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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135화 (135/624)

제135화

134화-흑룡은 고고해야 한다 (1)

“컥!”

숨이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쓰러지는 상대.

그 목에 박아 넣었던 검을 뽑은 설천위는 무너진 시체를 잠시 바라봤다.

“참…….”

살인에 이렇게까지 익숙해질 줄은 몰랐는데.

“뭐, 어쩔 수 없나.”

자신이 살려면 어쩔 수 없고.

도덕적 신념을 챙기며 뒈지느니 정당한 자기방어 끝에 살인을 하는 게 더 낫지.

상대가 칼을 들고 덤비는데 어디 하나 부러트려서 제압하면 역으로 폭행죄가 성립되는 그런 세계도 아니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세계가 어디 있겠어.

뭐…….

“잡생각은 그만하고.”

[혼잣말이 늘고 있구나.]

“혼잣말이 아니라 할배들한테 하는 얘긴데요?”

[쯧쯧, 변명은.]

거, 그냥 넘어가 주지 좀.

혀를 차는 암영의적을 살짝 흘긴 설천위는 한쪽에서 푸닥거리를 하고 있는 천마를 바라봤다.

“뭐래요?”

[음, 연가 녀석들이 보낸 건 맞지만 혈사련 쪽 녀석들은 아닌 것 같구나.]

“쯧.”

아, 혈사련 그 새끼들 진짜 안 나오려나?

안 나오니까 더 찝찝하네.

그나저나 연가 그놈들도 참 끈질겨.

“학관장이 손을 벌렸나, 아니면 반대로 지들이 먼저 손을 내밀었나.”

밑에 있던 놈들이야 그런 사실을 제대로 모르니 썩 도움이 되는 정보는 안 나왔지만.

천마의 손에 쥐어짜이는 혼들을 바라보던 설천위는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뭐가 됐든 상관없지.

“슬슬 사냥을 끝낼까?”

그냥 전부 치워 버리면 될 뿐이니까.

* * *

‘괴물 놈!’

연가의 의뢰를 받아 설천위를 처리하기 위해 온 암살자.

팔영(八影)은 이를 악물고 달렸다.

저번에 의뢰를 받았던 칠영이 실패하고, 새롭게 찾아온 기회.

하필이면 십영(十影) 중 남아 있던 것이 팔영밖에 없어 그가 임무를 맡았다.

설천위의 현재 예상 전력은 최소 초절정.

상대하기 위해 많은 준비가 필요했는데, 그 준비는 흑룡학관의 지원 아래 너무나도 쉽게 이루어졌다.

설천위를 혼자 고립시키고.

설천위에게 내공을 흩트리는 독을 먹인다.

웬만하면 독살로 처리하는 게 가장 좋았겠지만, 흑원대와의 사건 때문에 독살은 선택지에서 제외됐다.

지금 설천위가 독살당하면 흑룡학관의 명성은 그야말로 똥통에 처박힐 테니까.

아무리 사파라도 양지에 있다면 최소한의 선은 지켜야 하는 법인데, 그 선이 지금은 독살이니 어쩔 수 없었다.

여하튼, 그렇기에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철저하게 계획해 공격을 감행했다.

내공이 금제된 상태에서 무슨 힘을 쓸 수 있겠는가.

쉬운 임무라고 생각하고 달려들었는데…….

‘내공이 금제된 게 아니었어!’

압도적인 신체 능력.

내공을 이용해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면 불가능할 정도의 신체 능력으로 단숨에 부하 둘을 찔러 죽였다.

그리고 도주.

포위를 뚫고 도주한 설천위를 어떻게든 포위망을 좁혀 산에서 못 도망가게 했지만 거기까지.

오히려 이쪽이 사냥당하기 시작했다.

포위를 넓히다 보니 서로 멀어졌고, 각개격파를 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상함을 느낀 건 그때부터였다.

포위가 2겹, 3겹이 아니니 각개격파를 당한 시점부터 길이 열린다.

그런데 설천위는 그 길로 도망치질 않았다.

처음에는 그 뒤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있을지 모르니 몸을 사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부하들의 단말마가 울려 퍼질수록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정확하게 암살자들의 위치를 짚어 내며 처리하고 있는 녀석이 그 뒤에 병력이 더 있는지 없는지를 모른다?

그럴 리가 있나!

없다.

단연코 없다.

그런데도 포위를 빠져나가지 않는 이유.

그 이유야 하나밖에 없지 않은가.

“오, 꽤 도망쳤네?”

순간,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한기와 함께 걸음을 멈춘 팔영은 히죽 웃으며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설천위의 모습에 이를 악물었다.

“이, 이 괴물 놈이……!”

전신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과 함께 후들후들 떨리는 몸을 팔영은 간신히 다잡았다.

강해서?

아니다.

