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103화 (103/624)

제103화

102화-그건 그쪽 사정이고 (9)

이질적이다.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싸움을 보며 유예린은 그렇게 생각했다.

무가(武家)에서 태어나 평생을 싸움을 보고 자라 온 그녀에게도 지금 눈앞에 펼쳐진 싸움은 너무나도 이질적이었다.

‘……일단, 사람이 아니니 당연한 건가?’

손발을 움직이지 않는 전투.

물론 설천위는 손발을 움직이고 있지만, 상대는 지금도 손발을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

거의 제자리에 박힌 듯 서서 거적때기 속에서 튀어나오는 기이한 송곳들만이 공격 수단이다.

그렇다면, 설천위는 전혀 이질적이지 않은가?

그럴 리가.

어떤 의미로는 설천위가 훨씬 더 이질적이었다.

[크르르르르.]

그를 휘감은 검은 용이 미처 막아 내지 못한 공격을 전부 차단하고 있었으니까.

아니, 막아 내지 않는 공격인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는 정확히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기에 유예린은 고개를 돌렸다.

“……대단하군.”

“…….”

나지막이 감탄하는 청백과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청유.

청백은 이리저리 찢기고 까진 상처가 많았지만, 그런 상처조차 잊어버린 듯 진중한 눈빛으로 설천위를 살피고 있었다.

“보아하니 단순한 술법이 아니라 식령과 무학의 조합인 것 같군.”

“무림학관.”

“음. 스승님들께서 무공의 단련을 적극 권하시는 이유가 납득이 가는군.”

자기들끼리 뭔가 통하는 것이 있는 듯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두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던 유예린은 그들의 곁으로 다가갔다.

“두 분, 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유 소저, 물론 저희가 아는 범위 내라면 최대한 답해 드리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청백을 잠시 바라본 유예린은 설천위와 싸우고 있는 괴를 바라봤다.

쉴 새 없이 튀어나오는 송곳이 설천위의 도와 부딪히며 강렬한 금속성을 내고 있었다.

쇠와 쇠가 마찰하며 나는 거슬리는 소리.

대체 몇 개나 되는 송곳이 있는지 감을 잡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송곳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분명 환술에 휘말리셨다고 했던 것 같은데, 주변에 다른 적은 없나요?”

“음……. 사실 아까부터 찾고는 있는데, 저는 그쪽으로 수양이 깊지 못해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환술을 펼친 존재가 따로 있을 수도 있다는 거군요.”

저 정도 힘을 가졌는데, 마을 전체를 뒤덮을 정도의 환술까지 쓴다?

쉽사리 믿기지 않아서 유예린은 또 하나의 가능성을 열어 뒀다.

설천위가 전투에 들어간 이상, 외부에서 벌어지는 사건엔 자신들이 대처해야 하니까.

그런 유예린의 모습에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던 청아가 입을 열었다.

“아마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유는요?”

“괴(乖)는 자신의 영역이 확고한 녀석이거든요.”

“자신의 영역에 다른 악귀가 들어온 것을 용납할 리가 없다는 거군요.”

“네.”

청아의 말에 유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좋은 소식이다.

그렇다면 일단 주변에 다른 적은 없다는 소리니까.

그렇게 판단한 유예린이 다음 지시를 위해 입을 열려는 순간, 청아가 그녀의 말을 막았다.

“하지만, 아마 다른 악귀는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유는요?”

“이만큼 난리를 피웠으면 호기심에라도 찾아왔을 것이고…….”

청아의 시선이 청백과 청유, 그리고 아직 상처를 치료 중인 철백과 그 곁에 있는 주현운을 바라봤다.

영력을 품은 인간들.

“맛있는 먹잇감이 이렇게 있으면 무조건 움직일 거예요.”

괴(乖)라는 막강한 장애물을 어떤 괴물 같은 인간이 막아 주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절호의 기회.

삼귀(三鬼)라 불리는 것들이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러니, 준비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청아의 경고에 유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하라는 경고를 무시할 이유는 없으니까.

“전원, 전투를 대비하세…….”

“벌써 왔습니다.”

유예린의 말을 끊고, 부적을 들어 올리는 청백.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쪽에서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쿵.

마치 거인이 움직이는 것 같은 묵직한 발소리.

[크하하하하하!]

공간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웃음소리.

청아가 내뱉는, 성대가 움직여 나는 실제 소리와는 다른 영적인 울림.

“악귀네요.”

