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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85화 (85/624)

제85화

84화-진짜배기 (3)

무림학관에서의 승급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그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은 일정 수준 이상의 공적을 세워 승급 시험을 치를 자격을 부여 받는 것.

학관 내의 등급이란 것은 결국 무림맹에 들어갔을 때 받게 될 계급을 의미한다.

사람들을 이끄는 위치에 오를 사람이라면, 필요한 요소가 많다.

통솔력은 기본이고 상황 파악 능력, 전략 전술, 위기관리 능력 등등.

조원들을 이끌고 전장을 누비는 위치에 오를 계급이 되려면 이런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이게 승급에 필요한 기본이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무력(武力).

그저 앞서가는 것만으로도 뒤에 있는 이들이 따라갈 원동력을 부여하는 힘.

그 조건을 충족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승급할 수 있다.

자잘한 지휘는 부관에게 맡기면 되니까.

모든 것을 혼자 다 해낼 필요는 없으니, 가장 중요한 능력을 우선시하게 되고 그 능력이 바로 무력이라는 거다.

그렇기에 설천위가 선택할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이 이거였다.

“재미있네요. 승급 시험 신청이라니.”

설천위의 승급 신청을 받은 교관 화영(和盈)은 웃으며 설천위를 바라봤다.

화경(化勁)의 기초를 가르칠 때, 가문의 무공조차 못 써서 박치기로 상대를 쓰러트리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런 아이가 1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밑바닥에서부터 기어 올라와 정(丁)을 노리고 있다니…….’

솔직히 말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무림맹을, 무림학관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몇 명 없는 병(丙) 등급 이상의 무인들을 보며 대단하다고 말한다.

병(丙)부터는 상위 등급이라 부르며, 졸업 후에는 최소 대주 자리가 약속되기 때문이다.

단(團)에 들어가면 부단주로 시작하는 경우도 꽤 있고.

그야말로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 약속된 것이다.

대단하다.

대단한데…… 당연하다.

그들은 전부 거대 가문에서 능력을 총동원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니까.

좋은 혈통에서도 가끔씩 나오는 뛰어난 재능.

막대한 자본력을 이용해 모은 영약으로 얻어 낸, 나이를 뛰어넘는 내공.

수백 년에 걸쳐 쌓고 다듬은 상승 무학.

그들은 갑작스레 탄생한 기적이 아니다.

수많은 시간과 노력으로 만들어 낸 필연이지.

그런데 눈앞에 있는 이 소년은?

가문의 지원?

없다.

버려졌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으니까.

특히, 설가(雪家)라면 그럴 수 있다.

그들은 냉혹한 북풍을 견디며 살아온 이들의 후예.

효율을 추구하는 그 냉혹함은 그들의 특징이나 다름없었다.

재능이 없는 아이를 가주의 아이라고 해서 무작정 도와줬을 리가 없다.

뛰어난 재능?

있었으면 안 버려졌겠지.

상승 무학?

배울 순 있었겠으나 단 한 번도 쓴 적이 없는 걸 보면 가문의 상승 무학은 익히지 못한 게 확실했다.

그런데.

올라왔다.

저 밑바닥에서 정상을 목전에 둔 이곳까지.

그 경이로움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담담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설천위를 보며 화영은 빙긋 웃었다.

“방법은 어떤 거로 하실 건가요?”

“선택지가 있습니까?”

“네. 지금 정(丁)으로 승급하는 시험에서 선택지는 두 가지.”

손가락 두 개를 편 화영은 웃으며 설천위를 바라봤다.

“교관과 대련해서 실력을 입증한다.”

뭐, 이게 기본이지.

보통 시험이라 함은 교관을 상대로 치르는 거니까.

하지만, 무림학관에는 교관을 뛰어넘는 괴물들이 있다.

“또는 정(丁) 혹은 병(丙) 등급의 학생을 상대로 승리하는 겁니다.”

“병(丙) 등급을 이기면 바로 병(丙)으로 승급하나요?”

“아니요. 다음 승급을 위한 공적 쌓기에 점수가 추가되는 수준으로 끝나요.”

운으로 이길 수도 있으니까.

화영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담담하게 화영을 바라봤다.

“둘 중 빨리할 수 있는 거로 할게요.”

“좋아요. 그럼 교관과…….”

“잠시.”

자신의 말을 끊고 들어오는 목소리에 화영은 문 쪽을 바라봤다.

아까부터 인기척은 느끼고 있었지만 가만히 있기에 놔두고 있었는데…….

“무슨 일인가요? 설 소협.”

