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화
91화-선발 (5)
소윤혜의 등장에 휴식을 취하던 모든 이들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궁금했다.
사실 여기서 소윤혜가 싸우는 걸 직접 본 사람은 설천위밖에 없다.
당연히 그 실력은 베일에 싸인 상태.
본인의 몸이 좋지 않아 정상적인 대련도 불가능하니, 어림짐작도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스스로 대련을 위해 비무대 위에 서다니.
그것도, 남궁선을 상대로.
“흥미롭군.”
“쾌속을 지향하는 도라고 들었는데, 어떨지 궁금하네요.”
모두가 기대감을 품고 한마디씩 던질 때, 소윤혜가 천천히 도를 뽑았다.
“한 수 배우겠습니다.”
“그래.”
피식 웃은 남궁선은 검을 늘어트린 채 소윤혜를 바라봤다.
“언제든지 시작해.”
“감사합니다.”
선수를 양보한다.
남궁선의 입장에서 동년배에게 이런 배려는 당연한 일이었다.
심지어 소윤혜는 자신보다 어리지 않은가.
하지만.
‘흥미로워.’
방심하진 않는다.
방심도 격의 차이에 맞춰서 하는 거다.
어색한 걸음걸이, 균형을 잘 잡지 못해 흔들리는 상체.
도저히 무공을 익힌 무인이 보일 자세는 아니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여태까지 대련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겠지.
솔직히 움직임의 상태만 보면 당연히 그래야 하고.
하지만.
‘다르단 말이지.’
눈빛이 다르다.
이 학관에서 굴러다니는 샌님들이랑.
무림맹에 들어와 현실을 깨닫고 절망하는 샌님들이랑.
눈빛 자체가 다르다.
고난 속에서 피어난 꽃.
절망 속에서 벼려 낸 검.
속에 무엇을 품고 있는지 너무도 궁금하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도를 쥔 손으로 상단세를 취한다.
검을 쥔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자세.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단숨에 무언가를 베어 내기 위한 초식에 많이 쓰이는 시작 자세.
굳이 초식이 아니더라도 힘을 강하게 주기 위한 공격에도 많이 쓰인다.
그런데, 이상하다.
모든 무공이 그렇듯, 저 자세도 하체의 단단함을 요구한다.
많은 이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검의 내려치기란 선 자리에서 하는 게 아니다.
반걸음, 혹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무게와 속도를 싣는 것이 기본이다.
주먹을 휘두를 때 허리를 비트는 것과 같다.
검의 무게와 속도에 내딛는 걸음이 중요하단 소리다.
그렇기에 하체가 부실한 사람은 상단세보다는 중단세나 하단세를 취하는 게 더 유리하다.
하체의 힘이 필요한 건 똑같지만, 허리의 힘을 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횡베기나 아래에서 올리는 사선베기는 허리를 비트는 것으로 힘과 속도를 더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왜?
그런 의문이 남궁선의 머릿속에 피어오른 순간.
소윤혜의 두 눈동자가 남궁선을 응시했다.
“하!”
감정이 담기지 않은, 평온하고도 잔잔한 눈동자.
자신을 앞에 두고도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그 눈동자에 남궁선은 헛웃음을 흘렸다.
‘내 눈도 많이 죽었군.’
저런 눈을 가진 녀석을 무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니.
망설이는 것 같기에 한 번 부추겼을 뿐이지만, 부추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저 도를 보지 못할 뻔했으니까.
호흡이 한두 번 흐르는 짧은 시간.
남궁선이 소윤혜라는 사람을 살피던 순간.
도가 떨어졌다.
정말, 아무런 기척도 없이.
위에서 아래로.
빠른가?
그렇지 않다.
속도를 중시하는 얇은 도를 쓰는 것치곤 그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강한가?
그렇지 않다.
사용하는 도의 형태만큼이나 그 일격에 강한 힘은 없었다.
무거운가?
그렇지 않다.
위와 마찬가지로.
그렇다면, 무엇이.
“하하!”
내 어깨를 베었는가?
왼쪽 어깨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통증에 남궁선은 웃었다.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막았다.
분명히.
아무리 기척 없이 떨어졌다고 하지만, 눈으로 보고 있는 상태였다.
반응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생각이 딴 곳에 가 있었다고는 해도 몸은 확실하게 움직여 막아 냈다.
그런데 베였다.
더욱이 웃긴 것은.
“따스하구나.”
어깨를 벤 상처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불자의 그것과 같았다.
자비(慈悲).
그 안에 깔린 것은 상대를 안쓰러워하는 마음.
그 고통에 마음 아파하며, 그 고통에서 구원해 주고자 하는 마음.
