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125화 (125/624)

제125화

124화-오다 주웠다 (2)

봉마곡(封魔谷).

이런 지명은 의외로 흔하다.

깊은 숲속에 사람의 왕래를 막기 위해 그런 지명을 짓는 경우도 있고, 실제로 무언가가 봉인되어 있어서 경고의 의미로 짓는 경우도 있다.

당연히, 흑룡학관의 봉마곡은 후자에 속한다.

진짜로 무언가가 봉인되어 있는 계곡.

당연히 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이는 거의 없고, 흑룡학관에서도 관리를 위해 교관들이 초입에 살짝 들어가는 정도가 다일 뿐.

그렇기에…….

“으아아아아아아!! 이거 맞아요오오오?!”

“가즈아아아아아아!”

이 미친 인간이?!

내가 아무리 반(半)영체라지만, 이렇게 떨어지면 죽어!

죽으면 이렇게 자유롭게 못 다닌다고!

설천위에게 이끌려 절벽으로 떨어진 청아는 그러고도 한참을 떨어지고 있는 현실에 절망했다.

어떤 미친놈이 계곡을 들어가는데, 이딴 식으로 들어가냐고!

입구에서 걸어 들어가지!

아무리 계곡이라고 해도 산 아래에 입구가 있는 법이다.

물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되잖아!

왜 여기서 뛰어내리느냐고!

억울함이 솟구친 청아가 원망의 눈길을 설천위에게 보내는 순간.

“흡!”

어느새 검을 뽑아 든 설천위는 그 검을 절벽에 박고 있었다.

순식간에 느려지기 시작하는 속도.

청아까지 데리고 있으니 당연히 검이 부러질 법도 하지만, 내공으로 강화된 검은 두 사람의 무게를 충분히 버텨 냈다.

“오! 깊네.”

“이 미친 양반이…….”

“절벽도 뛰어내리다 보면 익숙해진단 말이지.”

생각보다 그렇게 안 위험해요.

무공을 익히면서 강해진 몸 덕에 충분히 버티기도 하고.

그나저나.

“벌써 음습한데.”

하긴, 계곡의 위쪽에도 음기(陰氣)가 흐를 정도인데 이 안이면 오죽하겠어.

코끝으로 스며드는 비릿한 음기에 설천위는 작게 미간을 찡그리며 청아를 내려놨다.

“지금부터 우리는 두 가지를 찾는다.”

“두 가지요?”

“어. 두 가지.”

봉마곡(封魔谷).

봉인되어 있는 것은 마(魔)라고 불리는 존재다.

사파에서 마(魔)라고 규정하는 존재는 생각보다 그 기준이 까다롭다.

진짜 말도 안 되는 수준의 혈겁을 일으킨 마인이거나.

혹은 진짜 마물(魔物)이거나.

“……뭔데요?”

으스스한 공기를 느낀 청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나는 당연히 영약. 뭐, 약이라기보다는 약초지.”

“뭐,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떨어지면서도 영약을 울부짖었으니까.

그런데.

“그럼 나머지 하나는요?”

“마물.”

“……여기 진짜 마물이 봉인되어 있어요?”

“뭐, 비슷해.”

조금 다르긴 하지만.

“만나면 절대 싸우지 말 것. 곧바로 도망쳐서 나한테 와.”

“옙!”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 꼭 만나지 않느냐?]

그러라고 복선을 까는 겁니다.

뭐, 실제로 만나면 도망칠 수 있게 경고는 해 놔야 하니까.

그 녀석은 위험하지.

“자, 그럼! 수색 시작!”

“옙!”

“너무 멀리 떨어지지 말고!”

영약아, 어디에 있냐!

* * *

“굳이 봉마곡에 보낼 필요가 있겠습니까?”

봉마곡.

확실히 음기가 짙게 깔려 사람의 출입이 힘든 곳이긴 하다.

하지만 내공을 단련한 무인이라면, 충분히 몸을 보호하면서 지나다닐 수 있는 수준이다.

그래서 실제로도 봉마곡에 학생들을 들여보내 수업이나 시험을 간간이 진행하기도 하지 않는가.

물론 위험하기에 진짜 엄선해서 자격이 있는 이들만 들여보내긴 하지만…….

설천위 그놈이 그럴 능력이 없는 녀석도 아니고.

괜한 낭비, 혹은 상대의 성장을 돕는 것밖에 안 될 확률이 높지 않은가.

부하의 의문에 담긴 생각이 훤히 보이기에 사추홍은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물론 놈이 정상적인 상태라면 아무런 지장도 없겠지.”

“……내상을 입으면 다르다는 것입니까?”

“음기(陰氣)는 인간의 나약한 부분을 파고들지.”

내상을 입은 육체는 생각보다 더 많이 주변의 기를 갈구한다.

그 빈틈을 음기는 너무나도 손쉽게 파고들 수 있고.

“음기가 몸에 쌓이면 끝이다. 나올 때가 되면 확실하게 약해져 있겠지.”

