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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무림학관의 낙제생이 되다-78화 (78/624)

제78화

77화-혈사자(血師資) (3)

검을 쥔 팔에서 느껴지는 근육통에 설천위는 이를 악물었다.

아주 잠깐, [소적검(消跡劍)]을 쓰는 찰나의 순간만 몸을 맡겼다.

[패룡지체(覇龍之體)]를 이용해 육체적 능력을 끌어올린 상태에서의 [소적검(消跡劍)]은 그야말로 훌륭했다.

단숨에 둘이나 되는 절정급 무인의 목을 잘라 버렸으니까.

하지만 그만큼 몸은 괴로웠다.

맨몸으로 쓸 때처럼 아예 망가지는 수준까진 아니어도 한동안 움직임에 지장이 생길 정도의 후유증이 남았다.

진짜 말도 안 되는 검(劍)이다.

[그렇기에 내가 생전에 완성하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지.]

설천위의 생각을 읽은 듯한 현태중의 목소리에 소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생각보다 육체적 능력의 차이는 별로 나지 않는다.

인간의 몸이란 것이 단련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 한계를 넘게 해 주는 것이 내공(內功)이고.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육체 능력이 중요하지 않은가?

그럴 리가.

흔히들 하는 착각이 있다.

내공이 중후하면 육체가 조금 부족해도 된다고.

헛소리다.

무(武)에서 부족해도 되는 게 어디에 있는가?

단련의 궁극적인 이유는 생존이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야지 부족해도 되는 게 어디에 있는가.

‘물론 나도 생전에는 생각도 못 했던 개념이지.’

설천위를 보며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을 뿐이다.

보통의 무인들이 스스로 만족하는 그 육체 능력이 얼마나 축복받은 것인지.

그 육체 능력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처참하기 그지없는 설천위의 육체를 생각하면 할수록 그런 생각은 더욱 깊어졌다.

까득.

현태중과 소백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심이 없는 설천위는 검을 움켜쥔 채 몸을 비틀었다.

엄밀히 말하면, 관심이 없는 건 아니다.

그저 지금 그 관심을 쏟을 여유가 없을 뿐.

두 명의 목이 달아난 순간, 반사적으로 뛰어드는 나머지 인원들을 향해 설천위는 검을 휘둘렀다

뭐가 됐든, 이쪽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다.

버티는 것.

아직 내부에 남아 있던 적들은 철백과 서하영이 맡기로 했다.

적이 그리 많지 않았으니 정리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터.

그들만 합류하면 이 정도 인원수야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다.

거기에다.

“이 어린놈들이……!”

“아이와 노인을 조심하라는 격언도 모르시나요?”

주교의 앞을 막은 유예린이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다.

설천위에게 셋이나 붙었다.

이쪽의 싸움을 빨리 끝내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방심할 수 없네요.’

빈틈이 거의 보이질 않는다.

최소한 자신과 동급 혹은…….

‘반의반 수 정도 위일 수도 있겠네요.’

상대의 강함을 어림잡으며, 유예린은 소매 속에서 손을 움직였다.

공식적으로 유예린이 주력으로 쓰는 무기는 검이지만, 사실은 하나가 더 있다.

검과 비슷하거나 상황에 따라서는 그 이상의 위력을 내는 무기.

[암은검(暗隱劍)]

우웅.

소매에서 꺼낸 단검이 그녀의 내공을 받자 울었다.

검명(劍鳴).

검의 울음.

검의 진동.

그것이 만들어 내는 소리가 유예린의 또 다른 무기.

은신의 극의라 불리는 유가의 무학 속에서도 그 독특함이 유독 도드라지는 음공(音功)이다.

그런 유예린의 상대가 된 암평은 순간 귀에서 기묘한 소리가 울리는 느낌을 받았다.

키이이이잉.

아니, 들렸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암평은 즉시 땅을 박찼다.

동시에 그가 있던 자리를 무형의 날이 훑고 지나간다.

사특하다.

사특하기 그지없는 무공이다.

보여 줄 생각 따윈 한 줌도 없는 암경(暗勁).

오로지 죽일 생각만을 품은 공격.

그 안에 짙게 밴 살의(殺意)를 느끼며 암평은 헛웃음을 지었다.

“어찌 스스로 정파라 칭하는 놈들의 무공이 이따위란 말이냐.”

“으음, 부정하기 힘드네요.”

암평의 목소리에 대답하며 유예린은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그녀의 손짓에 따라 기묘한 울림이 동굴 전체로 퍼져 나간다.

그 사실을 깨달은 암평은 미간을 찡그렸다.

동굴의 벽을 이용해 소리를 굴절시키고 있다.

자신이 알아챌 수 없는 방법으로.

‘안 좋군.’