광기(狂氣)다.
그런 마음을 품으면, 베는 것이 아니라 제압하는 것을 택해야 하고.
구원하고자 한다면 마찬가지로 생을 도모하게 해 주어야 한다.
허나, 이 도(刀)에는 오로지 죽음만이 담겨 있다.
“처형인의 도구나.”
얼핏 들은 적이 있던, 전대 고수의 이야기.
전전대였나?
여하튼, 몰락한 처형인 가문의 출신으로 오로지 목만을 베어 적을 죽인 무인의 이야기.
베인 자는 자신의 죽음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죽는다.
한데, 베는 것은 오로지 목뿐.
자비로운 검을 가졌지만, 그 손속은 결코 자비롭지 않았고 수많은 이들의 목을 베었다.
그렇기에 붙은 별호, 참수사신(斬首死神).
“일단, 오늘은 합격이다.”
이건 예상치 못했던 변수다.
하지만, 동시에 기쁜 변수다.
“네 수업엔 따로 준비가 필요하니 다음 주에 시작하마.”
“……감사합니다.”
“내가 오기 전까지 등급을 올려놓도록.”
“예.”
남궁선이 그대로 훈련장을 떠나고, 소윤혜는 가만히 서서 자신의 도를 바라봤다.
‘……벴다.’
정말 살짝이긴 해도 베었다.
무림맹의 단주를.
마치 경련이라도 하는 것처럼 떨리는 손에 억지로 힘을 주어 멈추고자 했다.
하지만 쉽게 멈추지 않는 떨림.
그 떨림에 소윤혜의 심장도 함께 터질 듯 뛰는 그 순간.
“대단해!”
어느새 자신의 코앞에 도달한 주현운의 반짝임에 소윤혜는 어색하게 웃었다.
“누님, 진짜 대단해! 알고는 있었지만……!”
외견과 다른 자신의 나이를 알고도 가깝게 대해 주는 입관 동기.
그 반짝이는 눈에 소윤혜는 웃었다.
“응.”
성취감이 심장을 뜨겁게 채웠다.
* * *
“대충 이 정도인가?”
학관장실.
보고를 받은 서류를 살피며 팽후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눈여겨보던 아이 몇이 남궁선의 덕분에 훌륭하게 피어나고 있다.
특히.
“이 아이는 정말로 기대된단 말이지.”
소윤혜.
참수사신의 손녀이자, 그의 절학을 온전히 이어받은 전수자.
거기에 재능은 말할 것도 없다.
“참수(斬首)라…….”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사형수들.
그들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자비가 처형인의 검이다.
최대한 아프지 않게, 뼈와 근육을 단번에 잘라 내는 것.
그 하나에 매진한 일격에는 자비(慈悲)가 가득하니까.
“재능 하나는 확실하지.”
남궁선의 어깨를 베었다는 일격.
검기를 날린 거다.
물론 다리가 좋지 못하니 초절정이라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어느 정도 그에 가까운 경지에 이르렀다고 보는 게 맞다.
다리만 멀쩡했다면, 남궁선의 뒤를 잇는 괴물이 됐을 텐데.
히죽 웃은 팽후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바라봤다.
설천위와 함께하는 녀석들은 전부 최소 자격을 취득했다.
정(丁).
이 학관 내에서도 그리 많지 않은 등급인데, 그 등급의 상당수가 설천위의 곁에 있게 됐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재능인가, 아니면 인덕인가.”
그것도 두고 보면 알 일이겠지.
* * *
“아미타불…….”
어두운 동굴.
면벽 수련을 위해 만들어진 동굴 속에서 나지막한 불호가 흘러나왔다.
벽을 보고 자신의 행동을 참회하는 이 훈련은 보통 벌로 많이 쓰인다.
스스로 면벽을 하며 정신 수양을 할 정도의 의지와 뜻을 가진 자는 벽을 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으니까.
허나, 예외는 항상 있는 법.
“……아미타불.”
여기 있는 이 중이 그랬다.
스스로 참회를 위해 이곳에 들어올 수 있을 정도의 의지를 가졌지만…….
“아미타불…….”
벽을 보지 않으면 화를 쉽사리 누그러트릴 수 없는 불같은 성격도 함께 가지고 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스스로를 다그쳐도 변하지 않는다.
까득.
“……아미타불!”
순간 이곳에 들어오게 된 계기를 떠올린 중은 솟구치는 분노에 자신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고통스럽게 하는가.
무엇이 나를 이토록…….
번뇌와 분노로 흔들리는 눈동자.
허나, 습관처럼 외우기 시작한 구결이 그 화를 가라앉힌다.
불자가 된 자로서 부동심을 잃을 순 없는 노릇.
