식돼 손발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순간에도 백유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이고 있었다.

이런 살기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그 등을 바라보고 있자니, 막혔던 숨이 돌아오는 기분이다.

아니, 실제로 돌아오고 있다.

“그러니 슬슬 분위기 그만 잡고 내려오시지?”

“네년이 정녕……!”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부들거리는 사추홍을 보며 백유는 양팔을 활짝 벌렸다.

“난 마음에 안 들었어!”

뜬금없는 외침.

순간 사추홍의 살기에 압도됐던 이들이 그 목소리에 일제히 백유를 바라봤다.

사추홍의 부하라고 할 수 있는 대형 대(隊)의 대주들까지도 전부.

오로지 백유만을 바라봤다.

“쓸데없는 규제와 제약, 본능과 감을 억제하는 교육!”

양팔을 벌린 채, 어느새 흑룡학관 전 학생 중 반 이상이 모인 군중을 바라보며 백유는 외쳤다.

“뭉치는 것도! 흩어지는 것도! 오로지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누구인가!!”

대답은 없다.

하지만, 대답을 기다릴 생각이 없었던 것은 백유 또한 마찬가지.

한 차례 군중을 훑어본 백유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흑룡이다!!”

흑룡(黑龍).

그것은 타락한 용이다.

본디 신 혹은 신수의 영역에 들어가는 용과 달리 타락해 살육을 일삼고 재해를 일으키는 악신(惡神).

그런데 사파는 그것을 자신들의 상징으로 삼았다.

그 이유는 하나의 전설 때문이다.

패도로 군림했던 무인을 선택한 용의 전설.

그는 용의 힘을 등에 짊어지고 사파의 기틀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정파의 쓸데없는 허울을 벗어던지고.

흑도의 무리라는 왈패의 틀을 벗어나.

무력을 근본으로 하는 무인의 본능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이들.

강한 자는 빼앗고.

약한 자는 뺏긴다.

약한 자가 무언가를 손에 쥐는 것은 강한 자의 자비.

빼앗기기 싫다면 강해져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왜, 우리가 규율이라는 틀에 억압받아야 하는가? 왜, 너희는 너희보다 약한 녀석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가?”

그것은 전혀 사파답지 않다.

세력의 강함이 개인의 강함을 짓밟아선 안 된다.

개인의 강함을 짓밟을 수 있는 것은 더 강한 개인뿐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자 하는 것이 사파가 아닌가?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 짓밟히지 않는 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그것이 사파다.

“이런 머저리들이 교관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짓밟고 억압하는 것이 정녕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결단코 아니다.”

바닥을 기던 교관을 발로 차 대형 대의 대주들 앞으로 날려 버린 백유는 입꼬리를 비틀며 사추홍을 바라봤다.

“약자에게도 배울 점은 있으나, 그것이 우리가 약자에게 고개를 숙여야 할 이유가 되진 않는다.”

도덕성 따위는 개나 줘 버린 것 같은 발언.

하지만 그 발언에 동조하는 것이 사파이고.

이 흑룡학관은 그런 사파가 모인 곳이다.

그렇기에 백유는 사추홍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흑룡은 고고해야만 비로소 흑룡이 된다.”

이 억압은 결코 우리를 흑룡으로 만들 수 없다.

사추홍의 교육관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이 한마디에 사추홍의 표정은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네년이 정녕 미쳤구나……!”

천외천이라.

흑룡학관의 밖에는 사천맹이 있고.

사천맹의 밖에는 무림이 있다.

지금 백유가 씨부렁거리는 말이 얼마나 이상만을 좇는 헛소리인지 사추홍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저런 논리로 돌아가기엔 세상은 너무나도 추악하니까.

더럽고, 또 더럽다.

개인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선 당연히 조직에 들어가야 하고, 조직에 들어가면 그에 맞춰 자신을 바꿀 필요가 있다.

그것을 위한 교육이고.

