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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95화 (95/624)

제95화

94화-그건 그쪽 사정이고 (1)

“흠…….”

의뢰 내용이 적힌 종이를 읽으며 팽후는 가볍게 책상을 두드렸다.

대체 왜?

“백화단주가 욕심이 있나?”

듣자 하니 상당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던데.

얼마나 뛰어난 재능이기에 백화단주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호감을 표하는지 궁금할 정도다.

“화린 언니가 물어보긴 하더라고요.”

“음? 그랬나?”

“네.”

같은 무림맹의 구단을 맡은 단주로서 성화린과 남궁선은 꽤나 교류가 있는 편이다.

서로 분야가 완전히 달라서 경쟁 상대가 아닌 덕에 더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성격도 꽤 잘 맞는 편이고.

“뭐 무림학관에 있는 것 자체가 낭비라고 계속 아쉬워하던데요?”

“그건 참……. 뭐라 말할 수 없군.”

설천위의 무재(武才)가 처참하다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설천위가 어떤 방식으로 강해지고 있는지 이미 대충 전해 들은 팽후는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스스로 길을 정하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활용해 나아가고 있으니 나는 지금 가는 길을 더 응원하고 싶군.”

“그건 저도 동감이네요.”

팽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남궁선은 탁자 위에 놓인 종이를 바라봤다.

팽후가 들고 있던 것과 똑같은 내용이 적힌 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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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귀 퇴치 의뢰

최소 중급으로 예상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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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적혀 있는 자세한 내용은 솔직히 봐도 잘 모르겠다.

그녀가 대충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건 가장 위의 저 두 문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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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악령이 있을 확률이 구 할이 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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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마지막 주의 사항뿐이다.

일단, 위험해 보이는 건 확실하네.

“그나저나 응원한다면서 왜 안 말렸어요?”

“음.”

“무학을 갈고닦을 거라면 지금은 훈련에 집중하는 게 맞을 텐데요.”

방학 기간이라곤 하지만 그렇기에 온전히 개인 수련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다.

이런 시기에 외부로 의뢰를 나가는 건 학점을 따기엔 좋지만, 설천위는 지금 학점이 중요한 단계가 아니다.

한창 갈고닦아야 할 시기.

남궁선의 당연한 의문에 팽후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라면 보내지 않았을 걸세.”

“그럼 왜?”

“나는 내 두 눈으로 직접 봤거든.”

솔직히 말해서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공간을 장악하는 압도적인 존재감.

보는 자신조차 등줄기가 저릿저릿하게 당겨 오는 압박감.

사적귀검(斜跡鬼劍)이라 불렸던, 자신의 검을 완성해 가던 초인조차 짓밟았던 힘.

그것이 설천위의 재능이라면.

‘……백화단주의 말이 맞을 수도 있겠지.’

설천위를 위해서도, 이 무림을 위해서도.

교육자로서 그런 올바른 길이 있다면, 그 방향으로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맞겠지.

하지만, 그 잊을 수 없는 광경이 끝난 뒤에 어떤 변화가 왔는지 또한 팽후는 알고 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검이었지.”

“예?”

돌은 건가?

그런 남궁선의 시선을 무시하며, 팽후는 무룡투쟁에서 보았던 일격을 떠올렸다.

강해진다는 결과가 따라온다면, 그 재능을 활용할 기회는 최대한 많을수록 좋겠지.

과연 이번에는 무엇을 얻어 올까?

기대를 품은 팽후의 시선이 창밖을 향했다.

이미 학관을 나가 임무지로 향하고 있을 설천위의 뒷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 * *

“영역(靈域)이요?”

“응, 거기서 단련할 거야.”

“하지만 전 영적인 재능이 딱히 없는데요?”

“사람마다 다 재능은 있어. 그 재능을 펼칠 환경이 되지 않은 것뿐이지.”

무엇보다 심신을 단련하는 형태의 무공을 익힌 무인 대부분은 후천적으로 그 조건을 충족한다.

영력 개화의 조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영역에서 버틸 수 있는 정신력이니까.

버티면서 구르고 구르면서 영력에 익숙해지면 어떻게든 개안할 수 있는 게 영안이다.

물론.

“재능에 따라 볼 수 있는 선명도가 다르긴 하겠지만.”

철백과 서하영은 꾸준히 영력을 연마해 이젠 상당한 수준까지 볼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다.

물론 그래도 진짜 잡스러운 혼령은 제대로 보지 못하지만.

뭐, 그쪽은 진짜배기 제령사들의 영역이니 굳이 닿을 필요는 없다.

“정말 가능한 거죠?”

