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127화 (127/624)

제127화

126화-오다 주웠다 (4)

“비위 좋네요. 주인님.”

“……아무 말 마라.”

곤충이란 건 의외로 자주 먹는 식재료다.

이 넓은 땅에서 배고픈 사람이 많고, 곤충도 많으니까.

곤충은 단백질 함량이 높고, 영양학적으로 상당히 좋은 편에 속하는 음식…… 은 개뿔.

전부 조리해서 먹었을 때 고려할 수 있는 장점이지.

시장에서 볼 수 있는 곤충 요리는 대부분 꼬치.

튀기거나 구운 요리다.

튀기거나 구워서 맛없기가 얼마나 힘든데!

웬만하면 날것으론 안 먹는다고!

“아으…….”

입에서 비린내가 나는 것 같다.

무려 일주일.

가지고 있던 육포를 전부 청아에게 넘기고 지네 고기만으로 연명한 기간이 무려 일주일이다.

“이젠 해독을 안 써도 버틸 만하네.”

물론 독낭에 있는 독을 그대로 먹으면 아무리 그래도 해독을 쓰긴 써야 하지만.

이 정도로 빠르게 독에 적응한 것도 기적이다.

회복과 해독의 조합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속도로 내성을 길러 냈으니까.

문제는 그렇게 기른 값을 하는지 아직 제대로 시험도 못 해 봤다는 거다.

“흠, 다시 심어 두니까 좀 오므라든 것 같기도 하고?”

원래부터 꽃이 자리하고 있던 곳.

지네 고기를 먹어 내성을 기를 겸 다시 꽃을 심어 뒀었다.

물론, 고작 일주일 정도로 꽃이 열매로 변할 리는 없으니…….

“씁, 헛고생이 안 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독을 먹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니 불행이라고 해야 하나.

씁쓸하게 입맛을 다신 설천위는 정성스럽게 꽃을 뽑았다.

“그 지네는 열매가 맺히는 걸 기다리고 있었던 거겠죠?”

“뭐, 그렇겠지?”

독성의 유무를 떠나 열매가 맺혔을 때 열매만 따 먹으면 계속해서 먹을 수 있을 테니까.

한곳에 자리 잡고 힘을 키울 정도의 영물이라면 그 정도 머리는 돌아가겠지.

물론.

“우리는 시간 없으니까 그냥 먹어야지.”

인간의 욕심이란 건 그런 먼 이득 따위는 가볍게 날려 버리는 법.

숙성을 기다리다가 무림학관으로 돌아가게 되면?

한마디로 닭 쫓던 개 되는 거지.

심지어 잘 숙성된 열매를 사파 놈들이 처먹을 테고.

내가 덜 익은 걸 먹더라도 그 꼴은 죽어도 못 보지.

암암.

왜 악착같이 지네 고기를 먹으며 버텼던가?

얄미운 이웃이 산 땅에서 산삼이 나는 꼬라지는 죽어도 볼 수 없는 게 사람이기 때문 아니던가?

“그럼 간다.”

가장 큰 꽃을 손에 든 설천위는 흙을 최대한 털어 낸 뿌리부터 통째로 입에 집어넣었다.

꽤나 큰 꽃이지만 맘먹고 입에 넣으려고 하면 못 넣을 건 없는 크기였기에 꽃은 금세 입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에.

“으으…….”

지네의 내단까지.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청아는 보는 자신이 더 고통스럽다는 듯 미간을 찡그렸지만, 설천위는 이미 그런 청아의 반응을 느낄 수 없는 상태였다.

뜨겁고, 뜨겁다.

머릿속에서 지금의 상태를 규정지을 단어조차 제대로 생각나지 않는 상황.

오로지 뜨겁다는 생각밖에 안 날 정도로 강렬한 열기가 식도를 타고 몸 전체로 뻗어 나간다.

그야말로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

‘이 미친……!’

소설에서나 보던 타들어 가는 고통이 바로 이거구나!

찰나도 버티기 힘들 것 같은, 열에 의한 통증.

손에 닿는 순간, 깜짝 놀랄 것 같은 통증이 몸 내부에서 치밀어 오른다.

그런데, 뺄 수가 없다.

몸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

불 위에 손을 올려놓고 그대로 손을 고정시켜 버린 것 같은 느낌.

절로 신음이 흘러나올 듯했으나, 간신히 참았다.

왜냐고?

‘입 열면 간다!’

위장과 식도에서 미친 듯이 날뛰는 기운을 느끼면 입을 열었을 때 어떻게 될 거란 것을 상상하기가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을 열면 죽는다.

화재 현장에서 문을 열 때 순간적으로 열기가 솟구쳐 폭발하는 현상인 백 드래프트가 내 몸에서 일어날 것 같은 직감이 강하게 들었다.

그야말로 살기 위해 이를 악무는 순간.

