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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130화 (130/624)

제130화

129화-꼬우면, 알지? (3)

“흠, 원하는 건 얻었나?”

“뭐가?”

백유가 구워 준 꼬치를 뜯어 먹던 설천위는 고개를 들었다.

뭔데 갑자기.

“원하는 게 있어서 봉마곡으로 순순히 들어간 거 아니었나? 이렇게 선물도 가져오고.”

……날카롭기는.

감이 좋은 거라고 해야 하나.

아니, 근데 그런 걸 보통 사흘이나 지나서 묻나.

첫날에는 고기만 구워 주고 별 질문도 안 했으면서 갑자기 왜 이래.

가만히 백유의 눈을 바라본 설천위는 별다른 의도 따윈 느껴지지 않는 그 눈동자에 결국 어깨를 으쓱였다.

“뭐, 운이 좋았던 거지.”

“흐음, 단순히 운 정도가 아닌 것 같은데.”

아니, 운 좋았던 건 맞다.

그 안에서 녀석을 안 만났으니까.

만나도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란 자신이 있어서 들어간 거긴 하지만, 솔직히 만났으면 고생 좀 했을 테니까.

영약을 흡수하는 동안에도 나타나지 않았고.

‘아직 잠들어 있는 건가?’

그럴 가능성도 아예 없진 않겠어.

혼자 생각에 빠져 고개를 끄덕이던 설천위는 백유의 시선을 느끼곤 다시 정신을 차렸다.

“뭐, 다 현생의 덕업이 깊은 거겠지.”

“보통은 전생의 덕업 아닌가?”

“난 전생에 그리 착하게 안 살았거든.”

“그걸 어떻게 알아?”

“다 아는 수가 있지.”

일 빼면 집에서 내내 게임만 했는데, 착하게 살 일이 뭐가 있겠어?

학생 때도 학교 빼면 게임이었고.

[이번 생도 그리 착하게 산 것 같진 않다만?]

……그런가?

살짝 고개를 갸웃한 설천위는 옆에서 고기를 뜯고 있는 청아를 바라봤다.

이런 애도 거둬서 데리고 있으니 나름 쌓고 있는 거 아닐까?

“왜요?”

“아니야. 맛있게 먹어.”

고개를 갸웃하는 청아에게 대충 손을 휘저어 주니 그 모습에 백유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너희는 언제 봐도 즐거워.”

“뭘, 그 정도까지.”

봉마곡에서 나온 지 사흘.

심심할 때마다 이곳을 찾아 밥을 얻어먹고 있다.

백유도 환대해 주니 뭔가 편안하다고 해야 하나.

솔직히 지금 흑룡학관 내부에서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은 여기 정도뿐이니까.

“그런데, 들었나?”

“뭐가?”

“오룡이 움직이고 있다더군.”

“……오룡?”

걔들이 왜?

“아무래도 학관장을 밀어낼 생각인 것 같던데.”

“……벌써?”

아직 친선전도 안 끝났는데?

……이거 변수가 점점 많아지네.

내가 알던 것과 시기가 변했으니 아마도…….

“네 덕분에 학관장의 위신이 땅에 떨어진 것이 이유겠지.”

……나 때문이겠지.

어우, 새끼들 행동력 좋네.

기회다 싶으니까 벌써 움직이고.

학관장에게 막무가내로 들이댔던 이유가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이쪽은 정파라서 딱히 그 인간의 정치력이 닿지 않는 영역에 있다는 점.

또 다른 하나는 그 인간이 생각보다 능력이 없다는 점 때문이다.

고루한 옛 시대의 유물.

현재 흑룡학관의 학생들이 생각하는 학관장의 이미지다.

무엇보다 스승으로서의 재능이 없기에 그는 졸업생들에게도 대접을 받지 못했다.

겉으로는 예의를 지켰지만, 그 이상의 정은 없다.

왜냐고?

학관장은 시련을 내려 주는 적이고, 동지는 자신의 곁에 있었으니까.

존경할 필요도, 존중할 필요도 없는 거다.

학관장의 시련은 스승의 매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지독했으니까.

시험 도중 죽어 나가는 자신의 동료를 본 이들의 살심은 한 방향으로만 향하지 않았을 테고.

그래서 본인은 모르고 있지만, 학관장은 사실상 고립 상태다.

이대로 퇴출당한다고 한들, 아무런 영향도 없을 그런 상황.

나름 뒤탈 따윈 하나도 없을 거라는 생각에 막 들이댔던 건데…….

‘이렇게 빨리 뒤탈이 없어질 줄은 몰랐는데.’

그리고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진다.

친선전에서 흑룡학관은 무림학관에게 진다.

거의 모든 루트에서 확실하게.

왜냐하면, 흑룡학관은 강자가 아니라 강한 대가 나가니까.

적랑대의 성무경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출전 기회는 한 번뿐이니까.

그렇다고 단체전을 이기기엔 조건이 너무 안 좋다.

비무대 위에서의 4대 4 싸움은 실력의 범위를 벗어나기 힘드니까.

