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132화 (132/624)

제132화

131화-백유 (1)

“꼴좋다, 새끼들.”

“아주 속이 시원하네.”

저녁 술자리.

흑룡학관 근처에 모인 학생들은 웃으며 술을 들이켰다.

그렇게 기분 좋게 술을 마시는 두 학생의 곁으로 사내 하나가 술병을 들고 다가왔다.

“이거, 흑룡학관의 영웅들 같은데 무슨 일 때문에 이리 기분이 좋으신가?”

“……뭡니까, 아저씨.”

살짝 경계심이 담겨 있는 눈빛에 사내는 웃으며 술병을 흔들었다.

“남 이야기 듣기 좋아하는 아저씨가 술을 가져온 이유가 뭐겠는가?”

자연스럽게 합석한 사내는 학생들의 술잔에 자신의 술을 따랐다.

학생들이 먹고 있던 술보다 족히 배는 나가는 가격의 술.

“크흠.”

“무슨 이야기가 듣고 싶소?”

맛난 술 앞에서 경계심이 한껏 누그러진 두 학생의 모습에 사내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거,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는 것 같은데 나도 궁금해서 그러네.”

“외부인이 알아도 딱히 즐거울 것 같진 않은데…….”

“에이, 사해가 동도라고 누구의 얘기인들 즐겁지 않겠는가? 하물며 흑룡학관 영웅들의 이야기라면 나 같은 일반 양민에겐 사소한 것도 즐거운 법일세!”

술을 권하며 연신 학생들을 치켜세우는 사내.

그런 사내의 태도에 어깨가 으쓱해진 학생들은 작게 헛기침을 하고 술잔을 들었다.

“그럼 조금 풀어 드릴까?”

술을 단숨에 들이켠 학생은 비싼 만큼 맛있는 술맛에 취하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최근 학관에서 말이야, 나대던 놈들이 줄어들기 시작했거든.”

“그렇게 만든 게 정파 놈이라는 건 참 뭐라고 말하기 힘들긴 하지만.”

“정파?”

사내의 물음에 학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정파이긴 한데 누가 봐도 사파인이긴 해.”

“그놈은 대체 왜 정파에 있는지 모르겠다니까.”

두 학생의 말에 다시 술을 따르며 대답을 재촉하는 사내.

그런 사내의 손짓에 웃으면서 학생들은 술잔을 들었다.

“그놈이 뭔 짓을 했냐 하면…….”

* * *

“끄아아아악!”

“어? 뭐야, 아파?”

“이, 이 빌어먹을……!”

“아니, 그 실력으로 깝죽거리기에 난 또 뭐라도 있는 줄 알았지.”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는 설천위의 모습에 무릎이 땅에 닿아 있던 상대는 이를 악물었다.

이 양아치 새끼.

“네놈, 대체 무슨 억하심정으로……!”

“아니, 그런 거 없는데? 그냥 약한 놈이 어깨를 딱 벌리고 대로를 걷는 게 띠꺼워서 그랬는데?”

그게 무슨 개소리야.

“웬만한 사파보다 더하네.”

“어떻게 날마다 이유가 바뀌어.”

얼굴이 마음에 안 든다.

눈빛이 마음에 안 든다.

걸음걸이가 마음에 안 든다.

등등.

온갖 이유를 대며 설천위가 시비를 걸고 다닌 지 무려 일주일.

맨 처음엔 하나같이 공포에 떨던 학생들은 일주일 사이에 설천위가 어떤 기준으로 시비를 걸고 다니는지 알게 됐다.

대(隊)의 규모만 믿고 패악질을 일삼던 녀석들.

실력은 없으면서 그저 머릿수의 힘만 믿고 으스대던 녀석들.

“꼴좋지.”

“요즘 의약당 침대가 남아나질 않는다더군.”

“구마대 놈들이랑 거산대 놈들이 거의 침대의 반을 차지한다지?”

“다른 놈들도 바글바글한다더군.”

흑룡학관이라고 전부 패악질만을 일삼는 이들만 있는 건 아니다.

사파라곤 해도 결국 사람이 사는 세상.

인간으로서 넘지 않아야 할 선을 지키는 사람들이 선을 넘는 사람들보다 더 많다.

단지 그 선을 넘는 이들의 비율이 정파보다 좀 더 많고, 그 선의 기준이 정파보다 조금 더 낮기에 사파라고 불리는 것뿐.

그런데.

“그놈들 진짜 짜증 나긴 했어. 뭣도 없는 놈들이…….”

“싸우면 별것도 아닌 것들이 나대긴 했지.”

대(隊)는 그에 합당한 이름값을 가졌기에 당연히 실력 위주로 사람을 뽑는 것이 기본이지만, 모두가 원한다고 큰 규모의 대에 들어갈 순 없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생기는 것이 청탁이다.

부모의 인맥은 물론이고, 거금을 내서라도 유명한 대에 들어가려는 이들.

당연히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도 밀려나는 이들이 수도 없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들이받으면?

자신들의 이름값을 걱정하는 진짜들에게 보복을 당한다.

