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115화 (115/624)

제115화

114화-흑룡학관 (1)

“이럴, 이럴 리가…….”

완전히 무너져 허공에 대고 중얼거리기 시작한 정무회주를 보며 설천위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지.”

허망함에 방황하는 정무회주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설천위는 말했다.

“사죄가 먼저지. 저쪽에 있는 이들은 물론 네가 속이고자 한 모두에게.”

“그, 그건…….”

“선후를 헷갈리지 마라. 잘못에 대한 책임은 사죄에서부터 시작하는 거니까.”

물론, 시작이 사죄일 뿐 그걸로 끝나진 않겠지만.

완전히 의지를 잃은 정무회주의 두 눈을 설천위는 지그시 응시했다.

[패령안(覇靈眼)]의 힘이 담긴 두 눈으로.

“죄, 죄송합니다…….”

꺾인 의지는 버틸 재간이 없고, 버티지 못하면 무너진다.

고개를 떨구고 사죄하는 그 모습에 만족하며 설천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혜송 스님, 여기서부터는 맡겨도 되겠지요?”

“아미타불. 물론입니다. 시주.”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이후의 일 처리는 학생회에게 맡기는 편이 낫다.

그렇게 학생회에게 뒤처리를 맡긴 설천위는 그대로 등을 돌렸다.

그 뒤를 따르는 유예린과 당화유.

두 사람을 데리고 걸어가던 도중, 설천위는 자신을 향해 길을 열어 준 이들을 바라봤다.

“너희는 잘 지키고 있는 것 같냐?”

갑작스러운 질문.

대부분 그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당황했지만, 몇 사람은 미간을 찡그렸다.

그 모습을 확인한 설천위는 피식 웃으며 아직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이들을 향해 친절히 풀어서 다시금 물었다.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정도(正道)라는 두 글자가 지닌 긍지를 잘 지키고 있느냐고 물은 거다.”

“……그게 무슨.”

“뭘 무슨이야. 말 그대로지.”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은 후에 무림맹에 들어가 일반 병력이 된다.

그리고 몇몇은 네임드라고 불리는 영웅이 되어 전장에 서겠지.

그들 모두와 친해질 필요도, 친해질 방법도 없기에 놔두고 있었던 이들.

하지만 한 번쯤 화두를 던져 놓는 것도 좋을 거다.

“우리, 최소한 정도(正道)로 가자. 거짓과 선동에 휩쓸려 정도(正道)라고 믿는 길이 아니라, 너희들이 진짜 바른길이라고 믿는 그 정도(正道)로.”

대답을 들을 생각은 없다.

애초에 여기 있는 모두에게 그냥 던진 말이니까.

그렇게 시비 아닌 시비를 건 설천위는 그대로 인파를 지나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정도라.”

“같잖은 도련님의 헛소리군…….”

“쯧.”

설천위가 떠난 뒤, 각자의 생각을 품은 이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간은 꼭 바른길로 가지 않는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을 갈 뿐.

그 끝에 이익이 있을지, 정의가 있을지, 사랑이 있을지는 각자의 선택일 뿐이다.

* * *

“오오, 좀 멋있었겠는데?”

“너희들이 진짜 바른길이라 믿는 그 정도(正道)로.”

“흐지 말르그.”

일 처리가 끝난 뒤 학관장과 다시 만나 짧은 대화를 나눈 설천위는 훈련장으로 돌아왔다.

여러 사건이 있어서 못 한 훈련을 마저 해야 했으니까.

그리고 그사이에 소식을 접한 철백과 서하영이 다가와 설천위를 놀렸다.

“키야! 멋있습니다요!”

“흐지 말르그.”

“정의의……!”

“당장 튀어나와! 비무다!”

덩달아 옆에서 깝죽거리는 주현운을 향해 소리치는 설천위를 보며 모두가 웃던 그 순간.

“나, 질문 있어.”

“질문이요?”

“응.”

함께 들어와 그 광경을 구경하던 당화유가 그 장난의 흐름을 끊었다.

설천위가 고개를 끄덕이자, 당화유는 담담하게 물었다.

“왜 거짓말을 해 가면서까지 사파 애들을 도왔어?”

“……예?”

“그 아이, 중독돼 있었던 건 확실했어. 나, 초기에 실려 가는 걸 봤으니까.”

정확히 무슨 독인지 파악할 순 없어도 증상으로 보아 독인지 아닌지는 대충 파악할 수 있다.

괜히 독의 전문가가 아니니까.

순간, 당화유의 말에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

모두의 시선이 설천위를 향했다.

철백조차 진지해진 눈으로 설천위를 바라봤다.

믿지만, 그렇기에 확실한 해명을 요구하는 눈빛.