아마 그냥 싸운다면 근소한 차이로 자신이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거다.

그런데 동굴이라는 환경과 이 말도 안 되는 무공이 만나 우위를 뺏겨 버렸다.

하지만 상황이 그리 좋지 않은 것만은 아니다.

자신의 호위 셋을 상대하고 있는 녀석이 명백한 열세 속에서 힘겹게 버티고 있었으니까.

‘조금 전에 보여 줬던 기습이 말로만 듣던 궤적 없는 검인가?’

무룡투쟁에서 선보였다던, 남궁천을 꺾은 검식.

물론 쓰고 나면 팔이 망가져 정상적으로 싸울 수 없다는 정보도 입수한 상황이다.

문제는 그 정보가 과거의 정보가 되었는지 그 검식으로 보이는 일격을 선보이고도 아직 멀쩡히 싸우고 있다는 점이다.

팔에 통증이 있는 듯 조금씩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제대로 된 빈틈이 생길 정도의 흐트러짐은 아니었다.

그 미세한 틈을 벌리고 벌리면 확실히 큰 틈이 되겠지만…….

‘점점 줄어드는군.’

유예린의 공격을 피하면서도 눈으로 상황을 살피던 암평은 희망을 버렸다.

호위들로는 저 녀석을 빠르게 정리할 수 없다.

지금 당장 빈틈이 되어야 할 팔조차 빠르게 회복하고 있지 않은가.

저들이 큰 방해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오히려 이대로 가다간 호위들이 역으로 당해 자신이 위기에 몰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도망치는 수밖에 없는가.’

의식은 거의 다 끝나 가는데?

화가 솟구친다.

대업의 첫걸음이 바로 눈앞이었는데!

암평의 두 눈에 노골적인 노기(怒氣)가 서리자, 유예린은 조금 더 마음을 가라앉혔다.

저런 분노 끝에 나올 행동은 두 가지다.

더욱 거칠게 공격하거나, 아예 도망치거나.

감정이 앞서는 이라면 전자를 택할 것이요, 이성이 앞서는 이라면 후자를 택할 것이다.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상황을 읽어 내며 유예린은 하체에 힘을 더했다.

뭐가 됐든 빠르게 대처하려면 하체가 단단히 버티고 있어야 한다.

하체는 굳건하게, 상체는 현란하게.

유예린의 손이 허공을 가르며 수많은 검음(劍音)을 만들어 낸다.

내공을 담은 소리가 동굴 벽에 반사되어 적을 노린다.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정도의 위력은 아니지만 움직임을 막고 흔들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은 된다.

그렇게 암평을 서서히 압박하며 그를 피할 수 없는 함정으로 몰아가던 그때.

암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이를 악물고 버틴다.

머리에서 떨어지는 비수를 검으로 쳐 내며 몸은 왼쪽으로 비튼다.

처절하기 그지없는 발악.

그야말로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고 펼치는 힘겨운 몸짓.

하지만, 그럼에도 피해 낸다.

막고 피하고.

상대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지킨다.

심지어 내공의 여유 덕에 회복을 펼쳐 손에 남아 있던 통증도 전부 사라졌다.

내공의 소모를 제외하면 온전해진 몸의 상태.

어떻게든 버티며 눈에 담은 적들의 공격.

그렇기에 설천위는 다음으로 넘어갔다.

[패룡지기(覇龍之氣)]

웅크려 있던 존재감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크르르르르.]

그의 몸을 감싼 패융의 울음소리와 함께 설천위는 숨통이 트이는 걸 느꼈다.

조금 둔해진 적의 반응 속도.

조금 느려진 적의 움직임.

그 사소한 차이가 틈을 만들어 내고, 여유를 만들어 낸다.

안정을 되찾은 검이 역습의 기회를 잡아낸다.

“……!”

어깨를 베인 상대가 두 눈을 부릅떴다.

어떻게?

그런 의미가 가득 담긴 시야는 통증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자신들이 밀리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경악뿐.

그렇기에 설천위는 입꼬리를 비틀며 검을 들었다.

“내가 몸이 잘 안 움직이는 거지, 눈이 안 좋은 게 아니거든.”

[패룡지기(覇龍之氣)]를 먼저 썼으면 버티는 게 조금 더 쉬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선 적의 진짜 실력을 볼 수 없다.

그들이 펼치는 기술의 온전한 위력을 알아야 올바른 대처를 할 수 있다.

적이 경계심을 가득 품고 실력을 숨긴 채 공격을 펼치다가 갑자기 폭발하는 적의 비수를 막아 낼 자신이 설천위에겐 없었다.

그래서 지켜볼 시간이 필요했고, 지켜봤다.

적들이 펼치는 공격의 흐름.

