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133화 (133/624)

제133화

132화-백유 (2)

설천위가 흑룡학관에 오면서 백유(白柳)를 계획 아래 두지 않았던 이유는 하나다.

예측할 수 없으니까.

사람들이 미친 인간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

행동과 사고가 너무 극단적이거나.

행동과 사고를 이해할 수 없거나.

백유는 후자에 속하는 인물이니 쓸데없는 정신 소모는 하지 말자는 생각에 계획에 넣지 않았다.

그래서 솔직히 백유와 친해졌을 땐 불안한 감도 없지 않아 있었는데…….

“이 녀석들이 끝인가?”

“어. 아마도.”

……불안한 게 맞았네.

흑룡학관 내부에 있는 대로.

여러 건물들을 연결하는 이 널찍한 길 위에서 몇 명의 사내가 몸져누워 있었다.

그 상황을 만들어 낸 당사자, 백유는 싱겁다는 얼굴로 사내들을 보며 쪼그리고 있던 다리를 폈다.

“싱겁네.”

싱거운 게 문제가 아닌데.

너, 나중에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넌 여기 학생이잖아.

백유의 뒷모습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던 설천위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고민해 봤자 쓸모없는 고민이니까.

그나저나.

‘이건 좀 이상한데.’

어제까지만 해도 몸을 사리던 놈들이 갑자기 우르르 돌아다니네.

“아무래도 학관장이 움직인 것 같군.”

옷매무새를 정리하면서 내뱉는 백유의 말에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생각해도 그 가능성 외엔 안 떠올랐으니까.

“아무래도 계획이 본격적인 단계에 들어선 것 같은데?”

“그 영감은 언제나 마음에 안 들었지.”

어느새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으로 한쪽을 바라보는 백유.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설천위는 저 멀리서 달려오는 이들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 * *

“이놈들! 뭐 하는 짓이냐!”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호통을 치는 사내.

그 얼굴을 이곳저곳 살핀 설천위는 미간을 찡그렸다.

“대주가 아니네?”

“네놈들 따위를 멈추는데 대주께서 올 필요는 없다!”

과연, 그렇게 나오시겠다?

부하들을 통해 간을 보려는 행태가 역시나 구역질이 났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성무경이나 백유 같은 인물들이 유별난 거지 이게 사파의 평균이긴 하다.

아니, 평균보다는 최저치라고 해야 하나?

이것보다 더한 것들도 많으니까.

그런데…….

“참 배운 것도 제대로 못 실천하는 놈들이야.”

사추홍이 아주 강압적으로 시스템을 짜고 교육을 강요하고 있긴 하지만, 그가 말하는 용병술은 의외로 정석에 가깝다.

지휘관급은 솔선수범을 보이고, 나서야 할 때 나선다.

사추홍을 싫어하지만 그의 가르침엔 공감하는 성무경이 그러했고, 현 사파의 주력이 되는 대(隊)에서도 몇몇 대주가 이를 실천하고 있다.

그런데 그 밑에서 그걸 배우고 실천해야 할 놈들이.

쯧쯧.

“너희들이 나선다고 뭐가 달라지나?”

설천위의 몸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패기.

우르르 몰려와 자신들의 머릿수만 믿고 당당히 폈던 어깨가 금세 움츠러든다.

하지만 해야 할 말이 있는 건지, 처음 호통을 쳤던 사내는 어떻게든 어깨를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네, 네놈들!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다!”

“뭐가?”

“이곳은 흑룡학관! 네놈이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학생이라는 것을……!”

안면이 무너지며 날아가는 거한.

그 광경을 만들어 낸 백유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서?”

“무, 무슨……!”

“우리가 학생이라는 것이 무슨 상관이지?”

번뜩이는 눈동자.

그 안에 담긴 광기를 목도한 사내의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설천위는 백유의 어깨를 잡았다.

“그만! 아무래도 준비해 놓은 게 있는 것 같으니까 그거나 기다려 보자고.”

* * *

“일단은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네요.”

“백유의 참가는 예상외 아니었나?”

“조금 예상 밖이긴 했죠. 안 움직일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백유.

나태한 기질을 가진 암사자.

솔직히 말해서, 압도적으로 강하다고 말할 순 없었다.

그녀와 비슷한 무력을 가진 학생이 흑룡학관에만 몇이나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녀와 싸우고 싶은가?

이렇게 묻는다면 대답이 애매해진다.

싸우면 질 것 같진 않긴 한데…… 왠지 싸우긴 싫다.

