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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124화 (124/624)

제124화

123화-오다 주웠다 (1)

“그래서 진짜 궁금한데, 정말 독 쓴 거 맞아?”

식사 자리.

밥이나 같이 먹자고 하길래 식당으로 갈 줄 알았는데, 백유는 설천위를 학관 내에 있는 산으로 데려갔다.

산 중턱쯤에 자리 잡은 캠핑장.

여기선 야영장이라고 해야 하나.

거의 한 살림을 차린 야영장에서 백유는 능숙하게 재료들을 꺼내 간단한 야채볶음을 뚝딱뚝딱 만들어 냈다.

들어간 고기를 먼저 철 냄비에 익혀 맛을 내고, 그 뒤에 야채들을 넣어서 단숨에 볶아 낸 요리.

“……맛있네.”

“고맙군. 요리는 내 취미거든.”

미친과 눈나 중에 비중이 좀 더 높은 건 눈나 쪽인가?

쓸데없는 생각과 함께 젓가락을 움직이던 설천위는 이내 다시 질문을 떠올리곤 입을 열었다.

“비밀이야.”

“비밀? 왜?”

“거짓말하기 싫으니까.”

거짓말하기 싫다.

그 대답에 백유는 빙긋 웃었다.

“그거면 충분하네.”

“음식값으로 나쁘지 않지?”

“적당히 값을 치른 정도야.”

뭐, 이 정도면 충분하지.

호감을 가지고 다가오는 상대에게 굳이 날을 세울 필요는 없으니까.

무엇보다.

‘미쳤다고 꼭 악은 아니니까.’

미쳤다는 말에 나쁘다는 의미가 포함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다.

미쳤다는 것은 극단적이라는 뜻이다.

한 가지에 극단적인 인간들.

종교에 미친 자들.

그들은 자신들이 믿는 존재만을 섬기고 그들이 설파했다는 가르침에 목숨을 건다.

설령 목에 칼이 들어와도 자신이 믿는 신을 배신하지 않는다.

극단적이다.

학업에 미친 자들.

그들은 자신이 배우고 갈고닦은 학업을 믿고 그것이 주장하는 것에 목숨을 건다.

설령 황제에게 거슬리는 말이라 할지라도 말을 올리는 데 전혀 망설이지 않는다.

극단적이다.

무공에 미친 자들.

그들은 무공을 갈고닦는 것 외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 방법이 그릇된 것일지라도.

극단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백유 또한 극단적이다.

그녀가 추구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

가족.

혹은 그것과 흡사한 동료.

결국 최종 목적은 그것이고, 그것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던진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자신의 동료들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아끼지 않는다.

행동과 선택에서 나타나는 광기와 다른 포용력.

그렇기에…….

“친구 정도라면 가능해.”

“흐응? 친구? 그건 좀 아쉬운데.”

“사파랑 정파 사이에 친구 정도면 대단한 거 아닌가?”

억지로 친해질 필요까진 없지만, 친해질 수 있다면 좋긴 하다.

그 포용력이 작용하는 품 안으론 절대 들어갈 수 없겠지만, 뭐 사이좋은 이웃 정도는 될 수 있겠지.

잠시 내 얼굴을 아쉽다는 듯 바라보던 백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아. 대부분의 관계는 친구부터 시작하는 거니까.”

“그런 의미심장한 말은 안 했으면 좋겠는데.”

막 더 나아가는 사이가 될 것 같잖아.

“후후, 그거야 지켜봐야 아는 거겠지?”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됐고, 친구의 앞날을 위한 조언이나 좀 해 줘 봐.”

“조언? 해 주면 듣긴 하게?”

“……참고는 해야지.”

얘가 나를 어떤 성격이라고 생각하는지 딱 보이네.

나를 아주 독불장군으로 보고 있구먼.

나처럼 선량한…….

[네놈도 충분히 미쳐 있다는 건 확실하지.]

[동류는 동류를 알아본다는 그거겠지.]

[음음.]

이 양반들이?

백유의 앞에서 대놓고 티를 낼 순 없기에 살짝 화를 억누른 채 설천위는 백유를 바라봤다.

“앞으로 상당한 방해가 들어올 것 같은데, 뭐 조언 같은 거 없나?”

“흐음, 조언이라…….”

잠시 고민하는 듯 턱을 쓸던 백유는 설천위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이내 피식 웃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해.”

“그것뿐?”

“어. 딱히 다른 조언이 생각나진 않네.”

고개를 끄덕인 백유는 자신이 준 음식을 깨끗이 비운 설천위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재미있는 상황이 될 것 같으니까.”

* * *

“으아아아아!!”

“흠.”

괴성과 함께 달려드는 상대.

가볍게 피해 낸 뒤 다리를 걸어 상대를 자빠트린 설천위는 주위를 둘러봤다.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놈들이 넷.

