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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88화 (88/624)

제88화

87화-선발 (1)

무림맹에는 수많은 무력 조직이 있지만, 그중에 단(團)이라고 불리는 단체는 고작 아홉 개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 숫자가 아홉 개로 고정된 것은 아니다.

단지, 무림맹 내부에 있는 수많은 무력 단체 중에서 단(團)으로 승급한 것이 아홉 개밖에 되지 않은 것뿐.

시대와 인재에 따라 그 숫자는 아홉 개 미만으로 줄어들기도 한다.

웬만하면 안 줄어들지만.

창천단은 그 아홉 개의 단에 포함되는 조직.

무림의 절반 이상을 장악했다고 알려진 정파 무림의 핵심이자, 그 명성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구파일방보다도 위에 있다.

그 이유는 당연히 단이 되는 조건 때문이다.

단주의 무력은 최소 화경 이상, 단 내에는 초절정 고수가 최소 다섯 이상 있어야 하며, 최소한 일류 고수로 백 이상의 평단원이 필요하다.

웬만한 문파 하나는 단주가 움직이지 않아도 깨끗이 지워 버릴 수 있는 전력.

그게 바로 단으로의 승급 조건이며, 그런 단을 아홉 개나 유지하는 것으로 무림맹은 자신들의 힘을 증명해 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창천단의 단주이면서 자칭 단장이라 말하고 다니는 현시대의 창천검(蒼天劍), 남궁선.

일전에 기세 한 방으로 설천위를 사천맹의 무력대로부터 지킨 남궁현강의 딸이자, 이십 대의 나이에 그를 밀어내고 단주 자리를 꿰찬 괴물.

[허허, 진정 괴물이로구나.]

[음, 재능과 더불어 노력까지 넘치는 훌륭한 후배군.]

그녀를 마주한 혼들은 칭찬 일색으로 그녀를 평가했다.

그럴 수밖에.

남궁선이 이 무림학관을 졸업한 지 5년이 안 됐을 거다.

이십 대 중반.

심지어 무림학관을 다니던 그 시기에도 갑(甲) 등급에 올랐었다.

갑(甲)으로 올라가는 필수 조건 중 하나, 화경(化境)을 학생 시절에 이미 충족했단 얘기다.

[전에 봤을 때보다 기세가 더 좋아졌구나.]

심지어, 천마는 그녀의 상승한 기세에 흐뭇한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그나저나 요즘 세대가 전란의 세대라고 불리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생각 이상이네.”

전란의 세대.

뭐, 싸움이 일어났다는 건 아니고 평화가 지속된 지 오래됐는데도 기이할 정도로 젊은 강자가 많이 나온 세대를 이르는 거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남궁선 세대부터 지금 설천위가 있는 세대까지.

솔직히 말이 안 되긴 하거든.

이십 대 초반, 혹은 십 대 후반에 초절정에 오른 강자가 몇이나 있고, 심지어 화경에 오른 괴물까지 있다.

50줄은 들어서야 겨우 초절정에 이르는 이들이 보기엔 정말 말도 안 되는 세대지.

그런 사람들이 한둘도 아니고.

물론, 게임으로 할 때는 당연히 그러려니 했었지만.

캐릭터가 죄다 늙어 가는 아저씨, 아줌마면 할 맛이 날 리가 있나.

무엇보다 젊은 시절에 강해야 영웅 같은 면모가 강조되지 않는가.

무협을 좋아하던 사람들 중엔 말도 안 되는 고증이라고 투덜거리는 이들이 있었지만 전부 씹혔지.

애초에 육도에 고증을 바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고.

괴이와 무협이 짬뽕을 이루는 이 세계관은 일반적인 무협과는 많이 다르니까.

“흐응, 일단 너희 둘의 성장을 보고 싶은데.”

남궁선의 목소리에 잡념에서 깨어난 설천위는 노골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남궁선의 눈빛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선생으로 와서 실력 테스트를 하겠다는데 해야지 뭐.

“네가 가진 전부를 쓸 필요는 없어. 단, 친선전에 나갈 정도의 무력을 보여 주기만 하면 돼.”

“옙.”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자세를 고쳐 잡다가 문득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둘이라고 했지.

“으음……. 천위와 제대로 대련을 한 건 오랜만이군.”

고개를 돌리니 폭력적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근육을 꿈틀거리며 철백이 몸을 풀고 있었다.

“……쟤는 안 나가는데요?”

“아니, 나갈 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이 폭군.

대체 누구야.

워낙 겸손해서 스스로 주(主)라는 말 대신 장(長)이라는 말을 쓴다고 한 놈.

일그러진 세간의 평가에 통탄하며 설천위는 검을 뽑았다.

