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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83화 (83/624)

제83화

82화-진짜배기 (1)

“…….”

혈교인의 혼을 흡수한 설천위는 허무함이 담긴 눈으로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미완성의 혈귀를 흡수하며 느꼈던 감정들.

혈교인을 흡수하면서도 그것과 비슷한 것들이 느껴졌다.

믿음, 복종.

이자가 어떤 생을 살아왔는지는 다른 감정 따윈 묻어 버리는 강렬하기 그지없는 두 개의 감정만으로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동시에 그것을 절절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흔들렸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큰 죄인 것 같고, 가슴속에 불안감이 피어오른다.

“이건 막 쓰면 안 되겠네.”

대충 고개를 저어 혈교인의 감정을 얼추 털어 낸 설천위는 미간을 찡그렸다.

스탯을 조금이라도 올려 주는 데는 도움이 되나 정신이 못 버틴다.

이런 감정 따위에는 한 톨도 흔들리지 않을 굳건한 정신을 소유했다면 모르겠지만.

설천위는 스스로를 과신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정도는 알고 있다.

이건 웬만하면 쓰지 말자.

[강해질 수 있는 빠른 방법이다.]

그런 설천위의 기색을 눈치챈 걸까.

천마가 나지막이 말했다.

[혼에 따라 얻을 수 있는 힘은 더욱더 크겠지.]

천마의 시선이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혈사자를 향했다.

혈귀와 부하의 소멸.

그것이 충격이었나.

아니면, 다른 점에서 걸리는 것이 있나.

알 수 없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설천위는 고개를 저었다.

“사람이라면 정상적으로 걸어갈 수 없는 길이에요.”

[…….]

설천위의 말에 천마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이내 그저 웃으며 설천위를 바라봤다.

[네가 패도를 바라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좋다.]

“……뭐래요. 갑자기.”

[별거 아니다.]

웃으며 고개를 저은 천마는 조용히 혈사자의 혼을 제압했다.

일단 이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으니.

그렇게 천마가 입을 다물고 제 할 일을 하기 시작하자, 설천위도 다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혈귀를 처리하는 데 그리 긴 시간을 쓰진 않았지만, 시간이 낭비된 건 사실.

일단 내공을 최대한 빨리 회복해서 다른 사람들을 도우러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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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교의 계략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목표 달성!

보상이 주어집니다.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스킬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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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목표 달성!

혈귀가 완성되기 전에 제거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중급 스킬 개화권을 하나 획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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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 달성이 뜨긴 했는데, 이건 혈귀를 흡수한 시점에서 뜬 거라 아직 밖이 전투 중인지 아닌지 확실하지가 않았다.

그나저나 이제 스킬 포인트 한 개에 중급 스킬 개화권도 두 개인가.

슬슬 쓸 때가 됐네.

작게 한숨을 내쉰 설천위가 운기에 집중하려는 찰나.

“천위! 괜찮은가!”

다급한 목소리.

그 순간, 결국 운기를 풀고 일어난 설천위는 다급하게 달려오는 철백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를 따르는 유예린과 서하영까지.

[독이군.]

암영의적의 목소리에 설천위는 그제야 유예린의 곁에 있는 서하영의 상태를 살폈다.

붉은색에서 보라색까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안색.

만화에 나올 것 같은 중독 증세다.

“혈교 놈들이 마지막 발악으로 독단을 터트렸네.”

“너희는?”

“나는 조금 들이마셨고, 유 소저는 거의 들이마시지 않았네.”

“서 소저는 정면으로 맞아서 완전히 들이마셨고?”

철백이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독단을 던진 놈도 피를 토하며 죽더군.”

공멸을 각오하고 던진 독단이었다는 소리네.

한숨을 내쉰 설천위는 유예린이 곱게 눕힌 서하영에게 다가갔다.

몸 상태를 살펴도 잘 모르겠다.

게임에서도 중독되면 그 영향이 밖으로 드러나지만, 솔직히 설천위가 보기엔 거기서 거기였다.

차이가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그 독을 이겨 낼 수 있거나 해독하는 법을 알았다.

애초에 동료로 들어오는 이들 중 독에 조예가 깊은 이들도 많으니 그냥 스킬이나 아이템으로 치료하면 그만이었던 게 독이다.

즉 안색이 변하는 것만으로 무슨 독인지 알아낼 수 있을 만큼 주의 깊게 보지 않았다는 소리다.