그 눈빛에 설천위는 되레 만족스럽게 웃었다.

얘들은 최소한 남에게 휘둘려 개짓거리를 하진 않을 테니까.

“증인이 있거든요.”

“증인?”

“네. 그만한 인간들이 학관 내로 들어왔는데, 아무런 조치도 안 취할 리가 없잖아요?”

[내가 봤다.]

설천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암영의적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를 볼 수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풀어졌다.

암영의적의 말이라면 믿을 수 있지.

다만, 그 증언을 듣지 못하는 당화유는 미간을 찡그렸지만.

“증인이 어디에 있는데?”

“저랑 함께하는 혼령이 있어요. 그분이 직접 봤거든요.”

“아!”

혼령이란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당화유.

얼핏 짐작하고 있었던 내용이지만, 이렇게 확실히 들으니 또 감회가 새로웠다.

“그런데 그러면 저도 궁금해지는데요.”

“뭐가?”

“독에 중독됐었다는 걸 알면서 왜 말 안 했어요?”

가문의 이름까지 내걸면서?

물론 그때는 진짜 독이 없었으니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그런 식의 발작을 일으키는 독은 9할 이상이 구강 섭취로 효과를 보는 독이야.”

“아…….”

그 외에도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의문점은 저거였다.

“그래서 의심하는 중이었어.”

그렇다면 이해가 가긴 하네.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다시 바닥에 앉았다.

“그래서 의심은 풀리셨나요?”

“응. 아까 확인 결과, 외부에서 독을 투여한 흔적은 없었거든.”

과연.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당화유를 보며 웃었다.

“당 소저는 정도(正道)를 가고 있네요.”

“갑자기?”

“그게 진짜 어려운 거거든요.”

지금 학관에 있는 이들이 그렇다.

사파와의 전쟁이 이어지고 있긴 하지만, 진짜 격렬했던 건 부모 세대다.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었던 건 부모 세대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 괴로움과 증오를 지금 학관에 다니는 세대가 울부짖고 있다.

왜냐고?

힘을 쓸 곳을 찾지 못해서다.

선조의 피로 다져진 땅은 너무 단단해 풀과 나무가 쑥쑥 자라고 있는데, 그 땅의 면적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생기는 문제다.

경쟁에서 뒤처지고 스스로에게 좌절한 이들이 칼끝을 적에게 돌리는 거다.

그리고 그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 윗사람들도 그 감정을 이용하고 있고.

끝없는 증오와 혐오의 고리.

그 속에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건 진짜로 대단한 일이다.

“뭐, 이 화제는 여기까지 하죠. 더 이야기한다고 해서 나올 것도 없는데.”

훈련할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성무경을 마주하니 역시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든다.

영적인 존재라면 진짜 웬만한 고수 뺨따귀를 후려칠 수 있는 정도이지만, 상대가 무인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제대로 된 초절정만 만나도 힘든 수준.

아직 한참 더 강해져야 하는 시기다.

“그런데 걱정되네요.”

“응? 뭐가.”

“우리 쪽에서도 흑룡학관으로 학생이 가지 않았나요?”

“어, 그렇겠지?”

교환학생이니까.

“사파는 속는 놈이 잘못이라던데…… 잘 버티고 있을까요?”

“…….”

침묵.

묘한 침묵 끝에 설천위는 입을 열었다.

“뭐, 제 선택이니 알아서 잘하겠지.”

지원제로 갔다고 하니까.

“신경 쓰지 말고 수련이나 하자.”

뭐, 죽기야 하겠어?

* * *

“그게 무슨 헛소리냐!”

“손해 배상으로 금 만 냥을 내놓으라는 소리다.”

흑룡학관의 식당.

더러워진 옷을 가리키며 사내가 이죽거렸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겨 주신 옷이거든. 소중하니까. 설마 정파인 너희들이 부모 자식 간의 정을 부정하진 않겠지?”

“이이……!”

노골적인 비웃음.

그 비웃음에 화를 내는 이유는 만 냥이라는 터무니없는 금액도 있었지만…….

“쟤네 어머니 살아 계시지 않나?”

“전에도 오셨을걸?”

“호로자식이야. 호로자식.”

조금 떨어진 곳에서 수군거리고 있는 놈들의 대화 내용 때문이다.

이 빌어먹을 놈이 멀쩡히 살아 계시는 어머니를 팔아 자신에게 시비를 걸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였다.

“이 말로는 안 되는 망종 놈이! 좋다! 무인답게 비무로 해결하자!”

“비무로?”

“내가 진다면 금 백 냥과 함께 사죄하겠다!”

“흐음? 그래서? 내가 지면?”

“네놈이 지면 무릎 꿇고 이 무례를 사죄해라!”

“그렇군. 좋아.”

