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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87화 (87/624)

제87화

86화-진짜배기 (5)

목을 노리던 검이 정신을 차리면 어깨를 노리고.

분명 가슴을 노리던 검의 궤적이 어느새 팔을 노린다.

기묘하다는 말로도 다 표현하기 힘든 변초와 허초로 가득한 검식.

설천위의 검이 거침없이 설천강을 압박했다.

‘이익!’

몰린다.

어느 순간부터 방어에만 집중하던 설천강은 상황을 깨닫곤 이를 악물었다.

내가 이렇게 일방적으로 몰린다고?

이건 말도 안 된다.

이럴 순 없다.

내가 저 버러지 같은 설천위에게 밀릴 리가 없어!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마음은 곧 분노가 된다.

스스로가 처한 상황이 부조리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천강은 그 분노를 참을 정도로 인내성이 강하지 못했다.

“노오오옴!!”

격한 감정을 터트리는 외침.

그 외침과 함께 설천강의 검에 새하얀 서리가 달라붙기 시작했다.

여태까진 닿으면 차갑다는 수준에 머물던 검신에 시린 냉기가 깃든다.

“빙검(氷劍)……!”

그 모습에 몇몇 사람들이 감탄을 흘렸다.

북해빙궁에 뿌리를 둔 설가만의 독특한 무공.

장법과 함께 설가의 이대 절학으로 불리는 빙검(氷劍)은 그 독특함으로 명성이 높았다.

검신에 닿는 주변 공기까지 얼려 버리는 시리도록 차가운 냉기.

그 검에 베인 상처는 냉기(冷氣)를 품은 내공이 스며들어 출혈조차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베는 공격에서 출혈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건 단점이다.

그런데 그런 단점조차 묻어 버리는 장점이 빙검에는 있었다.

상처를 시작으로 뻗어 나가는 냉기.

전투 중엔 스며드는 냉기를 밀어내기 위해 내공을 써야 하는 건 물론이고, 까딱 잘못해 관절 근처가 다치면 그대로 움직임에 큰 지장이 생긴다.

심지어 전투가 끝난 후 제때 조치를 취하지 못하면 냉기에 얼었던 상처가 곪으며 죽음에 한층 가까워진다.

살리는 것보다 죽이는 것에 특화된 힘.

그것이 설가의 무공이며, 그리 길지 않은 역사를 지닌 설가가 신흥삼가(新興三家)라 불리며 무림에서 명성을 드높인 이유다.

다만.

“아무리 그래도 동생이거늘…….”

그 살기 짙은 무공을 동생을 향해 쓴다는 사실에 몇몇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 비무가 분명 실전의 형식을 띤 비무라고 해도 그냥 살초와 지독한 살초는 나뉘는 법이다.

빙검(氷劍)은 명백하게 지독한 살초에 들어가는 공격.

거기에 더해.

“검식 또한 독해졌군.”

철저하게 관절을 노리는 검.

상처를 내지 못하더라도 냉기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사람의 움직임은 둔해진다.

가진 모든 능력을 활용해 적을 죽이기 위해 쓰는 전략.

그 지독한 공격에 심판마저 고민에 빠진 그 순간.

“기대를 저버리지 않네.”

[패룡지기(覇龍之氣)]

입꼬리를 비튼 웃음과 함께 설천위의 검 또한 변하기 시작했다.

방어를 극단적으로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리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고 한들 그건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법.

지금 방어를 도외시하면 공격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빙검(氷劍)에 노출된다는 건 보통의 공격에 노출된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실전 경험의 부재인가?”

변초와 허초를 쓰는 모습을 보아하니 나름 치열한 대련은 많이 한 것 같다만.

팽후의 판단에 화영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어린 시절에는 무공을 제대로 익히지 못해 제대로 된 대련을 할 기회가 없었을 거다.

설천위가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기 시작한 건 학관에 들어와서도 꽤나 시간이 지난 후니까.

빙검(氷劍)에 관한 대처가 미숙한 것도 이해는 되…….

“응?”

“응?”

순간, 비무대 주변을 둘러싼 구경꾼들 사이에서 의문성이 튀어나왔다.

“……방금 맞지 않았어?”

“그냥 튕겨 나간 것 같은데?”

“스쳤나?”

“스쳤다면 냉기가 스며들어 티가 났을 텐데?”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하는 대연무장.

화영조차 영문을 알지 못해 당황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알지 못한다면 이 자리에 알 만한 사람에게 물어보면 되니까.

“과연.”

입꼬리를 비튼 팽후.

그 눈동자는 흥분으로 가득했다.

“기막? 아니, 다르군. 술사들이 쓰는 술법에 가까운 건가?”