게임에서도 그랬지만, 저 누님의 성격은 상당히 들쑥날쑥하다.

어떨 때는 만사 귀찮아하고, 어떨 때는 용암도 앗 뜨거, 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움직인다.

지금은 후자겠지.

눈에 아주 흥미가 가득하니까.

사람들이 알아서 자리를 비키고, 훈련장 한가운데에 남은 철백과 설천위는 서로를 바라봤다.

“천위, 우리가 몇 승 몇 패였지?”

철백의 질문에 설천위는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78승 54패.”

“음. 나쁘지 않아.”

“난 나쁘다.”

입술을 삐쭉이며 설천위는 검을 든 손에 힘을 더했다.

전체적인 승은 당연히 자신이 맞다.

이쪽은 게임 시스템은 물론이고, 뛰어난 스승들의 도움으로 빠르게 성장했으니까.

성장이 더딘 무공을 익히는 철백과 비교하면 빠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신 전적으로 가면?

2승 8패.

싸워서 거의 대부분을 졌다.

이유는 당연히 하나.

“간다!!”

쿵!

강렬한 충격과 함께 땅을 박차는 철백의 몸이 순식간에 커진다.

속도를 얻기 위한 뛰어난 보법?

몸을 가볍게 하는 특수한 운기?

그 반탄력을 견뎌 낼 육체만 있다면 무식한 힘으로 땅을 내려치는 것만으로 얼마든지 빨라질 수 있다.

지금의 철백처럼.

단숨에 거리를 좁힌 철백을 향해 설천위는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이미 [패룡지체(覇龍之體)]와 [패룡지기(覇龍之氣)] 둘 다 발동한 상태.

그 압박감에 몸이 더뎌질 법도 하건만, 철백은 한 점 흔들림 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말 그대로 공기를 찢으며 파고드는 주먹.

그 공격을 차마 막지 못해 설천위는 주먹을 피해 냈다.

아래로 몸을 숙여 머리 위로 지나가는 주먹의 풍압을 느끼며 설천위는 허리를 비틀었다.

낮은 자세에서 허리를 비트는, 힘을 싣기 어려운 동작.

그러나 설천위는 비틀었다.

어려운 동작이라고 못 해?

그럼 죽는 거지!

철귀와 수도 없이 펼쳤던 사투를 통해 혼에 새긴 경험이 즉각 설천위의 몸을 움직인다.

피하고 벤다.

캉!

튕겨 나오는 반탄력을 이용해 가며 몸을 움직이고, 또다시 피하고 벤다.

깡!

튕겨 나온다.

피하고 벤다.

깡!

또 튕겨 나온다.

또 피하고 벤다.

깡!

어김없이 튕겨 나온다.

그것을 수도 없이, 세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반복한다.

“……맞는 건가, 이게.”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남궁천은 고개를 저었다.

현재 무림학관에 있는 병(丙) 등급의 학생은 총 다섯.

설천위와의 비무 후 방에 처박힌 설천강과, 면벽 수련에 들어간 한 명.

그 둘을 제외한 나머지 셋인 유예린, 남궁천, 당화유는 당연히 남궁선의 손에 이끌려 이곳에 함께 왔다.

셋은 무조건 친선전에 나가니까.

정급(丁級)에서는 아직 인원을 전부 뽑지 못했다.

그쪽은 추려 내야 하니까.

물론 설천강을 이긴 설천위는 당연히 합류다.

그래서 설천위가 훈련하는 이곳에 온 건데…….

“철백도 대단했었군.”

싸운다면 이길 수 있나?

글쎄, 잘 모르겠다.

어떻게든 베어 내기만 할 수 있다면 이길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지금 설천위의 검도 결코 무디다고 할 수 없다.

그런 공격을 백 번을 넘게 몸으로 받아 내고도 멀쩡할 정도라면…….

남궁천의 눈동자에 묘한 긴장이 서리는 그 순간.

서걱.

베였다.

드디어.

한번 베이기 시작한 순간, 상처는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만.”

결국, 철백이 상당히 많은 피를 흘리자 결국 남궁선이 대련을 멈췄다.

“근육에 깃든 기(氣)가 빠지면 강도가 약해지는구나.”

“아쉽게도 그렇습니다.”

“흠, 하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아.”

철백을 빠르게 평가한 남궁선은 희미하게 거칠어진 숨을 다스리는 그를 보며 웃었다.

‘훈련 하나는 기똥차게 한 것 같네.’

체력은 노력으로 쌓는 거다?

그런 헛소리를 하려는 게 아니다.

체력도 육체 능력인데, 당연히 재능에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남궁선이 마음에 드는 건 그 표정이다.

거칠어진 숨, 미친 듯이 뛰는 심장, 비명을 지르는 근육, 삐걱대는 관절.

