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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102화 (102/624)

제102화

101화-그건 그쪽 사정이고 (8)

사람은 추악한가?

성악설을 믿는 이는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고.

성선설을 믿는 이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설천위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설천위는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왜?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생각해서?

아니다.

그렇다면 선하다고 생각해서?

아니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씁.”

객잔 밖에 펼쳐진 풍경.

아니, 광경이라고 해야 하나.

평소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에 근거 하나를 더해 주는 광경에 설천위의 눈이 착잡하게 빛났다.

누군가와 주먹다짐을 하는 사람, 남의 곳간을 털어 폭식하는 사람, 싫다고 도망치는 이를 쫓는 사람 등등.

술법에 의해 본능에 빠져서 행동할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차마 눈으로 보기 힘든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참으로 불호광경(不好光景)이 아닐 수 없다.

“……한비자가 법가 사상을 주장했던 것이 이해가 가는군.”

사람은 엄격한 법으로 통제해야 한다.

그 안에 깔린 것은 애민(愛民)의 마음이다.

백성을 사랑하기에 그들이 다른 이의 포악질로 상처 입길 원하지 않았다.

백 명의 무고한 백성을 구할 수 있다면, 한 명의 범죄자는 얼마든지 죽일 수 있는 사상.

설령 그 범죄자가 자신의 자식이라고 할지라도 법에 어긋났다면 벌을 내리는 것이 법가(法家)다.

물론, 원칙주의에 가까운 사상이니만큼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기에 진나라 이후론 외면 받았지만…….

그런 극단주의에 가까운 사상이 나오는 배경이 절로 이해될 정도로 참으로 역겨운 광경이다.

아마 그 시절엔 전국시대라는 이름 아래 이런 광경이 중원 곳곳에서 펼쳐졌겠지.

“무슨 생각을 그리 길게 해요?”

“……미안.”

너무 터무니없는 광경에 딴 곳으로 흐르던 생각이 서하영의 타박에 제자리로 돌아온다.

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직도 살짝 붉어진 얼굴로 서 있는 서하영.

철백은 무슨 죄라도 지은 것처럼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새끼들, 왜 이래?

[허허, 이래서 과거의 선인들이 남녀칠세부동석을 말했던 것이니라.]

할배는 왜 또 갑자기 꼰대 멘트야.

허허롭게 웃는 천마의 모습에 고개를 저은 설천위는 다시 마을의 광경을 관찰했다.

일단…….

“환술인가?”

“아마도.”

청유의 동의에 설천위는 다시 앞을 바라봤다.

환술이라.

……이런 걸 해제하는 방법은 따로 못 배웠는데.

그 술법을 어떻게 응용하면 가능하려나?

“으아아! 죽어어어!”

“하악! 좀만! 좀만 더!”

“사랑해요!”

……고민할 시간은 없는 것 같네.

일단, 가장 간단한 방법부터 시도해 보자.

“유 매.”

“네.”

“시선 좀 모아 줘.”

“예.”

어떤 의문도, 망설임도 없이 유예린은 손을 앞으로 모아 마주쳤다.

짝!

가볍게 마주친 거라곤 믿기 힘든 강렬한 소리가 마을 전체로 퍼져 나간다.

아무리 산의 초입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라고 할지라도 그 마을 전체에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유예린은 그 일을 너무나도 간단하게 해냈다.

‘……대단.’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청유는 속으로 작게 감탄했다.

자신이 다니고 있는 수령원에도 괴물 같은 자들은 있지만, 이들 역시 그들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천재.

보통 이 한마디로 표현되는, 말도 안 되는 성장 속도를 가진 괴물들.

단순히 강하거나 뛰어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나이에 비해 말도 안 되는 능력을 가진 이들.

남들은 수십 년을 갈고닦아도 오르기 힘든 경지를 십 대의 나이에 이미 올라선 이들.

‘그리고…….’

청유의 시선이 담담히 서 있는 설천위에게로 향했다.

자신은 무공을 익히지 않아 저 사람이 얼마나 강한지 모른다.

무공에 한해서는.

그러나 영적인 부분 즉, 술사로서의 역량이라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괴물.’

데리고 다니는 식령이 둘.

그중 하나는 최소 중급 이상으로 분류되는 이성을 가진 인간형 악귀.

거기에 그의 주위를 떠다니는 혼들은 딱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힘을 가지고 있었다.

만귀단에서 침을 질질 흘릴 만한 인재란 소리겠지.

그런데.

‘술법도 강하면?’