이번 한 번으로 처리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애초에 그럴 수 있을 만한 한 입 거리 크기가 아니라는 걸 이미 경험으로 배우지 않았던가.

그러니 크기를 줄이면 된다.

한 입에 집어삼킬 수 있을 정도로.

“요리사가 된 기분이군.”

두 손을 턱 아래로 모은 사추홍의 눈빛이 스산하게 빛났다.

* * *

“……영약 진짜 있는 거 맞아요?”

“어. 있다니까.”

사실 이 봉마곡은 육도에서 그리 중요한 지역은 아니다.

영약이 있긴 하지만 필수적으로 챙겨야 할 정도는 아닌 데다 이곳에서 나오는 몬스터가 상당히 악질이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쟤들도 참 할 짓 없네요.”

“자아가 흐린 악귀가 다 그렇지 뭐.”

아까부터 주위를 떠돌아다니던 악귀들.

모두 악귀 중에서도 최하급으로 치는 백(魄) 단계의 악귀들이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 소멸을 하는 경우가 많은 저급 악귀.

사람의 기를 흐리고 가위에 눌리거나 하는 수준의 해악 정도만 끼치는 놈들.

민간에 나타나는 악귀의 대부분이 이 녀석들이고, 이놈들은 기가 좀 센 사람만 만나도 금방 밀린다.

퇴마사들 중엔 굳이 소멸시키지 않고 억제시켜 자연 소멸을 유도하는 자들도 있을 정도다.

뭐, 인도주의적인 측면에서 그러는 거겠지만.

“다가오지도 못할 거면서 왜 저러는지…….”

혀를 차면서 열심히 바닥을 훑는 청아.

입으로는 불평불만을 말해도 행동은 언제나 그렇듯 성실하다.

“누구의 영향이려나.”

“뭐가요?”

“아니, 별거 아니야.”

게임에서도 나온 적이 없는 녀석이라 잘 모르겠는데.

연결되면서 어렴풋이 알게 된 과거 덕에 상당히 궁금하긴 하다.

청아 본인은 자신의 기억이 이쪽으로 흘러들어 오고 있다는 걸 전혀 모르는 것 같지만.

‘저 양반들 기억은 1도 안 흘러들어 오지만.’

역시 수양을 쌓은 무인이라고 해야 할까.

일정 경지를 넘어선 혼들은 어렴풋이 흘러들어 오는 기억조차 없다.

정신 방어가 그만큼 뛰어나다는 의미겠지.

암영의적, 저 양반도 생전에 초절정에 불과했지만 죽어서도 그리 길게 혼을 유지하고 있었던 걸 보면 정신력이 상당히 뛰어난 건 확실하고.

“응? 주인님!”

잠시 생각에 빠져 걷던 설천위는 청아의 부름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

아니, 수색하자고 내 입으로 말해 놓고 딴생각에 빠졌었네.

이 버릇은 언제 버리냐.

“뭔데?”

짧은 자책을 뒤로한 채 청아에게 다가간 설천위는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저기서 뭔가 꽃향기가 느껴져요.”

“흐음, 그래?”

청아의 후각이면 믿을 만하지.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곧장 걸음을 내디뎠다.

동시에.

[크르르르르.]

그의 몸을 감싼 패융의 위압으로 근처를 방황하는 악귀들까지 모조리 몰아낸다.

악귀들이 사라져 음기(陰氣)가 옅어지자 서서히 짙어지는 향기.

이제는 설천위 자신도 맡을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좋네.”

이렇게 진한 향기라니.

무조건 한가락 하는 영초다.

기대감을 품고 걸음을 재촉하는 설천위.

바닥에 깔린 자갈이 점점 사라지고 흙바닥이 나온다.

그런데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우거져야 할 풀숲이 보이질 않는다.

흙이 그대로 드러난 풍경.

[상당히 독한 놈인 것 같구나.]

천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조금 더 주변에 신경을 쓰며 걸음을 옮겼다.

이렇게 맨바닥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은 풀이 자라나지 못하는 환경이란 소리다.

영초 주변에 그런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대부분이 영초의 탓일 확률이 높다.

주변 땅의 기(氣)를 모조리 빨아들여 성장하는 영초.

당연히 주변에 다른 풀이 자랄 수 있을 리가 없다.

“빙고.”

“대단하네요.”

보라색 꽃이 눈에 들어오는 거리가 되자, 너무나도 선명해진 꽃향기가 콧속을 간지럽혔다.

이렇게나 짙은데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달콤하고도 매혹적인 향기.

“너무 좋은데요…….”

“풀어지지 마라.”

슬쩍 눈이 풀리기 시작한 청아의 머리를 가볍게 툭 친 설천위는 그대로 천천히 걸어 꽃을 향해 다가갔다.

피어 있는 꽃은 세 송이.

일단 가장 먼저 중앙에 있는 꽃을…….

“씁, 이건 너무 뻔한 전개 아닌가?”

꽃을 향해 손을 뻗으려던 설천위는 저 너머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손을 멈췄다.

수백 개의 다리가 땅을 기어가는 소리.