혈교에서 쓰는 독의 종류는 알아도 그 독을 정확하게 구분해 낼 능력이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철저하게 살폈어야 했는데.’

클리어에 몰두하느라 필요한 부분은 쳐낸 결과지만, 아쉽기 그지없다.

“마 선배는?”

“약속대로 외부에서 대기하고 있었으니 아마 지원군을 부르러 갔을 거예요.”

그건 그나마 희소식이네.

제발 지원군 중에 독에 정통한 사람이 하나 있으면 좋겠는데.

뭐, 그건 그거고.

“남은 수는?”

“상당하네. 불리하다 싶으니 가장 선두에 있던 이가 바로 독단을 던지더군.”

“독무 때문에 못 들어오고 있는 건가?”

“중독시켜 놨으니 승기는 자신들에게 있다는 소리겠지.”

담담하게 말하고 있지만, 철백의 안색도 상당히 좋지 않았다.

몸은 튼튼해도 숨을 쉬고 피부로 들어오는 독을 막을 순 없으니까.

뭐.

‘나중에는 그것조차 버티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최강의 방어력과 내성을 지닌 괴물은 아직 완성되기 전이니까.

물론, 걱정할 건 없다.

저 녀석은 악으로 깡으로 버텨서라도 스스로 독을 해독해 낼 테니.

지금도 정신을 똑바로 잡고 있고.

문제는…….

“하아, 하아.”

“아무래도 위험한 것 같아요.”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한 서하영이다.

유예린의 말대로 위험하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거듭된 전투로 내공도 부족할 테니 독에 제대로 대응하기도 힘들겠지.

지금껏 버티고 있는 것도 어린 시절부터 단련된 육체라서 가능한 거다.

“일단, 제가 내공으로…….”

“안…… 돼요.”

유예린의 말을 거절한 건 서하영이었다.

저리 사경을 헤매는 꼴로 용케도 들었네.

“언……니도 지…….”

말을 끝까지 이어 가지 못했지만, 내용이야 뻔했다.

유예린도 상당한 전투를 치렀다.

다른 세 사람보다야 여유가 있겠지만, 타인의 몸에 스며든 독을 빼낼 수 있을 정돈 아니겠지.

그걸 알고 있기에 거절하는 거겠지만……. 참 우직하네.

“그래도 받아야 해요.”

“안…… 돼…….”

“쯧.”

거듭되는 거절에 가볍게 혀를 찬 설천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얘는 이런 애지.

작게 웃은 설천위는 망설임 없이 상태창을 열었다.

상태창 아래에 뜬 [중급 스킬 개화권]이라는 글씨가 푸른색으로 빛난다.

선택해야 할 스킬은 두 가지.

해독과 독기 흡수다.

둘 다 중급 스킬이지만 전자는 대부분의 경우에 도움이 되는 꿀스킬이고, 후자는 대부분의 경우에 도움이 안 되는 똥스킬이다.

다만, 이 두 가지를 조합하면 보통은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스킬의 이름이 너무 직관적이라 거의 모든 유저가 떠올리는 기본 조합.

“[독기 흡수].”

서하영의 목에 손을 대고 스킬을 발동시켰다.

순식간에 검붉게 물드는 서하영의 목.

그 목에 닿은 내 손을 타고 독기가 넘어오기 시작했다.

“천위!”

그 모습에 유예린이 평소엔 부르지 않는 이름으로 부르며 다급하게 소리쳤지만, 나는 대충 손을 저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독기 흡수는 그 효과가 간단한데 무려 중급 스킬인 이유답게 효율성이 한마디로 미쳤다.

순식간에 빨아들인 독기.

그 독기를 해독을 통해 중화한다.

해독을 타인에게 써 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회복을 쓸 수 없듯이 해독도 써 줄 수 없다.

상급 스킬이면 몰라도.

그렇게 서하영에게서 빨아들인 독기를 쥐꼬리만 한 내공을 쥐어짜 해독하던 그 순간.

“흥미롭네.”

나지막한 목소리가 동굴에 울려 퍼졌다.

다만,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유는 두 가지.

목소리에 적의가 없었기 때문이고.

유예린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랜만이네요. 당 소저.”

“응, 오랜만이야.”

유예린의 인사에 빙긋 웃은 여인은 천천히 그들에게 걸어갔다.