짐승의 가죽을 옷으로 걸친 악귀를 보며 청아가 말했고, 유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딱 봐도 느껴졌으니까.

아마 생전에 산적이나 사냥꾼 아니었을까?

어쩌다가 악귀가 됐는진 모르겠지만…….

“최대한 이 자리를 지키되, 필요하다면 각자 판단해서 움직이세요.”

기습에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

쓸데없이 자잘한 지시는 오히려 족쇄가 되어 행동을 어설프게 만든다.

지금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각자의 능력을 믿고 최소한의 선을 만드는 것.

그렇게 판단한 유예린은 짧은 지시를 끝으로 검을 뽑았다.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유연성이 좋은 검.

연검(軟劍)에 가까운 검이지만, 막 기둥을 휘감을 정도로 유연하진 않다.

그저 보통 검에 비해 상당히 잘 휘는 정도의 검.

검을 뽑은 유예린이 그것을 휘두르자, 검은 마치 거센 폭풍이라도 만난 것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휘리리릭.

거센 폭풍 속에서 춤추는 연처럼 휘어지는 검.

그 검은 묘한 소리를 내며 허공을 가른다.

[크하?]

직후, 어깨가 베였다는 것을 깨달은 거한의 악귀가 고개를 갸웃했고, 유예린은 미간을 찡그렸다.

아예 팔을 잘라 버릴 생각이었는데, 고작 조금 벤 상처가 끝이라니.

아무래도…….

“조금 빠른 선행 학습이 필요할 것 같네요.”

악귀를 베는 법을 스스로 깨우칠 필요가 있어 보인다.

* * *

“씁, 더럽게 강하네.”

괴를 마주한 설천위는 도를 휘두르다가 이내 살짝 거리를 벌렸다.

호흡이 딱히 흐트러지진 않았지만, 이대로 가다간 흐트러질 것 같기에 거리를 벌리고자 했다.

“아! 더럽게!”

그리고 그런 설천위의 속내를 읽기라도 한 듯 괴는 끈질기게 그에게 따라붙었다.

땅에 박힌 말뚝처럼 가만히 서 있다가 설천위가 물러서면 귀신같이 따라붙는다.

뭐, 귀신이 맞긴 한데.

[아무래도, 보통의 방법으론 쉽지 않겠구나.]

“그래 보이네요.”

천마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낮게 가라앉은 눈으로 괴를 바라봤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맨손을 쓰지 않고 도를 들었는데, 아무래도 그게 정답인 것 같았다.

도에 묻어 나오는 끈적한 기운은 분명 주독(呪毒)일 테니까.

저주로 만들어 낸 영적인 독.

어떤 종류건 간에 독이란 건 까다롭기 그지없는 공격 수단이다.

일단 당하면 이쪽은 그야말로 처참하게 몰리니까.

그렇기에…….

‘버틸 수 있나?’

슬쩍 철백을 돌아본 설천위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철백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상당한 수준의 독인 게 틀림없다.

육체 단련을 메인으로 하는 철백은 당연히 내부 장기를 위로 올려 보호하는 수법을 사용한다.

안면과 가슴 쪽을 보호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복부가 노출될 수밖에 없으니까.

무기를 들지 않고 앞으로 돌진하는 무인들은 거의 필수로 익히는 수법이다.

복부가 꿰뚫려도 주요 장기는 다치지 않게 보호하는 것이다.

그러니 철백도 원래라면 대충 지혈만 하고 일어나 전투에 참여했을 것이다.

고작 살이 꿰뚫린 정도로 정신을 못 차릴 철백이 아니니까.

“독 같아요!”

그리고 그런 사실을 눈치챘는지 주현운의 외침이 들려왔다.

아마 확신을 가지기 위해 살피느라 시간이 걸린 거겠지.

뭐, 그래도 주독이라는 특징 때문에 정확히 확신은 못 하는 것 같지만.

주현운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괴를 바라봤다.

기괴하기 그지없는 생김새와 움직임.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 모습에 이성은 없어 보인다.

‘……그것조차 위장이겠지.’

마을을 뒤덮었던 힘.

처음 마을에 들어왔을 때 봤던, 사람의 이성을 날려 버리는 것과 똑같은 기운이었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환술로 인간이 인간을 공격하게 만들어 공포를 조성한다.

이건 보통의 악귀들도 자주 쓰는 수법이다.

그런데, 인간과 인간이 서로 불신하게 만들고.

그런 불신을 통해 또 다른 공포를 만들어 내는 것.

이것은 여러모로 이야기가 다르다.