“어. 가능하지.”

할아버지를 만나 직접 대화를 할 수 있다.

그 한마디에 무작정 따라나선 소윤혜의 질문에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크흑, 혜야!]

주책 맞은 할아버지의 모습은 보여 주기 썩 좋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렇다면 저도 가능할까요?”

기대감으로 반짝이는 눈.

자신이 배운 검법을 현태중에게 직접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주현운은 두근거림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넌 전혀 걱정할 필요 없으니까 신경 쓰지 마라.”

아마 들어가서 한 시간 정도면 개안할지도 모르니까.

괜히 치트캐가 아니지.

영적인 존재와의 싸움이 강제되는 육도의 특성상 주현운은 영적인 재능도 상당한 수준이다.

그쪽으로 나아가도 웬만한 테크 트리는 전부 대성할 수 있는 수준으로.

더러운 치트캐.

속으로 가볍게 혀를 차며 설천위는 창밖을 바라봤다.

이번에는 무려 여섯 명이나 움직이다 보니 마차를 하나 대여했다.

뭐, 사실 대여라기보다는 유예린이 그냥 가져온 거지만.

과연 이 여섯 중 최고의 갑부라고 해야 하나.

마차 타고 가는 게 좋지 않느냐면서 쓱 가져온 마차가 아주 고급이라 모두 말없이 올라탔지.

“그런데…… 정말 저희 전부를 데려가도 되겠어요?”

설천위가 유예린의 재력에 한 번 더 감탄하는 사이, 유예린이 입을 열었다.

전장에 나가는 것이라면 자신이 있었지만, 도움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곳에 따라가는 것.

이런 행동은 유예린이 정말로 싫어하는 일 중 하나다.

그것을 자신이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설천위가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마음이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유예린의 말에 동의하는 소윤혜와 주현운도 고개를 끄덕이자 앉아 있던 서하영이 방긋 웃었다.

“쓸데없는 걱정들이시군요!”

당당한 목소리.

“설 소협은 영적인 분야에 있어서 정말 강하거든요! 화경급 고수의 혼조차 상대가 안 될 만큼!”

직접 본 건 아니지만요.

작게 덧붙이듯 중얼거린 서하영은 피식 웃고 있는 설천위를 바라봤다.

“상대가 무인이 아니라 사자(死者)라면, 설 소협의 힘은 충분히 믿을 만해요!”

“산 사람을 상대로도 나름 믿을 만하거든?”

“에이, 그래도 유 언니 정도는 아니잖아요.”

나름 친해졌다고 아주 언니 동생 하는구나.

한 살밖에 차이도 안 나면서.

[버르장머리 없는 건 네놈이다. 이 위아래도 없는 놈.]

눈을 부라리는 소백진의 경고를 대충 무시하며 설천위는 고개를 돌렸다.

이제 와서 소윤혜한테 존댓말을 하는 것도 어색하잖아?

일단 유예린보다도 한 살 많고.

만났을 때 18살이었으니 이제 19살이잖아.

저런 꼬맹이가 두 살 연상이라니, 나는 인정할 수 없다.

누가 봐도 중딩 정도구먼.

무엇보다 실제 나이로 따지면 19살이어도 꼬맹이니까 문제없다고.

귀여움이 넘치는 소윤혜의 외관에 다시금 흔들리는 정체성을 바로잡으며 설천위는 입을 열었다.

“그럼 일단, 가는 길에 주의 사항부터 전달해 줄까?”

* * *

후백산(厚柏山).

산서성의 남쪽에 위치한 산으로, 거대한 잣나무가 많은 산이다.

그 산세는 악(岳)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험하진 않지만, 일반인들이 손쉽게 오르긴 힘들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약초꾼과 사냥꾼이 자주 드나드는 산이 되어 그 주변으로 나름 마을들이 형성된 산인데…….

“암울하군요.”

곳곳에서 풍겨 오는 음울한 분위기에 유예린은 안타까움을 삼켰다.

누군가를 잃은 슬픔이 이 작은 마을 곳곳에서 흘러넘친다.

“슬프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자진해서 길 안내를 맡은 촌장의 목소리에 설천위는 입을 다문 채 주위를 둘러봤다.

괴이가 실존하는 이곳에서 악귀는 그야말로 공포의 상징 그 자체다.

사람의 혼을 빼 가는 건 점잖은 놈이고, 통째로 납치해 육신까지 뜯어먹는 놈들도 있다.

또한 정말 본능에만 휩쓸려 무차별적으로 살육을 반복하는 놈들도 있고.

그런데, 이 나라는 참으로 골 때리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멀리하라.

