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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82화 (82/624)

제82화

81화-혈사자(血師資) (7)

혈지(血池)에 들어간 손에 끈적한 피가 달라붙는다.

미간이 절로 찡그려지는 불쾌한 감촉.

하지만, 동시에 설천위는 이상한 점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 진한데.”

아무리 피가 물보다 진하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끈적이는 건 이상하다.

선지처럼 굳은 게 아니다.

말 그대로 피 자체가 끈적하다.

마치 전분을 섞은 것처럼.

그냥 피가 이렇게 끈적해질 리는 없으니…….

“여기구나?”

고개를 돌린 설천위의 눈빛에 혈사자는 입을 다물었다.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는 뜻을 내비치는 강경한 태도.

그 태도에 설천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충분하다.

이게 정답이라는 것을 알면 그 후에 할 선택지는 몇 개로 좁혀진다.

‘어떻게 할까.’

그냥 완전히 부숴 버리느냐, 아니면 어떻게든 이용하느냐.

이 혈지의 정체를 모르는 상황이니 전자가 나을 것 같지만…….

마음은 후자를 가리킨다.

어떻게든 이용할 수 있다면 이용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문제는 이용하는 방법인데…….

잠시 고민하던 설천위는 망설임 없이 쥐똥만큼 남은 내공을 끌어올렸다.

뭐가 됐든, 이런 건 대체로 내공을 흘려 넣으면 반응이 오기 마련이다.

진짜 위험해 보이면 천마 할배가 도와줄 테니 일단 질러 보자.

막무가내로 내공을 흘려 넣는 순간, 설천위는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반응하네?’

안에서 무언가가 움직인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문제는, 손에는 아무런 감각이 없다는 점.

즉, 무언가 물리적으로 움직인 게 아니다.

“영체구나.”

감이 왔다.

아무래도 이미 소환된 상태였나 보다.

혈지에서 손을 꺼낸 설천위는 고개를 돌려 혈사자를 바라봤다.

아직도 신나게 처맞고 있는 혈사자.

천마의 손속이 얼마나 매운지 전신에 맞지 않은 곳이 없었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전신을 골고루 두들겨 패고 있고.

천마 할배 권각술이 일절이긴 하네.

“혈사자 양반.”

[……끄윽.]

대답 없이 그저 고통을 삼키는 혈사자.

과연 피의 스승이라 불리는 놈답다.

그 정신력은 혈교에서도 손에 꼽히는 수준이겠지.

“솔직하게 대답하자고.”

그 앞에 선 설천위는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조금 떨어진 천마가 팔짱을 낀 채 지켜보고 있는 상황.

설천위는 자신의 목을 친 당사자다.

아니, 목을 꺾은 건가.

여하튼, 자신을 죽인 당사자니 결코 쉽게 볼 수가 없었다.

혈사자의 눈에 경계심이 가득 차오르는 게 보이자, 설천위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뭘 그리 경계해? 대답 안 한다고 당신한테 뭔가 길이 있을 것 같아?”

아니, 없다.

“혈교는 사로잡힌 포로를 오히려 죽이는 곳으로 유명하지. 이미 죽어서 혼이 붙잡혀 버린 당신에겐 관심도 없을 텐데?”

순직은 혈신 즉, 본인들이 말하는 천신의 곁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믿는 것이 혈교도다.

그러니 저런 짓도 서슴지 않고 하지.

“솔직해지자고. 당신도 혈신이라는 놈이 슬슬 못 미더워지기 시작했잖아?”

[헛소리! 천신께서는 유일하고도 전능하신……!]

“그렇다면 네 혼이 여기에 붙잡혀 있을 이유가 없지.”

피식 웃는 설천위.

그 입가에는 조롱이 가득했다.

“혈교 내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믿음이 강한 네가 이렇게 붙잡혀 누군지도 모를 혼에게 처맞고 있는데, 전능한 혈신께서는 그저 구경만 하고 계신다?”

[…….]

“둘 중 하나지. 버림받았거나 그럴 능력이 없거나.”

뭐, 사실은 후자에 가깝다.

괴이가 판을 치는 세계다.

신이라고 없을까?

이들이 모시는 혈신은 실제로 있고, 그 힘은 무지막지하게 강하지만 오로지 전투에 한정된다.

물론 게임에서 본 것이니 어디까지 믿어야 될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지금 확실한 건 하나다.

혈신은 이 녀석의 믿음에 결코 보답하지 못한다.

“저 혈지가 무엇을 하는 곳이고, 무엇을 불러낸 건지 그것만 말해 봐.”

흔들리는 눈동자를 숨기지 못하던 혈사자는 결국 눈을 감았다.

[……불가하다.]

독한 쉑히.

