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104화 (104/624)

제104화

103화-그건 그쪽 사정이고 (10)

공기가 변한다.

괴가 인간의 죽음을 선언한 순간, 공기 자체가 변하기 시작했다.

기온이 내려가서 추워졌다는 종류의 이야기가 아니다.

공기의 질 자체가 변했다.

“……영역(靈域).”

여태까지 공간을 장악하고 있던 영역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물속에 들어온 것 같은 저항이 몸 전체를 짓누른다.

숨을 쉬는 것조차 갑갑해진 공기에 청백이 크게 호흡을 들이쉬었다.

“갈(喝)!!”

목을 타고 나온 소리가 공간을 쩌렁쩌렁하게 뒤흔든다.

순간 그 옆에 있던 유예린은 한결 호흡이 편해진 것을 느끼며 의외라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특출 난 능력은 없어 보였는데…….

‘무인의 시선으로 볼 수 없는 술사의 영역인가?’

고개를 돌린 유예린은 자신이 상대하던 악귀도 잠시 움직임이 멈춘 것을 확인하곤 한 걸음 물러서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몰아붙여 끝내고 싶지만……. 그럴 만한 공격도 불가능한 데다 공기의 변화로 순간 움직임에 이변이 생겼던 건 자신도 마찬가지다.

무리하다가 반격이라도 당해 설천위의 짐이 되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됐을 때 천위의 표정이 보고 싶긴 하네요.’

걱정해 줄까?

아니면, 분노할까?

살짝 떨리는 눈으로 잠시 설천위의 등을 응시한 유예린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주춤했던 악귀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덩달아 일순 편해졌던 호흡도 다시 갑갑해지기 시작했고.

“이건 힘들군.”

“무리.”

“흠흠, 사제? 나도 나름 수재…….”

“약함.”

“……씁.”

냉정하기 그지없는 청유의 단어 선택에 청백은 암울한 표정과 함께 한 사람을 바라봤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괴물이군.’

힘을 숨기고 있던 악귀가 전력으로 힘을 드러냈다.

그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 호흡과 행동에 장애가 생길 정도로 압도적인 힘을 뿜어내는 악귀.

이미 학생의 단계에서 대처할 수 있는 수준을 아득히 넘어선 존재다.

수령원의 스승들이 와도 몇몇은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중급 귀(鬼).

술사들이 악귀를 나누는 단계인 백(魄), 원(怨), 귀(鬼), 재(災), 멸(滅)에서 신화의 존재로 취급받는 멸(滅)을 제외하고 실질적으로 사용하는 단계는 네 가지.

그중에 귀(鬼)는 하급이라도 학생 수준에선 단신으로 상대할 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

중급 이상은 경험과 수련을 쌓은 백화단과 만귀단의 정예들이 조를 짜서 상대해야 하는 수준.

그런 존재를 단신으로 막아 내고 있다.

최소 조장급 혹은 대주급이 아니면 불가능한 수준이다.

‘무림학관의 학생을 만나겠다고 백화단주께서 직접 움직이셨다는 소문이 돌았었지.’

아무래도 저 사람이 그 소문의 주인공인가 보군.

뜬소문에 불과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뜬소문이 아니었던 것 같다.

전문적으로 술법을 배우지 않았는데도 저만한 악귀를 상대로 맞서 싸울 수 있다니.

그 자체로 찬사를 받아 마땅한 위업이다.

다만.

“청유.”

“응.”

사제를 부른 청백은 무거워지는 몸을 억지로 움직였다.

전문적인 교육을 못 받았으니 영적인 공격은 미숙할 터.

무인 출신이기에 저리 버틸 순 있어도 제대로 된 공격은 힘들…….

[키에에에에에엑!!]

“오? 아프냐?”

……안 힘든가?

순간 공간을 뒤흔드는 괴성에 고개를 돌린 청백은 슬그머니 벌어지는 턱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 느낄 수가 없었다.

“미친?”

‘어떻게 저런?!’

속내와 입으로 나오는 말이 반대가 된 청백의 경악에 원래라면 혀를 찼을 청유도 이번엔 놀란 눈으로 상황을 살피기에 바빴다.

끼릭 끼릭.

꿈틀거리는, 철인지 뭔지 모를 송곳.

문제는 그것이 괴의 몸에서 떨어져 나와 있다는 점이다.

[크르르르르르.]

용의 형상을 한 식령이 입에 문 송곳을 완전히 으깨 부숴 버린다.

영력으로 변해 흩어지는 송곳.

가루로 변한 영력은 용의 호흡에 절로 빨려 들어갔다.

“역시 몸에 좋아.”

결국 술자에게 들어가는 걸까.