교관들은 학생을 부를 때 소협이란 호칭을 잘 쓰지 않는다.

소협이라는 말은 무림인끼리 서로를 칭할 때 쓰는 말이면서 동시에 존중의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해서다.

협의(俠義)를 세울 수 있는 실력이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올려서 표현해 주는 거다.

그렇기에 화영은 문 앞에 서 있는 사내에게 소협을 붙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상대 역할, 제가 하고 싶군요.”

비틀린 입가는 언뜻 비열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 모습과는 별개로 몸에서 흘러나오는 단호하고 안정된 기운.

병(丙) 등급의 무인.

설천강이니까.

* * *

“우으, 우리는 힘들까요?”

훈련장.

설천위가 승급 시험 신청을 위해 떠나고 없는 훈련장에서 휴식을 취하며 앉아 있던 서하영은 아쉬움이 가득한 눈동자로 철백을 바라봤다.

그러나 그 눈빛에도 철백은 그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힘들겠지.”

“역시 그렇겠죠?”

중위 등급에서 가장 으뜸인 정(丁)은 절정 수준의 무공을 기본으로 요구한다.

거기에 더해 온갖 분야의 지식도 함께 요구한다.

전략 전술은 기본이고, 한 조직을 이끌어 가기 위해 필요한 거의 대부분의 지식을 요구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丁)이란 등급은 실제로 대주가 되는 등급이기 때문이다.

무림맹이 아무리 뛰어난 조직이어도 대주가 전부 초절정인 건 아니다.

당장 이 무림학관에 다니는 이들 중 상위 등급은 열 명이 채 되질 않는다.

짧으면 4년, 길면 8년까지도 다니는 무림학관인데도.

정파 무림 전체를 모아도 1년에 한두 명 나올까 말까 한 수준이란 소리다.

물론 후기지수 중에서 나오는 숫자이니 시간이 흐르면 더 늘긴 하겠지만 그거야 당연한 것이고.

여하튼 무림맹에 있는 수십 개의 대(隊)가 제대로 움직이려면 절정급 대주도 다수 필요하다는 소리다.

그렇기에 많은 능력이 요구되는데…….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니 어쩔 수 없지.”

지식은 물론이고 그 지식을 시험받기 위한 조건인 공적도 부족하다.

그렇다면 남는 방법은?

하나다.

무력.

실력 하나로 자신이 대주의 자리에 오를 자격이 있다고 증명하는 것.

초절정에 근접한 실력을 지닌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삼인방 중에서 그게 가능한 유일한 사람이…….

“천위라면 해내겠지.”

“저희도 빨리 따라가야죠.”

“음. 물론.”

이번 흑룡학관과의 비무에 나가는 건 무리라도 내년에 똑같은 기회가 생긴다면 반드시 잡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슬슬 휴식을 끝내지.”

“예~.”

땀을 흘릴 시간이다.

* * *

“하지만 소협, 그건…….”

설천강의 제안에 화영은 미간을 찡그렸다.

“친족이라고 봐주면 오히려 시험에 불이익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하! 설가엔 친족이라고 봐주는 일 같은 건 절대 없습니다.”

화영의 말에 설천강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그 모습에 화영은 오히려 더 깊게 미간을 찡그렸다.

이 안하무인의 어린놈.

재능은 뛰어나서 높은 경지에 이르긴 했으나, 그 정신연령이 아이와 다를 게 없다.

질투심 많고, 스스로의 자존감을 위해 남 위에 서려고 하는 태도.

옛날에 가르쳤던 이 녀석의 형과 누나를 생각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정신연령을 가진 녀석이다.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 동생이 위로 뛰어오르려 하니 철저하게 짓밟겠다는 생각이겠지.’

그 치졸한 생각이 너무나도 눈에 뻔히 보여 속이 다 울렁거릴 정도다.

날카로운 보검을 든 어린애나 마찬가지인 위험한 사람.

막아야 한다.

이 비무를 성사시키면 아무리 설천위라도…….

“하하하! 그거 재미있겠군.”

순간, 세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으로 향했다.

여태까지 아무도 의식하고 있지 않던 창문.

그곳에 몸을 기댄 채 바람을 쐬던 사내, 팽후는 웃으며 그들을 바라봤다.

“형이 동생의 성장을 직접 판단해 보고 싶다고 하는데 말릴 이유가 없지!”

“하지만 학관장님…….”

“친족이라고 배려해 줄 것을 걱정한다면 괜찮네. 나도 참관할 테니.”

그럼 괜찮겠지.

근데 그 문제는 괜찮겠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요?