즉, 호가호위를 누리는 놈들에게 짓눌려 사는 것이 흑룡학관 학생들 대부분의 현실이란 소리다.

가끔 성무경 같은 이들이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대(隊)를 만들어 내지만, 그것도 잠시.

호가호위라는 이점이 없는 깨끗한 대는 그 시초가 떠나면 금세 무너져 버린다.

이점이 사라진 대에 굳이 들어갈 이유가 없다.

사파인은 원래 그런 족속이니까.

그렇기에 생겨난 불평등의 굴레.

가진 놈들은 쥐뿔도 없어도 어깨 딱 펴고 다니고.

없는 놈들은 피똥을 싸며 수련해도 어깨를 움츠리고 다녀야 하는 곳.

그곳이 흑룡학관인데…….

“팍씨!”

설천위가 그 구도를 바꾸고 있었다.

쥐뿔도 없이 어깨를 펴고 다니는 놈들의 어깨를 강제로 접어 버리고.

제대로 된 보법도 못 하면서 팔자로 걷는 놈들의 다리를 접어 버렸다.

그러면서도 없는 이들은 건드리지 않으니…….

“흐하하하! 요즘 살맛이 나는구먼!”

“요즘은 수업을 듣는 것도 행복하네.”

흑룡학관은 전과 다른 밝은 웃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참…… 묘하네요.”

그리고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여미려는 고개를 저었다.

바꿔야 한다고.

바꾸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차마 실행하지 못했던 일.

그걸 해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외부인이라니.

“모든 조건을 이렇게 만족시키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계획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예요.”

실제로 머리도 꽤 좋아 보였고.

함께하는 남학생과 대화하는 여미려의 눈이 살짝 낮게 가라앉았다.

백 냥으로는 부족하다며 조금 더 뜯어 간 인간.

나름 계산에도 꽤 밝은 모습을 언뜻 보였다.

물론 그조차도 연기일 수 있겠지만.

뭐가 됐든,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대형 대(隊).

실력이 부족한 일반 학생들은 그렇다 치고 진짜 실력을 가진 이들조차 그들을 건드리지 않는 이유는 하나다.

그 뒤에 맹에 있는 진짜 대가 버티고 있으니까.

싸우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녀석들이 있는데, 졸업 후엔 그놈들이랑 한솥밥을 먹으며 살아야 한다.

대형 대(隊)의 녀석들도 눈치가 있어서 강한 녀석들은 잘 안 건드리니 불이익을 감수하며 굳이 문제를 일으킬 이유가 없다.

또한, 학관장이 뒤를 봐주는 놈들과 싸우면 학관장의 눈 밖에도 날 테니 그 또한 크나큰 손해다.

그런데, 설천위에게는 그런 불이익이 하나도 해당되지 않는다.

이게 설천위에게 일을 맡긴 첫 번째 이유.

“아직도 강한지 아닌지 모르겠군.”

“강하겠죠. 그러니 흑원대주의 팔을 잘랐겠죠.”

두 번째 이유.

실력의 증명.

저 정파의 협객은 시비를 걸어온 흑원대주의 팔을 잘라 버렸다.

아무리 사천맹에 있는 대가 학관에 있는 이들의 뒤를 봐준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린 녀석들을 상대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같은 수준, 동렬의 존재 그것도 목에 칼을 들이밀 수 있는 정파의 인물이라면?

섣불리 손댈 수가 없다.

하물며 흑원대라는 이름 있는 대의 대주조차 팔이 잘리지 않았던가.

지금 흑원대는 주변 대에게 물어뜯겨 거의 와해된 거나 마찬가지인 상태가 됐다.

무력의 주축인 흑원대주의 팔이 잘렸으니 이는 당연한 수순.

즉, 잘못 건드렸다간 망할 수도 있다는 게 증명되었다.

고작해야 애들 싸움에 끼어든 대가로 보기엔 너무나도 막심한 손해.

학관장이 움직이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결국, 설천위는 외부의 압력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가 됐다는 소리다.

온전히 실력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존재.

그렇게 되면 세력만 믿고 으스대던 놈들?

“이 속도라면 얼마 안 걸리겠어요.”

안 무너지고 배기겠나.

뒷배를 봐주던 이들도 감당할 수 없는데, 본인들의 실력으로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구마대나 거산대의 대주가 방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는 소문은 이미 퍼질 대로 퍼진 상태다.

물론, 그 소문의 대부분은 여미려 본인이 퍼트린 거지만.

“자, 그럼…… 어떻게 나올지 조금 볼까요?”

여미려의 눈이 흑룡학관의 중심에 있는 학관장실로 향한다.

이제 어떻게 나오실 건가요?

* * *

까득.

“이런…… 개, 같은…….”

이를 악무는 사추홍.

그의 분노에 곁에 선 부하는 숙인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가만히 숨을 죽였다.

괜히 거슬렸다간 피를 보게 될 테니까.

그렇게 숨 막히는 침묵이 감도는 학관장실.

겨우 마음을 추스른 사추홍은 이미 식어 버린 찻잔을 들어 올렸다.