그 다리의 힘이 느껴지는 딱딱한 소리가 공간 전체로 울려 퍼진다.

거기에다 부드럽게 휘어지는 몸통은 몇 개나 되는 체절로 나누어진 것인지 세는 것조차 힘들다.

“으엑.”

순식간에 표정이 썩어 들어가는 청아.

그리고 그 기분을 십분 이해하며 도를 뽑는 설천위.

“영약을 지키는 지네라……. 너무 뻔한데.”

그리고.

너무 의외인데.

살짝 미간을 찡그린 설천위는 도를 손에 쥔 채 지네를 바라봤다.

분명 봉마곡에서 나오는 몬스터들 중에서 이런 지네는 없었다.

그런데 이런 지네가 나타났다는 건…….

“흠, 또 다른 군락인가?”

게임에서 찾은 군락이 아닌, 다른 군락일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다.

뭐, 군락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부족한 숫자이긴 하지만.

그러고 보니 게임에서도 세 송이가 피어 있진 않았지.

중간에 다른 생물이 먹었겠거니 하고 납득했지만, 아무래도…….

“이쪽이 진짜구나?”

이 세 송이는 전부 꿀꺽해도 될 것 같은데?

설천위의 눈동자가 탐욕으로 빛나고, 그와 동시에 지네의 몸이 빛살처럼 대지를 박찼다.

대지에서 송곳이 튀어나오는 것 같은 일격.

그 위압적인 공격에 설천위는 도를 움직였다.

단숨에 지네의 머리로 떨어지는 도.

일단 베어 내서…….

깡!

“……응?”

[음, 역시 지금의 네 실력으론 무리구나.]

“에?”

지금 그런 분위기 아니었잖아?

딱 멋있게 처리하고, 내가 싹 쓸어 먹는 각 아니었어?

너무나도 단단한 지네의 갑각에 어이를 상실한 설천위를 보며 혀를 차는 천마.

[네놈은 혼을 상대로나 강하지, 아직 실체를 가진 영물이나 무인을 상대로는 한없이 부족하다.]

[저 지네, 딱 보니 최소 오백 년은 묵은 것 같은데……. 제대로 해도 될까 말까 할 게다.]

암영의적의 말에 그제야 현실을 자각하는 설천위.

그러고 보니 최근에 너무 승승장구해서 까먹고 있었는데…….

‘……낙제생 설천위, 어디 안 가지.’

내 주제에 멋있는 전투는 무슨.

전신에 소름을 만들어 내는 기묘한 지네의 발소리와 함께 설천위는 몸을 비틀었다.

재차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지네의 머리를 흘려 내며 도를 휘두른다.

깡!

“더럽게 단단하네!”

짜증과 함께 땅을 박차는 설천위.

그가 있던 자리를 어느새 몸을 비튼 지네의 꼬리가 휩쓸고 지나간다.

[패룡지체(覇龍之體)]

전신에 흐르는 패기가 육체를 강화하고.

[패룡지기(覇龍之氣)]

패기의 흐름이 된 패융이 그 몸을 휘감아 지키며.

[패룡지심(覇龍之心)]

패융의 의지가 그 존재를 실체화한다.

거기에.

[영각(靈覺)]

패융을 얻고 난 뒤엔 거의 쓰지 않았던 힘.

영혼에 새겨진, 더럽게 재능이 없는 육체에 반영되지 못한 혼의 기억과 경험을 끌어낸다.

순간, 대지를 박차는 설천위.

[호오.]

암영의적조차 작게 감탄할 정도의 [섬뢰풍영보(閃雷風影步)].

아직 꼬리를 제대로 회수조차 못 한 거대 지네의 지척에 도달한 설천위가 도를 내리쳤다.

오로지 베는 것에만 특화된 일격.

[참수(斬首)]

단단한 인간의 목조차 단숨에 잘라 내는 도격(刀擊)…….

[쯧쯧, 아직 무디구나.]

깡!

“……X벌.”

진짜 더럽게 단단하네.

튕겨 나온 도를 회수하며 다시금 몸을 비트는 설천위.

그런 설천위를 향해 지네가 무섭게 파고든다.

몸통박치기를 감행하는 지네의 공격을 겨우겨우 피해 내는 설천위.

그리고.

치이이이익.

“독?!”

미친놈인가?

독까지 있어?

얼마나 강하면 스치기만 했는데도 옷이 삭냐!

이젠 진짜 생명의 위협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것을 직감한 설천위는 이를 악물고 도를 들었다.

예상외의 장애물이지만…….

“영약은 내 거다, 새끼야!!”

무림의 기연은 먹는 놈이 임자야!

이를 악물고 이번엔 체절 사이를 가르기 위해 도를 휘두르는 설천위.

그 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던 청아는 고개를 저었다.

“……애라니까.”

한 사람과 한 곤충이 싸우는 사이, 기척을 줄인 그녀의 손엔 그새 뿌리째 뽑아낸 세 송이의 꽃이 들려 있었다.

아니, 그냥 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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