진심이 담긴 눈으로 팽후를 바라보는 화영.

평소라면 그냥 눈을 깔고 넘어갔겠지만 성장을 지켜봐 온 제자가 이리 망가지는 걸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는 일념이 그녀를 움직였다.

그냥 넘길 수 없다.

그 일념이 담긴 눈동자를 보고 팽후는 빙긋 웃었다.

참으로 훌륭한 스승이다.

하지만 너무 과한 걱정은 되레 제자를 망치는 법.

“학생들이 서로를 위해 힘쓴다고 하니 어찌 도움을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허나…….”

“화 교관은 내 말을 따르게.”

“……알겠습니다.”

그냥 권위로 찍어 눌러 버리는 팽후의 모습에 잠깐 반항하려 했던 화영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팽후가 막 나가는 사람이긴 하지만 악인은 아니니까.

뭔가 생각이 있겠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인 화영은 상황을 멀뚱히 지켜만 보고 있는 설천위를 바라봤다.

“비무는 사흘 후 대연무장에서 하겠습니다. 이견 있으신가요?”

“아뇨. 없습니다.”

“저도 없습니다.”

히죽히죽 웃어 대는 설천강의 모습에 일그러지려는 미간을 필사적으로 펴며 화영은 두 사람에게 자세한 내용을 공지했다.

비무의 상대는 설천강이지만, 심사는 참관하는 교관들이 한다는 것.

그 외의 여러 주의 사항.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련은 실전 형식으로 치러집니다.”

“예.”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설천위와 그 모습을 입꼬리를 비틀며 바라보는 설천강.

노리는 게 너무 훤히 보여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대체 어찌 저리도 사람이 단순한지.

실전 형식이라고 해도, 진짜 실전은 아니다.

다만 친선전과 다르게 살수가 허용되고, 심각한 부상을 입혀도 되는 정도.

“그러면 그리 알고 저는 물러가겠습니다.”

화영의 말이 끝나자, 마치 원하는 건 다 얻어 냈다는 듯한 미소를 지은 설천강이 그대로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어느새 사라진 팽후의 모습까지 확인한 화영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설천위를 바라봤다.

“정말 괜찮겠어요?”

“뭐가요?”

“……당신의 형은 당신에게 좋지 않은 생각을 품고 있는 것 같더군요.”

형제간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수준을 넘어선 관계.

설천위와 설천강이 배다른 형제라고 해도 이건 정도를 넘어섰다.

정파라 불리는 이들이 할 만한 행동이 아니다.

“지금이라면 바꿀 수도 있어요.”

학생이 원한다면, 교관직을 걸고서라도 해 줄 수 있다.

그런 각오가 담긴 화영의 눈빛에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왜 바꿔요? 저도 마침 할 얘기가 있었는데 잘됐죠, 뭐.”

문으로 향하며 설천위는 고개를 돌려 화영을 바라봤다.

“다른 교관분들이랑 내기하면 저한테 거세요.”

돈 벌게 해 드릴 테니까.

* * *

“이건 참 아쉽군.”

설천강과 설천위의 비무가 펼쳐지는 당일.

거의 모든 학생이 모인 대연무장에서 남궁천은 아쉬움이 담긴 눈동자로 비무대를 바라봤다.

“천위에게 설욕할 기회가 이리 아쉽게 날아가다니.”

“뭐, 빠른 사람이 쟁취하는 거겠죠.”

남궁천의 말에 그 옆에 앉아 있던 유예린은 작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나저나 괜찮은 건가? 설천강, 그 사람은 속이 좁기로 유명한데.”

실제로 만난 적은 별로 없고, 대화도 별로 안 나눠 봤다.

딱 봐도 자신과 안 맞는 게 느껴져서.

사람을 보는 눈이 뛰어난 남궁천의 평가다.

믿을 만하지.

“괜찮냐는 건 누굴 말하는 거죠?”

“천위 말일세. 설가의 무공은…….”

잠시 말을 이어 가던 남궁천은 이내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 보면 상대하는 설천위도 설가지.

“그러고 보니 천위가 설가의 무공을 쓰는 걸 본 적이 없군.”

“설가의 독문무공은 재능을 많이 요구하니까요.”

재능 없는 설천위가 익히기엔 너무나 고된 무공이지.

허나, 그렇다고 해서 그게 강함과 약함을 결정짓는 요소가 되진 못한다.

“일단 지켜보죠.”

설천위가 받아들였다는 것은 승산이 있기 때문일 테니까.

유예린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설천위가 비무대 위로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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