강한 것은 경계의 대상이 될 순 있지만, 공포의 대상이 될 순 없다.

하물며, 감정을 죽이는 훈련을 받은 암살자의 마음을 이렇게 뒤흔들어 놓을 순 없다.

강한 녀석이라면 목숨을 던져 죽이면 될 뿐이니까.

그런데, 아예 모르는 존재라면?

미지의 존재라면?

“대체,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오, 감각 좋나 보네?”

히죽 웃으며 어깨를 으쓱이는 설천위.

그 모습에 팔영은 다시금 확신했다.

이놈이 한 짓이다.

이쪽의 숫자가 한 손으로 셀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시점에 팔영은 당연히 후퇴 명령을 내렸다.

내공의 금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임무는 완전히 실패.

지금의 상황을 보고해야 조직에서 다음 암살 계획에 반영할 수 있다.

그런데, 도망칠 수가 없었다.

마치 진법에 빠진 것처럼.

도저히 산 아래로 내려갈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이만한 산을 진법으로 감싸려면 대규모의 인원이 필요하다.

하물며 자신의 감각을 속일 정도라면 그 준비에 상당한 공을 들여야 했을 터인데…….

“대체 어떻게……!”

“거, 많이 망가졌네.”

아까부터 하는 말이 비슷한 거 보니.

몸을 비틀며 외치는 팔영을 보고 설천위는 빙긋 웃었다.

역시 가장 쓸모 있는 건 괴(乖)인가?

내 영력이 부족해서 산 전체를 범위로 하진 못했지만, 다행히 암살자 놈들을 전부 가둘 수 있는 범위론 펼칠 수 있었던 환영진.

덕분에 손쉽게 사냥할 수 있었으니 꽤나 기분이 좋았다.

처음엔 악을 쓰며 달려들던 놈들이 아니다 싶으니까 도망치려는 것에 당황했었는데 말이야.

“묻는 말에만 대답해 주면 편하게 죽여 줄 의향은 있는데.”

“네, 네놈이 그러고도……!”

“정파의 인간이냐고? 야, 너무 뻔하다.”

그런 대사 너무 식상해.

차라리 입을 다물면 멋있기라도 할 텐데.

가볍게 혀를 차며 달려드는 설천위.

혼란스러운 상황에 지쳐 버린 팔영이지만, 그래도 즉각 반응해 검을 뽑긴 했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거듭된 혼란에 정신이 나가 버린 상태에서도 맞서 싸울 수 있을 정도로 설천위의 도는 무르지 않으니까.

옛날이었다면 몰라도, 지금이라면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수준이다.

“끅!”

어깨를 꿰뚫린 팔영이 신음을 흘리며 비수를 휘둘렀지만 거기까지.

[크르르르르르.]

패융의 입에 물린 팔은 어느새 끔찍한 고통과 함께 뜯겨 나갔다.

허공에 떠오른 자신의 팔을 보며 이젠 고통보다 더 끔찍한 혼란에 빠지는 팔영.

그 모습을 보며 설천위는 혀를 찼다.

심문한다고 해도 쓸 만한 정보가 나올 것 같진 않네.

능력도 별거 없고.

“오케이, 여기까지.”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망설임 없이 도를 뽑아 휘둘렀다.

단숨에 목을 베는 깔끔한 일격.

완전히 주도권을 뺏겨 허무하게 목숨을 잃은 팔영의 시체가 허물어진다.

“그럼 이제 슬슬 내려갈까요?”

정리하느라 여러모로 고생하긴 했지만 뭐, 이 정도면 충분하지.

그나저나 밑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궁금하네.

* * *

“응?”

“꺄, 꺄아아아아!”

“저, 저 미친년이?!”

“저, 저거 대곡 교관 아니야?”

흑룡학관의 대로.

누군가의 목을 손에 쥔 채 걷는 백유의 모습에 학관 전체가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뒤를 따라 걷던 여미려는 한숨과 함께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이건 제 계획과 많이 다른데요.’

설천위를 이용해 학관장과 그를 추종하는 거대 대(隊)가 사실은 별거 없다는 것을 알린다.

불만이 가득한 이들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다.

상대가 안 될 것 같으니까.

그런데 상대가 될 것 같은 여지가 보인다면 사람은 움직인다.

아니, 사파인은 반드시 움직인다.

그렇게 움직이는 이들을 모아 학관장을 지탄하는 탄원서를 사천맹에 제출하고, 대자보를 뿌린다.

여론이 움직이고 세력도 움직인다.

아무리 사파가 힘의 논리만으로 움직이는 세상이라지만 학생 다수가 학관장의 자격 미달을 외치면 학관장을 교체할 수밖에 없다.

하물며 현재의 학관장은 실력보다는 경력과 인맥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인물.