[버텨라!]

천마의 외침이 기점이라도 된 것처럼, 강렬한 한기가 몸 전체를 휘감았다.

한겨울에 알몸으로 얼음 위에 드러누운 것처럼 전신으로 파고드는 무시무시한 한기.

손발이 덜덜 떨리고, 내부가 뒤틀리는 것 같은 끔찍한 고통이 엄습한다.

하지만.

[구결을 외워라!]

천마의 목소리가 이 모든 고통 속에서도 선명하게 설천위의 의식을 일깨웠다.

정제되지 않은 약초와 내단을 섭취하는 것의 위험성은 널리 알려져 있다.

소설 속에서나 나오는 초심자의 기연은 진짜 말 그대로 천운이 닿아 만들어진 기연이다.

보통이라면 먹고 죽겠지.

하지만, 그 위험성을 알고 있음에도 천마는 말리지 않았다.

왜냐고?

설천위는 이제 초심자가 아니니까.

[다루기 시작했군.]

[생존에 관해선 정말 날카롭다니까.]

몸을 장악한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어느새 몸을 들쑤시던 기의 흐름을 잡아 낸 설천위가 그것을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부풀어 올랐던 혈관이 가라앉고, 실핏줄이 터지며 몸 곳곳에 생겼던 멍이 빠른 속도로 사라진다.

열기와 추위로 떨리던 몸이 서서히 안정을 되찾아갔고, 그 속에서 설천위의 자세에 어느덧 평온함이 깃들었다.

꼿꼿이 편 허리.

넓게 벌어진 어깨.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머리카락.

“……잘생기긴 했네.”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 선명하면서도 수려한 이목구비.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청아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안정기에 접어들었으니 이제 남은 건…….

“방해가 안 들어오게 지키는 게 내 일인가…….”

[껄껄껄, 도와주마.]

“그래 주면 고맙죠.”

완전히 초집중 상태에 들어간 설천위.

갑작스럽게 몸 안에 흐르게 된 기(氣)를 안정된 수준까지 가라앉히려면 제법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설천위가 내뿜는 패기는 줄어들 거고…….

[흐흐흐흐흐.]

호시탐탐 설천위를 노리던 악귀들은 이때다 싶어서 움직이기 시작할 터.

[끼릭.]

“너도 도와주게?”

[끼릭.]

그건 좀 믿음직하네.

* * *

“벌써 열흘인가.”

설천위가 봉마곡에 들어가고 열흘이 지났다.

단숨에 상당히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길만을 알려 줬기에 돌아오는 데 시간이 걸릴 거란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해 봐도 되는 건가?’

좋은 징조다.

봉마곡이 어떤 곳인가.

사람이 긴 시간 동안 있으면, 음기에 침식당해 그만 미쳐 버리는 곳이다.

설천위는 술법에도 능하니 그렇게까지 되진 않겠지만, 분명 심신이 약해져서 나올 터.

그렇게만 된다면…….

“쯧, 오늘도 안 나온 것이오?”

“음, 아무래도 봉마곡에서 꽤나 애를 먹고 있는 것 같소.”

눈앞에서 껄렁거리고 있는 저놈의 승률이 십 할에 가까워진다.

흑원대주 차분백은 사추홍의 대답에 미간을 찡그렸다.

이곳에 와서 대기한 지도 닷새.

다행히 별다른 임무가 없어서 며칠은 더 머무를 수 있겠지만…….

“이대로 가면 나도 헛걸음하고 돌아가야 하오.”

“걱정 마시게. 아무리 그래도 보름을 넘기진 않을 테니.”

제 놈도 살고 싶으면 어떻게든 보름 안에 그곳에서 탈출하려고 할 터.

계곡치곤 먹거리도 마땅치 않은 곳이니 이젠 배고픔 때문이라도 어떻게든 나오려고 발악을 하고 있을 거다.

사추홍의 확신이 담긴 대답에 차분백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됐든 확실하게 마무리를 짓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이 직접 움직였는데 아무런 성과도 없이 돌아간다?

진실이 어떻든 간에 안 좋은 소문은 빠르게 퍼져 나갈 것이고, 원숭이의 패악질이 마음에 안 드는 놈들이 비수를 들이밀 거다.

정파와 제대로 된 전투도 없는 지금, 원숭이의 패악질은 내부로 향하고 있었으니까.

차분백이 어떻게든 인내하며 자리를 지키던 그때.

“학관장님.”

사추홍의 부하가 학관장실을 찾았다.

그리고 전음을 통한 보고.

“드디어 나왔나 보군!”

입꼬리를 올린 사추홍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차분백 또한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놈이 나온 것이오?”

“음, 흑원대주도 함께 가시겠소?”

“당연히 가겠소.”