“……답이 없군.”

막혔다.

모든 길이.

교환학생인 설천위를 돌려보내고자 했으나 불허됐다.

흑룡학관은 어디까지나 사천맹의 산하기관(傘下機關).

무림맹의 산하기관인 무림학관의 힘겨루기에서 먼저 꼬리를 내리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감당할 수 없다며 돌려보낸다는 선택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렇다고 트집을 잡아서 보낼 수 있는가?

까득.

“그러니 내, 분명 학관에는 보다 엄격한 규율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그리 강조했거늘……!”

강자선(强者善).

사파 전체를 관통하는 이 법칙이 학관만은 피해 가야 한다고 그리 주장했지만, 언제나 먹히지 않았다.

그래서 임의로라도 어떻게든 결속력을 만들어 통제 가능하도록 조직화한 것이 지금의 흑룡학관이었는데…….

그것이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사추홍이 처음부터 경계했던 독보적인 힘에 의해.

하물며 그것이 사파의 미래를 책임질 절대자의 시작도 아니고 정파 나부랭이의 깽판질이라는 사실에 더욱 열불이 났다.

정파의 애새끼에게 자신의 교육 방침이 부정당하고 있으니 속이 뒤틀리지 않을 수 없다.

오로지 힘의 논리로만 움직이는 강자선(强者善)에 의해 설천위를 막고 싶으면 더 강한 힘으로 찍어 누르는 방법밖에 없게 됐다.

문제는.

“……그게 가능한 놈들이 있을까?”

일단 자신이 부릴 수 있는 놈들 중에는 설천위와 일대일 대결로 맞서서 이길 놈이 없다.

그렇다면 다대일로 해결해야 한다는 소린데…….

‘그나마 가능성이 있군.’

밑에 있는 녀석들을 한 번에 움직이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런 무대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냐는 것인데…….

“만들어야지. 그놈의 면상을 안 보려면.”

이를 악문 사추홍은 부하에게 손짓했다.

“관리하던 아이들의 대주를 전부 부르도록.”

“허면…….”

“웬 미친 개새끼가 온 마을을 누비고 있으니 마을 사람 전체가 가서 밟아 줘야겠지.”

혼자 가면 위험하니까.

오히려 물릴지도 모르니까.

같이 가서 밟아 버리면 된다.

까득.

“개 같은 놈……. 반드시 짓이겨 주마.”

최근 잇몸이 아파지기 시작한 사추홍이었다.

* * *

여미려의 계획대로 흑룡학관에 균열을 만들기 시작한 설천위.

치밀한 계획으로 완벽한 상황을 만들어 압박…… 은 무슨, 그냥 즐거웠다.

“흠흠.”

“천위, 즐거운 것 같은데? 정파 맞나?”

“아니, 맞는데. 안 즐거운데?”

“뭐라는 거야.”

어색하게 부정하는 설천위의 모습에 피식 웃은 백유는 다리를 꼰 채 고기를 뜯었다.

“그래서, 네가 보기엔 어떻지?”

“뭐가?”

“지금의 사파, 그리고 흑룡학관.”

뜬금없는 질문.

식사를 하다 말고 뜬금없이 나온 질문이기에 아무 생각 없는 답이 나와도 이상할 게 없는 타이밍.

그러나.

“재미없지.”

설천위는 미리 준비해 놓은 대답이 있었다.

왜냐하면 언젠가 이 질문이 나올 줄 알고 있었으니까.

백유와 친해진 시점부터 예상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재미있다.”

“왜?”

“너처럼 포기하고 구경하는 게 아니니까.”

담담하게 모닥불을 바라보는 설천위.

그런 말을 하면서도 자신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 설천위의 모습에 백유는 묘한 눈빛으로 설천위를 바라봤다.

왤까.

이 녀석에겐 계속 눈이 간다.

“사람마다 달라. 밖에서 구경하는 것이 재미있는 사람도 있고, 안에서 함께 어울리는 게 더 재미있는 사람도 있지.”

스포츠를 좋아한다고 해서 모두가 직접 몸으로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모두가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설천위가 알기론 백유는 단연코 필드 위에 서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다.

“슬슬 무대 위로 올라와라, 백유. 네가 있을 곳은, 네 친구가 있을 곳은 무대 위니까.”

도화선.

사파의 주축이 되어야 하는 백유가 조금 더 빨리 움직인다면?

나쁠 건 없겠지.

그녀는 운이 아니라 실력으로 자신의 밭을 일궈 내는 사람이니까.

권유와 함께 드디어 백유와 눈이 마주친 설천위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피식 웃고 말았다.

“이미 올라와 있었나?”

“친구가 이미 올라가 있으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더군.”

설천위를 바라보는 백유의 눈동자가 매혹적으로 휘었다.

뭇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위에 서는 자의 미소.

미친눈나.

십 년 후 사도제일이라 불리며 사파의 정점에 서는 괴물.

사파의 하늘.

그야말로 이야기의 주인공.

사천(邪天) 백유(白柳).

그녀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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