일단 이 화를 가라앉혀…….
“혜송!”
순간 집중에 빠져 있던 스님, 혜송은 미간을 찡그렸다.
분명 면벽 수련 중에는 찾지 않는 것이 기본인데?
기껏 가라앉혔던 화가 다시금 치밀어 오르려 한다.
잠시 고민한 혜송은 결국 몸을 돌렸다.
무례라는 것을 알고도 이리 찾아온 것을 보면 그만한 용무가 있을 터.
몸을 돌리니 함께 수학하는 친우가 빛을 등지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궁선 대협께서 찾으시네.”
“……창천검께서?”
왜?
이 학관의 선배이긴 하지만, 남궁세가의 사람 아닌가?
소림의 중인 자신을 이렇게 찾을 이유가 있나?
당연하게 피어오른 의문에 혜송이 미간을 찡그리자, 친우는 웃으며 등 뒤를 가리켰다.
“일단 나가세.”
* * *
선발은 꽤나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정(丁)이 최소 조건.
현재 무림 학관에서 이 까다로운 조건을 갖춘 사람은 총 서른셋.
그중에서 개인 사정 등으로 나서지 않은 사람을 제외하면 그 숫자는 스물로 줄어든다.
친선전에 나갈 인원은 총 열둘.
“……정(丁)이 이렇게 적었어요?”
“적지. 절정급 무공에다 그 많은 실적을 쌓아야 하니까.”
혹은 초절정에 한없이 근접했다는 것을 증명하거나.
서하영의 질문에 웃으며 대답한 유예린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는 그녀를 바라봤다.
참 한결같은 아이다.
뭐라고 해야 할까, 순수함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천성이 그런 것인지 아니면 살아온 환경이 그런 것인지, 겉과 속이 다르지 않다는 게 보인다.
뭐, 속이고 있는 거라면 그건 그것대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겠네.
‘나 대단하구나…….’
이런 표정으로 멍하니 앞을 바라보는 서하영에게서 시선을 거둔 유예린은 미소를 지우지 않은 그녀를 따라 앞을 바라봤다.
작은 단상.
그 위로 올라오는 사내, 학관장 팽후.
“음, 이렇게 모여 주어 고맙네.”
가벼운 감사 인사와 함께 시작된 훈화.
내용은 별거 없었다.
친선전의 중요성부터 해서 안전까지.
상투적인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끝.
“너무 재미없는 얘기만 했나 보군. 슬슬 조는 친구가 보여.”
“스릅.”
팽후의 장난이라 생각했던 말이 끝나자, 누군가가 급히 침을 훔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놈이야.
지켜보던 교관들의 눈이 날카로워지는 순간.
“졸업생이라고 너무 대놓고 자는 거 아닌가?”
교관들의 눈이 순한 양으로 돌아갔다.
하긴 학생들이 자고 있었으면 자신들이 몰랐을 리가 없지.
교관들이 빠르게 태세 전환을 하는 사이, 흐르던 침을 훔친 남궁선은 어색하게 웃었다.
“말주변이 없고 지루한 건 여전하시네요.”
“이런 자리는 원래 지루한 법이지.”
직설적이기 그지없는 남궁선의 말에 피식 웃은 팽후는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학생들을 바라봤다.
“약 한 달 정도 그녀의 수업을 들은 자네들이라면 알겠지.”
화경이 어떤 존재인지.
자신이 알려 줄 수도 있으나 동년배의 화경 무인을 겪어 보는 것과는 느낌이 많이 다를 것이다.
“자네들이 싸울 상대에 아마 그녀와 같은 사람은 없을 걸세.”
화경급 후기지수?
있을 리가 있나.
남궁선은 수십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임과 동시에 남궁세가의 지원을 한 몸에 받은 인재다.
그녀와 같은 괴물이 사파에도 있다?
그럴 리가.
없다.
그 확률이 십 할이라고 장담할 순 없지만, 구 할 이상이라고는 장담할 수 있다.
“싸울 상대는 옆에 있는 친우 정도일세.”
팽후의 한마디에 사람들을 저마다 옆에 있는 이들을 바라봤다.
알고 있는 이도 있고, 잘 모르는 이도 있다.
하지만…… 남궁선보다 강할 리는 없다.
“충분히 이길 수 있겠지?”
그 질문에 모두가 입을 열진 않았지만, 팽후는 대답을 들었다.
그 눈빛만으로 충분히 대답이 됐으니까.
자신감.
할 만하다는, 할 수 있다는 믿음.
그들의 자신감을 믿으며 팽후는 웃었다.
“그럼 지금부터 선발 시험을 시작한다.”
그 자신감을 증명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