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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101화 (101/624)

제101화

100화-그건 그쪽 사정이고 (7)

[왕!]

거의 선풍기가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맹렬하게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

보통 사람이 보면 일반적인 강아지로 보이겠지만, 내 눈엔 아니었다.

개를 유심히 바라보던 설천위는 앞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처음. 개, 식령(式靈).”

“아, 미안한데 얘는 개 아니야. 사람이랑 오래 지내서 개처럼 보이는 것뿐이지.”

손을 저으며 청랑을 바닥에 내려놓은 설천위는 어느새 청랑과 얼굴을 마주하고 헉헉거리는 개를 바라봤다.

느껴지는 기운이 상당한 것이 나름 전력이 되겠는데?

뭐, 술사가 어떠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허, 무림학관에도 그런 종류의 의뢰가 들어오는 것입니까?”

믿기 힘들다는 듯 눈을 크게 뜨는 청백의 모습에 설천위는 가볍게 혀를 찼다.

믿기 힘들다는 태도에는 무림학관이 이런 일에 무슨 도움이 되겠냐는 의문이 깔려 있었다.

본인은 자각하고 있는 게 아닐지라도.

뭐, 그런 태도에 흔들릴 만한 사람은 이곳에 없으니 끝까지 모르겠지.

별 능력도 없는 녀석이 쓸데없이 자부심만 강하면 빨리 죽는 법인데 말이야.

청백에게서 관심을 끊은 설천위는 어느새 청랑이랑 뒤엉켜 장난을 치고 있는 강아지를 바라봤다.

“귀, 귀여워!”

“응!”

난리가 난 서하영과 소윤혜가 소란을 피웠지만, 무시했다.

귀여운 건 사실이었으니까.

“싸울 때가 되면 변하는 종류인가?”

“변신.”

“맞나 보네.”

그런데 쟤는 왜 단어로만 말하냐.

대충 알아들을 순 있으니 상관없지만.

“나, 궁금.”

“뭐가?”

“대체, 식령(式靈), 몇 마리?”

식령(式靈).

분명 권속을 말하는 거였지?

법(式)으로 옭아맨 영혼.

내가 데리고 있는 혼의 개수를 읽어 낸 건가?

저기서 떠들고 있는 사형이라는 놈보다 몇 배는 뛰어난 것 같은데.

“안 가르쳐 줄 건데. 원래 전력은 숨기는 거야.”

“확인.”

거, 말투 독특하네.

당화유를 연상시키는 기묘함이다.

뭐, 당화유는 그래도 말은 똑바로 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 어투에서 느껴지는 것이 비슷했다.

“……그러고 보니 뭐 하고 있나 궁금하네.”

“뭐가요?”

“당화유.”

“당 소저요?”

“어, 잘 따돌린 것 같긴 한데…….”

당씨를 가진 인간들이 워낙 독해야지.

당화유가 따라간다고 나서기 전에 빠져나오느라 고생 좀 했지.

남궁선과의 수련 덕에 뭔가 발전이 있는지 달라붙는 횟수가 줄어서 생각보다 쉽게 떼어 놓고 오긴 했지만.

“흐음……?”

“뭐?”

“지금 약혼녀가 다른 남자를 상대하고 있는데, 딴 여자 생각이나 하고 있는 건가요?”

“누가 들으면 오해할 여지가 충분한 발언이다?”

서하영을 향해 눈을 부라리고 있으니 저쪽에서 이쪽을 흘겨보는 유예린의 시선이 느껴졌다.

오는 길에 악귀 하나를 쫓아 정리하고 이 마을에 도착했다고 자랑하던 청백도 그제야 상황을 인지하곤 헛기침을 했다.

“험험, 그럼 저희는 이만 휴식을 취해야겠습니다.”

뒤늦게 눈치를 찾고 객잔 주인에게 걸어가는 청백.

“바, 방이 없습니까?”

“예, 저분들께서 전부 잡으셔서…….”

그러고 보니 이 객잔, 방이 여섯 개뿐이었지.

시골 객잔이 뭐 그렇지.

두 개는 장기 투숙객이 묵고 있었고, 나머지 네 개는 우리가 나눠 가졌다.

철백이랑 주현운.

서하영이랑 소윤혜.

나 그리고 유예린.

아무리 약혼자라지만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같은 방에서 잘 순 없…….

“그거라면 괜찮아요. 방 하나를 넘겨드리겠습니다.”

“예? 그러면…….”

“저랑 설 공자가 같은 방에서 자면 되니 괜찮아요. 애초에 2인실이니까요.”

어머? 얘가 뭐래니?

너무나 자연스러운 배려에 설천위가 멍하니 바라보는 사이.

“하하! 그러면 저희야 감사하죠!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저 눈치 없는 새끼.

