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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121화 (121/624)

제121화

120화-흑원대 (2)

흑원대는 전통 있는 부대다.

최전방에서 활약하는 사천맹의 일선 부대.

흑룡학관의 흑원대는 그들의 예비 병력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사천맹에서 활동하고 있는 본대만큼은 아니지만 강도 높은 훈련과 엄한 군기를 가지고 있다.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전장은 의리와 책임감만으론 모두가 살 수 없으니까.

그렇기에 흑원대도 나름 엄격한 내부 규율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흑원대가 미친 원숭이 떼라고 불리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그들이 전장에서 쌓은 명성 때문이 아니다.

“네년이 한 짓이냐?”

거한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흉포한 기세에 서현덕의 안색이 순식간에 파래졌다.

“마, 마원(魔猿)!”

마원(魔猿) 대소웅.

현 흑룡학관의 흑원대주로, 졸업 후 사천맹의 흑원대에 들어가게 되면 최소 조장 이상의 자리가 약속된 강자.

흑룡학관 내부에서도 나름 이름 높은 강자다.

심지어 흑원대라는 뒷배까지 있으니 그 악명은 흑룡학관 일 학년의 오금을 저리게 만들기엔 충분하다 못해 넘칠 수준이었다.

서현덕이 떨리는 다리를 주체하지 못하는 사이, 마원이라 불린 대소웅은 성큼성큼 걸어 설천위의 앞에 섰다.

“네놈의 종년을 잡아 놨다고 해서 이리 왔는데,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는군.”

“그래서 뭐, 친절히 설명해 달라고?”

눈을 부라리는 대소웅의 모습에 피식 웃는 설천위.

그 모습에 한층 더 흉악하게 얼굴을 일그러트린 대소웅은 허리춤에 매단 도끼를 움켜쥐었다.

“아니.”

살기로 번뜩이는 눈동자.

흑원대가 미친 원숭이 떼라고 불리는 이유.

그들은 아군의 잘못을 고려하지 않는다.

지들이 걷다가 기둥에 부딪혀서 살이 까였어도 기둥 잘못이라며 도끼를 휘두르는 종자들.

끈끈한 동료애를 바탕으로 한 분별없는 감싸기.

그게 흑원대가 미친 원숭이 떼라고 불리는 이유이며, 그들의 악명에 혐오감이 담긴 이유다.

“설명할 필요 없다.”

망설임 없이 도끼를 휘두르는 대소웅.

단단한 내공을 머금은 도끼는 단숨에 설천위의 목을 가를 기세로 쇄도해 왔다.

그 공격을 겨우 인지한 서현덕의 안색이 한층 더 파리해지는 순간.

“조잡하네.”

가볍게 몸을 뒤로 젖혀 공격을 피해 낸 설천위는 발을 들어 앞을 향해 펼쳤다.

공격한다기보다는 가볍게 밀어내는 느낌의 발차기.

대소웅의 가슴을 한 번 찬 것으로 거리를 벌린 설천위는 망설임 없이 다시 도끼를 휘두르는 대소웅을 보며 웃었다.

그래.

“이래야 사파긴 하지.”

망설임 없이 도끼를 휘두르는 모습에 감탄한 게 아니다.

“으어어!”

자신의 다리를 붙잡고 늘어진 노안 녀석의 행동에 감탄한 거다.

일대일처럼 보이는 이 상황에 망설임 없이 끼어드는 모습이라니.

참으로 참된 사파라 할 수 있다.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저 고릴라 놈도 마찬가지고.

허리춤에 차고 있던 도를 꺼내 도끼를 쳐 낸 설천위는 자유로운 다리 하나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빡!

“끄아아아아아악!”

내려찍는다.

한쪽 다리를 붙잡던 팔뼈를 망설임 없이 부러트린 설천위는 고통에 울부짖는 놈을 뒤로한 채 다시금 도를 휘둘렀다.

부하의 비명 따윈 신경도 안 쓰는 것처럼 망설임 없이 도끼를 휘두르고 있으니 이쪽도 그럴 수밖에.

도와 도끼가 부딪친다.

보통의 경우라면, 속도를 위해 얇은 도를 쓰는 설천위 쪽의 무기가 먼저 부러져야 맞겠지만 내공이 끼어들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내공이 무기가 받는 부하를 대신 받아 내니까.

물론 무기 자체의 내구도 차이만큼 손해가 생기고 그렇기에 이런 무식한 힘 싸움은 얇고 작은 무기를 가진 쪽에게 불리하지만…….

“……네놈.”

“허접하네.”

그걸 메울 정도의 실력 차이가 있다면 얘기가 다르다.

정확한 방어와 반격.

상대의 공격을 흘리면서 이쪽의 공격은 정확하게 찔러 넣는다.

당연히 방어에선 적은 손해를 보고 공격에선 큰 이득을 볼 수 있게 되고, 그건 곧 유리함으로 다가온다.

정확하게 기술의 차이에서 나오는 격차.

[고생한 보람이 있구먼.]

[눈물나는 노력의 결실이지…….]

