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4화
133화-백유 (3)
“오만하구나!”
죽일 수도 있다는 협박.
학생이 교관에게.
배우는 자가 가르치는 자에게 한 그 협박은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어떤 모욕보다도 치욕적이다.
“네 녀석의 자질이 뛰어나 너그럽게 봐주었더니 아주 하늘 높은 줄 모르는구나!”
검을 뽑고 눈을 부라리는 교관의 모습에 분위기가 한순간에 싸늘해졌다.
백유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움직임을 멈췄던 이들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선다.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서는 학생들.
그들 하나하나의 얼굴을 살피던 여미려는 사추홍의 치졸한 방식에 절로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이 자리에 있는 학생들은 전부 절정 고수 이하의 학생들뿐이다.
교관들이 감당할 수 없는, 몇 없는 초절정 고수의 학생들이 없는 게 그 증거다.
계획을 함께해 주는 그가 이곳에 있었다면, 이야기는 훨씬 쉽게 흘러갔을 텐데.
아쉬움을 삼키며 여미려는 일단 학생들을 진정시키고자 했다.
상대는 교관들.
학생들의 숫자는 대략 열 명이지만, 교관의 숫자는 열셋이나 된다.
거기에다 이쪽에는 전력 외의 녀석이 한 사람 있으니 실질적으론 9대 13의 상황.
게다가 상대는 실력과 더불어 많은 경험까지 가지고 있는 교관들.
부상으로 은퇴한 이들이 아니라 좌천 등의 이유로 교관이 된 자들.
싸우면 필패할 것이다.
그러니 일단 여기서는 조금 시간을 끌어서…….
“오만?”
여미려가 속으로 세운 계획이 무색하게 어느새 서현덕의 목에 두르고 있던 팔을 푼 백유는 삐딱하게 기울어진 자세로 교관을 비웃고 있었다.
“너희들 같은 패배자 놈들을 상대로 겁먹는 쪽이 더 이상한 거 아닌가?”
“이 앞뒤 분간 못 하는 망종 년이……!”
거듭되는 도발.
사고를 치고 경질된 인물답게 교관 하나의 눈이 순식간에 돌아갔지만, 백유는 오히려 더욱 짙게 웃었다.
“앞뒤 분간 못 한다니, 앞뒤 분간 못 해서 사고를 치고 여기에 온 당신한테 그런 말 듣고 싶진 않은데?”
히죽거리며 비웃는 자세를 유지하는 백유.
그 오만하기 그지없는 태도에 교관이 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용서하지 않겠다는, 분노의 표현.
동시에 바로 공격하지 않은 것은 지금이라도 사죄하고 물러나면 한 번은 봐주겠다는, 교관으로서의 최후통첩이다.
그리고 그 최후통첩의 상황을 지켜보며 여미려가 백유를 말리려는 순간.
“천위가 이런 부분은 맞긴 해.”
뜬금없이 설천위를 언급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백유.
그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움직임을 멈춘 여미려.
백유의 바로 뒤에 있던 서현덕도 의아함을 숨기지 못한 그 순간.
“참 안일한 놈들이야.”
백유가 팔을 휘둘렀다.
밖에서 안으로, 할퀴듯이 휘두르는 팔.
문제는 그 속도가 상황에 집중하던 무인들조차 순간적으로 놓칠 정도로 아주 빨랐다는 점이다.
“컥?!”
그것은 그녀와 대치하고 있던 교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숨에 가슴팍의 근육이 뜯겨 나간 교관이 본능적으로 몇 걸음 물러서는 순간.
“거봐, 안일하잖아.”
망설임 없이 그 품으로 파고든 백유는 이번엔 교관의 목을 움켜쥐고 살점을 뜯어냈다.
동맥이 끊기는 것과 동시에 그녀를 향해 강하게 뿜어지는 피.
그 피를 피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쓰러지는 교관의 몸 위로 뜯어낸 살점을 떨어트리는 백유.
그 비현실적인 광경에 다른 학생들이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사이.
교관 중에 이미 검을 뽑은 이들은 그런 백유를 향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실전으로 다져진 반응.
그 뛰어난 반응 속도에 여미려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했고…….
“음~, 넌 좀 낫네.”
그 검을 튕겨 내며 백유는 차갑게 웃었다.
“네년! 실력을 숨긴 것이냐!”
“아쉽게도 그게 아니라서.”
웃으며 어깨를 으쓱인 백유는 손에 두른 내기를 보며 웃었다.
“선물이 참 효과가 좋네.”
설천위가 가져다준 선물.
그녀가 무대 위로 올라서기로 정한 날 밤.
설천위의 도움으로 독기를 제어하며 약초를 흡수하는 데 성공했다.
내공은 백유에게 부족했던 유일한 한 가지.