그렇게 흑룡학관은 지고, 그에 분노한 사천맹이 눈을 부릅뜨자 불만을 품은 학생들이 움직인다.

옛날 방식을 고수하고 학생 개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던 방식을 부숴 버리고자 한다.

그때, 하나둘 마음이 맞는 이들이 모이고…….

‘얘도 거기에 껴 있어야 하는데…….’

그 마음이 맞는 이들이 모이는 과정이 지금 일어나 버리면 안 된다.

동료 찾기에만 관심이 있던 백유가 움직인 이유는 친선전에서 동료로 삼고 싶은 이를 만나기 때문이다.

그가 학관장을 밀어내고자 했고, 그렇기에 백유는 거기에 동참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모두와 친하게 지내는 건 아니다.

허나, 이때 백유 특유의 카리스마와 포용력이 빛을 발해 하나의 대가 만들어지고 그 대가…….

“무슨 생각을 그리 깊게 하나?”

“어?”

“웬만하면 생각을 끊고 싶지 않지만, 아무래도 손님이 온 것 같다.”

조금 날카로워진 백유의 눈빛에 고개를 돌린 설천위는 산에 올라오고 있는 이들의 모습에 헛웃음을 흘렸다.

무슨 호랑인가.

얘기하니까 오냐.

“이런, 우리가 식사를 방해했나요?”

화려한 옷차림.

물론 무인답게 형태 자체는 가벼운 복장이지만, 장식이 꽤나 화려했다.

움직임에 큰 지장이 없는 한도까지 최대한 꾸민 느낌?

“아쉽게도 이미 방해해 버렸으니 빨리 용건을 말해 줬으면 좋겠군.”

“그건 죄송하게 됐네요.”

빙긋 웃은 여인은 포권과 함께 자기소개를 했다.

“여려대(黎濾隊)의 여미려라고 해요.”

“설천위.”

“백유다.”

간단하게 이름만 말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화를 낼 법도 하지만 여미려는 그저 빙긋 웃으며 두 사람을 바라봤다.

“장황한 서론은 싫어하실 것 같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두 사람의 성향을 빠르게 파악한 여미려.

그 훌륭한 선택에 혼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치가 빠른 아이야.

“학관장을 밀어내고자 합니다. 도움을 주세요.”

“무리.”

“나는 생각을 좀 해 봐야겠군.”

확고한 거절과 완곡한 거절.

설천위와 백유의 거절에도 여미려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실 줄 알고 매력적인 제안을 가지고 왔습니다. 한번 들어 보시겠어요?”

제안.

그 말에 그새 꼬치에 있던 고기를 전부 삼킨 설천위가 몸을 돌렸다.

“이제 좀 얘기가 시작될 만하네.”

“후후, 역시 정파보다는 사파에 어울리시는 분 같네요.”

“뭐라는 거야. 정파는 원래 제 밥그릇 챙기기에 특화되어 있어. 그러니까 그렇게 거대해졌지.”

히죽 웃는 조소.

그 조소의 대상이 누구인지 알기에 여미려는 더욱 짙게 웃으며 그의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소협은 정말 마음에 드는 사람이네요. 어때요? 차라리 나가서 술이라도 하면서…….”

“씁, 딴 데로 새려고 하네? 본론, 본론.”

“이런……. 제 권유를 이렇게 딱 거절하시는 분은 오랜만이네요.”

정말로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여미려.

그렇게 아쉬움을 삼키며 설천위를 바라본 여미려는 결국 본론을 꺼냈다.

“저희가 공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건 크게 두 가지 정도예요.”

“그래, 얘기해 봐.”

“하나는 영약. 뭐 그리 수준 높은 건 아니겠지만, 적당한 수준의 영약을 드릴 수 있어요.”

그건 좋네.

자고로 몸에 좋은 약은 감당할 수 있다면 많이 먹어 둘수록 좋으니까.

“다음은?”

“쾌락.”

“……오!”

[‘……오’는 무슨 ‘……오’냐!]

[유예린 그 아이에게 보고할 게 하나 더 늘었군.]

어허, 이 양반들이?

“후, 천위 너도 결국 남자였던 것인가…….”

야, 너까지 왜 그러냐?

“역시, 주인님은…….”

어허?

이 자식들이 일절, 이절, 삼절에 뇌절까지 하려고 하네?

“어머, 혹시 방탕이 아니라 음탕을 원하셨나요? 혹시…… 나이가?”

“뭐라는 거야. 나 약혼자 있어! 개소리할 거면 꺼져라!”

“천위, 음성이 다급해졌다. 마치 정곡을 찔린 사람처럼.”

“주인님, 저급해 보여요.”

이 자식들이?

옆에서 부채질을 열심히 하는 백유와 청아를 한 번 쏘아본 설천위는 일단 마음을 가라앉혔다.

……왜 유예린만 연관되면 이렇게 평정심이 깨지는지.

이 더러운 육체.

영약으로도 해결이 안 되는구나.

봉마곡에서 그 개고생을 하며 내공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정신력도 中上으로 올랐는데.

