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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131화 (131/624)

제131화

130화-꼬우면, 알지? (4)

흑룡학관에는 많은 대(隊)가 있다.

보통 2학년에 들어가며, 그곳에서 학관 생활을 하는 내내 자신의 등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동료를 얻는다.

참으로 이상적이고 끈끈한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을 듯한 구조이지만…….

이 흑룡학관의 대(隊)는 결국 학관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 해, 한 해의 변화가 큰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의 학생들이 주로 모인 학관.

그곳에서 선배는 하늘 같은 존재이고, 당연히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수직적 구조로 이루어진다.

무엇보다 이런 상명하복의 관계를 학관 자체에서 적극 권하니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거기에다 선배가 졸업하더라도 후배는 남는다.

같은 대(隊)의 이름으로.

동급생들이 모여 후배를 받지 않고 다 같이 졸업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그 이름을 남긴다.

당연히 사천맹으로 들어간 선배들 중에 이름을 날리는 이들이 생길 것이고, 그들의 출신은 곧 대(隊)의 명성이 된다.

그 대(隊)에서 졸업하면 미래가 보장된다.

이런 이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규모가 크고 영향력이 강한 대(隊)와 규모가 작고 영향력이 약한 대(隊)가 나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흑룡학관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몇 개의 대(隊)가 존재하는데, 그중에서는 악명을 떨치고 있는 것들도 있다.

웬만한 군대의 부조리는 저리 가라고 할 정도로 심한 데다 끊임없이 패악질을 일삼으며 문제를 일으키는 대(隊).

그중 하나가 흑원대였고, 지금 설천위의 눈앞에 있는 이가 속해 있는 구마대도 마찬가지로 악명이 높은 조직이었다.

“어이, 다시 말해 봐. 내가 똑똑히 들었으니까.”

술로 축축하게 젖은 상대의 머리를 툭툭 치며 설천위는 그 눈을 바라봤다.

“싸우면 한주먹 거리도 안 된다며? 어?”

조용히 술을 마시던 설천위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술기운에 취해 설천위를 마구 깎아내렸던 사내.

구마대 소속의 장명은 떨리는 눈동자를 감추지 못했다.

왜냐고?

설천위가 흑원대주의 팔을 자르는 광경을 그의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으니까.

술기운에 취해 허세를 부리며 입을 놀리긴 했지만 자신이 설천위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거기에다…….

“아이, 구마대가 언제부터 이렇게 겁이 많아졌나? 응? 거, 진짜 개새끼라도 되어 버린 거야? 짖다가 목줄을 풀어 주면 입을 다무는 똥개야?”

노골적인 모욕.

하지만, 입을 열 수 없었다.

왜냐고?

‘이……개, 새끼……!’

기세로 이렇게 억누르고 있으면서 왜 반항을 안 하느냐고 쪼냐?

사람 새낀가?

공간을 짓누르는 무형의 압박감.

숨을 쉬는 것조차 버겁다고 느껴질 정도로 장명은 제 몸 하나 가누는 것조차 힘들었다.

“응? 친구들, 말해 봐. 정말 똥개가 되어 버린 거야?”

술에 취한 듯 한껏 올라간 목소리.

그 모습에 장명과 함께 술을 마시던 동료들도 어쩔 줄 몰라 눈이 허공을 헤매었다.

여기엔 조장급 인사도 없다.

이류 끝자락 정도에 머무는 자신들이 그의 상대가 될 리 없지 않은가.

조장급이 와도 일초지적도 안 될 것 같구먼.

누가 봐도 꼬리를 내린 거나 마찬가지인 그들의 모습에 주변에 있던 이들이 혀를 차기 시작했다.

“온갖 패악질은 일삼던 놈들이…… 막상 강한 놈 앞에서는 꼬리를 내리는 똥개나 다름없구먼.”

“저거 저놈, 장명 아니야? 자기 눈엔 뵈는 거 없다고 칼 들고 마구 설치던 놈.”

“눈에 뵈는 거 참 많아 보이는구먼, 뭔 소린가?”

거듭되는 조롱에 구마대원들의 표정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그 순간.

“뭐 하는 짓이냐!”

낮은 목소리에 설천위가 고개를 돌렸다.

썩은 표정으로 설천위를 바라보고 있는 사내.

구마대 소속은 아니다.

구마대와 의형제 관계에 있는 거산대(鋸山隊) 소속의 조장이다.

그 경지는 일류.

“이런 패악질을 벌이다니 너무 오만방자한 거 아닌가?”

“흐음, 그게 무슨 소리래?”

살짝 삐딱하게 고개를 꺾으며 거산대의 조장을 바라보는 설천위.