초절정 고수의 공격을 아무런 피해 없이 막아 내는 술법이라.

백화단주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가 궁금할 정도군.

아니, 오히려 그 정도는 스스로 깨칠 수 있으니 거절한 건가?

흥미롭기 그지없다.

그렇게 팽후가 흥분을 가득 품은 눈으로 비무를 지켜볼 때, 비무의 상대자인 설천강은 당황스런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그리고 그 마음은 입 밖으로 그냥 튀어나왔고.

빙공(氷功)을 쓰는 무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차갑지 못한 심리 상태.

[어설프구나.]

그 모습에 천마는 혀를 찼고…….

[보검을 쥔 아이나 다름없군.]

소백진은 비웃었다.

반면.

[지금이다.]

현태중은 비무에 집중했고.

설천위는 그 집중에 호응했다.

사실 현태중의 지시가 아니었어도 공격했을 거다.

이젠 설천위도 그 정도의 틈을 읽는 건 가능했으니까.

[선유적월검(仙遊跡月劍) 제2초 침월(針月)]

날카로운 찌르기.

그 찌르기에 당황한 설천강은 반 박자 늦게 반응했다.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가진 설천강이라면 능히 막아 냈어야 할 공격.

설천강은 실제로 그 공격을 막아 냈다.

자신의 눈에 보이는 공격을.

“흡?!”

얇은 바늘 정도의 차이.

그 차이가 만들어 낸 변화는 너무도 극적이었다.

정확하게 중심을 짚어 내지 못한 방어는 흐트러지고, 그 공격을 통과시킨다.

몸의 중심선을 막았던 설천강의 검을 지나 설천위의 검이 그 어깨를 꿰뚫는다.

그 순간, 설천강의 눈은 분노로 돌아갔다.

벤다.

이 쓰레기를 베어 버리겠어!

감히 나를?

네깟 놈이 감히 나를 찔러?!

설가의 피에 흐르는 의지를 쥐어짜는 힘.

그것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하나의 재능이다.

어깨를 꿰뚫린 통증을 무시하며 설천강의 검이 떨어진다.

베어 버릴 것이다.

그런 의지를 품은 검이 설천위의 왼쪽 어깨를 떨어지는 그 순간.

[크르르르르르.]

짐승의 낮은 울음소리가 설천강을 옥죄인다.

동시에 시야에 들어오는 선명한 금빛의 눈동자.

파충류의 그것을 닮은 눈동자는 명백히 인간이 아닌 존재의 것이었다.

그 눈과 마주한 순간, 몸이 딱 굳어 버린다.

[패룡지심(覇龍之心)]

실체를 드러낸 패융은 냉기로 가득한 설천강의 검을 물고 있었다.

이 이상은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 경고를 담은 눈빛과 함께 패융의 턱이 완전히 다물어진다.

빠드득.

검이 산산조각 나는 소리와 함께 설천위 또한 찔러 넣었던 검을 뽑았다.

급소를 피한 상처에서 피가 스며 나오기 시작한다.

주요 혈관을 자르지 않았기에 출혈은 심하지 않았다.

털썩.

허나 그 심적 충격마저 덜한 건 아니다.

“이, 이건 아니야.”

무릎을 꿇은 채 실성한 듯 중얼거리는 설천강을 보며 설천위는 가볍게 혀를 찼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 새끼는 게임에서도 그렇고, 역시 한 찌질 하네.

설가(雪家)도 진짜 또라이들이라니까.

애가 이렇게 될 때까지 방치를 하냐.

“내가, 내가 너 따위한테 질 리가 없어! 이건, 이건 뭔가 잘못된!”

“뭐래.”

순간, 자신도 모르게 나간 발이 설천강의 안면을 갈겼다.

“커헉!”

주둥이에서 피를 흘리며 넘어가는 설천강.

“자, 잠……!”

그 모습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진 용에 홀려서 자신이 아직 승패를 선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심판이 다급히 말리려 했지만, 설천위가 한발 더 빨랐다.

“재능이고 나발이고 현실을 봐라. 현실을. 너, 나도 못 이기는데 큰형이나 누나는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순간, 가정사가 나오자 말리려던 심판도 입을 다물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으니까.

짜증 난다는 듯 혀를 찬 설천위는 아직도 눈동자가 허공을 떠도는 설천강의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어휴, 찌질한 새끼. 형이라고 불리고 싶으면 정신연령부터 키워서 와라.”

이렇게 찐퉁으로 찌질한 녀석은 오랜만이네.

군대에서 온갖 인간 군상을 본 뒤로는 처음이야.

더 이상의 잡념을 깨끗이 털어 낸 설천위는 그대로 몸을 돌려 비무대에서 내려갔다.