수업에 참가하라는 말을 듣고 수업을 들으러 왔더니 바로 이 꼴이다.

교관이 사라지고 각자 조에 따라 흩어지자마자 습격이라니.

이놈들 참…….

“뻔하네.”

의외성이 없어요. 의외성이.

조로 나누어질 때부터 그렇게 노려보는데, 경계를 안 하겠냐.

[껄껄, 그 아이가 왜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는지 이해가 가는구나.]

“씁, 그러게요.”

어차피 한두 번이 아닐 테니까 쓸데없는 고민은 하지 말라는 뜻이었겠지.

“얘들을 죄다 조져 놓을 수도 없고…….”

수업 중에 같은 조원을 중상으로 만든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좋지 못한 선택이다.

저쪽이 먼저 선공했다는 증거도 없는데 두들겨 패서 중상을 입혀 놓으면 그걸 빌미로 온갖 헛짓거리를 해 올 테니까.

그렇다고 적당히 패기에는…….

‘기술이 부족하고.’

무협 소설에서 흔히 나오는 후유증이나 흔적은 없지만 더럽게 아픈 구타.

그런 건 진짜 고등 기술이다.

정확하게 혈자리를 파악하고, 뼈와 근육이 상하지 않을 정도의 힘 조절에 내공을 이용해 혈과 신경을 자극해 통증을 주는 방식.

지금 설천위로선 때려죽인다고 해도 못 하는 섬세한 기술이다.

그러니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설천위가 고민에 빠진 그 순간.

[끼릭.]

“……그건 좀 아니지 않을까?”

갑자기 등장한 괴의 주장에 설천위는 미간을 찡그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심한 거 아닌가…….

[왜요? 뭐라는데요?]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청아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아니, 괴 쟤는 끼릭끼릭 소리밖에 안 하는데 어떻게 알아듣는 거야.

청아가 입술을 삐쭉이는 사이, 설천위는 괴의 제안을 깊이 있게 고민했다.

과연, 이게 맞는 걸까?

“끄으…… 크, 크흐. 네 녀석은 결국 죽을 거다…….”

“왜?”

“크크, 이런 소란에도 교관이 안 왔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뻔하지 않나?”

아.

바닥을 기면서도 어떻게든 자신을 겁주려는 놈의 모습에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괜한 고민을 했구나.

“너희를 사람 취급을 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응?”

싸늘해진 설천위의 목소리에 남자가 고개를 드는 순간.

[끼릭.]

기묘한 소리와 함께 희미한 그림자가 그를 덮쳤다.

그리고.

“뭐, 나를 죽이려고 한 죗값을 치른다고 생각해라.”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괴의 양손에 머리가 붙들린 남자의 입에서 기괴한 괴성이 터져 나왔다.

“이번엔 한 며칠 정도만 백치로 지낼 수준으로 해.”

[끼릭.]

너무 과하게 할 필욘 없어 보이니까.

참, 나도 마음이 많이 약해.

나를 죽이러 온 놈들에게 이런 자비라니…….

[껄껄, 마도에 참 어울리는 놈이라니까.]

[얘가 정파라는 사실이 참 소름 끼치지요.]

[세상이 말세야…….]

천마의 말에 호응하는 혼들의 헛소리는 가볍게 무시하며 설천위는 주위에 널브러져 있는 이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깨어 있는 거 아니까 준비해라.”

“제, 제발 살려 주십쇼!”

“집에 처자식이 있습니다!”

뭐라는 거야. 집에 처자식이 왜 있어.

너, 학생이잖아.

설천위의 눈이 게슴츠레해지자, 처자식이 있다고 말한 녀석의 얼굴이 한층 더 창백해졌다.

“지, 진짜입니다!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낸 옆집 순이랑……!”

“마, 맞습니다! 전에 면회 온 걸 봤습니다!”

……진짜야?

옆에서 증언할 정도면 진짠가 본데?

[음, 없는 경우는 아니구나. 무림인들이 대개 결혼을 늦게 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일반 서민과 같은 속도로 결혼하는 이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니.]

18세이면 기혼자일 나이이긴 한데…….

잠시 사내를 게슴츠레 바라보던 설천위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넌 기억만 지우자.”

“예?”

“괜찮아. 아픈 건 잠시니까.”

처자식이 있다고 해서 봐주는 거다.

“이, 이 악마!”

“마교보다 더한 놈!”

“혈교랑 친구 먹을 놈!”

오, 욕이 참신한데?

“욕한 놈들은 날짜 추가다.”

끄륵.

설천위의 말과 함께 처음으로 당한 녀석이 기어코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그 모습에 한층 더 깊어지는 공포심.

그리고.

“으, 으아아아!”

“나, 나에겐 처자시이이이익!”

그런 비명이 몇 번이나 더 울리고 나서야 끝이 났다.

* * *

“……전부 맛이 갔다고?”

설천위의 수업 참여 첫날.