그 기묘한 시선에 이를 악문 조장은 정신력을 끌어올려 대응했다.

“네놈은 결국 손님이나 마찬가지인 위치인데, 이 무슨…….”

“에헤이, 우리 서로 말은 똑바로 해야지?”

상대의 말을 끊고 설천위는 웃으며 움직였다.

느긋하게 여유가 넘치는 걸음으로 그의 앞에 선다.

‘이……?’

공격인가 싶어 대응하고자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조장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면……!

조장의 눈동자가 공포로 물드는 그 순간.

“나는 지금 교환학생. 이곳의 학생이란 말이지.”

조장의 어깨에 손을 올린 설천위는 웃으며 그를 바라봤다.

“흑룡학관의 규율 중에 강자선(强者善) 알지?”

이 미친놈이?

설천위의 입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단어가 등장하자 주변의 공기가 일변했다.

강자선(强者善).

흑룡학관, 아니 사파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법칙.

강한 자가 옳다.

강한 자가 바르다.

강한 자가 정의다.

뒤통수를 맞아 손해를 봤다면 그건 약해서 그런 것이고.

함정에 빠져 목이 날아갔다면 그것도 약해서 그런 것이고.

죽인 상대의 자식에게 복수를 당해 죽는다면 그것 또한 약해서 죽은 것이다.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기 위해,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대원칙.

약해서 당한 것이다.

그러니, 내가 나쁜 게 아니다.

“저놈들은 내 욕을 했고, 나보다 약하지.”

“그……!”

“그러니,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지.”

조장의 어깨를 쥔 손에 힘을 더하며 설천위는 웃었다.

“내가 이곳에서 배우기로 했으니 너희가 말하는 강자선의 법칙에 따르겠다, 이 말이야.”

“끄윽!”

어깨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점차 몸을 구부러트리던 조장의 무릎이 결국 꺾여 땅에 닿는다.

“그러니 해 보자고. 누가 더 독한 놈인지 알려 줄게.”

설천위의 두 눈이 섬뜩한 한기로 번뜩였다.

* * *

“……제가 부탁했지만, 정말 잘해 주네요.”

요 며칠 객잔에 죽치고 있던 보람이 있네.

여미려의 칭찬 아닌 칭찬에 맞은편에 있던 청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왈패 같은 인간이긴 하죠.”

……뜻이 잘못 통한 것 같은데.

변장한 상태로 고기를 집어먹고 있는 청아를 가만히 바라보던 여미려는 이내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주인님 걱정은 안 되시나요?”

“걱정이요?”

“꽤나 위험해질 겁니다. 사파는 물불 안 가리기에 사파니까요.”

살수들이 괜히 사파로 분류되는 게 아니다.

인간의 목숨으로 장사해서?

인명을 가볍게 여겨서?

아니다.

그들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오로지 결과.

그것 하나만을 보고 움직이니 예측할 수 없게 되고, 사람은 불확실성이라는 공포에 대응해 그것을 멀리 밀어내고자 한다.

살수가 괜히 경원시 되는 게 아니란 소리다.

그리고 여긴 그런 살수들이 활동하는 사파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인님을 노릴 거라는 얘기죠?”

고기를 집어먹으며 묻는 청아의 질문에 여미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지에서 수많은 이들의 표적이 된다는 건 제대로 휴식조차 취할 수 없는 극한의 환경을 조성한다.

앞으로 최소 몇 주는 이곳에 있어야 할 텐데, 이건 아무래도 너무하지 않나 싶은데…….

자신이 제안해 놓고도 받아들일지 의심스러웠던 파격 제안을 덥석 문 설천위를 여미려는 묘한 표정으로 바라봤었다.

“제가 주인님이랑 그리 오래 지내진 못해서 자세히 알진 못하는데…….”

그런 여미려의 표정에 청아는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웃었다.

“최소한 자기 목숨을 가지고 위험한 내기를 할 사람은 아니네요.”

그 인간이 얼마나 독한 인간인데.

지금도 안에서 고문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어휴.

그나마 한 사람은 조만간에 해결될 것 같던데.

어쩌려나.

그나저나.

“근데 진짜로 전쟁을 일으킬 거예요?”

못 믿겠다는 기색이 담긴 그 질문에 여미려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최대한 화려하게요.”

* * *

“……평화롭구먼.”

“네, 심심하네요.”

“쯧쯧, 단주라는 인간이 평화를 심심하다고 느끼면 큰일 나는 것이야.”

“전 심심한 거 좋아하거든요?”

무림학관의 학관장실.

오랜만에 남궁선과 차를 한잔하던 팽후는 문득 창밖을 바라봤다.

“그놈은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뭐, 잘하고 있겠죠.”

어떤 녀석인데.