힘은 용이 빨아들였으나 미소 짓는 것은 술사였다.

“너, 꽤나 강하네.”

입꼬리를 비트는 설천위의 모습과 그를 경계하는 괴.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청백은 몸을 돌렸다.

“……주변 정리나 돕자.”

“……확인.”

오랜만에 사제의 답이 조금 늦어졌음을 알았지만, 청백은 구태여 지적하지 않았다.

왜? 이유야 충분히 알고 있었으니까.

‘저런 말도 안 되는…….’

아무래도 하늘 위엔 하늘이 있다는 선조들의 말에 틀린 점은 없는 것 같다.

* * *

괴의 송곳 하나를 뜯어낸 설천위는 어느새 상당히 익숙해진 괴를 바라보며 웃었다.

“역시 편하네.”

무학(武學)을 익히지 않은 힘만 센 놈들은.

[기괴하긴 하지만, 단순하구나.]

[저리 눈먼 공격만 하는데 당해 줄 이유가 없지.]

혼들의 평가에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 무식하기 그지없는 공격.

영적인 힘의 차이가 압도적이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괴를 상대로 설천위의 영력은 그리 부족하지 않다.

무림학관이라는 환경 때문에 영적인 환경과 자주 접하진 못하였기에 영력의 성장이 더디긴 하다.

‘아직도 중중(中中).’

재능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상급을 돌파했어야 할 영력이 아직도 중급에 머물러 있으니까.

하지만, 상대방의 압박을 이겨 내는 정신력은?

중중(中中).

성장이 더딘 능력치란 걸 생각하면 이것도 충분히 높은 수치다.

거기에다 몸과 정신을 보호하는 패기(覇氣)는?

상하(上下).

고작 귀급의 악귀 따위가 압도적인 차이로 찍어 누를 수 있는 스펙 차이는 아니라는 소리다.

그렇다면 전투의 행방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당연히 기술의 차이다.

뿌득.

슬슬 괴의 공격에 익숙해진 설천위는 드디어 괴의 송곳을 붙잡고 부러트리는 데 성공했다.

재능은 더럽게 없지만, 죽음을 겪는 실전을 거치며 혼에 새긴 전투 경험.

죽음을 통해 익힌 전투 경험은 아무리 재능이 없는 설천위라고 할지라도 상대방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는 눈을 주기엔 충분했다.

무엇보다 설천위는 머리가 좋은 편에 속하니 보고 분석하는 것 자체는 잘하는 편이기도 했고.

그걸 몸으로 실행을 못 해서 그랬던 거지.

“슬슬 끝낼까? 싱거운데.”

자신의 재능을 믿지 않기에 차분하게 상황을 파악하던 설천위는 슬슬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정도의 상대는 얼마든지 정리할 수 있다.

데려온 사람이 워낙 많아 최대한 안전한 길을 가기 위해 신중을 기하던 설천위가 확신을 얻을 정도의 차이.

[괴물 놈.]

“더럽게 생기긴 했네요.”

[네놈을 말하는 거다.]

“네?”

[……차마 더럽게 생겼다고 할 얼굴은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하거라.]

얼굴 하나는 잘 타고났네.

가볍게 혀를 찬 천마는 여유롭게 송곳을 막아 내는 설천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학적 성장은 느리긴 하지만 확실하게 성장하고 있고, 영적인 성장은 말할 것도 없이 알아서 잘 크고 있다.

보는 맛이 있는 놈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어 안타깝다고 해야 하나.

천마가 설천위를 평가하며 혀를 차는 사이, 한결 여유를 되찾은 설천위는 주위를 파악하는 데 힘쓰고 있었다.

‘주현운이랑 소윤혜는 붙어서 잘 싸우고 있네.’

소윤혜는 영안을 개안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하려나.

뭐, 애초에 하루로 가능할 거라곤 생각도 안 했으니까.

주현운 같은 괴물이라면 또 몰라도.

그 괴물이 소윤혜를 지켜 주고 있으니 저쪽은 걱정할 필요 없겠지.

그럼 다음으론…….

“……재능은 확실하네.”

어느새 한층 날카로워진 유예린의 검이 악귀를 베어 낸다.

영력이 스며들기 시작한 공격에 악귀가 속절없이 베이고 있었다.

저쪽도 잘하면 오늘 안에 개안할지도?

그런 생각과 함께 고개를 돌린 설천위는 악귀들과 맞서 싸우고 있는 철백의 상태를 살피곤 미간을 찡그렸다.

일단 복부의 출혈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인 데다 지금은 악귀를 상대로 싸우고 있지만 저것도 사실 중독의 결과물이다.