들려온 보고에 사추홍은 헛웃음을 흘렸다.

아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린가.

“하나같이 백치처럼 변했는데, 한 놈은 무사하다?”

“예. 유일하게 멀쩡하게 말하고 있지만 당시의 기억이 전혀 없다고 합니다. 거기에다 묘하게 말이 어눌해진 것이…….”

“술법에 당했군.”

이건 안 좋다.

그 빌어먹을 놈이 술법에까지 능하다고?

“흑원대 놈들도 술법에 당한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잡아 온 뒤로 계속 헛소리만 중얼거리던 흑원대의 대주 대소웅은 얼마 뒤 아예 맛이 가 버렸다.

백치가 되어 허공을 바라보며 침이나 흘리는 꼴이 된 거다.

당연히 대소웅은 퇴학 조치, 나머지 흑원대는 전부 1년간 근신 처분이다.

학관에서 내릴 수 있는 가장 수위가 높은 형벌을 내린 거다.

그런데 그놈들 전부가 설천위의 손에 놀아난 거다?

“그걸 숨기지도 않고?”

까득.

모욕이다.

속여 놓고, 그 속인 수법을 이렇게 공개한다는 건 자신을 향한 도발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증명할 수가 없군.”

기억을 조작하는 술법?

분명 있긴 있지만, 많은 준비와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이를 자유자재로 쓰는 술사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 보지도 못했다.

물론 후유증을 위해 억지로 쓰는 거나 마찬가지이지만, 그게 어딘가.

사파의 인물들이 쓰면 그냥 알차게 쓸 수 있는 술법이다.

보통의 경우엔 비용과 수고가 만만치 않아서 안 쓰는 것뿐이지.

그런 술법을 쓸 바엔 팔다리 중 하나를 자르고 협박하는 게 훨씬 쉽고 빠르니까.

“……골치가 아프군.”

진짜 골치가 아프다.

대소웅까지 개박살이 난 이상, 솔직히 말해서 이제 상대할 수 있는 녀석들이 몇 없다.

흑원대처럼 악명만을 가진 놈들이 아니라 진짜 강한 놈들.

자신의 성장에 집중하느라 말썽을 일으킬 틈조차 없는 진짜들.

그놈들을 움직이지 않으면 일대일로 꺾는 건 일단 무리다.

그렇다면.

“……봉마곡으로 유도하도록.”

“봉마곡(封魔谷)으로 말입니까?”

“그래.”

솔직히 말해서 거기로도 부족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지만……. 방법이 없다.

까득.

이렇게 개망신만 당한 채 얌전히 물러날 순 없으니까.

자고로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

“반드시 그놈의 숨통을 끊어라.”

“예!”

나를 우롱한 죗값은 목숨 외의 것으로는 지불할 수 없을 거다.

건방진 애송이.

* * *

“하, 졌다?”

“예.”

“그 빌어먹을 놈이…….”

사천맹, 흑원대 대주실.

보고를 들은 흑원대 대주, 차분백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가뜩이나 무서운 얼굴이 한껏 일그러지자 옆에 선 부하조차 겁을 집어먹을 정도로 흉악한 얼굴이 되었지만, 차분백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살기는 그런 외모조차 압도했다.

“그 빌어먹을 놈은 반년간 폐관하라고 해라.”

“예.”

“그리고 내가 직접 간다.”

“예? 대주, 하지만 체면이…….”

“체면은 무슨 체면이야! 이미 깎일 대로 다 깎였는데!”

거친 고함과 함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차분백은 서슬 퍼렇게 빛나는 눈동자를 한 채 집무실 문을 박찼다.

“우리는 무시당하면 끝이야. 알겠어?”

“예!”

“어린놈을 핍박한다는 조롱이 어린놈에게 당했다는 조롱보다 백배 낫다는 거다!”

분노로 이를 악문 차분백이 사천맹을 나설 때.

그 분노의 대상인 설천위는 산속을 헤매고 있었다.

수업이라는 명목 아래 끌려온 산속.

불길한 기운이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참으로 꺼림칙한 곳이지만…….

“씁! 하~, 공기 좋네요.”

“음기(陰氣)가 가득하니까. 너무 많이 마시진 마라.”

“옙!”

홀로 산에 올랐기에 말동무나 할 겸 불러낸 청아와 함께 설천위는 산을 걸었다.

그리고.

“우와! 겁나 깊네요?”

“어. 여기야.”

봉마곡(封魔谷).

사고 치면 언젠가 오겠지, 하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는데?

뭐, 그래서 좋은 거지만!

“가즈아아아아아아!”

“예?”

“영약 가즈아아아아아!!”

“예에에에에에?!”

갑자기 급발진하는 모습에 당황하는 청아의 목덜미를 낚아챈 설천위는 그대로 절벽을 향해 뛰어내렸다.

그 눈동자는 영약을 향한 욕망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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