학문을 갈고닦으며 나랏일에 힘쓰는 양반들은 저 말을 가슴에 품고 산다.

당연히 일반 민초들이 겪는 괴력난신에는 관심도 없다.

물론 그 와중에 자기네들 집안에 들이닥치는 우환에는 도사들을 거리낌 없이 불러 대지만.

여하튼, 그렇기에 이런 괴이에 대항하는 이들이 가장 흔히 선택하는 방법이 무림맹이다.

괴이를 전문으로 상대하는 두 개의 단.

그 이름이 워낙 높으니 무당 같은 정통 도문에 인맥이 있는 게 아니라면 대체로 이쪽으로 의뢰가 들어온다.

“이삼 일에 한 명씩 계속해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됐죠?”

“벌써 육 개월이 넘었습니다.”

[오래 진행됐군.]

악귀 놈이 배를 따뜻하게 두드리며 몇 번이나 잤을까.

그렇게 쌓은 힘은 얼마나 강할까.

경계의 수준을 높이며 설천위는 촌장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다.

의심 가는 사람은 없는지.

뭔가 또 다른 문제는 없는지.

이 마을 근처에 전해지는 전설은 무엇이 있는지 등등.

수많은 질문을 던지며 답을 받아 낸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감은 오네.’

게임에선 이 시기에 영적인 의뢰가 없었기에 조금 긴가민가했지만 나쁘지 않다.

‘환귀(幻鬼)겠지.’

게임에서 등장했던, 기묘하게 흔들리던 악귀를 떠올린 설천위는 차분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상황은 오히려 좋다.

게임 속 환귀는 완전히 성장을 끝마친 상태였고, 그 결과 악귀로서 상당한 수준에까지 올라선 상태였으니까.

만약 이런 상태가 반복되다가 성장을 마치는 거라면, 아직 덜 성장한 지금이 잡기에 오히려 적기다.

키울 만큼 키워서 잡아야 좋은 건 게임 속 이야기고, 지금은 하루라도 빨리 정리하는 게 최선이니까.

‘……후.’

“공자?”

“아, 별거 아니야.”

……그래, 게임이 아니지.

귀신같이 자신의 머뭇거림을 눈치챈 유예린에게 대충 손을 내저은 설천위의 시선이 어두운 건물 사이를 향했다.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소년.

그 소년이 기대고 있는 벽은 허름한 집이었는데, 그 안에는 넋이 나간 여인이 멍하니 앉아 있었다.

어머니인가?

그런 의문도 잠시.

“아빠…….”

먹힌 건 아빠 쪽인가.

남편을 잃었으니 넋이 나갈 만도 하군.

하지만 뭔가 묘하다.

뭐가 묘한 거지?

의문도 잠시,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키려던 설천위는 미간을 찡그렸다.

침이 쓰다.

침을 목으로 넘기는 것조차 힘겨울 정도로.

“후.”

작게 호흡을 고른 설천위는 다시 앞을 바라봤다.

뭐가 됐든, 일단 조금 더 둘러본 뒤에 짐을 풀 곳을 찾…….

“모여!”

갑자기 버럭 외친 설천위의 목소리에 순간적으로 당황했던 일행은 이내 단숨에 그의 곁으로 모였다.

거의 서로의 숨결이 닿기 직전까지 달라붙는 밀착.

“천위, 이건?”

설천위 다음으로 영력을 느끼는 능력이 좋은 철백이 미간을 찡그렸다.

그리고 그런 철백의 의문에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크으으으으.]

괴로움으로 겨우 흘려 내는 신음 소리.

공기 속에 짙게 배어든 기분 나쁜 악취.

“영역(靈域)이다.”

설천위의 대답과 함께, 공포가 마을 전체를 잠식했다.

“제발! 제발! 저희만은!”

“제발 저만은! 저만은 아니게 해 주십시오!”

간절히 하늘에 비는 이들.

그들 모두는 어른이었다.

아이들은 오히려 울거나 울음을 참기 위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이해하기 힘든 상황.

그 상황에 일행 모두가 미간을 찡그린 그 순간.

[그으어어어.]

“히이익?!”

“서, 서 씨가!”

누군가가 기괴하게 몸을 비틀자 그 주변의 집에 살던 이들이 기겁을 하며 물러났다.

그리고 그 모습에 조금 전까지 넋이 나가 있던 여인의 모습이 뇌리를 스친다.

“이런 개……!”

상황을 인지한 설천위가 땅을 박차는 순간, 기괴하게 움직이던 사내 또한 몸을 날리고 있었다.

겁먹은 채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어린 딸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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