……정도의 느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꺼리는지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

사파에서 미지의 존재와의 전투는 목숨을 내놓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에 그 누구도 섣불리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어떤 인간이 학관의 야산에 야영지를 짓고 거기에서 산단 말인가.

깔끔하고 좋은 기숙사를 내어주는데.

가장 기본적인 행동부터가 이해할 수 없으니 사람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런 백유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었다.

“그래도 그녀가 움직였으니 무언가 변하긴 하겠죠.”

그녀가 움직이면 무언가 변한다.

가끔씩 그녀를 볼 때마다 느꼈던 기묘한 감각.

마치 무리를 이끄는 수장의 그것과도 같은 기세를 풍기는 그녀의 모습에 한 가닥 기대를 품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 방향이 우리에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가 봐야 알겠지만요.”

뭐가 됐든 변화라는 계획은 흐름대로 가고 있으니.

이젠 이쪽도 슬슬 움직일 때가 됐다.

* * *

“과연, 이렇게 나온다는 건가?”

수업.

교환학생의 신분으로 왔기에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

그 수업을 듣기 위해 온 설천위는 예상치 못한 실습 통보를 받고 이렇게 산을 오르고 있다.

“이건 너무 노골적인데.”

거기에 더해, 내공을 금제하는 약까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생존 수업…… 이라는 명목인데.

그 속이 너무 빤히 보여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내공을 금제하고 사람들과 떨어진 야산을 오르게 한다.

가져와야 하는 건 정상에 있는 표식.

그 표식이 실제로 정상에 있는지도 모르겠다만…….

“아니, 이제 막 산에 들어왔어, 새끼들아.”

벌써부터 이렇게 포위하면 쓰나?

도리상 정상에서 내려오는 순간에 쳐야 하는 거 아니냐?

좀 지친 다음에 공격해 와야 하는 거 아니냐고.

스릉.

대답도 없이 검을 뽑는 놈들.

잠깐.

“……너희, 학생 아니지?”

풍기는 기세가, 아니 살기가 다르다.

학생들이 내뿜는 조잡한 위협이 아니다.

진짜 살기(殺氣).

거기에다 이쪽의 도발에도 일절 응하지 않는 냉정한 태도.

“하, 이것 봐라?”

아무래도 진짜를 보낸 것 같은데?

* * *

“……이상하군.”

갑작스러운 수업 일정의 변경.

드문 일이 아니긴 하지만, 이런 시기에 할 일도 아니다.

여러 가지 문제로 한창 시끄러운 지금 이 시기는 교관들도 몸을 사리는 때.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수업 일정을 바꾸는 건 아무리 봐도 선뜻 이해가 가질 않았다.

거기에다.

‘……합동 수업이라.’

여태껏 단 한 번도 없었던 합동 수업.

그것도 같은 수업을 듣는 이들은 찢어 놨으면서 다른 수업을 받는 이들과는 묶어 놨다.

의문이 절로 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 서현덕은 일단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

“너, 서현덕이라고 했나?”

“으, 예?”

뜬금없이 말을 걸어온 여인.

백유의 모습에 서현덕은 당황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머뭇거렸다.

학관 내에서 얽히면 안 될 것 같은 위험인물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사람이 갑자기 왜?

“흐음? 정말 천위가 그렇게 칭찬할 정도의 사람인가?”

칭찬? 누가? 그 인간이? 날?

이해하기 힘든 백유의 말에 서현덕이 멍하니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집중!”

교관의 우렁찬 목소리가 학생들의 시선을 끌었다.

단숨에 집중된 이목.

그 속에서 교관은 학생들을 쓱 훑어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최근 학관 내의 기강이 많이 흐트러졌다는 말을 들었다.”

한껏 위협적인 기세를 뿜어내는 교관.

그 모습에 백유는 물론이고, 서현덕까지 미간을 찡그렸고.

“참 치졸하게 나오네요.”

담담한 목소리.

그 목소리에 시선을 돌린 서현덕은 그녀의 모습을 확인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여미려.

흑룡학관에서도 유명한 하오문 출신의 학생.

기녀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고 하는 그녀는 묘한 색기를 풍기는 여인이었고, 미색도 참으로 뛰어났다.

남학생들의 우상 중 하나라고 해야 하나.

듣자 하니 하루에 연서를 몇 통씩 받는다던데.

물론 그런 언감생심에 심력을 쓸 생각이 없는 서현덕은 진즉에 그림의 떡으로 치부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보니 참 예쁘긴 하네.

“쯧쯧, 눈이 풀리고 있다. 이런 녀석이 진짜 쓸모 있는 건가?”

“예?”