내공은 中中이지만, 조금만 더 지나면 中上이 될 것 같고.

독기는 무려 下上으로 올랐지.

“후후후.”

“왜 또 웃어?”

또 쓸데없는 곳으로 흘러가던 정신을 여미려의 웃음소리에 제자리로 되돌린 설천위는 삐딱한 자세로 그녀를 대했다.

쾌락이니 뭐니, 준다고 해도 취할 생각 없다.

이 미래에 어떤 꼬라지가 펼쳐지는지 다 아는데, 그딴 데 몰두할 시간이 어딨어?

차라리 유예린이랑 나가서 데이트하고 말지.

……말이 그렇다는 거지.

“사이가 좋아 보이시네요.”

“뭐?”

“당신은 사파를 무조건 혐오하지 않죠?”

“우리 가문의 전통이야.”

호남설가(湖南雪家).

장강수로채로 북부가 막혀 그 아래로 사파가 득세하던 곳에 자리 잡고 거목으로 성장한 가문.

그 탓에 지금 장강수로채는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상태에 놓인 꼴이 됐지만…….

그건 지금은 상관없는 이야기고.

여하튼, 사파를 밀어내고 호남을 차지한 설가는 당연히 수많은 사파를 멸문시켰다.

이 무림에서 피를 흘리지 않고 세력을 손에 쥘 순 없으니까.

당연히 사파에게 호남설가는 증오의 대상이고 무조건적인 적이다.

그런데, 의외로 호남설가는 사파 전체를 증오하지 않는다.

물론, 사파와의 전쟁의 최전선에 서 있고 또 미친 듯이 사파를 죽이고 있지만, 그것이 전체를 향한 혐오로 나아가진 않았다.

그 이유는 가문의 뿌리가 되는 정신 때문이다.

설가(雪家)는 북해빙궁 출신의 무인이 세운 가문이며, 스스로 성을 설(雪)로 바꾼 것은 하얀 눈으로 가득 찬 고향을 기리기 위해서라는 이야기가 있다.

여하튼, 냉혹한 대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극한의 근성과 흔들림 없는 이성.

그렇기에 사파에 악인이 있다고 하여 모든 사파인을 악인으로 규정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흔들리지 않는 정신과 뚜렷한 이성으로 움직이는 가문.

설천위의 높은 정신력은 아마 그 태생에 있을 수도 있다.

“어때요? 차라리 사파로 들어오는 건?”

“됐어. 일 없으니까.”

“후후, 뭐 그러실 것 같았어요. 그나저나 이렇게 되면 저희가 가져온 패 중의 하나가 없어졌네요. 이걸 어찌해야 할까요?”

곤란하다는 말투와는 달리 웃고 있는 눈동자에 설천위는 피식 웃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서론은 건너뛰는 거 아니었나?”

“후후후후, 역시 소협은 재미있는 분이시네요.”

방긋 웃은 여미려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이 정도면, 좋은 거래가 될까요?”

여미려가 내민 무언가.

그 무언가를 바라보던 설천위는 고개를 들어 여미려의 얼굴을 다시 바라봤다.

“……아무래도 원하는 게 뭔지 먼저 들어야겠는데?”

“어머, 마음이 동하셨나요?”

“이만한 걸 내밀었는데도 동하지 않을 만큼 욕심이 없진 않아.”

“아주 욕망 덩어리이시죠.”

이 녀석이?

입술을 삐쭉이며 투덜대는 청아를 슬쩍 노려본 설천위는 다시 고개를 돌려 여미려와 그녀가 내민 물건을 바라봤다.

별거 아니면서 진짜 별거인 물건.

“내가 이만한 값어치를 할 수 있는 일인지부터 들어야겠어.”

백 냥짜리 전표라니.

은자 2냥을 한 달 생활비로 쓰는 서민 4인 가족이 사십 년은 먹고살 수 있는 큰돈이다.

* * *

“그래서 학관장이…….”

“그 무림학관의 설천위란 놈이…….”

흑룡학관이 시끄러워졌다.

당연히 학관장의 추태와 그런 추태의 원인 제공자인 설천위에 관한 이야기다.

학관장을 향한 비난 여론이 거세졌고, 설천위를 향한 반감도 강해졌다.

뭐가 됐든 흑룡학관을 욕보이고 있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런데…….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한 사내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술.

그 사내의 목에 새겨진 개 얼굴의 말 문신은 그가 지금 흑룡학관에서도 유명한 구마대(狗馬隊)라는 사실을 알려 줬다.

그리고 아무런 표식도 없이 웃으며 술을 쏟고 있는 사내는…….

“서, 설천위?”

저 미친놈이?

그의 정체를 안 주변 사람들은 그만 경악하고 말았다.

왜냐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무림학관에서 온 놈이 흑룡학관에서 학생에게 시비를 털어?

사방이 적인데?

술을 한 병 다 쏟아 내고 대충 술병을 집어던진 설천위는 사내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히죽 웃었다.

“꼬우면,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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