맹에서도 썩 마음에 안 들어 하는 이들이 많다는 건 의외로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니 조금만 건드려 주면, 조금만 힘을 모아 주면 크게 터트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세운 계획이었는데…….

“……이건 조금 많이 과격하지 않나요?”

“뭐가?”

그 자리에 있던 교관들을 전부 죽여 버린 상황.

여미려는 어떻게든 학관장과 은밀하게 접촉해 볼 생각이었다.

교관들이 학생의 손에 죽었으니 학관장의 입장은 크게 곤란해졌을 터.

그걸 미끼로 백유의 무죄를 받아 내고 동시에 그녀를 중심으로 세력을 뭉쳐 학관장과 대적할 생각이었는데…….

‘뭘 그리 귀찮게 해?’

계획을 전부 들은 백유는 피식 웃으며 마지막에 목을 뜯어낸 교관의 목을 잘라 실습장을 빠져나왔다.

그들이 있었던 외진 곳에서 빠져나와 당당하게 대로를 걷는다.

그녀의 뒤를 다른 학생들은 자신도 모르게 따르고 있었다.

서현덕과 여미려를 제외한 다른 이들까지도 전부.

“네, 네놈들 뭐 하는 짓이냐!”

상황을 전해 들은 교관 하나가 앞을 가로막았지만 그 눈에는 혼란과 공포만이 가득했다.

여태까지 아래로만 여겼던 학생이 동료의 목을 들고 나타났으니 그럴 수밖에.

공포를 숨기지 못하고 몸을 떠는 교관의 모습에 백유의 시선이 한층 더 싸늘해졌다.

“버러지 같은 것이.”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주변에 학생이 가득한 지금, 어떻게 해서든 감정을 억눌렀어야지, 숨겼어야지.

그것이 모범이 되는 존재, 선생(先生)이 아닌가.

경멸이 담긴 시선과 함께 교관의 목을 뒤로 던진 백유는 망설임 없이 그 교관을 향해 다가갔다.

“너를 끌고 가는 게 더 낫겠어.”

“그게 무슨……. 끄아아악!”

단숨에 교관의 양팔을 붙잡아 악력만으로 뼈를 으스러트린 백유는 그대로 발을 휘둘러 상대의 다리를 부러트렸다.

순식간에 제압된 교관.

허물어지는 그의 머리채를 붙잡은 백유는 창백한 얼굴로 자신이 던진 교관의 목을 들고 있는 서현덕을 바라봤다.

“잘 들고 따라와라.”

“ㅇ, 예!”

용케 잡았구나.

대충 던졌는데.

뭐, 떨어져도 상관없었는데 그렇게 허겁지겁 받을 필요까지야.

어수룩하게 대답하는 서현덕을 보며 피식 웃은 백유는 다시 몸을 돌려 전진하기 시작했다.

마침 잘됐다.

아주 마음에 안 들었다.

괜히 야영지를 만들어 거기에서 생활했겠는가?

자질도 없으면서 사사건건 간섭하는 교관들이 꼴 보기 싫어서, 제 것들이 뭐라도 된 양 우쭐거리는 모습이 꼴 보기 싫어서 그랬던 거다.

그리고 동시에 그런 놈들을 뒤집어엎을 힘이 부족한 자신에게도 짜증이 나서 홀로 지냈다.

동료라고 부를 수 있는 녀석들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 녀석들을 지킬 힘이 없다고 생각해 만들지 않았다.

홀로 지냈다.

그런데.

‘역순이 되어 버렸는데도 결국 이루어졌군.’

그런 생각을 부수어 줄 정도의 녀석이 나타나 친구가 됐는데, 그 친구가 그 힘을 쥐어 주었다.

몇 년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던 지루한 성장을 단숨에 이루어 냈다.

이 얼마나 기쁘지 않을 수 있는가.

거기에다 마음에 드는 녀석들을 둘이나 만났으니…….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앞을 가로막는 건 괘씸하지만, 지금 비키면 목숨 정도는 살려 주마.”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대형 대(隊)의 수장들을 보며 백유는 오만하게 웃었다.

“네년이 드디어 정신이 나갔구나.”

“이딴 짓을 벌이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그런 그녀를 향해 상투적인 비난의 말을 쏟아 내는 이들.

하지만 상투적이라는 것은 그것이 그만큼 자연스럽다는 말과도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 처하면 저런 말을 쏟아 낸다는 것이니까.

그렇기에 여미려도 고개를 끄덕이며 일단 한 번 백유를 말리려는 순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내가 무사하지 못할 것 같나?”

여전히 오만하게 웃으며 백유는 그들 너머를 바라봤다.

그 시선에 상황을 지켜보던 이들의 시선도 일제히 그 너머를 바라봤고…….

“……오만하구나.”

일그러진 얼굴의 사추홍이 그 시선 끝에 서 있었다.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끈적한 살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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