오로지 믿음.

그 하나로만 움직이는 광신자.

이런 이들이 이 무림엔 생각보다 많다.

그 대상이 신이 아니라 사람인 경우도 꽤 있고.

뭐, 시대적 특징이라 할 수 있겠지.

과학보다 미신이 흔하고.

현실보다 괴이가 무섭다.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두려워하고, 그에 대한 방어기제로 그 곁에 서고 싶어 하는 동물이니까.

고개를 끄덕인 설천위는 몸을 돌렸다.

이 이상 질문해 봤자 답을 구하기까지 한참 걸릴 거다.

그러면 그사이에 밖에 온 적들을 전부 정리하겠지.

셋이서 피 터지게 싸워서.

그런 결과는 썩 좋지 않다.

“후.”

다시 혈지 앞에 쭈그려 앉은 설천위는 혈지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도박이긴 한데, 할 만할 것 같다.

인생을 언제나 편안한 길로만 갈 순 없는 법이지.

“할배, 혹시 뭔 일 생기면 부탁해요.”

[또 뭘 하려는 거냐.]

“가벼운 깽판?”

어깨를 으쓱인 설천위는 피식 웃으며 손을 뻗었다.

끈적하게 달라붙는 피의 감촉을 느끼며 힘을 끌어올린다.

내공이 아니다.

영력이다.

저 안에 있는 대상이 영체라면, 이쪽도 영력으로 승부해 줘야지.

[패령안(覇靈眼)]

두 눈을 부릅떠 눈에 힘을 모았다.

영력을 가득 담은 눈은 평소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동시에 그 안에 담기는 패기(覇氣).

두 눈으로 혈지를 응시한다.

무엇이 보이는가.

“……뭐지?”

뭐라고 해야 하지, 이걸?

붉은 혈지 속에서 일렁이는 검은 무언가.

그 형태는 사람과 닮았다고 할 수 있지만, 이목구비란 게 아예 없는 생김새는 도저히 인간이라 부를 만한 것이 아니었다.

뭐지?

그런 의문이 떠오를 때, 검은 무언가가 움직였다.

자신을 향해 접근하는 영력을 먹이라고 착각했는지 거침없이 주둥이를 벌렸다.

저게 주둥이라고 해도 맞는 건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얼굴로 추측되는 곳이 벌어졌으니 주둥이겠지.

내가 흘려보낸 영력에 거침없이 달려드는 녀석.

하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줄 순 없지.

영력을 이리저리 움직여 피하자, 녀석은 애가 탔는지 더욱 거칠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나도 영력의 제어에 더 힘을 쏟기 시작했고.

그러길 몇 분.

드디어 녀석의 움직임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포기한 걸까?

……아니.

아니겠지.

혈교가 만들어 낸 무언가다.

이리 쉽게 포기할 리가.

거기에 이 느낌, 어디서 본 것 같단 말이지.

뭔가 묘하긴 한데, 어디선가 본 것 같은…….

[키익.]

……울음소리?

순간 잡념에 빠졌던 의식을 깨운 설천위는 다시금 녀석에게 집중했다.

뭔가 움직인다.

그리 판단한 순간.

[키에에에에에엑!]

기이한 괴성과 함께 녀석이 입을 벌렸다.

그리고 빨아들인다.

영력을?

아니, 피를.

혈지를 가득 채운 피가 순식간에 녀석의 주둥이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실체가 없는 영체가 실체가 있는 혈액을 먹어 치우고 있는 거다.

이게 말이 되냐 안 되냐를 떠나 설천위는 빠르게 영력을 회수했다.

녀석이 뭐 하는 놈인지도 모르는데 먹이를 줄 순 없지.

빠르게 영력을 회수한 설천위는 순식간에 줄어들기 시작하는 혈지를 바라봤다.

가득 담아 놓은 물을 배수관으로 빼낼 때처럼 소용돌이가 생긴다.

그 소용돌이의 끝.

[키익.]

피가 전부 사라진 중심에서 붉은색의 마귀가 고개를 꺾었다.

“……혈귀(血鬼).”

과연.

이게 이렇게 만들어지는 거였구나.

다만, 생김새는 알던 것과 다르다.

게임에서 나왔던 혈귀는 전부 어린 소년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까.

붉은색의 반질반질한 표면은 똑같지만, 생김새가 완전히 다르다.

뭐랄까, 만들어지다 만 찰흙 인형 같은 느낌?

설천위의 시선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을 향했다.

저 아이들이 의식의 마지막에 바쳐졌으면 그런 모습이 됐겠지.

[혈귀를 알고 있다니 네놈, 대체 뭐 하는 놈이냐?]

놀람으로 두 눈을 부릅뜬 혈사자의 모습에 설천위는 어깨를 으쓱였다.