서로 어정쩡한 거리를 두는 두 사람이지만, 두 사람의 발걸음은 같은 방향을 향해 빠르게 나아갔다.

설천위가 나온 곳.

봉마곡의 입구.

‘……들어갈 땐 산에서 들어갔는데, 나올 땐 입구라.’

물론, 당연히 절벽을 기어오르는 게 힘드니 물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오는 게 맞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탈출법이지만…….

‘묘하게 거슬리는군.’

자신보다 조금 더 앞서가는 사추홍의 뒤를 따라 걸으며 차분백은 기묘한 위화감에 미간을 찡그렸다.

그리고.

“소란스럽군.”

“그것이…… 설천위가 나온다는 소식이 꽤나 빠르게 퍼진 모양입니다.”

“쯧, 학업에 집중해야 할 놈들이…….”

하긴 흑원대주까지 와 있는데, 관심이 안 쏠리면 그게 더 이상하지.

한창 입방아에 오르내려야 할 시기에 봉마곡에 처박혔으니 애들 입장에선 궁금할 만도 하다.

그나저나.

‘백유, 쟤까지 온 건가?’

저 녀석은 왜 저리 설천위에게 관심이 많은지 모르겠군.

생각을 읽기 힘든 녀석인지라 섣불리 접근하지 않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교육을 위해서라도 조만간에 자리를 마련해야겠어.

백유의 모습에 선뜻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쾌감을 느낀 사추홍은 다시 봉마곡의 입구를 바라봤다.

상당히 초췌해진 몰골로 걸어오고 있는 사내.

음, 확실하다.

설천위다.

그것도…….

‘예상보다 더 괜찮군.’

상당히 초췌해진 몰골이 음식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한 것 같은 티가 났다.

뭐, 정정당당하게 싸울 거라면 시간을 주어 몸을 회복할 수 있게 배려해 주겠지만…….

“애송이.”

여기는 사파.

그런 배려 따윈 필요 없다.

사추홍의 암묵적인 동의를 미리 얻어 놨던 차분백은 곧바로 설천위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마침 주변에 보는 시선도 많은 상황.

지금 확실하게 정리하면 흑원대를 향해 들려오는 쓸데없는 소리는 금세 사라지겠지.

나름대로 계산 아래 행동하는 차분백은 망설임 없이 도끼를 뽑았다.

“네놈이 우리 대원을 핍박했다는 것을 들었다. 내 그 죗값을…….”

“아, 잠시만.”

나른한.

귀찮다는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

차분백의 말을 끊은 설천위는 고개를 슬쩍 돌리더니 흥미로운 표정으로 자신을 지켜보던 백유를 발견하곤 손을 휘적거렸다.

손에 무언가 천으로 싼 것을 쥐고 있던 설천위가 그 손을 휘적거리자 천으로 싸맨 무언가는 정확하게 백유를 향해 날아갔다.

“킁킁, 이건?”

“오다 주웠다.”

“……이런 걸?”

“어. 난 이미 먹었어.”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는 설천위.

그 모습에 잠시 멍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던 백유는 이내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후후후, 좋은 선물이네. 반드시 기억할게.”

“그래그래.”

백유의 대답에 대충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다시 몸을 돌려 분노로 얼굴이 한껏 붉어진 차분백을 바라봤다.

“그래서 아저씨는 무슨 용무?”

“네 이놈…….”

무시.

그것이 어떠한 조롱보다도 모욕적일 때가 있는 법.

고작해야 학생.

그것도 흑룡학관에 교환학생으로 온 무림학관의 애송이에게 무시당했다는 사실에 흑원대주의 머릿속은 붉게 타올랐다.

이제 명분과 실리 따윈 고려하지 않는다.

바라는 것은 딱 하나.

이 분노를 깨끗이 해소하는 것.

까득.

“뼈째로 씹어 먹어 주마.”

빠득거리며 이를 간 차분백이 성큼 한 걸음 내디뎠다.

그것은 침범이다.

무인에겐 각자 자신만의 공간이 있다.

영역이라고 불러도 되는, 말 그대로 자신의 공간.

그 공간의 크기는 주력으로 사용하는 무공에 따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고, 차분백은 설천위가 도를 쓴다는 가정하에 그 공간을 정하고 침범했다.

살기를 품고, 그 머리통을 부숴 버리겠다는 의지를 담고.

그리고.

“하아…….”

설천위 또한 그 침범에 즉시 반응했다.

손이 움직이고, 어느새 무기를 뽑는다.

그리고 휘두르는 동작.

예상했다는 듯 도끼를 들어 그 공격을 막는 차분…….

“……대주?”

경악으로 커진 사추홍의 눈동자에 도저히 믿기 힘든 광경이 잡힌다.

일격.

“아저씨, 냄새나니까 너무 다가오지 마요.”

고작 일격에 차분백이 설천위의 영역 밖으로 쫓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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