옆에서 혀를 차는 백유의 목소리에 다시 고개를 갸웃하는 서현덕.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슬쩍 흘겨본 여미려는 이내 다시 교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대(隊)에 속하지 않은, 혹은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 않는 학생들만 모아 놓았군요.”

담담하게, 하지만 뚜렷한 적의가 담긴 여미려의 목소리에 서현덕은 그제야 이상함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여기엔 표식을 하고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문신 같은 극단적인 대의 표식은커녕, 표식이 수놓인 천을 감거나 옷에 수놓은 이들조차 없었다.

즉, 학교의 지침에 따르지 않고 있는 이들.

하지만.

“저, 저는 1학년인데요?”

나는 1학년인데?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신보다 약해 보이는 이가 없는 것이 전부 2학년 이상일 게 분명했다.

2학년 이상부턴 학생의 대(隊) 가입을 거의 필수로 권유하고 있으니 대에 가입하지 않은 학생들은 당연히 학관의 방침을 거스른 자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아닌데?

당황한 서현덕의 목소리에도 교관들은 오로지 싸늘한 시선만을 보냈다.

“그건 아마 네가 천위랑 친해서가 아닐까?”

“예?”

“보아하니 여기에 천위가 없는 걸로 봐선 아예 따로 처리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정도로 천위를 싫어하니 너도 부른 거겠지.”

아니, 나는 그냥 이야기 좀 나누고 같이 밥 좀 먹은 게 다인데?

소문과 달리 나한테는 꽤 잘해 줘서 그냥 적당히 잘 지낸 것뿐인데?

백유의 설명에 억울함이 담긴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 서현덕.

하지만 그의 그런 눈빛에도 교관들은 싸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정파와 내통하고 흑원대를 팔아먹은 네놈은 당연히 계도의 대상이다.”

“그게 무슨……!”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말해라.”

“무엇을 말입니까!”

“설천위의 약점이나 그 녀석에 관한 정보.”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내는 교관.

그 모습에 서현덕은 미간을 찡그렸다.

이건, 옳지 않다.

“설 공자는 교환학생이라고 해도 이 학관의 학생입니다! 교관이 그런 학생의 약점을 이렇게 대놓고 요구하다니요!”

“흥, 결국 정파의 위선자일 뿐이다. 네놈도 쓸모가 있어 보이니 다가갔던 것뿐이겠지.”

“지금이라도 네 안위를 생각한다면 놈에 관해 알아낸 모든 것을 불어라.”

대놓고 협박까지 하는 교관들.

그 모습에 몇몇 학생들이 미간을 찡그리며 일어서려는 순간.

“싫습니다.”

단호한 목소리가 그들의 움직임을 멈췄다.

여태까지 겁먹었던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꼿꼿이 선 서현덕은 교관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는 사파인이고, 사파인으로서 살 거지만…….”

설령 설천위가 자신을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와 어울렸던 시간이 짧고, 그 교류가 그리 깊진 않았지만.

청아를 보고자 몇 번이나 찾아갔던 자신을 설천위는 냉정하게 내친 적이 없었다.

오면 피식 웃으며 차나 식사를 함께해 주던 사내.

이 사파에서 몇 없는, 진짜 편안하게 웃으며 대화할 수 있는 사내.

그런 사내를 팔라고?

팔 만한 정보 따윈 하나도 없지만.

“친구를 파는 짓은 절대 안 합니다.”

나는 내 생에 부끄러움 따윈 없다.

담담하게 허나 고고하게.

굽히지 않는 신념.

그 모습에 여미려를 비롯한 몇 사람의 눈이 커지고.

“꺄하하하하하하하하하!!”

쉽사리 듣기 힘든 격한 웃음소리가 공간 전체로 퍼져 나갔다.

이윽고 서서히 사그라든 웃음 끝에 입꼬리를 올린 백유는 서현덕의 어깨에 팔을 두른 채 웃었다.

“너, 내 부하 할래?”

“예?”

아니, 그게 갑자기 무슨…….

당황하는 서현덕과 놀라는 주변 인물들.

그리고.

“갈!!”

호통을 치는 교관.

순식간에 다시 분위기를 휘어잡으려는 교관의 호통에 다른 학생들이 긴장하는 그 순간.

“조용히 해 봐. 내가 얘기하고 있잖아.”

사방을 짓누르는 끈적한 살기가 교관의 입을 틀어막았다.

광기(狂氣).

설천위를 비롯한 자신의 사람들에겐 결코 보여 주지 않는 그녀의 진면목.

누군가에겐 절대악이 될 수도 있는 그녀의 본질.

“설마, 교관이라고 안 죽일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삐딱하게 고개를 꺾은 채 교관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광기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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