그것을 위한 억압이다.

가슴에서 들끓는 분노가 도저히 누그러들지 않는다.

이 머저리 같은 놈들이 자신의 큰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꼬라지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래도 참아야 한다.

자신은 교육자이며, 그 정점에 선 사람.

섣불리 나서선 안…….

“섣불리 나서선 안 된다는 표정이네?”

히죽 웃는 백유.

허나 정확하게 자신의 속내를 찌르는 한마디에 사추홍의 안색이 일변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움직이지 않는 사추홍의 모습에 백유는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역시, 당신은 학관장의 자질이 없어.”

망설임 없이 땅을 박차는 백유.

노리는 건 사추홍이 아니다.

그보다 앞.

자신의 앞길을 막고 있던 녀석들.

대형 대(隊)의 대주들.

“일단 앞쪽부터 치우고 들어가면 그 표정이 변하겠지?”

* * *

전쟁.

여미려는 사실 자신이 학관에 다니는 동안 이런 단어가 어울리는 싸움은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흑룡학관의 수업이 엄격하고 잔인하긴 해도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이진 않는다.

시험 도중에 죽는 사람이 나오긴 하지만, 그건 주제도 모르고 강한 녀석에게 막무가내로 덤비는 머저리들에게나 벌어지는 일.

적당한 수준에서 항복하면 목숨을 잃는 일까진 웬만해선 가지 않는다.

성무경처럼 시험을 치를 때 승리 조건이 항복 혹은 죽음이라면 보다 확실하고 깔끔한 죽음을 선택하는 미친놈이 아닌 이상, 웬만하면 죽는 일은 잘 안 생긴다.

아무리 사파인이라고 해도 굳이 손에 피를 묻히고 싶어 하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이니까.

무엇보다, 오가는 길에 보고 가끔 술자리에서 만나 술잔을 나누는 이들인데 죽이고 싶을 리가 있나.

여하튼, 그렇기에 전쟁 같은 그런 싸움은 졸업하고 나서 정파를 상대로나 하게 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되네요.”

말로는 전쟁이라도 해서 사추홍을 끌어내리겠다고 했지만, 진짜 이런 전쟁이란 말이 어울리는 패싸움이 될 줄이야.

대형 대의 대주들을 상대하는 백유.

그런 백유를 대주들이 막는 것과 동시에 싸움이 시작됐다.

백유를 돕기 위해 달려 나간 무소속 학생들.

그런 학생들을 막기 위해 검을 뽑은 대형 대의 대원들.

두 세력이 엉겨 붙기 시작하자, 주변에서 구경하던 학생들도 무기를 뽑아 들고 싸움에 뛰어들었다.

어떤 이는 백유의 뜻에 동참해서.

어떤 이는 대형 대와 유착 관계에 있어서.

서로 각자의 사정에 따라 원하는 쪽에 서서 마음껏 검을 휘두른다.

“하하하하! 일이 재미있게 됐네?”

“늦었군요.”

“이렇게 재미있어질 줄은 몰랐으니까.”

자신을 향해 달려들던 학생을 정리하던 여미려는 뒤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가장 원하는 그림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 같은데, 어때요?”

“아주 마음에 들어. 진심으로.”

여미려의 말에 뒤늦게 등장한 사내, 거완은 전장의 공기에 취해 달려드는 녀석을 발로 차 날려 버리곤 웃었다.

“이제 이 역모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세상은 변하겠지.”

“역모라뇨. 그런 말 함부로 쓰는 거 아니에요.”

“흐하하하! 하긴 그건 너무 거창한가?”

호탕하게 웃는 거완.

그 모습에 여미려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저 사내와 알고 지낸 지 꽤나 시간이 지났지만, 저렇게 크게 웃는 건 처음 본다.

그만큼 이 상황이 마음에 든다는 소리겠지.

“뭐가 됐든, 나는 이 상황이 정말 마음에 든다.”

실실 웃는 거완.