공포는 곧 힘.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수익을 얻어 내는 방법.

아마 이 마을은 족히 수년 동안 공포에 시달리며 피폐해져 갔을 거다.

이 시대의 일반 백성은 쉽게 다른 마을로 이주할 수 없으니까.

하물며, 이런 산 중턱에 사는 이들이라면 더더욱.

그런 그림을 그리며 힘을 쌓아 온 놈이 이성이 없다?

그럴 리가.

지금 이 습격조차도 치밀한 계산하에 이루어졌을 터.

‘무엇을 원하는 걸까.’

설천위의 눈빛이 점점 더 낮게 가라앉았다.

“크아아아아!”

그 순간, 뒤쪽에서 들리는 괴성에 설천위는 슬쩍 눈을 돌렸다.

주독(呪毒)에 중독된 철백이 상체를 일으켜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고통스러워서?

아니다.

갈구하는 것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욕망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서 매!!”

없는 것을 있다고 속이고.

만질 수 없는 것을 만질 수 있다고 속이고.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속이는 것.

그것이 환술.

다만, 악귀의 환술이란 단순히 거짓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다.

왜 속이는 것인가?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이 바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간의 욕망 속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속인다는 행위의 목적은 결국 감정을 움직이는 것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철백이 미친 듯이 달린다.

그 목표는 서하영.

“이런!”

그 모습에 주현운이 막기 위해 다급히 움직였지만, 아무리 주현운이라고 한들 지금의 철백이 전력을 다해 달리는 속도를 따라잡긴 힘들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서하영의 곁에 도달한 철백.

이 혼란을 틈타 나타났던 악귀 하나와 싸우고 있던 서하영은 갑작스러운 철백의 등장에 당황했다.

허나, 창을 움직이진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망설임.

철백의 위협적인 덩치도, 서하영의 눈엔 조금 귀여운 곰으로 보일 뿐이었으니까.

“피하시오!”

다급하게 외치는 주현운의 목소리에 서하영은 이를 악물었다.

공격해야 하나?

아니면 피할까?

찰나의 순간, 마음속에 피어난 고민에 이미 움직임이 늦었던 서하영은 이내 창을 쥔 손에 힘을 풀었다.

그리고 작게 웃었다.

“……철가가.”

포기?

아니다.

봤으니 안도한 것이다.

오로지 한 가지 생각만을 품은 두 눈동자를 보았기에.

깡!

악귀가 휘두른 날카로운 손톱이 그 육체에 튕겨 나간다.

서하영을 감싼 육체는 그녀를 품에 안고 악귀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 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설천위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쟤, 방에선 무슨 욕망에 휘둘렸을까.”

괴성을 지르며 나온 걸 보니 상당히 낯부끄러운 욕망에 휩싸였던 것 같은데.

뭐.

“배때지에 구멍이 나고도 가장 추구하는 욕망이 연인을 지키는 것이란 것도 어떤 의미로 낯부끄러운 욕망이긴 하지.”

[상당한 사랑꾼이구나.]

[시간이 지나면 무림을 울릴 애처가가 나타나겠어.]

피식피식 웃는 혼들의 말에 설천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네가 원하던 첫 번째 수단은 사라졌는데 어쩌고 싶으냐?”

[…….]

침묵.

악귀의 악의가 담긴 주독(呪毒)이다.

웬만큼 선한 사람도 사특한 욕망에 휩싸여 휘둘릴 만한 독이겠지.

그렇지 않다면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남편이 부인을 물어뜯어 죽이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인간의 내면에 쌓인 스트레스, 슬픔, 분노 등을 터트리는 것이겠지.

물론, 그 모든 게 터져도 사랑하는 이를 지키는 것이 최대의 욕망인 철백은 계산 밖의 상황일 것이고.

“슬슬 조급하지? 어떻게 할 거냐?”

괴의 공격을 막아 내며 설천위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한번 생기기 시작한 감정의 균열은 빠르게 그 댐을 무너뜨려 버린다.

악귀라고 한들 뭐가 다를까?

끼릭.

[인, 간…… 죽는다.]

짧은 음성.

그것이 자신을 향한 협박인 줄 알았던 설천위는 천천히 팔을 들어 올리는 괴의 모습에 미간을 찡그렸다.

괴가 들어 올린 팔이 향한 곳은 철백.

[전부, 죽는, 다.]

얼굴에 붙어 있던 조잡한 가죽의 입꼬리 부분이 마치 비웃듯 비틀렸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