넙죽 제안을 받아들이는 청백의 모습에 설천위는 미간을 찡그렸지만 입을 열진 않았다.

지금 반대하는 건 여러모로 위험하니까.

‘어머? 설 공자와 제가 함께 자는 게 왜 위험한 건가요?’

‘위험한 일이라도 하시려는 건가요?’

……반대했을 때의 반응이 예상돼 하기가 싫다.

묘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놀리는 유예린의 모습이 너무도 선명하게 떠올라서 싫다.

뭐, 저쪽도 남녀 혼성이니까 적당히 시간이 지나면 남자 여자 나눠서 자겠…….

* * *

“어머, 벌써 씻고 오셨나요?”

“……어.”

냉수마찰 싹 하고 왔지.

먼저 씻고 침대에 앉아 있던 유예린이 빙긋 웃는다.

얘는 화장을 지워도 예쁘네.

애초에 평소에도 화장을 거의 안 하거나 정말 약하게 하는 수준이긴 하지만.

여성 무인들은 대체로 피부 관리에 신경 써서 피부가 좋은 편인 건 알았지만, 진짜 무슨 백옥 같네.

하긴, 남자들도 경지에 오르면 피부가 아기 피부가 되는데 여자라고 다를까.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아니, 그냥 예뻐서.”

“…….”

솔직한 답변.

기묘한 침묵.

‘후후후, 고마워요.’

라는 답을 기대했던 설천위는 기묘한 침묵 속에서 유예린을 바라봤다.

붉게 변하기 시작한 볼.

미묘하게 바닥을 향하는 눈동자.

몸의 전면을 볼 수 없도록 살짝 틀어진 상체.

[허어, 마음의 준비가 전부 끝났…….]

‘닥쳐.’

주책을 떠는 할배들의 혼을 강제로 집어넣은 설천위는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자신의 침대에 자리를 잡았다.

“그럼, 난 이만 잘게.”

“……네. 주무세요.”

“그럼 잘 자.”

[내 꿈 꿔, 한마디 정도는 괜찮지 않으냐!]

그게 언제 적 멘트야.

아니지, 여기에선 미래에서나 나올 혁신적인 멘트인가?

천마의 주책에 순간 혼란이 찾아온 설천위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아니, 애초에 그런 멘트를 칠 이유 자체가 없잖아.

이불을 덮고 눕는 설천위.

그리고…….

“……바보가.”

옆에서 들려오는 작은 중얼거림에 설천위는 두 눈을 감고 집중했다.

소수, 소수를 세자.

소수는 1과 자기 자신으로만 나누어지는 고독한 숫자.

내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

아니, 1과 자기 자신으로 나누어지면 1이라는 친구가 있는 거잖아?

딱히 안 고독한 것 같기도…….

자꾸 이상한 곳으로 흘러가는 생각에 설천위가 두 눈을 감는 그 순간.

푹신.

무언가 행복한 감촉이 설천위의 의식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위로 끌어올렸다.

뭘까, 이 푹신한, 닿는 것만으로 푹 빠져드는 것 같은 감촉은.

팔에서 느껴지는데, 이거…….

손발이 덜덜 떨리고, 긴장감에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힘든 그 순간.

수련으로 단련된 날카로운 감각이 이상한 점 하나를 포착했다.

‘……생각보다 더 큰데?’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 추측했던 것보다 더 크다.

왜?

아, 무인이니까 움직임에 방해가 안 되도록 꽉 묶어서 그런 건가?

나름대로 합리적인 추측을 해 나가던 그 순간.

“자꾸 무슨 헛생각을 하는 거예요?”

“응?”

예상치 못한 목소리에 설천위는 슬며시 눈을 떴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들어 아래를 보니 자신의 팔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청아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저쪽 침대에서 이리로 걸어오는 기척을 못 느꼈네?

순간 허탈해진 설천위의 시선이 천장으로 향하는 그 순간.

스윽.

거기에 목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감촉.

“역시 한방을 쓰길 잘했네요.”

지금 당장에라도 경동맥을 끊어 버릴 것 같은 위치에 자리 잡은 비수에 설천위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아, 못 느끼는 게 당연하구나.

얘는 은신의 달인이지.

진실을 알게 되어 조금 편안해진 설천위는 이내 목에서 느껴지는 저릿한 감각에 현실로 돌아왔다.

이대로 가면 베인다.

그 사실을 자각한 설천위는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이, 이건 아닌데? 난 억울한데?”

“변명은 저세상에서 듣겠어요.”

“응?”

“천위를 죽이고, 저도 죽겠어요.”

“아니! 미친 소리 하지 말고!”

얘가 왜 이래?

원래 이렇게 막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타입 아니잖아, 너!

“지, 진정하고 일단 멈춰 봐!”

“하지만, 하지만……!”