무공에는 많은 영역이 있다.

검을 예로 들자면 쾌검, 중검, 환검, 변검, 둔검 등이 대표적이고 기형적인 무기를 쓰는 이들은 그에 따른 새로운 영역을 스스로 만들어 내기도 한다.

또한, 무기에 따른 무리(武理) 외에도 모든 무학을 관통하는 공용 무리도 있다.

후발선제라든가, 화경이라든가 하는 것들.

문제는 설천위는 이 모든 게 부족했다.

검법은 환검과 변검의 이치가 담긴 상승 무학을 익히고 있지만, 어수룩했고.

도법은 참의 이치가 담긴 상승 무학을 익히고 있지만, 무뎠다.

보법은 쾌와 은의 이치를, 권법은 쾌와 강의 이치를 담고 있었지만 둘 다 부족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부족하다고 채우지 않을 수 있나?

그러면 죽는데?

그래서 설천위가 선택한 방법은 하나의 뿌리를 심는 거였다.

뭐, 설천위가 선택했다기보다는 천마가 선택한 방법이지만.

패기(覇氣)라는, 무학의 범주에서 벗어난 힘이 있기에 선택 가능한 방법.

무학의 기본으로 돌아간 방법.

잘 막고, 잘 때린다.

후발선제?

그건 상대의 공격을 자유자재로 흩트려 놓고 그걸 앞지를 속도가 필요한 고등 기술이다.

화경?

상대의 힘을 받아 내 자유자재로 다루는 기술이 얼마나 어려울진 세 살배기 아이도 알 수 있다.

그런 걸 설천위가 전투에서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되려면 얼마나 걸릴까.

상대도 그런 수법을 쓸 텐데.

아마 평생 해도 힘들지 않을까?

한 분야로 노력하면 한 칠십 년 정도면 가능할지도.

그런 생각에 선택한 것이 이 방법이다.

설천위는 무학에 재능은 없지만, 이상하게도 전투 감각은 좋다.

거기에 패기의 힘으로 육체 능력은 어느 정도 해결이 되니 선택 가능한 선택지.

“놈!!”

“뭐!”

정확하게 도끼를 막아 내는 도.

흘린다거나 방향을 틀어 내는 거창한 방어가 아니다.

충격을 받아 내며 살짝 뒤로 물러나 힘을 흡수하고, 버틸 만한 구간에선 버텨 낸다.

최소한의 충격만으로 막아 내고 최소한의 힘을 써서 다시 반격한다.

도끼를 튕겨 내듯 떨쳐 내고 파고드는 도가 대소웅의 어깨로 파고든다.

간결하고, 빠른 공격.

막아 내기 위해 억지로 도끼를 회수한 대소웅이 공격을 막아 내도 이미 자세는 흐트러진 뒤다.

[크르르르르.]

굳건하게 단련된 하체를 중심으로 패기가 깃든 몸이 끊임없이 나아간다.

막고 찌르고.

막고 베고.

성급하지 않고 차분하게.

무리하지 않고 확실하게.

“이이!”

어떤 빈틈조차 주지 않고 확실하게 짓밟으며 다가오는 설천위의 모습에 대소웅의 얼굴이 급격하게 벌게졌다.

찍어 누른다.

이런 방식으로 자신을 상대하는 놈이 몇이나 있었던가.

이건, 이건 정말 말도 안 된다.

이럴 수는…….

“자, 여기까지.”

대소웅의 의지까지 깎아 내던 도가 움직임을 멈춘다.

마치 이 정도면 됐다는 듯한 멈춤.

그 반응에 더욱 화가 솟구친 대소웅은 도끼를 치켜들었다.

이따위로 무시당하고 견딜 수 있을 리 없었다.

얕보이면, 진짜 약자가 되는 것이 이 세계다.

약자가 아니라고, 수틀리면 물어뜯는 광견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새겨 줘야…….

“이제 절정 정도는 쉽네.”

웃으며 대소웅의 목 앞에 손을 올린 설천위의 눈동자가 기묘한 빛으로 번들거렸다.

“이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된 것 같은데, 이제 원숭이에서 사람으로 좀 돌아와 볼까?”

[끼릭.]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선동과 날조, 아니 정치의 시간이다.

* * *

“벌써 움직였다는 말인가?”

“그때 봤던 여종에게 혹한 것 같습니다.”

“쯧, 어린놈들이 까져서는.”

하긴 그 정도 미색이면 혹할 만하긴 하지.

문제는.

‘기세가 기묘했던 것이 쉽진 않았을 텐데?’

처음 설천위와 마주했던 날.

당연하게도 청아의 기세를 가늠해 봤던 사추홍은 그 귀신같던 존재감을 기억했다.

분명 보통이 아닌 암살자이거나 은밀 호위일 터.

유가의 여식과 혼약 중이라고 하니 그쪽에서 보낸 호위일 수도 있다.

쉽사리 처리할 수 없을 텐데…….

잠시 고민하던 사추홍은 이내 고개를 털었다.

자신이 생각한다고 한들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만.