고개를 끄덕이는 사내.

그 모습에 벌떡 일어난 황보척이 성큼성큼 식당을 나서려는 순간.

“아, 아니지. 우리는 정파의 샌님들이 아니라고. 굳이 연무장으로 갈 필요 없어.”

황보척의 앞을 가로막는 이들.

그들의 목과 팔엔 검은 원숭이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흑원대(黑猿隊) 놈들이 또 시작이군.”

혀를 차는 누군가.

“성무경이 없으니 이때다 싶은 거지.”

“하여튼 한결같은 놈들이야.”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든다는 눈으로 흑원대를 바라봤지만, 그 누구도 도와주려고 나서는 이가 없었다.

왜냐고?

여기는 그런 곳이니까.

“우리는 한 몸이거든. 싸운다면 당연히 우리 모두와 싸워야 하지.”

이죽거리며 말하는 상대의 모습에 황보척은 깨달았다.

함정에 빠졌음을.

망설임 없이 병장기를 꺼내 드는 적들을 보며 황보척은 이를 악물었다.

“이놈들!! 내가 황보세가의 주먹맛을 알려 주마!!”

그리고 처절한 싸움이 시작됐다.

* * *

새로운 학기가 시작됐다.

한차례 소란에 휩쓸린 적랑대는 그 후 의외로 너무나도 얌전하게 시간을 보냈다.

각자 원하는 수업을 신청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지냈다.

또 설천위 일파가 지내는 훈련장에 자주 드나드는 모습을 보인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그야말로 평화롭기 그지없는 학관 생활.

“어, 어……!”

“이 사람이?”

멍하니 고개를 돌리는 연인의 옆구리를 마치 쥐어뜯을 기세로 꼬집은 여인은 흥, 소리와 함께 연인의 고개를 되돌렸다.

“씁?”

“죄, 죄송합니다.”

눈을 부라리는 기세에 곧바로 고개를 숙이는 남자.

조용히 구석에서 시간을 보내던 연인의 분위기를 단숨에 험악하게 만드는 원흉.

청아가 콧노래를 부르며 걷고 있었다.

“흥흥흥~, 심부름은 이걸로 끝인가?”

남궁천이 연수화를 자신의 사용인으로 학관에 들였듯이 설천위도 청아가 자유롭게 활동하라고 자신의 사용인으로 청아를 등록했다.

덕분에 여러 잡일을 도맡고 있는 청아지만.

‘이런 생활도 좋네!’

옛날 생각도 나고.

살짝 씁쓸한 미소와 함께 지금의 행복을 만끽하며 걷던 청아는 이내 걸음을 멈췄다.

“주인님!”

경쾌한 외침.

도도도 달려간 청아는 유예린과 걷고 있던 설천위의 곁에 단숨에 달라붙…….

“거기까지.”

“옙.”

목 끝에 위치한 비수에 잽싸게 발을 멈춘 청아는 자신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에서 눈을 돌렸다.

이 언니는 언제 괴롭혀도 재미있네.

그나저나 최근에 두 사람이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진 것 같은데…….

“이거이거, 벌써……?”

“뭐가?”

“아무것도 아닙니다요!”

설천위의 묘한 눈빛을 자연스럽게 넘긴 청아는 이번엔 걸음을 옮겨 유예린에게 달라붙었다.

설천위에게 달라붙으면 망설임 없이 비수를 들이밀면서 자신에게 달라붙으면 또 말없이 받아 준다.

‘……언니라고 부르면서 따르는 걔들이 이해가 된단 말이지.’

묘하게 포용력이 있다고 해야 하나.

의지하고 싶어지는 유형이다.

“그런데 두 분 다 웬일이신가요? 지금은 수련하는 시간 아닌가요?”

수업이 없는 시간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두 사람 다 놀 시간은 아닌데?

“학관장님이 부르셔서 가는 길이야.”

“학관장이요?”

그 인간이 왜?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청아는 두 사람을 따라 걸었다.

무슨 내용인지 궁금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두 사람이 학관장실에 도착했을 때.

묵직한 기세가 학관장실 전체를 짓누르고 있었다.

쉽사리 마주할 수 없는, 분노로 가득한 그 힘을 경계하며 설천위가 문을 열자 안에는 세 사람이 서 있었다.

학관장 팽후.

전 학기에 같은 기초 생존술 수업을 들었던 황보택.

그리고…….

‘패력단주?’

패력단주(覇力團主), 황보중.

거암과도 같은 기세를 내뿜는 그가 설천위를 바라봤다.

“저놈을 보내겠다고? 우리 가문의 애가 아니라?”

“그러는 게 맞네.”

팽후의 대답에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설천위를 바라보는 황보중.

그가 천천히 설천위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시험해 보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