눈물을 글썽이며 비수를 움켜쥐는 것이 느껴진다.

죽이고 죽겠다고 말은 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어 손발이 떨리는 게 느껴지는 상황.

“음, 역시나네요.”

그 순간, 설천위에게서 떨어진 청아가 한심하단 눈빛으로 설천위를 바라봤다.

“역시 주인님도 수컷이군요.”

“뭐?!”

지금 필사적으로 참고 있구먼, 뭐가 뭐?!

청아의 짜게 식은 눈동자에 설천위가 억울함을 담아 소리쳤지만…….

“그만.”

“아, 예.”

목에서 느껴지는 서늘함에 바로 쭈그러들었다.

다만, 유예린의 시선이 향한 방향이 설천위에게서 청아로 바뀌었는데 그 눈빛이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저 암고양이는 이 일이 끝난 다음에…….”

날카로운 유예린의 눈빛에 긴장할 법도 하건만, 청아는 그런 유예린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주인님, 정신 차려요. 슬슬 눈치채실 때가 된 것 같은데요.”

“응?”

진짜 한심하기 그지없다는 그 눈빛에 설천위는 그제야 이상함을 감지했다.

그러고 보니, 다른 할배들이 이상하게 조용하네?

이런 상황이면 재미있다고 난리가 났어야 했는데.

이상함을 자각하자, 감각이 살아나는 건 순식간이었다.

“이런 미친…….”

유예린과 한방에 있다는 긴장감.

……인정하기 싫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흐려진 판단력.

그것들의 종합으로 설천위의 눈과 감각이 완전히 흐려져 있었다.

“이런 개 같은……!”

분노가 끓어오른다.

두 눈에 선명하게 스며든 분노와 함께 설천위는 유예린의 손을 붙잡았다.

순간적인 행동에 유예린의 볼이 붉어지는 순간.

화악.

설천위의 영력과 패기가 단숨에 유예린을 훑고 지나갔다.

그녀의 몸에 깃든 부정을 단숨에 찢어발겨 거둬 내는 힘.

“……에?”

“이성을 흐리는 종류의 힘일 거예요.”

친절한 청아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어느새 눈동자에 빛이 돌아오기 시작한 유예린을 바라봤다.

“아, 참고로 제가 주인님 곁에 누워서 달라붙은 건 약혼자분께서 덮칠 생각이 가득한 얼굴로 걸어와서…….”

“꺄악!”

순식간에 청아의 뒤로 돌아가 그녀의 입을 막은 유예린이었지만, 이미 늦었다.

“저, 저는 딱히 아무것도…….”

“괜찮아. 일단 진정하고 옷부터 제대로 입어.”

설천위의 말에 그제야 자신의 옷 상태를 확인한 유예린은 붉게 변한 얼굴로 재빨리 자신의 짐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하얀 경장은 잠을 잘 때 입는지라 얇아서 속살이 살짝살짝 비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유예린의 모습에도 관심이 없는 듯 주변을 살피는 설천위.

“……눈깔 돌아가는 게 다 보이네요.”

“아, 아닌데?”

관심이 없는 척을 하던 설천위의 모습에 혀를 찬 청아는 어느새 환복을 마친 유예린의 모습에 감탄했다.

사람이 어찌 저렇게 옷을 빨리 갈아입을 수 있지?

“공자, 일단 다른 사람들의 상태부터 살펴야 할 것 같아요.”

“어, 그래야지.”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가 밖으로 나가는 것과 동시에 옆방의 문이 부서졌다.

“으아아아아아!!”

“내가! 내가 무슨 짓을!!”

방에서 뛰어나와 달리는 철백, 그 안에서 절망하는 주현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상상하고 싶지 않은데.

“아무래도 주인님이 내뿜은 기운에 제정신을 차린 것 같은데요?”

“어, 그래 보이네.”

청아의 판단에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기감을 펼쳐 주위를 살폈다.

일단, 서하영과 소윤혜.

“저 둘은 괜찮은 것 같네.”

둘 다 얼굴이 한껏 붉어진 채 등을 맞대고 있는 걸 보니 저쪽도 아마 비슷한 것 같다.

방금 자신이 뿜어낸 기세에 제정신을 차린 거겠지.

그리고.

“……걔 살아는 있냐?”

“……아마도.”

방 밖으로 나온 청유를 바라보던 설천위는 그녀의 허리를 넘길 정도로 크기가 불어난 개를 보며 혀를 찼다.

진짜 엄청나게 크네.

그 입에 걸레짝이 된 청백이 물려 있다는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저 인간은 술사인 주제에 이런 약한 환술에 휘말린 건가요?”

“사형, 한 분야, 잘함.”

아, 반쪽짜리라고?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이성을 되찾기 시작한 일행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개판이구나.”

인간의 추잡한 욕망이 마을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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