백유가 별다른 활동 없이 시간만을 보냈던 이유.
내공은 영약이 없으면 시간만이 답이었기 때문이다.
“음, 이건 나쁘지 않아.”
백유가 익힌 무공, 철섬수(鐵殲手)는 내공의 영향을 크게 받는 무공이다.
무리(武理)의 깊이보다 내공의 크기로 강함이 결정되는 전형적인 사파의 무공.
그렇기에 그녀의 재능보다 시간이 더 필요했던 무공.
그런데 그 시간을 설천위가 확 줄여 줬다.
“네년!!”
뒤늦게 상황을 인지한 다른 교관들도 각자의 무기를 꺼내 휘두르는 순간.
백유는 웃으며 양팔을 휘둘렀다.
“너희들은 안 좋아.”
단숨에 튕겨 나가는 무기들.
철섬수(鐵殲手)는 무리(武理)의 깊이가 얕은 무공이다.
전투 중에 빈틈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전형적으로 위력에만 치중한 일류 무공.
도저히 상승 무공이라 부를 수 없는 이 무공은 그녀가 후에 사천(邪天)이라 불리는 입지전적인 위치에 도달해도 여전히 그녀의 주력 무공으로 쓰인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성능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내공으로 손과 팔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후에 강기를 사용하게 되면 그 위력과 강도가 더욱 크게 증가한다.
그야말로 파괴력 하나만큼은 훌륭하기 그지없는 무공.
둘째로 유일한 단점인 무리(武理)의 얕음이 백유에겐 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조잡해.”
무리(武理)란 결국 힘을 쓰는 방법.
보다 효과적으로 적을 부수는 방법.
적을 부순다는 결과를 내기 위해 최소한의 힘으로 최선의 위력을 만들어 내든가, 적당한 힘으로 최고의 힘을 만들어 내든가.
결국 둘 중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한 것이 무리(武理)다.
분명, 배우지 못하면 쓰지 못하는 기묘한 수법들도 수없이 많다.
하지만, 그것들을 배우지 못했다고 해서 적을 부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적을 죽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주현운과는 다른 의미로 치트캐라 불리는 재능의 소유자.
사천(邪天)으로 칭송받는 것과 동시에, 적에게 투귀(鬪鬼)라는 멸칭으로 불리는 자.
고작해야 낙오되어 학관의 교관이나 하는 자들이 그녀의 앞에 대등하게 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커헉!”
튕겨 내고 그 틈을 찌른다.
아주 단순하고 아주 명확한 방법.
그렇기에 너무도 뻔해서 그 누구도 쉽게 당해 주지 않는 방법.
그런데 그녀는 그것을 당연하게 해낸다.
“익?!”
상대의 중심을 흩트리는 지점을 정확하게 찌르고.
의식의 빈틈을 정확하게 파고든다.
누구나 방비를 튼튼하게 하기에 의식의 허점에 놓이는 급소들을 정확하게 찌르고.
방어했다고 생각하는 이의 방어를 깨부수고 잡아 뜯는다.
전체를 보는 눈과 정확한 판단력.
그 판단을 일체의 망설임 없이 실행으로 옮기는 심력과 그것을 감당해 내는 육체.
무공이란 것이 약자를 위해 발전한 것이라면, 그녀는 본래 무공을 써선 안 되는 인간.
“끄륵.”
“싱겁네.”
그녀는 선천적인 강자.
바로 포식자다.
* * *
“……말도 안 돼.”
백유와 교관들의 전투를 지켜보던 여미려는 겨우 한 마디를 토해 냈다.
그것도 전투가 전부 끝난 뒤에서야.
홀로 교관들을 말 그대로 찢어 죽인 백유.
그 전투가 너무도 일방적이어서 교관들이 뭐라도 잘못 먹었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그게 아니면 도저히 이런 상황이 말이 안 됐으니까.
“흠, 좋아. 이 정도면 됐나.”
마지막 남은 교관의 숨통까지 완전히 끊어 버린 백유는 손에 묻은 피를 대충 닦아 내며 뒤돌아섰다.
“기생, 어때?”
“……저 말인가요?”
“여기서 기생이 너 말고 또 있어?”
피식 웃으며 여미려를 바라보는 백유.
그녀는 좀 전의 섬뜩한 눈동자를 보인 인물이라곤 도저히 상상이 안 가는 장난기 가득한 눈동자로 미소 짓고 있었다.
“……이젠 멈출 수 없게 됐으니 전면전을 해야겠죠.”
“왜? 내가 죽였으니 너희는 그냥 발뺌하면 되잖아?”
당연한 것인데, 왜 그러냐는 의문.
그 의문을 던지는 백유를 여미려는 가만히 바라봤다.
별다른 의도 따윈 없는, 담담한 눈동자.