“지는 내기는 절대 안 하는 놈이긴 하지.”

선뜻 가겠다고 했을 땐 말리고 싶었지만, 동료 학생들의 명예를 위해 혼자 가겠다고 하니 도저히 말릴 수가 없었다.

녀석, 말과 행동은 좀 그렇지만 역시 올바른 신념과 긍지를…….

“하, 학관장님, 큰일 났습니다!”

사색에 빠져 문 앞에서야 뒤늦게 상대의 기척을 느낀 팽후는 의아한 표정으로 문을 열었다.

내공을 이용한 허공섭물.

최근 이걸로 문을 여는 것에 묘하게 익숙해졌단 말이지.

“침착하게 말해 보게.”

다급하게 안으로 들어온 부하에게로 시선을 돌린 팽후는 창백한 안색의 부하를 살폈다.

어찌나 다급하게 왔는지 옷매무새가 흐트러져 있었다.

전력으로 신법을 운용해 달려왔다는 소리.

문득 불안감이 차오르고…….

“서, 설천위가 흑원대주의 팔을 잘랐다고 합니다!”

“뭐라? 벌써 흑룡학관의 학생과 시비가 붙어 팔을 잘랐단 말인가?”

그놈, 설가의 핏줄답게 손속이 냉혹하다는 건 알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같은 학생의 팔을…….

“그, 그것이 흑룡학관의 흑원대가 아니라 맹의 흑원대라고 합니다!”

“……맹의 흑원대?”

순간, 팽후의 시선이 남궁선을 향했다.

가장 최근에 설천위의 실력을 가늠해 봤던 것이 그녀였으니까.

가능하냐.

그 의도가 담긴 눈빛에 남궁선은 살짝 턱을 괸 채 고민했다.

“애매하네요?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음.”

“걔는 기묘한 술법을 쓰니까 그것까지 동원하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요? 무룡투쟁에서 보여 줬던 그 검도 있고.”

자신이 없는 남궁선의 말에 팽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내가 알기로 흑원대주라면 완숙한 초절정의 경지. 심지어 지난 전쟁 때에도 출전했던 백전연마의 전사일세.”

“으음……. 그럼 좀 힘들 것 같은데.”

목숨을 건 실전을 경험해 보았는지 아닌지의 차이는 상당히 크다.

그런데 집단 전투 즉, 전쟁을 겪어 보았는지 아닌지의 차이도 그에 못지않게 크다.

관의 병사가 아닌 무인에게도 말이다.

전장에서 살아남은 완숙한 초절정급의 무인.

도저히 학생 단계에서 이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닌데…….

그렇다면…….

“성장했구먼.”

“그런 것 같네요. 이거 술병이라도 까야 하나.”

남궁선이 살짝 미간을 찡그리고, 그 모습에 팽후는 웃었다.

“허허허, 그것도 좋겠어.”

만족한 듯 웃는 팽후.

그리고 기껍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남궁선.

그 두 사람의 모습에 부하는 애가 타는 것처럼 말했다.

“흑원대주의 팔이 잘렸습니다! 자칫 전쟁이라도 나게 되면……!”

“쓸데없는 걱정일세. 명분도 급이 맞아야 이뤄지는 법.”

학생이 흑원대주의 팔을 자른 것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뭐.

“흑룡학관 학관장의 목이라도 베면 모르겠군.”

“꺄하하하! 그거 베면 전쟁이죠!”

어느새 품에서 술병을 꺼내 마시기 시작한 남궁선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교환학생으로 가서 학관장의 목을 딴다? 이야……. 전쟁 안 나면 사천맹의 맹주가 죽은 게 확실한 수준이죠.”

낄낄거리며 웃는 남궁선.

그 모습에 마찬가지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팽후는 걱정하는 부하를 달랬다.

“천위 놈이 가서 어떤 깽판을 친들 전쟁은 안 나니 아무 걱정 말게. 그런 쓸데없는 걱정 말고, 그 친구의 안위나 걱정해 주게. 지원도 좀 보내 주고.”

“아, 알겠습니다.”

손을 저어 부하에게 축객령을 내리고, 팽후는 남궁선이 주는 술잔을 받으며 웃었다.

“그나저나 참 재미있는 소리구먼. 학관장의 목을 따다니.”

“그렇죠? 그런데 그렇게만 되면 진짜 전쟁…….”

살짝 말을 끊은 남궁선은 술잔을 쓱 보곤 어깨를 으쓱였다.

“에이, 설마 전쟁이 나겠어요? 자, 마셔요!”

“천위의 무사 귀환을 위하여!”

“위하여!”

* * *

“무림의 동포들이여! 악습 타파를 위하여 일어서라!!”

“와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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