식령을 다루는 것이 아닌 술법이 주력이라면?

대체 어떤 괴물인 걸까.

식령들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무언가 술법을 발동시킬 거라는 의미.

청유의 시선이 침착하게 설천위를 응시한 그 순간.

바람이 불었다.

아니, 바람이 불었다고 느꼈다.

공기가 요동치고, 그런 공기가 전신을 훑고 지나갔으니까.

왜?

“……말도 안 돼!”

조금 늦게, 설천위가 무엇을 했는지 깨달은 청유는 오랜만에 제대로 된 문장을 말했다.

평소 말을 굳이 길게 하지 않고 단어로만 말하는 이유는 길게 말하는 게 쓸모가 없다고 여겨서다.

한다면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엔 도저히 단어만으로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다.

[끼잉 끼잉.]

겁먹은 백랑이 낑낑거리며 그녀에게 달라붙는다.

환수의 일종인 백랑이 더 민감하게 체감한 것이다.

전신을 훑고 지나가는 이 말도 안 되는 힘을.

“아! 저 사람 좀 세게 넘어졌는데요?”

“……뭐, 설마 죽기야 하겠어?”

“일단 눈에 보이는 애들은 다 잡았다.”

“오케이.”

그리고 그런 말도 안 되는 힘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움직이고 있는 이들의 모습에 청유는 더욱 경악했다.

아니, 아무리 영감(靈感)이 없어도 이건 느낄 수 있을 텐데?

전신을 짓누르는 이 경악스러운 힘은?

“아, 미안. 너도 범위에 들어갔구나.”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청유의 모습에 설천위는 아차, 싶어 힘을 거뒀다.

혹시 몰라서 살짝 겁만 준다고 범위에 넣었는데, 너무 힘을 많이 준 모양이네.

“일단 딱히 생명에 지장은 없거든?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다, 당신.”

가볍게 웃으며 손을 휘젓는 설천위의 모습에 청유가 떨리는 입을 힘겹게 열었지만, 뒷말을 이어 갈 수 없었다.

“오, 왔나 본데?”

설천위가 뿜어내고 있는 힘을 어떤 존재가 밀어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설천위에게 잔뜩 신경이 쏠렸던 청유조차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는 끔찍한 존재감.

“으음?”

그 기괴한 존재감에 기절해 있던 청백도 고개를 들었다.

끼릭 끼릭.

녹슨 경첩이 내는 것 같은 기분 나쁜 소리가 울려 퍼진다.

마을 사람들 전부가 기절한 마을. 설천위 일행을 제외하면 아무도 서 있어선 안 되는 마을의 대로 한복판을 그 존재가 걷고 있었다.

끼릭.

넝마나 다름없는 거적때기를 입고.

끼릭.

팔다리의 관절은 기묘하게도 각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끼릭.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것과 너무도 닮은 신체는 그 질감마저 인간과 비슷해 보였다.

그 기묘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서하영은 미간을 찡그리고.

“흡!”

철백이 땅을 박찼다.

한 번.

한 번 정도라면 어떤 공격이든 받아 낼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

결코, 일격엔 죽지 않는다는 확신을 품은 돌진.

그 돌진을 설천위는 말리지 않았다.

정말 일격도 못 버틸 존재라고 느꼈다면 철백이 저렇게 달려갔을 리도 없을뿐더러…….

쓰윽.

서하영이 저렇게 창을 쥐고만 있지도 않았을 테니까.

철백과 서하영을 믿기에 설천위는 그저 담담한 눈으로 상대의 반응을 지켜봤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 존재의 앞에 선 철백의 주먹이 공간을 찢어발길 기세로 앞으로 뻗어 나간다.

압도적인 근력이 만들어 내는 힘이 공기조차 찢어발기며 상대를 향해 파고든다.

그리고 닿는다.

강렬한 충격에 그 고개가 뒤로 젖혀지고, 거적때기가 벗겨진다.

호쾌하게 명중한 일격.

……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허허, 과연 겁쟁이지만 강자라는 녀석이구나. 까다로운 놈한테 걸렸어.]

[전투 자체에 능숙하군.]

천마와 현태중의 평에 반응할 새도 없이 설천위는 땅을 박찼다.

소리.

소리가 없었다.

철백의 주먹이 만들어 내는 풍압에 거적때기가 벗겨지긴 했지만, 주먹에 직접 닿아 만들어질 강렬한 타격음이 없었다.

즉, 철백의 공격을 완벽하게 읽고 피해 냈다는 소리다.