그것들이 만들어 내는 모든 것은 결국 고통이다.

그 고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참고 인내할 수 있는 건 그 고통에 적응한 사람만이 가능하다.

숨은 거칠어졌지만, 몸의 움직임은 느려지지 않았다.

근육을 쥐어짜고, 고통을 강제로 찍어 누르는 법을 익혔다는 소리다.

훈련으로 그것들을 익혀 냈다는 소리다.

자력으로.

‘정말 욕심나네.’

대체 내공 없이 어떻게 저런 방향으로 나아갈 생각을 했을까.

절로 흥미가 일어났지만 뭐, 여기까지 하고.

진짜 중요한 건…….

“너, 어디서 그렇게 실전을 많이 겪었어?”

“……그냥 수련했습니다.”

“아닌데? 움직이는 게 딱 죽다 살아나는 걸 한 백 번쯤 해 본 움직임인데? 네 나이에 그런 경험을 어디서 해?”

그러는 당신은 그 나이에 그런 경험을 어디서 해서 그걸 단숨에 읽어 내십니까.

남궁선의 괴물 같은 통찰력에 혀를 내두르며 설천위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봤다.

대답을 해 주지 않으면 결코 물러나지 않을 것 같은 눈빛.

애효.

“심상 세계에서 대련했습니다.”

“심상 세계?”

“예, 명상하면서 저를 도와주는 혼과 생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흐음? 그래?”

납득이 가는 설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저것 이외에 딱히 이렇다 할 설명도 떠오르지 않는다.

‘재미있네.’

그렇기에 남궁선은 받아들였다.

자신이 부정할 수 없다면, 상대가 말하는 것을 일단 진실이라 받아들이는 자세는 모든 소통의 시작점이니까.

“좋아. 그러면 네게 필요한 건 육체의 단련 하나겠네?”

“예, 뭐 그렇죠.”

……진짜 괴물이네.

단숨에 문제점을 읽어 낸 남궁선의 판단력에 감탄하며 설천위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패룡지체(覇龍之體)] 때문에 신체 능력이 상당히 올라갔을 텐데 그걸 어떻게 읽어 냈는지 모르겠다.

“좋아. 그러면 다시 주목!”

철백과 설천위의 비무를 위해 흩어졌던 이들이 다시 한곳으로 모인다.

조금 높은 단상 위에서 남궁선이 그들을 보며 웃었다.

“뭐, 사실 특별 강의라곤 하지만 별거 없어. 너희들의 부족한 점을 내가 하나하나 직접 살피고 그걸 고쳐 가는 일을 하는 것뿐이니까.”

애초에 매일 오지도 못한다.

남궁선도 자신의 업무가 있으니까.

“친선전 인원 선출까지 남은 시간은 한 달.”

남궁선의 눈이 반달로 휘었다.

“이미 결정된 놈들은 일단 자체 훈련, 아직 결정되지 않은 녀석들은 특훈이다.”

“예?”

아직 결정되지 않은 녀석들이라니.

그게 무슨…….

“너, 너, 너.”

모두가 의문을 표할 때, 남궁선은 망설임 없이 세 사람을 지목했다.

차례대로 철백, 서하영, 주현운이다.

“내가 명색이 선배인데, 흑룡학관에게 지는 꼬라지는 못 보지.”

입꼬리를 비트는 남궁선의 눈동자가 사냥감을 노리는 포식자처럼 변했다.

“내가 너희를 훌륭한 무인으로 만들어 주마.”

물론, 하다 죽을 수도 있겠지만.

무인의 길이라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어?

* * *

“그래? 무림학관 그놈들도 시작했다고?”

흑룡학관.

그곳의 학관장을 맡고 있는 사추홍은 부하의 보고에 한창 읽고 있던 서류에서 눈을 뗐다.

오만하기 그지없는 놈들.

자신들이 무림 전체라는 듯, 무림맹이니 무림학관이니 하는 이름을 쓰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위선자 놈들.

그놈들에게 한 방 제대로 먹일 수 있는 기회다.

더불어, 승리로 얻은 자신감은 후에 있을 전투에서도 큰 도움이 된다.

결국 지금 있는 아이들이 커서 맹의 무인이 되는 거니까.

상대도 마찬가지고.

실전에서 만났을 때 한 번 이겼던 상대라는 점은 상당히 큰 이점으로 작용한다.

뭐, 좋아.

그놈들이 전란의 세대라고 불린다지?

전란이 일어나기 위해선 그 상대가 필요한 법.

시체를 쌓고 피가 강이 되는 전란(戰亂), 우리가 만들어 주마.

“준비를 더욱 철저하게 하도록. 이번엔 확실하게 짓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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