“지금 움직일 수 있는 녀석들이 얼마나 되지?”

“흑원대처럼 움직일 수 있는 녀석들은 둘 정도 있습니다.”

“그 둘에게도 연락해 놓도록.”

“예.”

나중을 대비하는 건 할 수 있겠지.

흑원대 놈들이 실패한다면 그 실패를 바탕으로 또 일을 도모하면 된다.

“어린놈이…….”

정파의 종자가 흑룡학관에 와서 시비를 거는 놈들을 전부 죽일 순 없다.

하물며, 입을 못 열 정도로 중상을 입히는 것도 무리다.

증언은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물론, 흑원대가 이대로 잘 해결해 준다면 그게 가장 좋겠지만.

“네놈의 오만함이 그 숨통을 조이게 될 것이다.”

후후후후.

네놈의 재롱, 얼마든지 구경해 주…….

“학관장님!”

“뭐냐.”

설천위를 짓밟을 생각에 흐뭇해하던 사추홍은 다급한 부하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꽤나 다급하게 달려온 것인지 여기저기 흐트러진 부하의 모습.

그 모습에 사추홍은 그만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

“흑원대가 당했습니다!”

당했다?

물론 좋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예상 범주에 있던 일 아닌가?

왜 이렇게 호들갑을…….

“흑원대 놈들이 설천위의 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게 대체 무슨 개소리야!”

왜 흑룡학관의 학생이 정파 놈의 밑으로 들어가?

* * *

“그래, 그래! 마시자고!”

“예!”

설천위가 권한 술잔을 시원하게 들이켜는 대소웅.

그 주변으로 피골이 상접한 흑원대의 대원들이 힘겹게 술잔을 들고 있었다.

“자자, 마셔라! 우리가 만난 날을 기념하는 거다!”

“예!”

설천위의 호탕한 외침과 함께 술을 입에 털어 넣는 흑원대.

그 모습에 주변의 얼굴은 하나같이 기괴하게 변해 있었다.

‘저 미친놈들이 왜 저래?’

‘쟤, 설천위 아니야?’

‘설 씨면, 호남설가?’

‘그놈이 저 미친놈들의 일원이랑 왜 술을 처마시고 있어?’

호남설가라 함은, 사파의 주적인 정파에서도 현재 가장 최전방에 서 있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렇다 할 대 문파가 없어 중소 문파의 각축장이었던 호남을 제패한 명문.

그곳에서 중소 문파들을 밀어내고 자리를 잡았던 사파와 흑도 무리를 깔끔하게 밀어낸 장본인들.

그리고 현재까지도 슬금슬금 호남으로 들어가는 사파 무리를 뿌리 뽑고 있는 그야말로 사파의 주적이다.

가장 최근에 벌어졌던 전쟁에서 큰 활약을 한 가문이기도 하고.

그런데 그런 가문의 자식이랑 흑원대가 왜 사이좋게 술을 처마시고 있지?

서로 죽이겠다고 달려들고 있어야 정상 아닌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비현실적인 광경에 모두의 정신이 혼란스러워질 때.

설천위도 혼미해지려는 정신을 겨우 붙잡고 있었다.

‘더럽게 힘드네, 이거.’

[끼릭.]

악귀들을 예속시킨 뒤로 그 힘을 사용하려면 영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청랑이나 청아처럼 실체화 가능한 몸이 있으면 그 유지에는 별 힘이 안 들지만, 악귀 특유의 능력을 사용하는 데는 영력이 소모된다.

그리고 그 영력은 설천위의 것을 이용하고.

물론 설천위는 상당히 질 높은 영력을 가지고 있어서 생각보다 악귀들의 능력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문제는.

‘확실히 많아.’

흑원대에서 그나마 멀쩡했던 스물 정도를 강제로 조종하려 하다 보니 힘의 소모가 상당하다는 것?

식은땀이 삐질삐질 나올 정도로 꽤나 빡세다.

뭐, 그래도…….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냐!!”

[성공했군.]

낚시에는 성공했으니 충분히 노력한 보람이 있네.

흑원대 사이에서 일어난 설천위는 객잔 문을 열고 등장한 사추홍을 바라보며 술잔을 들었다.

“이곳의 학생분들이 저와의 교류를 축하해 준다고 하여 이리 찾아왔……. 컥!”

그리고 목을 잡고 쓰러지는 설천위.

파리해진 안색.

“독?”

누군가의 의문에 사추홍의 안색이 변했다.

독이라고?

사파도 사람 사는 세상이다.

당연히 친한 척 다가가 음식에 독을 타거나 하는 행동은 경멸과 혐오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학관장님! 시키신 대로 독을 타서 처리했습니다!”

갑자기 일어나 외치는 대소웅의 목소리에 객잔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이곳은 흑룡학관 외부에 있는 객잔, 당연히 일반인도 있다.

“이, 이게 무슨 개……!”

순식간에 혼돈의 도가니로 바뀌는 객잔의 분위기에서 다급한 얼굴로 쓰러진 설천위를 껴안은 청아는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사기꾼.’

연기 잘하네, 이 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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