“밖에 있는 녀석들은 전부 정리했어.”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놀랐네. 너희들이 벌써 본진을 발견해서 쳤을 줄이야.”

작게 웃으며 접근한 여인은 유예린의 앞에 서서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돌렸다.

“저게 네 약혼자?”

“사람에게 저게라니요.”

“아, 미안. 저 사람이 약혼자?”

“네. 제 약혼자예요.”

“흐음?”

손가락으로 살포시 턱을 두드리던 여인은 이내 웃으며 유예린을 바라봤다.

“양보 가능?”

“절대 안 돼요.”

이렇게 칼 같은 유예린은 오랜만이었다.

당가의 무인, 당화유는 등장부터 범상치 않았다.

* * *

학관으로 돌아온 설천위는 달렸다.

당화유 덕에 별문제 없이 해독하고 학관으로 복귀.

보고 후 무림맹이 움직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물론 상당히 흥미로운 소식이었으나, 설천위는 이내 관심을 껐다.

거기에 투자할 시간적 여유는 없었으니까.

게임 속에서 나오는 에피소드라도 따라가려면 최소 조건을 만족해야 하니까.

무엇보다 놈을 굴복시키려면 한 가지 조건이 절실했다.

초절정.

패융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의 힘만으로 초절정을 꺾는 것.

심상 세계에서 혈사자를 꺾고 그에게서 정보를 얻어 낼 길은 이것밖에 없었다.

그러기에 달렸다.

달리고 또 달렸다.

“하악! 하악!”

찢어질 것 같은 숨소리가 거칠게 흩어진다.

고통으로 얼룩진 표정.

허나 그럼에도 다리와 팔을 멈추지 않는다.

달리고 또 달린다.

하체를 단련하기 위해, 부족한 재능을 채워 줄 기초를 다지기 위해.

“……독종이군.”

자신의 모습은 신경 쓰지 않는 듯 침까지 흘려 가며 죽어라 달리는 그의 모습에 학생들은 혀를 내둘렀다.

혈교의 고수를 꺾었다는 이야기는 이미 학관 전체에 퍼졌다.

학관에서 그 공을 공식적으로 치하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리 높은 수준은 아니더라도 꽤나 좋은 영약까지 부상으로 받았을 터.

초절정 고수.

유예린도 함께 있었다고 하니 혼자만의 힘으로 이긴 건 아닐 거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리 생각했고, 그런 생각에 그의 공적을 깎아내리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것이 자랑할 만한 업적임에는 분명했다.

콧대가 높아지고 으스댄다고 해도 그 누구도 감히 이견을 말할 수 없는 그런 공적.

그런데 어찌 저리도 독하게 몸을 혹사시키는가.

대체 무엇이 뒤에서 따라오고 있기에.

긴 시간을 달리기 위해서 훈련장 밖으로 나와 달리는 설천위의 모습은 학관에서도 유명한 구경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새벽에 봤는데, 점심때도 또 보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었으니까.

진짜 미친 듯이 달리고 달린다.

“……대단하군.”

그렇기에 이틀 전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남궁천은 스스로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은 혈교의 잔당 몇을 해치운 게 전부다.

아이들도 구하지 못했다.

그런데 저 녀석은 모든 것을 해 놓고도 저리 절박하게 달린다.

무(武)의 기본.

하체를 단련하는 거겠지.

진짜 감탄이 절로 나오는 정신력…….

“좋아. 아주 좋아.”

“응?”

순간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남궁천은 고개를 돌렸다.

흥분으로 가득 찬 눈동자.

그 안에 담긴 열망이 너무도 뜨거워 살짝 주춤하게 되는 그런 사람.

‘……이 사람이 여긴 왜?’

그런 의문도 잠시.

그 사람이 지켜보고 있는 대상이 누구인지 확인한 남궁천은 미간을 찡그렸다.

이 사람은 자신이 보던 사람을 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사람이 흥미를 가질 만한 상대는 아닐 텐데?’

그런 의문도 잠시, 남궁천은 웃으며 설천위의 뒤를 쫓는 사람을 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관여하지 말자.

같은 병(丙)이라고 해도 저 사람은 규격이 다르니까.

사고를 너무 많이 쳐서 을(乙)에서 강등당한 사람이랑 같을 순 없지.

그나저나…….

‘조심해라. 천위.’

진짜배기 미친놈이 너를 노리고 있는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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