그 모습에 혀를 찬 여미려는 턱짓으로 앞을 가리켰다.

“그렇게 마음에 들면 얼른 가서 손을 보태시죠?”

“뭐야, 벌써 대장님 챙기는 거야?”

“꽤나 따라 볼 마음이 드는 등이라서요.”

“하하! 그건 그렇더군.”

“한참 전부터 보고 있었군요?”

“안 볼 수가 있나.”

그렇게 화려하게 일을 벌이는데.

피식 웃은 거완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장풍기를 슬쩍 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성무경 그놈이 돌아오면 아주 기겁을 하겠어.

“이게 전부 그 정파 놈이 만든 그림이란 말이지…….”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요.”

의도했으면…….

앞으로 한 세기 정도는 정파랑 손을 잡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 인간이 있는 조직이랑은 절대 싸우고 싶지 않은데.

어깨를 으쓱이는 여미려.

하지만 거완은 이미 그녀를 보고 있지 않았다.

“나도 끼어도 되나?”

어느새 백유의 근처에 도달한 거완의 질문에 대주들을 상대하던 백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하고 싶다면 해라. 단, 방해된다면 알지?”

“하하하하! 그렇군! 그게 우리지! 괜한 질문을 했어!”

하고 싶은 것을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취하고.

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행한다.

하지만.

“책임은 오로지 자신의 것!”

목숨으로든.

몸으로든.

돈으로든.

그 책임은 자신이 진다.

이 하나의 규율 때문에 사파는 성립되고, 유지된다.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고 행동해도 그 책임에서 도망쳐선 안 된다.

온전히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기에…….

“흑룡은 고고한 것이지!”

흑룡은 고고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그 외침과 함께 돌진하는 거완.

그는 백유의 허를 찌르기 위해 틈을 노리던 대주 하나를 덮쳤다.

강맹하기 그지없는 도(刀).

그 공격을 막아 낸 상대의 무기를 박살 내며 단숨에 가슴까지 갈라 긴 상처를 만들어 낸 거완은 발로 그를 차서 날렸다.

죽진 않았으나 전투에 합류하지 못할 정도의 중상.

단숨에 하나를 보내 버린 거완의 몸에서 강자의 기세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그가 움직이자, 대주들은 그야말로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기 시작했다.

백유와 거완이 마치 서로 합을 맞춘 것처럼 정교하게 움직였으니까.

재능 있는 자들의 합공.

그것이 만들어 낸 파괴적인 위력을 대주들은 버텨 내지 못했다.

그리고.

“슬슬 끝나 가는데, 안 내려와?”

여전히 뒤쪽에서 지켜보던 사추홍을 바라보며 백유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잔인한 손속 탓에 얼굴에 튄 피가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그 모습조차 매혹적이다.

마치 닿으면 불타 버리지만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고 마는 불의 매력처럼.

“네년…….”

그런 백유의 도발에 결국 몸을 일으키는 사추홍.

그리고 그 순간.

“뭐야, 벌써 끝나 가네?”

전장을 뒤덮는 압도적인 기세에 백유가 입꼬리를 올렸다.

자신이 본, 그 누구보다 흑룡에 가까운 사내.

“천위, 늦었다. 이미 수저는 내가 들었어.”

“그래?”

일순 기세만으로 전장의 움직임을 멈춘 설천위는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적당한 담벼락 위에 자리를 잡았다.

“그럼 난 구경이나 하지 뭐. 괜히 급하게 내려왔네.”

아예 자리를 잡고 품에서 육포를 꺼내는 설천위.

그 모습에 결국 사추홍의 눈이 돌아갔다.

저 어린놈들이 자신을 무시하다 못해 조롱하고 있는 꼬라지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노오오오옴!!”

분노에 몸을 맡겨 땅을 박차는 사추홍.

단숨에 설천위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그쪽 상대는 나라니까?”

그 검을 손으로 받아 낸 백유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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