상대할 악귀가 사라지면 주변 사람을 공격하기 시작하겠지.

그 전에 제압해 해독할 필요가 있다.

“저쪽은 확실하게 1인분씩 해 주고 있고.”

청백과 청유의 상태도 짧게 확인한 설천위는 어느새 마을 곳곳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상 시간을 끄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다.

깡!

송곳을 쳐 내며, 설천위는 도를 쥔 팔을 늘어트렸다.

순간 확 열린 설천위의 전면.

빈틈으로 가득 찬, 아니 빈틈밖에 없는 모습에 달려들려 했던 괴가 움찔 움직임을 멈췄다.

아무리 그래도 수백 번의 공격이 전부 막혔다.

본능에 충실할 뿐 이성이 완전히 망가진 건 아닌 괴이기에 기묘한 위화감 정도는 충분히 눈치챌 수 있었다.

무엇을 노리기에 저리 무방비한 모습을 보이는 거지?

그런 의문이 괴의 머릿속에 떠오른 순간.

그 생각이 뻔히 보이는 설천위는 입꼬리를 비틀며 웃었다.

“망설일 순간에 공격을 했어야지.”

대책을 세울 수 없는 환경에서 공격조차 멈추면 상대방의 의도대로 휘둘리잖아?

물론 공격을 하는 것이 상대방의 의도일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의 발악 정도는 유지해야지.

순간, 땅을 박차는 설천위.

그런 설천위를 향해 본능적으로 송곳을 난사하는 괴.

하지만.

[키릭?]

움직이지 않는다.

왜?

왜 내가 무방비하게 서 있는 거지?

그런 의문이 괴의 머릿속에 떠오른 순간, 이미 괴의 코앞에 도달한 설천위는 인간으로 따지면 목에 해당하는 부위를 움켜쥐는 데 성공했다.

“뭐야, 처음이야?”

영문을 모르고 머뭇거리는 괴를 보며 설천위는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크르르르르르르.]

“강한 힘에 짓눌려 본 건 처음인가 봐?”

조롱.

설천위의 말 속에 담긴 감정을 읽어 낸 괴는 발악하고자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왜?

단순하다.

괴는 온전한 실체를 가진 존재가 아닌,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크우어어어어!!]

[캬아아아악!]

사방에서 들려오는 괴성에 일행들이 놀랐지만, 그들 누구도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주변의 악귀들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기 때문이다.

동시에.

“……갑갑함이 사라졌어요.”

소윤혜의 감상에 주현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러운 압박감의 해소.

그리고 이곳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한 건…….

[크르르르르르르르.]

몸과 어깨엔 묵빛의 용을.

다리 근처엔 푸른 늑대를.

“……멋있다.”

그 기묘하리만큼 이질적인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탄이 나오게 했다.

물론 잘생긴 얼굴도 한몫했고.

그리고 그런 멋과 별개로.

그의 몸에서 쏟아져 나오는 압도적인 기세는 그 모습을 제대로 눈에 담는 것조차 힘들게 만들었다.

“……역시 주인님은 괴물이네요.”

청아의 솔직한 감상을 가볍게 한 귀로 흘리며 설천위는 어느새 끼릭, 하는 소리조차 멈춘 괴를 바라보며 웃었다.

짙은 패기를 품은 눈동자가 괴를 응시한다.

청아를 눈빛만으로 제압할 때조차 설천위는 패기를 전부 끌어올리지 않았다.

왜?

망가질 테니까.

상급(上級).

자꾸 무인들을 상대로, 산 사람을 상대로 사용하니 그 위력이 반감되는 감이 없지 않아 있는데 상급(上級)은 말이 안 되는 수치다.

아마 영력으로 상급에 오를 정도가 되면 백화단이나 만귀단의 부단주급 이상은 돼야 할 거다.

그런데, 그런 패기가 상급이다.

단주급은 귀(鬼)를 넘어서 재(災)와 단신으로 대적할 수 있을 정도의 강자들.

재앙이라 불리는 존재들을 상대로 설령 이기진 못하더라도 시간은 끌 수 있는 괴물들이다.

그런 존재들이 평생을 갈고닦아 쌓은 경지가 상급(上級)이다.

설령, 상하(上下)에 불과한 힘일지라도.

“반쪽짜리가 견뎌 낼 힘이 아니지.”

뿌득.

괴의 목이 부러져 가루가 되는 것과 동시에 그 몸은 힘을 잃고 무너진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설천위의 눈이 조금 먼 곳을 향했다.

이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던 괴물들.

주춤거리는 것이 썩 귀엽지만…….

“이번 기회에 영력도 중상(中上)으로 올려야지.”

훌륭한 단백질, 아니 영력 공급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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