장난스러운 미소는 오히려 왜 그런 멍청한 선택을 하느냐고 비웃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저 또한 신념이란 게 있어요.”
그런 백유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여미려는 담담하게 말했다.
“기생이라 조롱받아도, 천한 년이라 욕먹어도 저 또한 제가 가는 길이 있답니다.”
그것은 평소엔 말하지 않던 속내였다.
함께하던 그 사내에게조차 털어놓지 않았던 속내.
백유의 눈동자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속내를 꺼낸 여미려는 마음이 편해지는 기묘한 기분을 느꼈다.
“제 선택으로 벌어진 일입니다. 그 책임도, 그 보상도 제 것이에요.”
담담하게.
전신을 피로 적신 백유를 보며 여미려는 당당하게 자신의 뜻을 밝혔다.
이대로 물러날 순 없다.
그리고 그 눈빛에 백유는 입꼬리를 올렸다.
“꺄하하하하하!”
쾌활한, 너무나도 쾌활해서 귀가 아플 정도의 웃음.
그 경박한 웃음과 함께 백유는 여미려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너도 내 부하 할래? 2호로 삼아 줄게.”
2호.
그 말에 슬쩍 시선을 돌린 여미려의 눈에 서현덕이 들어왔다.
얼빠진 얼굴로 이곳을 바라보고 있는, 못 미더운 외관의 사내.
저 인간이 1호인가.
……그건 좀 불만인데.
“……1호보다는 제가 더 쓸모 있을 것 같은데, 제가 1호 하면 안 되나요?”
“안 돼. 쟤가 먼저 부하가 됐으니까.”
“예?”
전 그런 적 없는데요?
자신도 모르게 반문하려던 서현덕은 급히 자신의 입을 닫았다.
교관들을 말 그대로 찢어 죽이던 백유의 모습이 아직도 뇌리에 선명했으니까.
“그럼, 일단 부하 둘은 정해졌고…….”
고개를 돌린 백유는 아직도 얼빠진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학생들을 보며 웃었다.
“니들은 너희가 알아서 해라.”
아무나 부하로 받아 주는 건 아니니까.
* * *
백유.
그녀는 강하다.
봉마곡에서 영약을 먹는 이벤트는 처음으로 그녀의 힘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물론, 그 이벤트를 보려면 수업 중 마음에 안 드는 교관을 때려죽이고 봉마곡으로 뛰어든다는 미친 선택지를 골라야 하지만.
어찌 됐든, 그녀는 강하다.
독기 제어를 써서 약초를 흡수시켜 내공을 크게 늘려 줬으니 아마 당할 염려는 없을 거다.
이쪽의 허접한 몸뚱이와 다르게 그녀는 약초의 기(氣)를 말 그대로 바닥까지 빨아먹어 흡수했으니까.
내공의 상승 폭이 어마어마했지.
이쪽은 지네의 내단까지 흡수해 가며 빨아들였는데도 내공은 큰 성장을 못 이뤘는데…….
물론 몸의 질을 올리는 데 기가 많이 투자돼서 그런 것이긴 하지만.
그렇게 올라간 몸의 질도 처음엔 만족스러웠지만 지금은 아쉬움이 많은…….
[천위!]
“예?”
[정신 똑바로 차려라. 또 안 좋은 버릇이 나오는구나. 쯧쯧.]
천마의 호통에 그제야 현실로 돌아온 설천위는 축축한 옷을 손으로 쥐어짜 내며 웃었다.
“저 빌어먹을 놈들, 더럽게 끈질기네요.”
[내공이 금제된 지금이 좋은 기회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겠지.]
씁.
내공 금제.
뭐, 솔직히 별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패기도 있고, 영력도 있으니까.
술법은 아직 무인에게 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지만 이쪽엔 그래도 나름 뛰어난 악귀들이 있지 않은가.
불러다 쓰면 웬만한 놈들쯤이야 금방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새끼들 잘 싸우네.”
철저한 차륜전과 투척물을 적극 활용하는 전투 방식.
마치 게임 속에서 강한 보스를 레이드 하듯 차분하게 깎아내려 가는 전투가 당하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빡치는지 실감할 수 있는 기회였다.
나도 다음에는 꼭 이렇게 하자고 다짐할 정도로.
[그래도 얼추 정리되지 않았느냐?]
“뭐, 그렇죠.”
치고 빠지는 놈들을 한 놈씩 확실하게 붙잡아서 죽이는 것 정도야 나도 가능하니까.
이제 남은 건 한 대여섯 되려나.
“빨리 정리하고 내려가죠. 밑에는 더 개판이 벌어졌을 것 같으니까.”
이러다 그 여자가 말한 대로 진짜 전쟁이 나는 거 아닌지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