“끄으읍!!”

땅을 박차고 달리는 설천위의 귀로 철백의 이를 악무는 소리가 들려온다.

수많은 공격을 당해도 버티는 데 이미 이골이 난 철백이 작은 신음이라도 흘리는 경우는 사실 별로 없다.

“철가가!”

설천위만큼이나 빠르게 땅을 박찬 서하영의 창이 철백의 복부를 꿰뚫어 버린 무언가를 단숨에 잘라 낸다.

그 바로 직후에 도착한 설천위는 망설임 없이 철백의 뒷덜미를 잡아 뒤로 던졌다.

“치료부터!”

“네!”

그리고 그런 철백을 받아 든 주현운이 재빠르게 응급처치를 하는 모습을 확인한 설천위는 어느새 서하영의 상대가 된 녀석을 바라봤다.

거적때기가 벗겨지며 드러난 얼굴은 실로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철과 나무로 만들어진 가면 위로 인간의 살점과 피부가 어설프게 붙어 있다.

마치 잡아 뜯어 붙인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살점에서는 피가 흘러내린다.

“흡!”

한데, 그런 어설픈 생김새와 별개로 그 움직임은 기괴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강렬했다.

창을 쥔 순간부터 웬만한 고수의 뺨을 후려갈길 수 있는 실력의 소유자인 서하영이 서서히 밀리고 있었으니까.

엄청난 속도로 쏟아지는 송곳 세례.

거적때기에 가려진 몸에서 철인지 나무인지 모를 송곳이 미친 듯이 서하영을 노리고 파고들고 있었다.

정작 인간의 팔다리로 보이는 부분은 전혀 움직이지도 않고 있었다.

“괴물이군요.”

적의 상태를 관찰하던 설천위는 옆에서 들린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일이 상당히 귀찮아진 것 같네.”

“힘든 의뢰라는 것이 다 그런 거죠.”

“청아.”

“네!”

“쟤가 그 괴(乖)라는 놈이야?”

“네! 맞는 것 같아요!”

자신의 뒤에 딱 달라붙은 청아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어느새 크기를 키워 자신의 다리 곁에 선 청랑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쟤만 잡으면 삼 할은 정리된다는 소리네?”

“……그 이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 정도예요.”

“그건 다행이군.”

그럼 나머지는 정리하는 데 그리 고생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청랑을 쓰다듬던 손을 거둔 설천위는 천천히 도(刀)를 뽑았다.

그리고.

[크르르르르르.]

“히익?!”

설천위의 어깨 위에서 들려오는 나지막한 울음소리에 그의 뒤에 달라붙어 있던 청아가 화들짝 놀랐다.

‘그, 그때 봤던!’

설천위와 두 눈을 마주했을 때 그 내면에서 봤던 존재.

설천위의 밑으로 들어가고, 그의 심상 세계로 들어가서 인사할 때도 못 봐서 착각인가 했었는데…….

[패룡지체(覇龍之體)]

[패룡지기(覇龍之氣)]

[패룡지심(覇龍之心)]

패융을 불러내는 것과 함께 모든 스킬을 발동시킨 설천위는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런 설천위를 괴가 바라본 일순간의 틈을 타 몸을 빼는 서하영.

그녀를 뒤로한 채 괴의 앞에 선 설천위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우리, 이야기를 좀 해 볼까?”

* * *

“괴물 같은 놈이 하나 있었군.”

“설마 괴(乖)와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이가 올 거라곤 생각도 못 했습니다.”

부하의 대답에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래를 바라봤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절벽.

일반인이라면 눈으로 보기도 힘든 이 거리는 사내에게도 상당한 장애물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세히 파악하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겠지.”

굳이 죽을 놈의 정보를 더 알아낸다고 한들 별 도움은 안 될 테니까.

“괴(乖)의 폭주는 성공한 것을 확인했으니 나머지 놈들은?”

“두 녀석 다 움직이고 있는 중입니다.”

“흠. 괴(乖), 저놈이 원래 신중하긴 했지만 그런 녀석을 더더욱 신중하게 만든 괴물들이다. 취급에 각별히 주의하도록.”

“예!”

원래 저 셋에게 다른 잡스러운 악귀를 먹이고 셋 중에 둘 정도만 남겨서 데리고 갈 생각이었는데…….

‘잘하면 셋이 하나가 된 걸 볼 수도 있겠어.’

예상치 못한 변수를 활용한 계획에 사내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여태껏 본 적 없는 최악을 칭할 후보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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