적들이 주로 사용하는 서로 간의 호흡.

그 모든 것을, 설천위는 따라 할 순 없지만 눈으로 보고 이해할 순 있었다.

더 강해진다면.

더 성장한다면.

이런 과정 따위 필요 없겠지.

하지만.

“끄륵.”

검이 상대의 목을 훑고 지나가자 그는 피가 섞인 가래 소리와 함께 자신의 상처를 부여잡는다.

지금은 이 과정으로 적의 목을 벨 수 있다.

그걸로 충분하다.

한 명이 치명상을 입으면서 생긴 틈은 필연적으로 연쇄 작용을 일으켰다.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남은 이들이 무리를 하고, 그 무리는…….

“큭!”

빈틈을 만들어 낸다.

설천위의 검이 연신 적들의 몸을 스치고 지나간다.

단숨에 목을 벨 필요는 없다.

천천히.

차분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인간은 피를 많이 흘리면 의지와 상관없이 쓰러질 수밖에 없는 생물이다.

광신(狂信).

그것을 꺾는 건 강인한 의지로도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이다.

설천위가 완전히 승기를 잡았다.

[많이 성장했군.]

[성장할 법도 하지.]

현태중의 감상에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설천위에게 인정받지 못해서, 설천위를 인정하지 않아서 나오지 않은 철귀.

그 철귀를 상대로 싸워서 죽은 횟수가 세는 것조차 힘들 지경에 이른 설천위다.

아무리 내면세계에서의 죽음이라고 할지라도 죽음에 이르는 감각은 강렬하기 그지없다.

오히려 어떤 면에선 현실의 죽음보다 더하다.

정신이 일순 죽어 버리는 거니까.

잘못하면 그대로 식물인간이 되어 버리거나, 심장마비로 죽을 만한 일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자신 있게 하라고 한 이유는 설천위의 정신력 때문이지만…….

‘놀랍군. 아주 놀라워.’

그 수많은 죽음을 견뎌 내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을 토대로 성장까지 했다.

자신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으로.

권법, 검법, 도법.

각기 다른 세 가지.

그중에서도 뛰어나기 그지없는 상승 무공을 그 짧은 시간에 전부 4성으로 올렸다.

보법은 말할 것도 없다.

모든 죽음에서 끊임없이 썼던 것이 그것이니.

아무리 유예린이 이목을 끌었다지만, 일순 초절정에 이른 적들과 절정에 이른 적들의 감각을 속인 것이 그 증거다.

[섬뢰풍영보(閃雷風影步)]는 속도는 물론이고 은밀함을 갖춘 보법이니까.

실로 어마어마한 성장 속도다.

혈패황이 그토록 강했던 이유를 조금 엿본 기분이다.

태어날 때부터 괴물이 아니라 품고 있던 것이 괴물이었던 거겠지.

전력을 다하면 초절정을 상대로 이길 순 없어도 쉽게 지지도 않을 수준까지 올라와 버렸다.

거기에다 설천위가 [패룡지기(覇龍之氣)]라고 부르는 힘 덕에 절정급은 셋을 상대로도 이리 여유롭다.

참으로 훌륭하다.

그렇기에 일방적으로 적들을 몰아붙이는 설천위를 향해 천마가 입을 열었다.

[여유도 좋으나, 지금은 빠르게 움직여야 할 때다.]

전투의 기본은 본인의 안전이다.

그렇기에 원래는 설천위의 냉정한 이런 판단을 칭찬했겠지만, 아쉽게도 현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천마의 목소리에 겨우 한눈을 팔 여유를 되찾은 설천위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한곳으로 향했다.

“흡.”

적의 장(掌)을 받아 내며 유예린이 숨을 삼킨다.

그야말로 폭풍처럼 몰아치는 힘.

그런데 이상했다.

몰아치는 상대의 상태가.

붉게 물든 얼굴과 손.

한껏 충혈된 눈동자.

[폭혈(爆血)이다. 혈교 고유의 사술이지.]

무공이 아니라 사술.

그 말에 설천위는 잊고 있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막페 돌입했다고?’

별로 싸우지도 않았는데?

혈교의 네임드들이 쓰던 통칭 버서크 모드.

모든 스탯이 증가하는 것은 기본이고, 여러 가지 귀찮은…….

[그쪽이 아니다.]

“흥미로운 광경이군요.”

순간, 천마의 경고와 함께 설천위는 몸을 비틀었다.

[역시 빠르구나.]

천마의 평가와 함께 설천위는 겨우 피해 낸, 정체 모를 공격의 주인을 바라봤다.

깔끔한 붉은 옷.

몸 이곳저곳을 채운 화려한 장신구.

“혈사자(血師資)…….”

이건 아주 좋지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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