그리고 작게 헛기침을 한 심판이 손을 들어 올렸다.

“승자 설천위!”

* * *

“흐하하하하하하하!”

관중석.

설천강의 주둥이를 시원하게 갈겨 버리는 모습에 호쾌한 웃음을 터트린 팽후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세요?!”

“내가 할 일은 다 끝나지 않았나?”

“승급식을 해야죠!”

“대충하게. 저 친구도 그런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으니.”

아니, 아무리 그래도…….

손을 흔들며 멀어지는 팽후의 모습에 화영은 결국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 뭐 귀찮은 건 질색하는 것 같으니까 내가 빠르게 처리해 주자.

그렇게 화영도 업무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고, 어느새 홀로 길을 걷던 팽후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아마 대부분이 보고도 믿지 않을 거다.

뭐, 착각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묵빛의 용이라…….”

그놈들의 상징과 같은 색 아닌가?

저 녀석이 친선전에 나가서 무슨 짓을 할까?

히죽 입꼬리를 올린 팽후는 조금 더 발을 빠르게 놀렸다.

아무래도 조금 더 뛰어난 선생을 불러올 필요가 있겠어.

* * *

“대단해요!”

“뭐, 보통이지.”

반짝이는 주현운의 눈빛을 받으며 어깨를 으쓱이는 설천위.

그 모습에 철백은 고개를 저었다.

며칠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저러고 있네.

“어떻게 그렇게 능숙하게 싸울 수 있는지 궁금해요!”

“죽어라고 하면 되는 거야.”

[뭐, 정답이긴 하구나.]

정확히는 ‘죽어라고’가 아니라 ‘죽어 가며’가 맞지만.

죽어 가면서 실전 경험을 쌓는 데 능숙해지지 않으면 그게 어디 사람인가? 송충이지.

하다못해 짐승도 죽을 위기를 넘기면 점점 전투에 능숙해지는 법이다.

천마의 비아냥거림을 한쪽 귀로 흘리며 설천위는 주현운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게임에선 얘도 상황에 따라 친선 비무에 나갔지.

이번에는 나간다는 소식이 없으니 안 나가나?

“너는 친선 비무 안 나갈 거야?”

“저요? 전 아무래도 등급이…….”

“등급?”

“네. 전 아직 기(己)라서요.”

일류 수준이면 기(己)가 맞긴 하지.

그러고 보니 얘는 제대로 된 스승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리 천무지체라지만 상승 무공을 배우지 않고 절정의 벽을 뚫는 건 시간이 걸리니까.

……아예 도움을 줄까?

게임에선 보통 스승을 두고 상승 무공을 배우는데 그러면 여러 가지 제약이 생긴다.

해야 하는 임무를 소속 때문에 못 하는 경우도 많이 생기고.

동료로 데리고 다닐 거면 차라리…….

“내가 쓰는 검법 배워 볼래?”

“네?!”

“뭐라는 거냐?!”

오히려 당황한 서하영과 철백의 목소리를 대충 손을 저어 넘긴 설천위는 담담한 눈으로 주현운을 바라봤다.

“단, 지금은 기초밖에 못 알려 줘. 제대로 배우기엔 네가 부족한 게 있거든.”

혼을 보는 눈이라든가.

내가 가르쳐 주는 덴 한계가 있으니까.

뭐, 이대로 놔둬도 무림학관의 공용 무공을 자신의 것과 합쳐서 상승 무공을 만들어 내겠지만…….

그럴 거라면 미리 은혜를 쌓아 두는 것도 나쁘지 않지.

“……정말요?”

“그럼. 그리고 정확히 말하면 내가 가르쳐 주는 게 아니야.”

[내가 가르쳐 주는 것이지.]

주현운의 재능을 마음에 들어 하던 현태중이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 사전에 미리 얘기해 놓은 거지만.

“자, 그럼 기본 검식부터…….”

“그거 흥미로운 이야기구나.”

“……응?”

순간, 훈련장 입구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설천위는 고개를 돌렸다.

호쾌한 미소가 서린 얼굴.

그 미모는 남심을 뒤흔들 정도로 매력이 있었으나 그보다 더 아름다운 건 그 눈동자였다.

순수하게 열정으로 빛나는 눈동자.

“귀찮은 일을 맡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더 재미있겠어.”

……아니, 장난기로 빛나는 건가?

순간, 자신의 안목을 의심하던 설천위는 거침없이 다가오는 여인, 남궁선을 바라봤다.

“창천단 단장 남궁선, 친선 비무가 있기 전까지 내가 너희들의 특별 강의를 맡게 됐다.”

……거창한 선생님이 와 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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