“무림학관 학생.”

조롱임을 깨달은 혈사자가 다시 입을 열려는 순간, 설천위는 앞으로 나아갔다.

만신창이인 몸이 비명을 질러 댔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깨웠으니 내가 해결할 수밖에.

다만 한 가지 안심인 점은 저 녀석이 제대로 완성된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게임에서 나오는 혈귀는 하나하나가 초절정 이상, 가끔 보이는 고레벨 개체는 화경급 이상의 무위를 보여 줬다.

아무리 그래도 미완성인데, 그렇게까지 강하진 않겠지.

“후.”

오른팔의 골절은 그대로다.

하는 수 없이 왼팔로 도를 쥔 설천위가 천천히 싸우려는 순간.

[뭐 하는 게냐?]

천마의 목소리에 설천위는 움직임을 멈췄다.

“뭘 하긴요. 싸워야죠.”

[그러니 뭐 하냐고 물었다.]

아니, 이 할배가.

그게 무슨 소리…….

[너는 저놈이 무인으로 보이는 게냐?]

[키에에엑!]

천마의 말에 호응이라도 하듯 혈귀가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며 땅을 박찼다.

훌륭한 속도.

최소 절정급은 되어 보이는 그 속도는 순식간에 설천의 코앞까지 당도했다.

하지만.

“아.”

그 순간 천마의 말뜻을 깨달은 설천위는 담담하게 혈귀를 바라봤다.

반질반질한 몸.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이목구비.

자아와 이성이 보이지 않는 행동.

“……실수했네.”

자기반성과 함께 도를 내리며 설천위는 담담하게 혈귀를 바라봤다.

우뚝.

순간, 허공에 멈춘 혈귀의 주먹을 설천위가 가만히 바라봤다.

착각하고 있었다.

무인이라고.

하지만 무인이 아니다.

무인이 아니라면 굳이 손을 댈 필요도 없다.

[패령안(覇靈眼)]

패기를 한껏 담은 설천위의 눈동자가 미완성의 혈귀를 응시한다.

설천위의 패기 스탯은 上下.

이미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은 경지에 오른 상태.

조잡한 실체를 얻은 영체 따위가 견뎌 낼 수 없는 힘이다.

[끽?]

스스로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한 혈귀가 고개를 기울였다.

이 녀석은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도 깨닫지 못하고 있구나.

순간, 설천위는 그저 담담히 손을 뻗어 혈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됐다. 쉬어라.”

그의 손에서 흘러 들어간 영력과 패기가 그 몸을 부순다.

거짓된 실체를 무너트리고, 그 안에 담겨 있는 미숙한 영체만을 골라낸다.

어느새 다시 일렁이는 검은 존재가 된 혈귀를 보며 설천위는 손을 거두지 못했다.

스스로를 알지도 못하고 그저 태어나 이용만 당하는 존재.

그 근원에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안 이상, 도저히 그냥 소멸시킬 마음이 안 들었다.

“에이 씨.”

나도 모르겠다.

결국 설천위는 손을 뻗었다.

이 존재를 구해 주자.

그렇게 생각해 [혼원패공(魂元覇功)]의 영향 아래로 혈귀를 거두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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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한 혼의 집합체가 지배를 견디지 못하고 분해됩니다.

영력이 中中으로 상승합니다.

신체 능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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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또 뭐야.

혼이 흡수도 되는 거였어?

어. 됐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 근데 신체 능력은 왜 올라?

예상치 못하게 혼을 그냥 흡수해 버린 설천위가 미간을 찡그리는 순간.

찌릿.

온갖 감정이 설천위를 휩쓸었다.

공포, 불안, 고통, 슬픔, 그리움 등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설천위를 휩쓴다.

그리고 흐릿하게 떠오르는 기억 속에서 그 감정의 근원을 읽어 낸 설천위는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컥!]

이곳으로 길을 안내했던 혈교인의 목을 움켜쥐었다.

“이 쓰레기들이……!”

산 채로 피를 꺼내 그 신체마저 특수한 용액으로 녹여 버린다.

혈지가 끈적했던 이유.

그 정체를 깨달은 설천위의 눈동자가 강렬한 살기로 번뜩인다.

손에 힘을 더하며 설천위는 혈교인을 바라봤다.

“너는 그 혼조차 사라질 것이다.”

의지를 세우니 영력과 패기가 알아서 움직였다.

붙잡은 혼을 분해하고 그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그 등을 바라보던 천마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저거구나.

혈패황(血覇皇), 그가 압도적인 존재가 될 수 있었던 이유.

패군(覇君).

진정한 패도를 걷는 제왕.

그는 수많은 존재들 위에서 완성된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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